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는 것은 지식…'지적 무협소설'로 봐달라"
"작가는 다른 사람 지식을 자신의 '강철'로 만들어야"

 

 "사람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정신이 바짝 든다고 하잖아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겪어보니 정말 글이 잘 써지더군요."

소설가 복거일(69)의 장편 '역사 속의 나그네'(문학과지성사)가 연재 중단 25년 만에 6권으로 완간됐다.

작가는 1989년에 이 작품의 연재를 시작해 1990년 연재를 중단하고, 한 권 정도 분량을 더 해 1991년 세 권을 출간한 상태로 집필을 멈췄다. 그가 3권에서 정지한 채 마무리되지 않은 작품을 다시 꺼내든 건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2012년이었다.

 


          

1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의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난 작가는 "아픈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글을 썼다"고 털어놨다.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폐에 반점이 있대요. 진단을 받아보니 종양이 간에서 시작됐고 폐까지 전이됐다고 하더군요. 말기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 속에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역사 속의 나그네' 완간에 집중했다. 그가 병원도 가지 않고 나머지 4∼6권, 모두 3권을 쓰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작가는 "어차피 글을 못 쓰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면서 "증상이 좋지는 않지만 좋아지길 바라야 할 것"이라고 웃었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2070년대에 살던 주인공 이언오가 시간여행을 하다 500년 전인 16세기 말 조선시대에 불시착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21세기의 지식으로 16세기 조선시대에 변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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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뭔가를 운영해 보고 경영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것을 가장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게 무협소설입니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지적 무협소설'입니다. 주인공은 500년의 시차가 불러온 그 엄청난 지식의 간격을 이용해서 낙후된 조선사회를 근대적으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죠." 

먼저 자신의 의학·기술 지식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던 주인공은 흉년에 저수지사업을 벌인다. 마을에 싸움이 벌어지자 반란군을 이끌어 관청을 친다.

4∼6권에서 이언오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외치며 반상과 남녀의 평등을 일궈내고 점차 사람들이 꿈꾸지도 못했던 이상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선구자가 된 이언오는 지방정부 사이 갈등을 겪으며 사람을 조직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이 새로운 세상에 가정을 꾸리고 아비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간다. 

작품에는 복씨의 우리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도 투영됐다. "거대한 문제를 다루는 게 작가들의 축복"이라는 복씨는 그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고치고 싶은 것들을 소설 속에서 해낸다. 

특히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공고하게 유지된 노비 제도가 조선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노비를 해방시킨다. 

작가는 "조선이 왜 그렇게 약한 나라가 됐는가라는 문제가 늘 우리를 짓누르는데, 인류 역사에서 우리나라보다 노예제도에 가까이 간 나라가 없다"며 "경직된 노예제도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고, 실학자들도 결국 계급 이익에 복무했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모든 작가의 작품엔 자기의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비치는데, 저는 일상 속에서 무수히 '지식인'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 많이 비쳤을 것"이라며 "임진왜란 때까지 이야기를 진행시켜 당시 일본 내부 사정까지 담고 싶었지만 '여기서 끝내야겠다' 싶어 멈췄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작가는 결국 공적인 지적 재산을 모아서 나름대로 조합하고 화학적 결합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뛰어난 작가도 자기 작품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넣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그런데 그 화학적 결합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며 "문체를 강철 만들듯이 달구고 때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바쁘다거나 지쳤다거나 해서 그걸 게을리했을 때 표절 시비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문학계에서 지적재산권 문제가 인식이 덜 된 면이 있다"면서 "그 부분을 조여줘야 작가들이 더 긴장하고 문장을 다듬을텐데, 이응준 씨가 문제제기를 한 것은 문단에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씨 표절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문학 권력'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그의 가치관이 묻어났다. 

복씨는 "'손에 든 게 망치밖에 없으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고, 권력관계로 세상을 보려고 하면 모든 게 다 권력일 것"이라며 "세상을 큰 틀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단어로 보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저는 시장경제 관점에서 문학계를 바라보는데, 문단을 그렇게 바라보도록 훈련한 사람이 없다"면서 "문학계에서는 소비자가 권력이 있는데 그것을 권력구조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작가는 "지금까지 시집도 두 권을 썼는데, 앞으로 시집 두 권을 더 써서 한 권은 생전에, 한 권은 사후에 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소설은 계속 쓰고 싶다. 그런데 저 혼자는 안 되고 하느님이 협조를 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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