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Guitar

수필 조회 수 1112 추천 수 1 2015.06.24 2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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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아버지 모습

                    

 

                             아버지의 Guitar

                                                                                                           임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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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기타가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느라고 나의 기타 소리에는 힘이 없단 말이야.”라고 말씀하시곤 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바른손의 손톱을 길게 기르시고 클래식 기타 치는 법을 이창기 선생님에게 배우셨는데, 이창기 선생님은 6·25 때에 북으로 납치되셨던 다른 한 분과 쌍벽을 이루는 Classic Guitar의 선생님이라고 하였다.
   이창기 선생님은 가난하였으나, 기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는데, 그러한 선생님의 성품을 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셔서 선생님은 평소에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셔서 식사를 함께 하시기도 하였다. 기타의 거장 안드레 세고비아의 이름을 들은 것도 그때였다.
   하루는 집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기타의 합주 소리를 듣고, 우리 형제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둘씩 그 방 앞으로 몰려와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아버지와 이창기 선생님을 포함해서 8분의 남자들이 연주하는 La Cumparsita의 합주였다. 

   두 줄로 방바닥에 앉아서 8명의 남자가 연주하시던 그 모습은 지금도 가끔 환상처럼 나타난다. 그것은 언제나 음악 소리를 동반한 하나의 그림이 되어 나의 눈앞에 떠오른다. 그리고 ‘라 쿰파르시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탱고 음악이 되었다. 달콤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탱고는 그때에 어린 나를 찾아왔으며, 지금도 때로는 그 음악 소리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기타는 하마터면 우리의 옆을 떠날 뻔 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전쟁의 와중에 우리가 우왕좌왕하면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였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도 먼저 피란을 가게 하려고 한 개만 남은 자리가 있는 트럭 운전수에게 기타를 줄 터이니 한 사람만 태워달라고 아버지가 부탁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약장수처럼 어깨에 기타를 메고 북새통의 피란길을 떠나고 있었다. “아니 여보슈. 그따위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런 것을 준다는 말이오?”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부탁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서울역에서 떠나는 기차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 밤을 보내고, 아버지의 사랑하는 기타는 빈집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기타 대신에 짐 하나를 더 질머지고 우리는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휴전 후, 모든 것이 없어지고 쓰레기만 가득하였던 서울의 집에 돌아왔을 때에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버지의 기타였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소용이 없었던지, 부상도 당하지 않고 빈집에서 건재하였다. 눈물겨운 재회를 하게 된 아버지는 기타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무식한 트럭운전사의 손에 넘겨주지 않기를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아버지가 그 후에도 기타를 치시기에는 세월이 그토록 한가하지는 않았던 탓이었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거니와 먹고 사는 일에 온 국민이 매달리고 있을 무렵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전쟁 후에 기타 선생님께서 다녀가실 때에도 멋진 합주곡을 더이상 들을 수는 없었다. 그 대신에 막내 삼촌이 그 기타의 소유주가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끔 나도 ‘라 쿰파르시타’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끝나버린 아버지의 기타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기타의 소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 기타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간직하였던 꿈의 상징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가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보는 아버지의 Guitar 그리고 La Cumparsita.
   그것은 나의 지나간 세월과 함께 오늘도 아늑하게 들려온다. 

   아버지의 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2010년 3월 22일 S.F. 한국일보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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