이금자 시인

조회 수 8862 추천 수 2 2015.01.30 09:22:28

이금자.jpg

 

현대시는 과거의 서정시와 같은 단순한 운율적 외침으로서는 현대인의 감정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원래가 호소하는 정서를 그리는 구실을 하는 것이지 묘사나 사실을 형식으로 그리는 글이 아니다.
  시감이 언어나 어조나 악센트가 고저가 없이 생명력 있는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존재의 심연에는 노래로 이루어진다. 신인의 고유한 만족에는 리듬 패턴에 있다. 묘사는 소설에 속할 문제는 아니다. 시가 만약 회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면 시는 소설이나 다른 형식이다. 시의 특색은 리듬감이 강한 매력에 살아난다. 리듬감이나 상징성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가 시로 남기 위해서는 리듬에 의한 특수한 효과와 표상에 의한 심상적 효과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어느 봄날

햇살이 넘실대는
언덕에 올라
닫혔던 마음에 빗장을 열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봄바람의 향기
두 팔 활짝 열어 끌어안으니
메말랐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연분홍 진달래꽃 가득 피었다

퐁퐁퐁 솟아오르는 힘
뛰쳐나가고픈 요동
까닭 없이 울렁거림은
먼 옛날
바람처럼 가버린 사춘기
그 사춘기가
길을 잃고
내 안에 들어와
이렇게 파도를 치고 있다

 

  이 시는  <어느 봄날> 전문이다. 봄바람이 불어 진달래 피어나면, 옛 추억은 총총히 상념에 와 젖는다. 시간은 무상한 것. 기쁨과 아쉬움도 바람처럼 가버렸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 사랑 젊음이 아닌가. 그래서 세월처럼 삶의 여백을 남긴다.
  그렇다. 갇혔던 겨울이 물러서니 천지는 온통 희망으로 가득 찬 봄이다.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봄의 이미지. 마음도 연분홍빛으로 다가서고 바람도 푸른 향기다. 바람처럼 가버린 사춘기의 가지가지의 영상들이 바람에 묻어온다. 모든 사람들이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맑고 환희로!
  이금자 시인의 시어들은 한결 맑다. 장엄하다든가 둔중한 말은 별로 없다. 어둠이나 근심걱정을 떨치고 살가려는 모습들이 건강하다. 언덕, 바람, 진달래, 파도… 심상에 그려지는 표현된 체험의 영상들이 젊은 날의 꿈 많던 시절의 추억들이 구름처럼 떠오른다.

 

커피 한 잔

하향케 피어오르는 향내음에
가슴 흠뻑 적셔 놓은
그리움 하나
퍼내도
퍼내도
자꾸만 솟아나는 샘물
나이 들어갈수록
깊어가는 골
골 깊은 곳으로
미운 정
고운 정
버무려 실은
종이배 하나
고동색 강물에 수장하고
못된 짐승처럼 버티고 선
이순의 언덕으로
반항 한번 못하고
끌려가는 여인의
바싹 마른 입술
습관처럼 홀짝이는 액체는
그저
한 모금에 부과한 갈증이다

 

 <커피 한 잔>은 일연으로 된 시다. 차 한 잔 앞에 놓고 오십의 성상을 훌쩍 넘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 당당히 맞서려는 강한 의지보다는 우주와 자연 속에 순응하려는 생활지향성이다.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것보다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는 초탈의 표백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이금자 시인의 글에는 과장이나 어색한 사실이 없다. 충만한 존재와 삶을 위한 기도의 시다. 시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 근거한 진실의 외침이다. 시에 주석을 필요로 한다거나 친절한 해석을 붙인다는 것은 도리어 이금자 시인에게 더 어색하다 싶다.

 

                                                                                                                        -강범우 전 덕성여대교수 내용 참조

 

 

약력:

1993년 <조선문학> 시 등단

한국문협 회원 및 미주지회 이사

보스톤 거주

뉴잉글랜드문협 회원 및 수요시 동인

저서: 장미 5월의 하루. 어느 봄날의 출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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