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마중물

조회 수 1946 추천 수 1 2014.12.16 16:10:10


                                            기적의 마중물
                                                                                                                                                     강 정 애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 오병이어의 이야기였다. 어떤 사내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는 기적의 마중물 이야기였다.
  내 소녀 시절, 동네 우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출 시절이다.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펌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중물을 붓고 이내 펌프질하면 깊은 곳에 있는 샘물이 올라오고 잠시 후면 얼음물같이 차가운 물이 올라왔다. 우리 집에는 특이하게 수돗가에 펌프가 있었다. 그 당시 수돗물이 모자라던 때라,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허드렛물은 펌프로 길어 올려 사용했다. 펌프 물을 퍼 올리는 일은 딸인 내 몫이었다.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리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 재미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 빠진 펌프는 아무리 힘들여서 손잡이를 오르내려도 끽끽거리는 쇳소리만 낼 뿐이다. 그때 물 한 바가지를 요령 있게 부으며 팔을 아래위로 빠르게 움직이면 땅 밑에서 기별 받은 지하수가 올라올 채비를 하는 것이다.
  처음 올라오는 물은 녹물 섞인 흙물이어서 바가지 물을 서너 번 더 부으면서 달래듯 펌프질을 한다. 그러고 나면 맑은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신나서 힘차게 팔다리를 움직여 퍼낸 물을 물통마다 가득 채웠다. 땅속 물을 끌어올리는 두어 바가지 물의 기적, 그리고 봉(棒) 피스톤의 상하 리듬으로 콸콸 물을 쏟아내는 펌프라는 기계의 위력 앞에서 신기하다는 생각뿐이었다.
  펌프 손잡이에 매달려 땀이 밴 온몸으로 계속 물퍼기하면 올라오는 물, 그 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깊은 땅속에 고여 있던 물이 아닌가. 땅 위로 올라오고 싶어도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 한 바가지 물이 마중을 가서 끌어 올려야 한다. 이렇게 물을 밖으로 뿜어내는 펌프처럼 나에게 잠재해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공부 방향을 이끌어주는 부모님께서 바로 마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시절, 장차 무엇인가 크게 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다가 오리무중을 헤맬 때 나침반이 되어 방향을 지시해주는 남편. 결혼하여 3남매 키우면서 자라나는 아이들 성격을 유심히 살피고 각기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 데 노력했다.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를 권장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심, 그러한 지적자극이 두뇌발달에는 중요한 보약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세상 어느 부모인들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서 소홀히 하겠는가. 우리가 받은 부모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모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이다.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그 방향을 잡아 주느라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는 부모는 바로 자녀성장의 길잡이인 마중물, 그것이 인상 싶다.
  나는 그동안 받은 부모님의 은공을 자녀에게 돌려주었던 마중물 같은 삶을 누리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던가. 그 값지고 아름답던 세월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요즘은 수필을 쓰며 자기 개발에 힘을 기우렸다.
  내 머릿속에서 굼틀대는 생각은 왜 그렇게 많은지, 오만가지 글감이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곤 한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의욕이지만, 컴퓨터 앞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질 때가 자주 있다. 내 글을 읽고 가차 없는 혹평도 주저하지 않았던 남편은 이렇게 사랑이 많고 세심한 배려가 나의 수필을 쓸 의욕을 북돋아 주는 원동력이다.
  생각의 우물파기에 지친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든 나는 비로소 잠든 뇌를 깨우는 일이 시급함을 깨달은 것이다. 기억, 생각, 판단 등, 희미하게 사라지려는 이 정신작용을 불러일으켜 감각을 닦고 한편의 글을 써야 함을. 마음 깊숙이 잠겨있는 내 사상과 감정으로 응고된 언어들, 그것이 제아무리 쌓여있다 한들 표현하지 않으면 글이 될 수 없는 것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소녀 시절, 힘껏 펌프 물 푸듯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모니터 화면에 뜬 내 언어들. 그것은 생수처럼 올라온 내 선혈(鮮血)이자 내 거듭나기 희망의 환성이 아닌가.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담는 내 두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번졌다. 앞으로도 계속 내 한편의 글쓰기에 아낌없이 부어줄 아, 기적의 마중물.
                                                    


정순옥

2014.12.17 14:38:29
*.175.42.155

기적의 마중물은 이미 우리 홈 작품에서 읽었습니다.

마중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금자

2015.06.09 06:12:21
*.49.228.79

두 편의 글 잘 읽었습니다. 

마중 물"  저희집도 앞마당에 우물과 펌푸가 있어 동네 사람들이 물 길러 많이 왔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우리집만 우물과 펌프가 있었으니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대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그리워 지는군요.

두 번째 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쓸 글이 없네요.  한국에는 지하철에서 자살 하는 사람 많아서 타는 입구에 칸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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