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박힌 네온 스파클러

조회 수 2710 추천 수 1 2014.12.16 18:04:51


                                                                     가슴에 박힌 네온 스파클러
 

                                                                                                                                                           이주혁

 

  독립기념일에는 불꽃놀이에 쓰는 짧은 막대기 같이 생긴 ‘네온 스파클러(neon sparkler)’와 콘(cone) 모양의 로켓 폭죽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1975년 미국에 이민 온 후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주립 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LA에 직장을 구하여 할리우드 부근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 때이다. 당시는 대부받은 학비와 밀린 빚을 갚으며 네 식구가 먹고살아야 할 각박한 상황이었다. 그랬으니 독립기념일 연휴 같은 축제는 나의 삶 속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고, 나는, 오히려 시간외근무수당에 관심이 더 많았다.
  독립기념일 연휴가 시작되는지라 바쁘지 않은 근무를 마치고 홀가분히 퇴근하니 아직 땅거미가 지기 전이다. 지저분한 쓰레기가 구석구석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아파트 골목에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뛰쳐나와 야단들이다. 길거리 한복판에 작은 불 무덤을 만들어 놓고, 손에 든 가느다란 막대기로 불꽃을 튀기며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
그때 여섯 살 된 아들 녀석과 세 살 된 딸아이가 먼발치서 나를 알아보고 급히 달려와서는, “아빠! 나 저거 줘.” “나도!” 하며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했다. 두 녀석이 ‘이제는 됐다.’ 싶은지 들뜬 얼굴로 반가워하며 안겼다.
  나는 처음 보는 것이라 불 무덤 가까이 가서 재 옆에 흩어져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뼘 좀 넘는 길이에 막대기 끝에는 희뿌연 납빛의 금속성 물질이 묻어져 있었다. 꼬마 녀석들이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얼른 아들 녀석 손에 쥐여 주며 불 무덤 속으로 들이밀었다. 그러나 불꽃은 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것은 ‘팍팍’ 불꽃을 튀기며 빨강 파랑 노랑 등 각가지 색깔로 번쩍번쩍 빛나는데. 또 다른 것을 대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것은 이미 다 타서 버려진 것임을 어쩌랴. 옆 아이에게 하나만 달라고 사정해 보았으나 한창 신이 난 아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럴만한 아량을 베풀기는커녕 콧방귀도 안 뀌며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운 눈으로 풀이 죽어 있는 녀석을 꼭 껴안았다. "길에서 이런 것 가지고 놀면 위험하고, 경찰이 오면 붙잡아 간다."고 엄포를 놓고 싶었지만 쳐다보는 가여운 눈망울을 피할 길이 없다. “아빠가 사 줄게. 가자!” 하고 손을 잡자 실오라기 같은 여린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금세 밝은 웃음을 띠고 신나서 따라나선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 어디 가서 그런 것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독립기념일에 아이들이 갖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었더라면 어린 가슴을 저렇게 멍들게 하지는 않을 것을…. 시간외근무수당이 한 배 반이라는데 미소 지었을 뿐.
  그래도 혹시나 싶어 길거리로 나가 보았다. 한산한 거리. 정류장에 멈추었던 시내버스는 떠나고 한 학생이 뛰며 따르다 천천히 돌아선다. 어디에도 불꽃놀이 기구를 파는 곳은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초콜릿 콘 아이스크림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아빠! 작은 막대기보다는 이 콘처럼 생긴 큰 불꽃놀이로 사줘!” 아쉬움이 담긴 아이의 이 말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콘처럼 생긴 쐐기 못으로 와 박힌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면서 값비싼 장난감으로 대신하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순간들이 어쩌다가 인심 쓰는 떠들썩한 생일 파티보다는 더 없이 귀하고 소중함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시기가 지난 이후에야 뒤늦게 깨닫고 가슴 아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곤 한다.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앞만 보며 달리는 숨찬 삶의 시간이, 잘 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엇박자를 치며 타버린 막대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세 살과 일곱 살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들을 본다. 사업하여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으련만 직장 생활에 만족하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한 발자국 뒤에서 차선의 삶으로 검소하게 사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경쟁에서 이기려고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사는 것만 같아 대견스럽다. 아마도, 나에게서 받은 상처를 더 나은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든다.
  독립기념일을 알리는 요란한 광고가 붙어 있는 불꽃놀이(fire works) 좌판대에서 올해도 네온 스파클러와 로켓 폭죽 한 통을 샀다.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남루한 옷차림의 예닐곱 살 난 사내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영문을 모르고 받아 쥔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냅다 달음질친다.
오늘 밤이 그에게 멋진 추억이 되길 빌어본다.

 

* neon sparkler: 30cm 길이의 막대기 끝에서 섬광을 내는 불꽃놀이 기구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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