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백발(白髮)

조회 수 1798 추천 수 2 2015.12.01 18: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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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백발(白髮)

 

 

                                                                                                                                                          남 중 대 (Nam Jevin)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백발 막을 길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생겨난 말이 아니겠는가! 우주 섭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하루가 멀다고 깜짝깜짝 놀랍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도전으로 무서운 결과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창조해내는 수많은 것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늘도 놀랄 만큼, 정말 살기 좋은 세상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잘 살다가, 2,3일쯤 아프다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살다 죽는다면 멋지게 산 인생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의 꿈이요 소망일 것이다.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한숨짓는 것이다.
   오래전 한국 영화판의 최고 스타였던 최은희 여배우를 기억해 본다. 90평생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그분이 지금 경기도의 어느 요양 병원에서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그 아름답던 모습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는 긴 세월 속에 묻혀 버린 지 오래다. 찾아 주는 이도 없지만, 백발로 탈색되어버린 그녀를 쉽게 알아볼 수도 없다. 평생을 세상 사람들의 선망과 관심 속에서 살아왔지만, 빛났던 지난날을 추억하지 않는다. 화려했던 세월보다는 질곡의 아픈 기억들뿐일 것이다.  그녀는 이 질긴 목숨이 다하는 날, 자신의 장례식에서 ‘바보처럼 살았다’는 노래를 꼭 불러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모두가 인생 막장에서는 이런 바람일 것이다.    

   내가 봉사회의 일원으로 10여 년간 봉사해 오고 있는 양로병원이 있다. 그곳에 한국인 남녀노인 환자들이 병마의 고통과 외로움에 내몰린 듯 지쳐 있다. 고전무용과 악기연주, 민요와 찬송을 부르며 위로하고, 호박죽과 전복죽으로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고자 한다. 그분들은 삶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지 오래다.
  밤과 낮을 따질 필요도 없고 오늘과 내일도 모른다. 대신 휠체어에 침대에 맡겨진 체 숨만 쉬고 있는 것이다. 남겨 놓을 것도 가져갈 것도 없다. 한시라도 빨리 숨이 멈추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낯설고 물 선 남의 땅에 와서 새로운 텃밭을 가꾸기 위해 청춘을 불태웠다. 문화와 말이 다른 현실 앞에서 돌아갈 수 없는 두고 온 고향산천을 그리며 눈물과 한숨을 삼켰던 세월이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운명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민자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
   대하소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의 시 ‘옛날 그 집’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아- 편안하다. 버릴 것만 남아 있으니 늙으니 이리도 편안한 것을’.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인데 떠나온 고향산천을 돌아볼 여유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픔과 외로움이 몰려 올 때면 귀소본능의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어야 했다. 쪼그라져 버린 육신과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린 세월 앞에서 무엇을 바랄 것인가.
  잘 듣지도 못하고, 똑똑한 말로 마음을 전할 수도 없다. 멀어져 버린 희미한 기억 속에서 두 눈만 껌벅거릴 뿐이다. 사람이 세상에 와서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숱한 일들을 겪고 경험한다. 그 많은 일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이란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국만리 머나먼 곳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타향살이가 아니겠는가.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고향산천의 그리움이 이민자에게는 참기 어려운 제일 큰 아픔일 것이다.
  나는 양로병원 봉사를 갈 때마다 머지않아 겪어야 할 내 모습을 본다. 반백이 되도록 향수를 달래며 30년 이민의 삶을 견디어낸 저만큼 가버린 세월을 돌아본다.
  태평양 저 건너가고 싶은 내 고향 푸른 동해 바닷가를 그리며 서 있다.
 
                                                                                                                                               (미주 주간현대 11월 5일)

 

 


이금자

2016.02.19 01:13:06
*.17.30.152

안녕하세요?

글을 읽으니 마음이 짠해오네요.생 전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백발이니 성성하니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해 둬야 될것 같습니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시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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