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 일기(기행수필)

조회 수 8310 추천 수 3 2014.12.06 09:11:43

      구덕포철길.jpg

구포철길
                                                                     청사포 일기

                                                                                                                                                                           김대갑

 

 요즘 주말만 되면 동해남부선 청사포 철길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면서 이 호젓한 철길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철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사포 철길은 무척 운치가 있습니다. 청포도 빛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를 달리는 녹슨 철길.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풍기는 자태. 어딘가 모르게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이 아름답습니다.
  청사포 끝자락에 있는 코끼리 바위를 아시나요? 이 바위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은 과연 무엇일까요? 청사포 미역은 유명합니다. 바다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생미역은 서울에서 아주 고가에 팔리는 고급미역입니다. 그런데 저는 해마다 이맘때면 자연산 미역을 공짜로 채취하였습니다. 구덕포와 송정 바닷가, 청사포에 지천으로 떠내려오는 자연산 미역을 보셨나요? 눈 부신 태양과 더불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미역을 한 아름 주워서 집사람에게 한 달 먹을 양식 갖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곱게 눈을 흘기는 아내가 끓여주는 자연산 미역국. 그 달콤함과 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청사포와 구덕포 바닷가에서 잡는 참고동은 또 어떤가요? 수경 하나 쓰고 허리 정도 물이 있는 곳에 들어가 고개만 숙이면 한 아름 손에 잡히는 참 고동. 운이 좋으면 낙지와 해삼, 성게도 잡을 수 있답니다. 한두 시간만 물에 들어가면 한 망태 가득 참고동을 건져 올렸죠. 그 참고동을 바닷물에 씻은 후에 주워 모은 나뭇가지로 끓여 먹는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낚시 이야기해 볼까요? 봄이면 저는 허름한 낚싯대 하나 들고 청사포 바닷가로 갔습니다. 시간은 대략 오후 3시 정도. 물이 최대한 빠질 때쯤이면 저는 얕은 바위틈 사이로 낚싯대를 넣습니다. 그러면 투명한 물가 사이에 용치놀래기들이 한두 마리씩 움직이며 나타납니다. 그놈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낚싯대를 요리조리 놀리다가 어느 순간 홱 위로 올리면 제법 묵직한 놈이 걸려듭니다. 그렇게 몇 마리를 낚아서 회로 처먹기도 하고, 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소금도 안 치고 숯불에 구운 용치놀래기의 맛은 그 어떤 생선구이보다 더 맛있습니다.

 

해운대역 건널목.JPG

                                                                                              →해운대역 건널목


  청사포 방파제에서 말리는 미역은 또 어떻습니까? 때론 맘씨 좋은 미역 주인이 맛보라며 끄트머리 하나를 툭 떼어 줍니다. 입안 가득 밀려오는 짭짤한 맛은 바다의 향 그 자체입니다. 저도 모르게 또 한 조각 얻어다가 우물우물 씹으며 바닷가를 걸어갑니다. 허허. 그 포근한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오.
   청사포와 철길. 매일 보면서도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하는 바다와 녹슨 철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오래전에 헤어졌던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아들딸을 낳을 때도 찾아가기도 했죠, 우리 딸이 초등학생일 때, 청사포 바다를 보면서 딸아이는 이렇게 말했죠.
“아빠, 바다 빛이 너무 푸르러서 눈을 뜰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 청사포 바다 빛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합니다. 저는 그 바다의 황홀함 때문에 오늘도 청사포를 찾는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청사포. 그러나 청사포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변한 것은 사람들이죠. 감히 말해 볼까요? 청사포의 구석구석 속살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는지. 그 해안 철길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사연들, 전설들, 무수히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는지.

 

청사포철길.jpg

                                                                                 →청사포 철길


  진정으로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면 그 대상을 고요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청사포를 말없이 지켜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내 맘을 지배할 대상이기에.

 

 

약력: 부산출생
부산대학교 독문과 졸업/《문학도시》소설 신인상 수상/여행작가
저서: 《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이병호

2014.12.14 21:25:22
*.56.31.167

사진이 들어가는 기행수필은 이해하기와 주변 분위기에 도움이 있어

좋습 ㅋ 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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