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라톤
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권온자 시인의 시를 읽는다. 그동안 권 시인의 작품을 편편이 읽기 했지만, 이처럼 시집으로 한꺼번에 읽다 보니 언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쓰셨지! 라며 놀라움과 함께 시적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은 본격적인 시 해설이라기보다는 권 시인의 시정신(詩精神) 일면을 간결하게나마 잠깐 들여다보는 의미로 읽힐 수 있음을 밝힌다.
권온자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는 남다른 따뜻한 시선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족애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보인다. 시 세계 전반은 고향의 그리움과 놓지 않으려는 가족에 대한 집착이며, 시인이 시집 제목을 『고흐의 해바라기』로 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생각의 날개 날숨과 들숨 사이
고추잠자리 한 마리
붉게 물든 하늘 높이 날아간다
안방에 걸어두었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아래
떨어져 나간 귀 조각이
노랗게 누워 있다
비켜간 치욕의 기억들은
남편과 나의 가슴에
철장 속에 체포해 놓고
애련에 쌓인 옷을 입혀 놓는다
잠들지 못하는 몸뚱이에
-「고흐의 해바라기」, 전문
시집의 표제작품이다. 2000년 7월, 청춘의 희망을 안고 교육청 공무원인 시인과 동양화재 해상보험 소장이었던 남편은 사표를 내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엘리콧 시티(Ellicott City)에 이민 왔다. 대형 트럭커로 전국을 돌며 지정된 장소에 짐을 풀어주고 그곳에서 다시 짐을 받아 또다른 곳에 옮겨주기도 했다. 그러다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과 레스토랑 및 여러 업종을 옮기며 지금껏 일하고 있다. 그러던 중 큰아들은 미국군목으로 최종결정 나고서, 권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갑작스럽게 본향(本鄕)으로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시인의 마음은 아프다. 시인에게는 지난 아픈 흔적이 아직 덜 녹은 살얼음인데, //…안방에 걸어두었던/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아래/떨어져 나간 귀 조각이/노랗게 누워 있다…//라고 한다. 고갱과 함께 공동화실을 꾸몄던 고흐는 서로의 다른 화법 탓에 갈등을 빚는다. 결국, 가방을 챙겨 떠나가는 고갱을 보게 된다. 화가 난 고흐는 자신의 귓불에 칼로 상처를 내는 장면을 등장시킨다. 권온자 시인은 큰아들의 죽음을 떨어져 있는 노란 귓불, 붉게 물든 하늘로 고추 한 마리는 홀연히 떠나갔고, 남편과 시인의 두 가슴은 아픔으로 둘러싸인 철장 속에 체포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이럴진대 「귀뚜라미 우는 밤」에서 시인의 자택 주변은 밤이 오면 인적과 차량이 끊기고 풀벌레 울어대며 동그마니 달만 떠 있다. 그야말로 사방천지가 적막강산이고 절대 고독을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적막감에 휘감기며/처량하다 울먹이듯/순한 양 등 언저리에도/마냥 외로운 듯하여라/인생살이 더불어/쉽지는 않건만/고향산천 비운 지/몇 해런가 아득하여라//라고 표현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삶은 고요하다 못 해 쓸쓸해진다.
화려한 태양은 소달구지 길섶 위에 바람 날개 이루고
3년을 이곳에 사는 동안
환상적인 불가마 110도 기록 세운다
혼의 빛 몰려와 불빛 태양은 가파른 언덕으로 햇살콩 빚는다
가마솥 태양의 오후 열기는 머리카락 솟구치며 쓴웃음 던지누나
알알이 익어가는 내 고향 충청도
어릴 적 땀방울 적신 모시적삼 나래 타본다
타향 나라 이곳에 작렬한 제련소 불화덕 가마 쉬어감 없어라
오늘도 여전히 미소 지을 뿐
방랑치마 인고의 끈 가지런히 내밀며
행복의 옷 띠 띄워 보내련다
- 「불가마」, 전문
화자가 생활하는 곳은 베이커스 필드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분지로 형성되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여름에 평균 화씨 110도면 섭씨 38도가 된다. 화자는 이곳 농장에서 고향의 흔적을 밟아가며 매실과 석류, 대추를 튼실하게 키우고 있다. 이른 봄이 되면 매화꽃이 만발하나 알레르기로 기침을 달고 살아가고 여름이면 더위에 헉헉대며 옛날 고향의 「여름밤」을 기억해 낸다. //멀리서 구경 오는 별/툇마루에 등 기대어서/어린 시절로 돌아가/잔별의 아름다움에/넋 잃었던 시절이/아름답게 찾아와/눈물짓는 간이역일세// 이렇게 비행기 소리가 부웅부웅거리는 여름밤을 보내고 있다. 「달」에서도 창밖에 떠오른 달을 보며 //…첩첩산중 시골 벽지학교/여름 중고등부 수련회/깊어가는 여름밤/등 돌린 달님 찾아 나섰다//수렁에 빠져 도와달라 소리쳤던 밤/아련한 친구 얼굴/물보라에 비춰 보려네//. 그렇다. 고향 마을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의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은 마치 깨어날 듯한 새벽의 숲 속처럼 간절했던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구불구불 돌아온 길
흥미로운 날 만들어본다
바람이 순해진 봄 바다
청춘에 추억 환한 미소
반기우고
오늘 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지는 해는 저녁 시간 알린다
산뜻한 현실의 향연
힘들 때 보듬어준 가족 있어
존재 깊이 감사하게 하소서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눈맞춤 할 계절
저 멀리 바람 타고 들려오는
다뉴브강의 물결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아름다운 자연 마음 속삭입니다
-「길」, 전문
권온자 시인은 미국에서 지금까지 구불구불 걸어온 길이지만 ‘오늘이 있음’과 ‘힘이 들 때’ 보듬어 준 가족이 있음에 긍정적으로 노래한다. 시인 권온자는 작금의 현실을 아파하면서도, ‘하쿠나 마타타’를 두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다. 이 하쿠나 마타타의 의미는 “모든 게 잘 될 거야!”를 나타내는 아프리카 남동부의 말이라고 한다. 권 시인이 품고 있는 희망의 본질은 “오늘이 있음에 감사함을 저 멀리 바람 타고 들려오는 다뉴브강의 물결”이라는 희망과 사랑의 통섭(統攝)적 대상적 사물과 통찰이지 싶다.
건강 잃으면 다 헛된 인생
그나마 내 몸이 버터 주어
생각 못 한 날
친정 언니가 나를 보고
“누구냐?”고 한다
달라진 동생 몰골 보며
엄청 놀란 표정
미국 들어가면 안 된다며
극구 말리던 모습에
한국에서 살라 간청하던 두 손
동생은 흑염소로
어느 지인의 홍삼으로
몸무게가 늘었다
천마즙도 주무했다
기분인지 몰라고
머리가 한결 맑고
어지러움도 없어진 느낌
신기한 날들
도착하자마자 먹어야 했는데
기쁨으로 파이팅
-⌜고국방문⌟, 전문
요즈음 한국의 위상이 대단해졌다. 세상의 관습 중 노래, 드라마, 관광지도 한국과 통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매스 메디아의 적극적 활용이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위상이 음악이나 한국 드라마가 인간의 기본과 휴머니즘에 충실하고 있기에 그렇다. 한때는 미국에 이민한다면 다들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 세월은 40년이 안 되어 그 불문율은 깨어지고, 왜 좋은 고국을 두고 미국으로 떠났는가? 하며 안타까워한다. 미국에서 일시 방문한 여동생을 보고 “누구냐?”라는 의문문에는 세월과 함께 변해 버린 여동생을 보고 안타까워서 한 말일 것이다. 화자는 언니 혹은 라고 친언니라고 하면 될 것인데, 굳이 친정 언니라고 표현한 것도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게 하며 이국에서의 삶에 대한 애잔한 아픔이 하나씩 스며들게 한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닮고 싶고
깊은 정(情) 행복 날개 맞을 때
예측 없는 인생의 바다
기쁨에 만남 슬픈 축복
바람 흔들거리고
지쳐버린 맘
콩 구워 먹던 어린 시절로
짠 세월
압축해서 산 날
다랭이 논밭에 묶어 놓는다
늙어가는 호박넝쿨 바라볼 즈음
산비탈 걸터앉아
돌밭 옥토 만들 터
술을 빚는다
물 위 걸은 만큼
마라톤 경주까지
절벽 아래 바다 장관 이루고
황무지 금길 따라
한 시절 이갸기 지나간다
- ⌜인생은 마라톤⌟, 전문
변화는 생명이다. 변화에 민감하게 느낄 시기에 과거를 생각하게 될 때 많게 회감(回感)하는 폭이 넓게 퍼진다. 과거의 것은 죽어 가는데 새운 것은 나타나지 않고 포승줄에 묶여 있다는 것에 화자는 젊을 때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줌씩 뭉쳐 나열하기 시작한다. //좋아하고/잘하고 싶고/깊은 정 행복 날개 맞을 때//예측 없는 인생의 바다---지쳐버린 맘/콩 구워 먹던 어린 시절로// 짠 세월/압축해서 산 날--늙어가는 호박넝쿨 바라볼 즈음//산비탈 걸터앉아--술을 빚는다// 이 한 편의 시에 화자의 다양한 삶의 담론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다. 니체의 《진실과 거짓말에 대해》에서 현실을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창작의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온자 작품세계는 작가의 개인적 사유에 속하는 문제로 부대끼며 괴로워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면, 자연을 보고 대하며 기쁨에 겨워하는 행복도 서정적 흐름의 시(詩)로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긍정적인 삶과 문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게 해준다. 이쯤에서 권온자 시인이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는 까닭 모를 신선한 용기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싶다. 마치 롤랑 바르트의 《모드의 체계》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패션잡지의 실체를 말이다.
약력:
부여출생. 기독교문학 시부문. 서울문학 시부문 등단. 한국문협 미주지회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아세안포럼 문학상. 문학공감 문학상. 작품집: 『고흐의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