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의 씨

조회 수 3101 추천 수 1 2015.05.06 08:31:05

 

%BE%B8~1.JPG

 




단편소설 

 


                                                                          아보카도(Avocado)의 씨

 


                                                                                                                                                                             이언호

 


  롱비치 공항에서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구두끈을 푼다. 검사대에 비치된  상자에 구두를 넣는다. 다른 한 쪽을 벗으려 할 때 빡-하고 알람이 울린다. 폭발물이야……! 어떤 목소리가 외쳤다. 이어서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이 뛴다. 벗은 구두 한 짝을 집으려던 나는 그 발길들에 채여 넘어졌다가 겨우 일어나 같이 뛴다. 실내 방송이 대피요령을 계속 쏟아낸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9.11의  쌍둥이 빌딩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뛴다. 공항 건물이 내 위로 금방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한참 뛰다보니 공항청사에서 멀찍이 떨어진 국내선 활주로 끝에 까지 왔다. 10월말의 남가주는 인디언 섬머의 열기가 대단하다. 온 천지가 불을 지른 것처럼 달구어졌다. 그 땡볕 속에서 사람들이 떠든다. 긴장된 표정들이 갯벌의 앙금처럼 굳어 있어 보인다.

  소방차가 들이닥치는 게 보인다. 그 장면을 디카에 담는 사람도 있다. 미국도 이젠 안전지대가 아니야. 하는 영국 악센트가 들린다. 이어 흑인이 대통령이 돼서 백색 테러단들이 한 짓 일거야. 하는 남부 사투리도 들린다. 엊그제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했다. 나는 영주권자라 투표권이 없지만, 대단한 관심으로 지켜봤다. 케냐의 후손인 흑인 바락 오바마는 미국이 변해야 한다고 외쳤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새로운 역사창조를 위해 그를 선택했다. 이는 미국사회 뿐 아니라 한국에도 대단한 영향력이 될 것이다. 변해야 한다. 고인 물엔  새 물꼬를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배낭에서 야구 모자와 선글라스를 찾아 쓰고 맨땅에 그냥 앉는다. 한쪽 발바닥에 따끔거리는 이물질이 느껴져서이다. 구두가 없는 한쪽 양말 바닥엔 들풀가시가 듬뿍 묻어있다. 그것들을 들여다본다. 들풀의 가시는 모두 씨앗들이다. 그 씨앗들은 동물이나 바람을 이용해서 다른 땅에 가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려고 깔깔한 가시의 외피를 입었다. 그걸 한손으로 뜯어내 바람에 날려본다. 그들은 미세한 바람을 타고 금방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배낭에서 핸드폰을 꺼내 든다. 수니의 핸드폰은 연결이 안 된다. 그의 엄마 번호를 누른다. 응답대신 메시지를 남기란다.

  그 엄마가 오늘 새벽에 이런 전화를 해 왔었다. 
  “요안 이예요? 난 수니 엄마 닥터 헬렛이예요. 시애틀로 급히 좀 와 줘야겠어. 수니가 응급실에 가있거든.”
“응급실엔 왜 갔는데요?” 
“약을 먹었어요. 수면제야.”
“잠이 안 온다는 말은 들었는데요.”
“지금 위세척을 하고 차콜을 투입했어. 그래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놨으니 다운 받아서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공항으로 뛰어 온 나다. 그런데 폭발물 소동이 발목을 잡는다. 수니엄마에게 핸드폰을 다시 쳐 본다. 메시지를 남기란 말만 나올 뿐이다. 난 핸드폰에 대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 요안인데요. 비행기가 연착 할 것 같아요. 공항 대합실에서 폭발물이 발견 됐데요. 우린 모두 대피 중에 있어요. 긴급뉴스에 나올 거예요. 수니는 깨어났나요? 전화 주세요.”
비행기의 제트엔진 소리가 내 목소리를 가져간다. 난 모자챙으로 눈을 덮고  벌렁 눕는다.

 룸메이트 카삼이 한쪽 다리를 뒤통수에 꼬아 붙이고 요가를 하고 있었다. 카삼은 파키스탄에서 온 유학생이다. 나처럼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 자기나라에 두바이 같은 현대식 건물을 지어주고 싶다했다. 
“고층 건물의 공법을 배우려면 한국에 가야 할 걸.”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가 요가에 몰입 할 때면 책상위의 장식품 같이 되어버린다.

  켈리포니아의 롱비치 대학은 건축, 토목학으로 유명하다. 난 대학에 입학 하면서 아버지에게 모하비 사막에 대궐 같은 한국식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엘에이의 명물 케티 센터를 석회암으로 지은 피터 마이어의 설계를 보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엘에이 한국 문화원에서 본 전통한옥 특별전을 보고 감격했다. 그건 감탄이 아니라 감격이었다. 난 그 전통한옥의 미의식에 사로잡혀 한 동안 흥분에 쌓여 있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걸걸 웃으시며 알았다고만 하셨다.

 아버지는 화가이시다. 그는 통나무로 프레임을 짜고 거친 사막 땅을 그 화폭에 담으신다. 그는 선인장이나 도마뱀, 맹독가재나 일 년에 몇 미터씩 움직인다는 사막 돌을 그리셨다. 돌 밑에는  캥거루 쥐가 까만 눈으로 허허벌판을 내다보는 모습도 숨겨놓으셨다. 요즘은 나뭇잎과 나무 열매를 화판에 가득 오브제 하는 추상으로 소재를 바꾸셨다. 통나무 액자는 여전히 그림의 전체이며 부분이라고 하셨다. 그의 작업실엔 통나무 액자를 제작하기 위한 연장들이 널려있다. 전기톱은 물론이고 전기 대패 같은 시끄러운 것과 조용한 수평 자에. 줄긋는 먹통,  홈대패 같은 연장을 다 갖추고 계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화가라고 부르지 않고 목수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히 목수의 아들이 되었다. 그의 그림은 거의가 대작이며 요즘은 거액으로 팔려나간단다. 그리고 언제나 주문이 밀려있다 한다. 아버지는 일을 빨리 하시는 성품이 아니시다. 예술이란 영감이고, 서두르는 작업엔 예술의 혼이 안 붙는다고 하셨다. 그는 프레임에 손으로 조각을 파시는데,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하셔야 마음이 편안하시 단다. 그의 세밀한 조각 형태는 내가 봐도 최상급 공예품이다. 어쨌든 난 아버지를 좋아한다. 아니, 존경한다.

 나는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에 한옥을 짓고 사랑채를 꾸며  아버지의 화실 아닌, 목수 간을 지어 드리는 작업을 시작 했다. 우선 내 나름대로 설계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나무젓가락 형의 봉으로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왕이면 한국건축의 전통양식 대로 짓고 싶었다. 기와를 특수 태양열판으로 고안해서 에너지를 만들 생각이다. 그 에너지로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 올리고, 바닥에는 냉온수가 지나가는 물파이프를 설치할 생각이다. 사람들은 내 생각이 허황됐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위대한 일들은 엉뚱한 것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난 한국건축사 같은 책이 있나 알아보려고 대학 도서관을 갔다. 그곳에서 인턴을 하는 수니를 만난 것 이었다. 그녀는 금발머리를 포니테일로 동여 맺다. 생얼에 긴 속눈썹, 캄쿤의 짙푸른 바다색 눈동자. 턱 선이 잘 빠진 유럽형 미인이었다. 
“한국 건축사 같은 책 있어요.” 
난 일부러 고전적인 영어로 물었다. 그녀는 나를 빤히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자료도 보지도 않고 없는 진 어찌 알아요.”  
난 점잖게 꾸짖듯이 말했다. 
“이 대학엔 한국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거든요.”  
그녀는 한국말로 대답했다. 발음이 좀 어눌했다. 난 그녀를 다시 봤다. 사실 이런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동양인이 영어를 하면 아무렇지 않고, 서양인이 한국어를 하면 놀라는 게 이상한 것이다. 
“난 한국 2세거든. 수니야.”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난 요안.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담하고 촉촉한 손이었다. 파란 눈은 촌티 나는 한국이름 순이고 검은 눈은 서양이름인 요안이라……. 나는 멋쩍게 웃어보였다. 그녀는 내게 메모지와 볼펜을 내 놓았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놔……. 다른 대학도서관에 알아 보구 있으면 열락해 줄게.”       나는 시키는 대로 하고  그녀의 미소를 눈에 넣으며 뒷걸음질로 나왔다.

  야구모자 챙을 들치고 공항 건물을 바라본다. 아직은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태양은 더욱 성이 나서 이글거린다. 나는 짝 잃은 한 짝 구두를 생각한다. 하필 내가 한 짝을  벗어 검사대위에 올려놓았을 때 나쁜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구두야 비싼 것이 아니어서 아깝지는 않으나 한쪽이 맨발이라는 게 우선 불편하다. 공항 청사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잃은 한 짝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폭탄이 터진다면 내 구두 한 짝이 공중분해 될 것이다. 별로 유쾌한 생각은 아니다. 발에 잘 맞아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던 나의 충실한 구두였다. 그걸 집어 들고 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집으려 할 때 사람들에 떠밀려 넘어졌으니 어쩌겠나. 그게 구두와 나의 운명이라는 것인가. 나는 그런 아쉬움을 지워 버리듯 핸드폰을 꺼내 두드린다. 여전히 응답이 없다. 머리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취재진들의 비행 일 것이다. 수니는 깨어났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울고 있을 것이다.

  내가 수니를 두 번째 만난 날은 이랬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창틈으로 햇살이 들어 온지 오래되었다. 침대에 앉아  카샴의 요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알몸에  천을 둘둘 말아 앞만 가리고 다리를 꼰 채 거꾸로 서 있었다. 대단한 묘기였다. 구리 빛 피부는 십자가에 매달린 청동 예수 상 영락없었다. 그런데 그는 무스 림이었다. 그는 요가를 한 후 신바람이 나면 벌거벗은 채 마이클 잭슨 춤을  흉내 내면서 요가를 하면 정력이 뻗친다고 이죽거렸다. 난 요가 같은 것 안 해도 매일 아침 담요가 몽고 텐트처럼 불룩 해 진다고 응수해 줬다. 그러면 그는 애교 있게 몸을 비틀며 익살을 부렸다.
“그래서 말인데 난 전생에 여자였나 봐. 널 보면 안기고 싶어진단 말이야.” 
그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빡빡 밀은 머리통에 시커먼 턱수염의 그가 몸을 꼬는 모습은 엽기적인 애교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징그러운 놈. 쌍쌍이 클럽에 가면 색깔 있는 여자애들이 줄줄이 있는데 왜 너를 안아 주냐?” 
나는 짐짓 눈을 부릅떴다. 그는 딸딸이를 치는 시늉을 하며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끝낸 그는 바닥에 엎드려 오랫동안 자기 모국어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날도 카샴이 다리 꼰 물구나무서기 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팬티만 입고 그의 흉내를 내 봤다. 잘 될 듯 하다가 모로 넘어가버렸다. 그 바람에 본드로 붙여가며 만들던 아버지의 집 모형이 박살이 났다. 내가 주저앉아 어이없어 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도어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군가……? 문을 열고 보니 수니가  책을 아름 안고 서 있었다. 그녀는 우편 요금을 절감 하려고 직접 배달 왔다고 하며 책 뭉치를 내 가슴에 떠안긴다. 나는 그 기세에 눌려 뒷걸음을 쳤다. 그녀는 거침없이 따라 들어오다가 거꾸로 서있는 카샴을 보고 멈칫 했다. 빨간색 스카프로 포니테일을 묶은 그녀의 안색은 상기되어 보였다. 카샴은 죽은 나무토막처럼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탁자위에 놓고 바지와 셔츠를 찾아 입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네.”               
“룸메이트 카샴이야. 지금  무아의 경지에 빠져있어.” 
나는 바지 지퍼를 체우며 말했다. 그녀는 요식업체의 위생검열관처럼 방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저 상태로 열 시간도 간다.” 
난 그녀의 금발이 빨간색스카프와 색조화가 잘 된다고 생각하며 친구의 묘기를 자랑했다.    “집짓기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수니가 책들에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책을 살펴봤다. 한국의 건축. 한국주택의 전통양식,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서서. 그런 제목의 책들이었다. 
“전건 뭐야?”
그녀는 박살 나버린 아버지의 집 모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짖던 집인데 한순간의 실수로 영점 오초에 부서졌다.”
난 셔츠에 단추를 채우며 바보처럼 웃었다. 수니는 거꾸로 서 있는 카샴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옷걸이나 장식용품 같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한국말로 소근 거리면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내 자취방은 학교근처의 콘도미니움단지에 있다. 그 골목을 나와서 무성한 시카모어(Cycamore)숲의 공원을 지나가면 큰 샤핑 몰이 나온다. 그곳엔 커피숍이라든가 팬케익 집 같은 식당이 나온다. 나는 부런치로 팬케익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거기엔 단풍나무 즙에서 축출된 매풀 시럽이 유명했다. 그녀는 빨간 스카프와 조화를 이루려는지 빨간색 테니스 화를  신었다. 나는 검사대에 한 짝을 두고 온 그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발레를 하듯 걸었고, 포니테일 금발에선 샴푸 냄새가 싱그러웠다. 태양은 시카모어 나무 위에서 반짝이고 바람은 감미롭게 우리사이를 지나갔다. 
“너 에릭 시갈의 러브스토리란 책 읽어봤니?”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날 보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영화는 봤지.”
“어땠어?”
“울면서 봤지.”
“그래에? 너도 덩치에 비해 마음은 약하구나. 올리버가 제니를 처음 볼 때 커피 마시러 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녀의 표정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난 마음에 들었다.  
“내가 팬케익을 사려는 것은…….  책을 빌려다 준 것에 감사를 하려는 것이야.”  
난 금발에 푸른 눈을 하고 있는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처음 본 순간부터  혼혈 아니면 입양아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엄마는 웨일즈와  벨기에 합작이고 아빠가 한국산이야.”
그녀는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내 궁금증을 말했다.  
“그리고…….아빠는 간호원이었고 엄마는 소아과 의사로 명콤비 엇어.”
대화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우린 팬케익 집에 도착했다. 거기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서 기다린 후 자리에 안내됐다. 우린 팬케익과 커피를 시켰다.   
“난 재수가 좋아서 예뿐 쪽만 뽑아냈어. 엄마는 의사라 늘 바빴고 프리랜서 간호원인 아빠가 날 키우셨지. 그래서 난 엄마보다 아빠와 더 친해.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해. 나도 아빠를 너무 좋아했지만……  난 아빠의 유전 인자를 안 받은 게 아쉬워. 그러나 외모가 무슨 문제냐?”
그녀는 말에 굶주린 사람처럼 얘기를 쏟아냈다. 팬케익이 나왔다. 난 팬케익에 시럽을 치며 말하는 그녀를 바라봤다. 뜬금없이 부모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에는 가을 호수처럼 쓸쓸함이 가득 해 보였다. 
“이게 내 존재 이력서야. 넌 어떠니?”
그녀는 나에 대한 족보를 알고 싶어서 자신의 얘기부터 했나보았다. 
“아버진 목수고 엄마는 행복의 나라에 사셔. 두 분 모두 한국토종이고.” 
그녀는 눈을 깜빡여 속눈썹을 적시며 날 바라봤다. 행복의 나라 때문일 것이었다. 난 그녀도 마음이 연약하다는 걸 감지했다. 난 엄마에 대한 설명을 더 해줬다.
“엄만 연극배우이셨는데 그 나라로 순회공연을 가셨대. 사람들은 내가 다섯 살이 되도록 그리 말해줬어. 그 후에 난 엄마가 유방암을 앓으시다가 수면제 과용으로 돌아가신 걸 알았지.”
나는 그런 말을 해주고  팬케익 큰 조각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음식 먹기에만 열중했다. 침묵의 순간만큼 사람을 어색하게 할 때도 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누구든 무슨 말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살려야 할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 무량수전…….하는 뜻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셔 입속을 좀 비우고 말문을 열었다.
“무량수전…….하는 책 말이야. 제목이 특이하다.” 
“읽어봐. 좋은 책이야. 한국에 연수 갔을 때 소백산 기슭의 부석사에서 일주일간 보냈어. 새벽예불에도 참여 했고, 절밥을  먹은 후 스님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다. 난 한국말을 더 배우려고 한국말만 하고 싶었는데 그 스님은 영어를 배우고 싶은지 자꾸 영어를 하더라. 우습지? 그때 난 여승이나 되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아무튼 다른 대학의 도서 목록에서 그 책을 발견 했을 때 너무 반가웠어. 당장 뽑아내 왔지. 무량수전은 부석사 건물인데 배흘림기둥은 지붕 추녀의 곡선을 바친 기둥이야. 그게 은근미의 착시 현상을 준다는 거야. 기막힌 건축 기술이야. 그 집은 고려중기의 건축이지만 한국목조건물 중에 가장아름답고 오래된 건물이래. 한국의 집들은 거의 목조건물인데 이 목조건물은 살아있듯이 늘 숨을 쉬고 있대.” 
집이 숨을 쉰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숨 쉬는 집. 그런 집이야 말로 아버지에게 지어 드려야 할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숨 막히는 생활을 오래하며 사신 분이었다. 청년 시절엔 화가로서 표현의 자유가 숨통을 막히게 했고, 결혼 생활 3년 만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중년엔 두 번 이혼을 당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이 허허롭다고 하셨다. 그 말이 왠지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책은 보름 후에 반납하는 거야. 더 보고 싶으면 전화해. 이 메일을 하든가.”   
그녀는 메모지에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주소를 적어주었다.

 우리는 공원근처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반대 쪽 골목으로 걸어갔다. 거기에 차를 세워놨다는 거였다. 시카모어 나무에서 바람이 서걱 이고 돌연변이 가랑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떨어졌다. 나는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도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천천히 걸었다. 실 뭉치 하나가 엉클어져서 머릿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집 앞에 도착해 보니 그녀가 은빛 폭스바겐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우울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못해서 돌아왔어. 아빠가 유방암에 걸려 위독하시거든. 우린 공통점이 참 많아 보인다.”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차에 올라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빠가 유방암에 걸리다니…….그녀는 어순이 맞지 않는 말을 한 것 같기만 했다. 아무튼 그녀는 슬프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옥에서 살아보지 못은 나는 한국주택 건축이란 책을 흥미 있게 읽고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와 별채로 나누어진 집 구조가 흥미로웠다. 그 책에 의하면 이조시대에는 직분에 따라 집의 평수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정일품 같은 고관은 천 평이 넘는 택지를 소유할  수 있는 반면 서인은 백 평을 넘길 수가 없었다. 또한 일반인은 그가 양반일지라도 집에 붉은 칠을 할 수 없으며 댓돌도 잘 다듬은 돌은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주택을 짓는 방향이나 지역도 음양오행설, 풍수지리, 도참사상에 절대 의지했다. 음양오행이나 풍수지리에 관해서는 따로 책을 구입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책들에서 우리조상의 북방지역인 고구려의 주택과 신라의 주택구조도 알게 되었다. 고구려 주택에는 온돌을, 신라 주택에는 마루를 위주로 했으며 이조시대에 와서는 온돌과 마루의 이중 내부구조로 되어져있다. 조선 시대의 상류주택 중에 마음에 드는 구조는 와룡동 김 씨 집으로 250여전 전에 지어진 것이란다. 그 집은 대문에 들어서면 행랑간과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사랑 대청, 사랑방으로 구성이 되고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다. 안채는 찬간,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들이 기억 자 형으로 구성 되어있다. 한옥은 현대 서양식 구조인 가족 일체구조와는 달랐다. 이는 생각보다 매우 과학적이고 복잡하였다. 나는 공연히 한옥을 지어드린다고 큰 소리를 친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걱정할 것 없다 연경당 같은 전통 한옥을 지어서 본채에는 너희가 살고 나는 널찍한 부속 건물을 지어다오. 거기에다가 내 목수 간을 차리면 되는 것이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연경당은 창덕궁에 있으며 현존하는 조선시대 주택의 어느 것 보다 아름다운 상류주택이란다. 내가 한옥 운운 했을 때는 코웃음을 치시던 아버지였다. 한 술 더 떠서 연경당을 말씀하신다. 캘리포니아 사막에 연경당 같은 집을 지을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해 봤다. 아버진 자신의 생활 속에 나의 미래까지 설계 하고 계신가 보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잃으신 후에 한동안 방황 하시다가 재혼을 하셨다. 그 여인은 날 신발장 정도로 취급 했었다. 그래선지, 아버지는 그녀와 헤어지시고 재미동포 여인과 재혼을 하셨다. 그리고 14살 먹은 날 데리고 미국으로 오셨다. 그녀는 간호원으로 밤일을 12시간씩 했다. 그때에 아버지는 그림에 미친 듯이 열중 하셨다. 밤에 일하고 낮에 쉬셔야 하는 새 엄마는  전기 톱날 소리를 못 참아 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그림으로 돈 한 푼 못 만드시는 백수 이셨다. 결국 아버지는 또 홀아비 신세가 되신 것 이었다.   
“사막까지 갈 것 있냐? 내 집 뒷마당이 사막인데…….땅값걱정 안 해도 되고…….”
아버지는 로스앤젤리스 서북쪽의 선벨리라는 곳에 사신다. 그 집은 양계장을 하던 농가였다. 건물은 보잘것없지만 뒷마당은 넓었다. 거기엔 커다란 아보카도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서 있다. 그 아래에 벤치 형 그네가 대학에 입학 할 때까지 내 놀이 터였다. 그 이외의 남아도는 공터는 크고 삭막했다. 요즘에는 그 뜰 한쪽에 꽃밭이 가꾸어졌는데 치자꽃 향이 좋다. 아버지께 유화를 배우는 동네 백인 할머니가 자기 뒷마당에서 뿌리를 갈라다 심으셨단다. 그분은 아보카도를 좋아하고 또 아보카도 요리를 잘 만드신단다. 아보카도 과일은 10월경에 열리기 시작하여 11월이면 가지가 휘어지게 달린다. 난 아보카도를 반으로 쪼개 단단한 씨를 빼내고 소금을 쳐가며 수저로 과육을 떠먹곤 했다.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이 풍부한 그것 두 개면 점심은 안 먹어도 됐었다. 샌드위치, 브리또, 타코에도 아보카도가 들어가면 부드럽고 맛이 더하다. 초밥 집에서도 아보카도를 잘 쓴다. 백인 할머니는 어떤 요리를 하시는 지 궁금했다.  

 얼마 후 나는 젓가락 나무 봉으로 부서진 한옥 모형을 다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델은 우선 와룡동 김 씨 집을 모방하기로 했다. 그날 수니가 절인 멸치를 얹은 피자와 캔 맥주를 사들고 왔다. 카샴은 다리를 꼬아 뒤통수에 붙이고 명상에 잠겨 있다가 방금 외출을 했다.  
“네 장식품이 사라졌네.”
수니가 카샴을 의식 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는 걸어 다니는 가구야. 저녁때나 올걸.”
우리는 식탁대신 카펫 바닥에 앉아 피자를 먹었다. 짭짤한 멸치가 맥주안주로 입맛을 돋았다.   나는 한 깡을 얼른 마시고 또 한 깡을 땄다. 그녀도 깡통 째 홀짝이며 마셨다.
“너무 멋지다.”
그녀는 벽에 걸린  소품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아버지의 그림이야.” 
그림은 난해한 푸른색의 추상화다. 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푸른 사람 둘이 한사람처럼 앉아있는 모습이란다. 머리에는 아보카드 꽃이 무성하게 엉켜있다.   
“아버지가 목수라 했잖아.”
“액자를 손수 만드는 목수시지.”
“액자의 문양이 특이하다.”
“손수 파신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아버질 목수라고 불러. 난 목수의 아들이야.”
“지저즈 클라이스트. 예수가 목수 아들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살랑이며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고혹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난 얼른 말 머리를 돌렸다.
“아보카도 꽃은 이상하다. 아침에 핀 수놈 꽃은 저녁에 암놈이 되고, 또 아침에 핀 암놈 꽃은 저녁에 수놈이 된데. 어떤 꽃은 오늘은 암놈이었다가 내일은 수놈이고, 또 오늘 수놈은 내일 암놈이 된대. 
“암수 양성의 존재로구나. 사람도 그럴 수가 있다면 좋겠다. 남자도 되보고 여자도 되보고…….”
그 말을 한 그녀는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존재라는 어려운 단어를 자주 쓴다고 말했다. 그녀는 존재(익시스텐스 Existence)는 실존이란 말과 동의어라고 했다. 나는 이 순간 어려운 용어로 분위기를 심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보카드 나무에 대한 일화가 또 있어. 아버지는 과테말라의 노벨상 수상 작가 아스투리아스의 ‘세상 다 가진 남자’라는 동화를 읽고  아보카드 나무가 있는 낡은 농가를 잘 샀다고 하셨어. 그 동화는 아보카도 씨로 안경테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아보카도 나무가 되는 내용이래.  결국 아버진 날 위해 아보카도 나무가 기꺼이 되어 주시겠다는 마음이시겠지.”
“부담 되겠다.”
그녀가 말 했다. 난 그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아보카도 열매는 씨가 돌처럼 단단하고  달걀만큼 크다. 그 과육은 입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고. 사람들은 그 씨는 버리고 과육을 먹지만 사실 중요한건 과육이 아니라 씨잖아?”
난 심각한 대화를 피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존재에 대한 내용을 은유적으로 한 셈이 되었다.
“씨가 중요하다. 그렇구나.…….”  
그녀는 내 얘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맥주를 홀깍 홀깍 마셔댔다. 나도 맥주를 계속 마셨다. 그동안 나는 물 빼기를 세 번했고 그녀는 두 번했다. 우리 집은 좁아서 그녀가 물배기 하는 소리가 벽을 통해서 다 들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옥 모형을 만들었다. 그녀는 라텍스 본드를 발라주고 나는 그걸 붙였다.  나는 부서진 집 모형의 기둥을 다시 세우고 서까래도 올렸다. 
“원래는 대들보를 올릴 때는 상당고사를 지내게 되어있어.”
“우리도 고사를 지내보자.”
“그래 우리 함께 고사지내자. 그때는 술도 부어놓고 절도 하며 복을 빌기도 해야지.”       그녀는 기분이 들떠있어 보였다. 우리는 둘이서 집 짖기를 하며 맥주를 여러 깡 비웠다. 해가 기우는지 창으로 긴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녀가 뜬금없이 날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넌 훌륭한 아버지를 둬서 행복하겠다.”
“행복이 뭔데?”
“불행하지 않은 것”  
그녀는 또 깔깔대고 웃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 말을  얼버무리고 싶을 때 과장된 웃음을 웃는다는 걸 난 안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무섭고 엄했다.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도 날 사랑하신다는 건 내가 안다. 그게 행복한 것인가……? 난 그녀가 우리 가정을 떠 보느라고 던진 말이라는데 약간 심술이 났다. 그래선지 난 그녀 아빠의 얘기를 헤프게 해봤다. 맥주 탓이었다.
“야. 너희 아빠가 유방암이라고 했지. 혹 엄마를 아빠로 잘못 얘기한 건 아니냐? 너희 엄마가 아니고 아빠야? 남자도 유방암에 걸린다는 말은 들었다.”
난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문질러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 치고  아빤 요즘 어떠시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위독한 상태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당황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더  울었다. 난 눈물을 닦아 주고 허그를 해줬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도 흐느끼며  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녀의 젖은 눈에도, 입술에도 키스를 해 주었다. 그녀는 진한 숨결로 내 의식을 몽롱하게 했다. 난 그녀의 카디건 단추를 풀었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침대로 가며 옷을 벗었다. 방안을 맴돌던  침묵이 우리의 거친 숨소리로 리듬을 탔다. 나는 그녀의 내면으로 몸을 깊이 삽입시켰다. 그리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율동을 했다. 그녀는 환희에 찬 듯 오, 요안, 요안 하며 흐느꼈다. 그 순간 나는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의식이 없었다. 그냥 맹물 같고 백지 같은 순수 그 상태로 실존을 인지했다. 이럴 때  대화는 무의미하다. 함께 나누는 체온이 바로 우리의 교감일 것이다. 그것은 사면 벽을 모두 무너트렸다.  하얀 자유가 거대한 나비날개로 우리를  덮어주는 듯 했다. 수니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도 눈이 감겼다. 깜빡 잠이 든 사이에 그녀는 돌아갔다. 카샴이 들어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엔 보안등이 켜져 있었다.

  그날 밤에 그녀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떠나간 걸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이런 내용을 보냈다. 너 남자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 정말 들어 봤냐? 그건 흔치않아. 내 아빠는 여성이다. 우리 부모는 동성애자들이야. 그럼 난 어떻게 태여 난 걸까? 엄마는 정자를 기증받아서 날 낳았다 했어. 그 사실을 난 16살 때에나 알게 되었어. 그 실존에 대해서 난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 존재에도 신이 축복을 줄까? 물론 그렇다는 자부심을 갖지만 자신이 없을 때도 있어.  이 사회의 종교지상주의자들은 그걸 맹렬히 반대하잖아. 그게 날  우울하게 할 때도 있어. 잠이 안와서 며칠씩 꼬박 지새운 날도 있었다. 아까는 오랜만에 정말 잘 잤어. 너 때문이야. 그걸 고맙게 생각 한다. 널 만나서 좋아. 행복해. 아보카도 꽃 얘기는 내게 위로가 되었어. 그래서 울음이 자꾸 나왔나봐. 사랑해. 수니가.

 그 다음날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레즈비언 가정에서 자랐고 정자 기증 시술로 태어났다고 요점만 말씀드려봤다. 
“생명은 어떤 것이든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겠다만…….”  
아버지는 잠시 숨을 돌리시듯 침묵하신 후 또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사회성에 약한 생명이면 어찌 하겠냐……?”
그 후 내 머리 속엔 생명과 사회성이란 단어가 스멀거리며 돌아다녔다. 수니에게서는 며칠간 연락이 없었다. 나는 궁금하다는 이 메일을 보냈고 첨부파일로 아버지에게 들은 아보카도 씨내리는 법을 일러줬다. 아보카도 씨에 이쑤시개 3개를 가로로 꽂아 물 컵에  담가 놓으면 얼마 후에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돌멩이보다 단단한 씨를 뚫고 나오는 여린 싹을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신비를 느끼신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두 신비 그 자체이고 귀중한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며칠 후 수니에게서 길고 긴 이메일이 왔다. 요안, 그동안 연락을 못해 미안해. 아빠가 결국 돌아가셔서 시애틀에 와 있어. 아빠의 장례식을 치루고 바닷가에 갔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였어. 찬비가 내리고 있었지. 시애틀은 비가 많은 고장이야. 그래서 더 우울한 도시란다. 그 비속에 서 있는 내 존재가 날 슬프게 해. 너를 알기 이전에 나를 떠난 남자애들이 몇 있었어. 그들은 아무 말 안 하고 떠났지만 난 다 안다. 그 이유를……. 그래도 난 당당하게 내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었단다.  난 정자를 기증해준 생리적인  아빠를 찾고 있었어. 그래서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것이야. 시술한 병원에선 옛날 기록 열람을 거부했어. 당연하지. 그래서 난 그 당시의 의대 졸업 앨범을 뒤졌다. 내가 낳을 당시의 의대생중 나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 작업을 한 거야. 지금 세 명의 근사한 용의자를 찾아냈어. 그들의 신상도 파악됐다. 그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는 거였어. 그 말을 너에게 해 주고 싶었는데 못하고 그냥 왔어.  난 내가 어떤 씨에서 태어났는지 그게 궁금해서 미치겠다. 엄마가 그걸 모르고 날 낳았다는 게 슬퍼. 화가나. 우리 부모가 동성애란 건 이해하겠어. 그러나 자식을 가구위에 장식품 구하듯이 그렇게 낳았다는 건 이해 못하겠어. 때론 엄마를 미워했지. 증오 했어. 그런데 이미 편견의 땅에 뿌려진 씨가 그 운명의 굴레를 어떻게 벗어나겠니?  내안에 네 체온이 아직 숨을 쉬고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도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가니 어쩌면 좋냐. 그건 절망 아니냐?  내가 출생한 병원의 부속대학 졸업자의 앨범을 뒤질 때 난  내 생물학적 아빠는 백인에, 머리 좋은 미남에 천재들이란 상상을 했단다. 최종후보자 한사람은 내가 그를 찾았을 때 알코올 중독과 당뇨로 의사생활을 못 하더라. 그는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해서 휠체어에 앉아 나와 대화를 나눴는데, 머리는 다 빠지고 주름투성이에 악취를 풍겼어. 그는 목쉰 소리로 거칠게 말했어. 그가 인턴 생활을 할 때 두 달에 한번씩 30여 차례 수음을 해서 정자 기증을 했다는 거야. 매회 삼천 달라 정도 대가를 받았다 했어. 그 돈으로 재즈 카페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했고, 마리화나 파티도 가졌다 했어. 내가 자기를 찾아온 6번째 젊은이래. 그러면서 찾아오지 않은 수 백 명의 생명들을 비난하더라. 그게 얼마나 책임감 없는 소리냐. 난 그 소릴 듣고  구역질이 났고 현기증으로  그 자리에서 졸도 할 것만 같았어. 그 불쌍한 인간 때문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 나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어. 그 다음 찾아 갈 사람은 상습적인 성폭행 범이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종신형이래. 그다음 사람은 의과대학 병원장으로 재직 중에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 사람은 게이였단다. 결국 내게 씨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이 사회의 돌연변이 들이였더라. 난 누가 내게 생명을 준 사람인지 알아내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동성애. 그건 내게 절망이야. 왜냐하면 이성인 너를 사랑하면서 또 한편 동성여자를 좋아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때문이야. 내게 그런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거든. 그게 지금  엄청난 힘으로 날 옥죄고 있어. 네가 날 떠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도 날 떨게 해. 너의 집짓는 걸 돕고 싶다. 아니, 우리 집을 함께 짖고 싶어. 그 모형 만드는 걸 함께 했을 때 난 행복 했었거든. 그때 네 침대에서 잠들었을 때 난 그 모형의 집이 완성된 안에서 자는 느낌이 들었거든. 근데 더 이상 널 도울 수가 없구나. 난 잠을 자야 하거든. 날 깨우지 마. 난 이번 선거에서 프로포지션 8에 찬성표를 던졌거든. 안녕….”

 대피령이 해제 된 듯 사람들이 공항청사로 몰려간다.
“폭발물은 처리가 잘 됐나요?”
사람들이 공항 경찰에게 물어본다. 그들은 그렇다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해프닝이야. 협박전화 한통에 법석을 떨다니….누군가가 거친 음성으로 불평하는 소리가 들린다. 공항 청사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소와 다름이 없다. 난 태양열에 달아 화끈거리는 얼굴을 매만지며 검사대 앞에 가서 잃어버린 구두 한 짝을 찾는다. 카키유니폼의 경찰은 턱으로 분실물 보관소를 가리킨다. 나는 절뚝거리며 뛴다. 한쪽 다리가 구두창 높이만큼 짧은데 뛰면 절름발이 가 된다. 분실물 보관소에는 내 구두 말고 잃어버린 다른 신발들도 많다. 나는 한눈에 내 구두 짝을 알아본다. 반갑다. 구두 한 짝아. 널 잃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아냐. 나는 사람에게 말하듯 구두 한 짝에게 말을 해본다. 신고 있는 한 짝 보다 잃어버렸던 한 짝에 더 애착이 가는 건 무슨 까닭인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수니엄마 핸드폰에 신호를 보낸다. 
“한 시간 연착이라는 걸 알았어. 공항에 나갈게.” 
그녀는 바쁜지 전화를 서둘러 끊는다. 비행기는 엔진 두 개짜리의 소형이다. 그게 내 마음을 불안스럽게 한다. 난 한숨을 쉬어 불안을 몰아내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하얀 시트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 쓴 수니의 영상이 떠오른다.
“실례합니다.”
  거구의 까까머리 사내가 비비고 앉으며 나의 방정맞은 영상을 지워버린다. 그는 한 시간 연착이 일억 달러의 손해를 보게 했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지금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가 않다. 모니터에선 비행기가 2만 피드 상공에 올라갔다는 표식을 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날 깨우지 마.”
수니의 목소리가 이명으로 들리는 듯하다. 그럼 영원히 자겠다는 소린가. 프로포지션 8에 찬성표를 던진 그녀. 그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 시킨 켈리포니아의 법은 거부한다는 주민 발의 8안에 찬성한다는 뜻이었다. 즉 말하자면 동성애자들의 합법적인 결혼을 반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가 동성애자인데 자식이 된 수니는 그들의 결혼이 부적절하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그런 수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동성결혼을 적극 반대하는 구릅은 도덕과 가족의 신성불가침을 내세운다. 가족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사회제도이자 모든 문화의 중추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동성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누구든 남의 기본 권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성혼의 편견을 하나의 민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논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다. 동성애자들은 이미 농성을 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리고 있다. 법정 투쟁을 위한 모금 운동도 시작했다. 한인 젊은이들도 그 대열에 많다는데 심각성이 있어 보인다. 참 사랑이신 하느님이 과연 동성애자들을 미워하실까 생각 해 본다.

 내가 그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에  시애틀의 터코마 공항에 도착했다. 밖에는 부슬 비가 내린다. 수니 엄마는 허리우드의 스타 켄디스버겐 같이 품위 넘치는 중년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수니 엄마라 하지 않고 닥터 헬렛이라하며 악수를 청한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내민다. 그녀의 손은 수니의 손처럼 아담하며 고왔다. 그녀는 실낱같은 미소 한 자락을 던져주고 앞장서서  걸어간다. 저처럼 품위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이성에겐 관심이 없고 동성을 사랑하며 평생을 산다니, 그건 이해 못할 일이다.  딸은 엄마를 닮는 다는데…….나는 수니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니엄마의 차인  벤츠 C 클래스에 올라탄다. 비는 부슬대며 계속 내리고 있다. 윈도우 실드는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휘졌고 있다. 수니는 어떠냐고 내가 물었다. 
“걱정마라. 머리가 아플 때 한잠 자고 나면 개운 하듯이 수니는 깨어날 것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 엄마는 차 창밖을 응시한다. 나는 의사인 그녀의 말을 믿고 싶다. 윈도우 실드가 더 빨리 움직인다. 빗줄기가 만든 안개는 앞이 잘 보이지 않게 한다. 
“수니 아빠가  돌아가셨다. 지금 우린 어려운 시련과 싸우고 있는 중이야.”         그녀의 표정은 쳐들어오는 적군 앞에 선 장수처럼 결의에 차 있다. 
“수니가 깨어나면 우리 마운틴 레이니어에 가자. 거기엔 나무숲이 울창하고 정상에는 언제나 흰 눈이 덮여있어. 아름다운 산이야……. 통나무 산장을 빌려 좀 쉬자.”
그녀는 스스로를 추스르듯이 내게 엷은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우리가 탄 차는 빗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다.

 병실은 사층에 있다. 그녀는 시트위에 담요를 덥고 모로 누워 있다. 실내는 약간 서늘하다. 얼룩무늬 환자복이 시트 사이로 보인다. 어깨가 가늘게 움직인다.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한숨을 쉬어 긴장을 풀어본다. 수니 엄마는 딸의 이름을 몇 번 반복해 불러보고 요안이 왔다고 한다. 수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수니엄마는 손끝으로 자신의 눈 밑을 닦으며 내 뒤로 물러선다. 수니는 기도하는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 손을 꼭 쥐어 본다. 움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엄마는 창 옆의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 상태로 링거 액 방울이 여러 번 떨어졌다. 그녀의 긴 속 눈썹 밑에 물기가 보이는 것 같다. 난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비빈다. 그사이 간호원이 들어와 혈압과 체온을 잰다. 모니터에는 65란 숫자가 찍힌다. 그 정도면 정상보다 훨씬 낮은 혈압이란 걸 나는 안다. 간호원은 이어 심장 박동을 재는 문어발 기구를  점검하려는 지 그녀의 가슴을 헤치고 있다. 나는 밖으로 나온다. 나오면서 보니 벽 선반에 아보카도 씨가 담긴 유리컵이 보인다. 뿌리도 싹도 아직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 놔두면 곧 싹이 나고 뿌리도 내릴 것이라는 걸 나는 확신한다. 병실을 나와 복도 끝으로 가서 창밖을 본다. 비가 개었다. 회색하늘 끝에 검푸른 색이 보인다. 그곳이 바다일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온다. 거리를 걷는다. 저만치 알래스카 웨이라는  사인이 보인다. 바다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또 걷는다. 기온은 더 내려가고 시애틀 바다는 짙푸르다. 하얀 포말이 물 덩어리를 만들어  방파제로 밀어붙인다. 바다는 늘 대지위로 뛰어 오르고  싶은 가보다. 마치 운명과 싸우는 흑기사의 망토 같기도 하다. 운명과 싸운다?……? 인간이 운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수니가 이곳에 서서 머리 아프게 고뇌를 했을 것이다.

  울렁대는 바다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수니가 수면제를 먹고 긴 잠을 자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침묵하신다. 난 전화속의 단절된 대화를 참을 수 없어한다. 그래서  운명과의 싸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인간만이 그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란다.”
아버지는 그 말씀을 거침없이 하신다. 나는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으려 한다. 그는 재빨리 말을 잇는다.
“언제 오냐?” 
난 아버지에게  여기에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갈 때에는 수니를 데리고 갈 것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래야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음성이 이어졌다. 
“떠날 때 전화해라. 공항으로 너희를 태우러 가마.”
아버지는 분명 너희를 이란 복수를 쓰셨다. 나는 가슴 속을 누르던 무거운 그 무엇이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녀의 속눈썹 밑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고 나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 쪽으로 향한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들어온다.

난 빨리 걷는다. 마구 뛰기 시작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 소설 엘 캡 이언호 2015-05-09 4862 2
» 아보카도의 씨 file [1] 이언호 2015-05-06 3101 1

회원:
8
새 글:
0
등록일:
2015.05.05

오늘 조회수:
0
어제 조회수:
0
전체 조회수:
63,766

오늘 방문수:
0
어제 방문수:
0
전체 방문수:
29,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