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가 현재까지 공개된 110여 점 외에 20점가량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금속활자 ‘매매증명서’(사진) 사본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증도가자는 다보성고미술관(관장 김종춘)이 중앙일보에 추가로 공개한 11점을 포함해 모두 112점이 알려져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매매증명서에는 오사카(大阪) 이즈미(和泉)시에 거주하는 일본인 구키야 마코토(久貴谷誠)가 1995년 한국인 박모씨에게 금속활자 약 200개를 판매했다고 적혀 있었다. 당초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활자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90여 개가 더 있었다는 뜻이다. 매매증명서 작성 날짜는 2012년 12월 12일이다.
구키야는 16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박씨가 매매증명서를 분실했다고 해서 지난해 새로 써 줬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사찰에서 불상·걸개·액자 등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본 전역과 중국 등을 뒤져 적당한 물건을 수배해 장만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20년 전쯤 교토(京都)의 한 골동품상(사망)이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팔리겠느냐’며 물어보는데 왠지 오래된 물건 같아 전부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엔 일본·중국·한국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골동품상 노인이 맨 처음 어떻게 구입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의 골동품상인 박모씨에게 물건을 판매했고, 그중 110여 점을 다보성고미술관이 인수해 공개한 것이다.
매매증명서는 다보성고미술관이 문화재청에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자료다. 하지만 구키야는 “한국의 문화재청이나 관련 기관에서 문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증도가자의 출처와 구입 경로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화재 지정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매매증명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유통 경로에 대한 실마리가 얼마간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춘 관장은 “골동품상들은 흔히 다른물건까지 끼워서 일괄 판매한다. 나머지 90여 자 중엔 조선활자와 가짜도 섞여 있었던 걸로 안다. 고려활자는 국내외 3~4명이 몇 개씩 나눠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모두 합해 20여 자쯤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흩어진 활자의 실체가 밝혀지면 활자 연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화재연구원 차순철 연구실장은 “이제 활자 수가 충분해져 금속활자 조판방법도 연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장처가 여러 곳으로 나뉜 유물을 한데 모은 뒤 정리하고 종합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개개 활자에 대한 세밀한 사진과 그림이 실린 자료 발간은 물론 활자 복원 및 고려시대 서적 인쇄 연구 등 다양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충북 청주시는 금속활자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2005년부터 예산 50억여원이 들어갔다. 서적에 나타난 글씨를 근거로 복원해야 해 ‘맨땅에 헤딩’ 같은 힘겨운 작업이었다. 이번에 실물 활자가 확인돼 3D 스캔 등의 기법을 사용하면 복제작업도 용이해질 전망이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유은식 학예연구관은 “고려활자의 출처뿐 아니라 진위를 가리는 부분까지 포함해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장기적인 조사 연구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증도가자(證道歌字)=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고려활자.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와 서체가 같아 붙인 이름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애초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을 1239년 목판에 옮겨 새긴 번각(飜刻)본이다. ‘증도가자’가 독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1455년)보다 200년 이상 앞선 1239년 이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다.
사진은 고려 청동 초두(?斗·주전자), 수반(水盤·대야)과 함께 나온 증도가자 9점. 나머지 2점은 초두와 수반 바닥의 흙에 각각 매몰된 게 X선 촬영 결과 확인됐다. [김성룡 기자]▷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문서는 금속활자 ‘매매증명서’ 사본. 일본인 구키야 마코토가 1995년 박모씨에게 200여 개를 팔았다고 돼 있다. [김성룡 기자]
구키야는 16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박씨가 매매증명서를 분실했다고 해서 지난해 새로 써 줬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사찰에서 불상·걸개·액자 등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본 전역과 중국 등을 뒤져 적당한 물건을 수배해 장만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20년 전쯤 교토(京都)의 한 골동품상(사망)이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팔리겠느냐’며 물어보는데 왠지 오래된 물건 같아 전부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엔 일본·중국·한국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골동품상 노인이 맨 처음 어떻게 구입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의 골동품상인 박모씨에게 물건을 판매했고, 그중 110여 점을 다보성고미술관이 인수해 공개한 것이다.
매매증명서는 다보성고미술관이 문화재청에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자료다. 하지만 구키야는 “한국의 문화재청이나 관련 기관에서 문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증도가자의 출처와 구입 경로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화재 지정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매매증명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유통 경로에 대한 실마리가 얼마간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춘 관장은 “골동품상들은 흔히 다른물건까지 끼워서 일괄 판매한다. 나머지 90여 자 중엔 조선활자와 가짜도 섞여 있었던 걸로 안다. 고려활자는 국내외 3~4명이 몇 개씩 나눠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모두 합해 20여 자쯤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흩어진 활자의 실체가 밝혀지면 활자 연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화재연구원 차순철 연구실장은 “이제 활자 수가 충분해져 금속활자 조판방법도 연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장처가 여러 곳으로 나뉜 유물을 한데 모은 뒤 정리하고 종합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개개 활자에 대한 세밀한 사진과 그림이 실린 자료 발간은 물론 활자 복원 및 고려시대 서적 인쇄 연구 등 다양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충북 청주시는 금속활자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2005년부터 예산 50억여원이 들어갔다. 서적에 나타난 글씨를 근거로 복원해야 해 ‘맨땅에 헤딩’ 같은 힘겨운 작업이었다. 이번에 실물 활자가 확인돼 3D 스캔 등의 기법을 사용하면 복제작업도 용이해질 전망이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유은식 학예연구관은 “고려활자의 출처뿐 아니라 진위를 가리는 부분까지 포함해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장기적인 조사 연구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증도가자(證道歌字)=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고려활자.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와 서체가 같아 붙인 이름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애초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을 1239년 목판에 옮겨 새긴 번각(飜刻)본이다. ‘증도가자’가 독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1455년)보다 200년 이상 앞선 1239년 이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