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캡

소설 조회 수 4878 추천 수 2 2015.05.09 10:31:47


<중편소설>


                                                                       엘 캡

                                                                                                                                                                               이언호
1. 돌방

   난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건 아이폰 때문이라고 추측 해 본다. 그걸 잃어버린 다음부터 자신을 상실한 것 같다. 나의 주소와 전화 번호, 친구들의 연락처, 내 패스포드의 번호도 그 속에 있다. 적어도 그놈이 내 두뇌구실을 했었다. 뭔가 깊은 생각을 하면 명치끝에서 진통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하다가 그만 둘 수밖에 없다.
   나는 강남 맨션들이 하늘을 찌르는 곳에 서 있다. 그런 높은 건물을 보면 맨손으로 기어오르고 싶어진다. 올라가면서 창문안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옥상으로 올라가 낮은 곳에 불빛을 내려다보고도 싶어진다.
   돌방아저씨는 그 골목에 세워 논 차 안에서 엔진을 걸은 채 꼼짝 말고 기다리라 했다. 난 요요를 재게 놀리며 그를 기다기고 있다. 그 장난감 놀이는 내가 불안 할 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요요는 회전하다가 파란 형광불빛을 반짝이며 내 손바닥 안으로 돌아온다. 캄캄한 어둠속에 작은 불빛 하나가 희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요요는 프랑스 혁명 당시 망명자들 사이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인기를 끌었단다. 16세기쯤엔 필리핀 주민들이 요요를 사냥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그러니까 요요는 놀이기구이기도 하지만 필요시 무기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장난감 요요에 대한 개념은 잘 기억하면서 놈을 가지고 노는 나에 대한 기억은 어째서 사라졌단 말인가. 그것이 나의 의문이며 고민이다.
   돌방 아저씨가 원시시대에 쓰던 것 같은 낡은 핸드폰을 주면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첫 번째 번호를 누르라 했다. 그리고 납작 엎드려 경비실 창문 밑으로 기어들었다. 들어간 그는 나올 줄을 모른다. 시간은 느리게 지나간다. 나는 간이 점점 졸아드는 것 같다. 시간의 확장, 시간의 역사,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내 이름이 뭘까? 왜 자꾸 잊어버린 이름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집주소와 전화번호 자신의 이름, 매일 누군가에게서 불려 졌던 이름……. 왜 그게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잊은 이름을 찾는 데 골몰할게 아니라 아무 이름이나 하나를 새로 짖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해 봤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를 보며 이름 여럿을 살펴봤다. 창호, 인기, 세원, 국태……. 그들의 이름 중에 하나를 쓰면 어떨까. 그건 좋은 데 성은 어찌할까? 성은 자기 마음대로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나의 사정을 어찌 알았는지 돌방아저씨는 천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천이, 천아, 천이야. 천이 선생님, 괜찮은 이름 같다. 어쨌든……. 
   돌방아저씨는 유명 경비회사의 베테랑 팀장이었다. 그는 달변가이자 엉뚱한 행동가, 홍길동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차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밤이 깊어가고 맨션의 불들이 거의 다 꺼져 가고 있다.  아직 불을 끄지 않은 몇몇 창도 있다. 그 안의 사람들은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 정도 낮은 생각으론 명치끝이 아파오지 않는다. 명치끝, 이놈도 그 정도의 생각은 무시해 버리나 보다. 나는 그 마천루 건물에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인다. 쿵~하고 건물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내가 추락하는 환상에 빠져든다. 왜 저 화강암타일의 고층건물을 맨손으로 오르고 싶어지는가. 오르다가 추락하는 환상은 또 뭘까. 명치에 진통이 온다.
   “야, 운전석에 앉아서 발동을 끄지 말고 기다리라 했잖아!”
   등 뒤에서 돌방아저씨의 낮은 허스키가 들린다. 그가 허연 이불 뭉치를 업고 서있다.
   “뒤에 타.”
   내가 차 뒷문을 열자 돌방아씨는 이불 뭉치를 밀어 넣은 후 운전석에 올라탄다. 차는 총알처럼 앞으로 나간다. 기울어지며 커브를 돈다. 난 중심을 잃고 이불 뭉치 쪽으로 기울어진다. 또 다른 마찰음과 함께 이불뭉치가 내 어깨 위로 쏠린다.
   “그 애 벨트 매 줘.”
   나는 이불 뭉치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걸 확인 한다. 동시에 나는 이불뭉치에서 나오는 기묘한 입 냄새를 맡는다. 병원 복도에서 나는 냄새 같다. 마취제 냄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리는 차의 흔들림 때문에 두, 세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벨트를 채워 줄 수가 있었다. 내 자신의 벨트 끝의 고리를 찾는다. 이불뭉치아래 부분을 떠밀고 겨우 고리를 찾아냈다. 뭉클, 살진 엉덩이가 손끝에 감지된다. 벨트를 매고 차창 밖을 내다본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의 불빛이 번갯불처럼 차안을 스치고 지나간다. 난 이불뭉치를 바라본다. 얼굴이 동그랗고 풍선처럼 통통하게 살찐 계집아이가 앉아 있다. ‘납치’ 이런 생각이 뒤통수를 친다.  납치범의 공범. 나는 자신의 존재가 누군지 모른 채 여아납치의 공범이 된 것 같다. 돌방 아저씨를 봤다. 그는 껌을 빠르게 질겅대며 앞만 보고 운전을 한다.
   누가 침묵은 금이라고 말 했나. 벤 차안의 침묵은 불안스런 긴장이다. 난 다리 사이로 요요를 굴리고 있다. 차는 산길을 달리가다 멎는다. 흙더미가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돌방아저씨는 산속의 작은 개인소유의 길이기에 언제 다시 복구가 될지 기약이 없다고 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밀림을 이룬 산속은 새벽달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돌방아저씨가 차에서 뛰어내린다. 손전등을 켜서 풀숲을 한번 휘졌더니 차안을 바라본다. 조수석의자에는 커다란 등산용 백이 비스듬하게 놓여있다. 그는 뒷좌석에 전등을 비춰보며 짧게 말한다.
   “그 아이 데리고 나와.”
   난 풍선소녀에게 손을 내 민다.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몸을 창 쪽으로 더 바짝 밀어붙인다. 거부의 몸짓이다. 난 민망해진다. 돌방아저씨가 보고 있다가 나선다.
자신이 뒷문에 오른다. 그의 가죽잠바 허리춤엔 넙적한 단도케이스가 슬쩍 보인다.
   “아가야. 다 왔으니 내리자.”
   돌방아저씨는 매우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의 머리 부분을 얼싸 안는다. 그리고 팔 근육으로 관자놀이를 조인다. 레슬링 선수가 해머록을 하는 폼이다. 풍선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차 밖에 있던 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제가 데리고 나올게요.”
   “그러렴.”
   돌방아저씨는 전등으로 우리를 다시 한 번 비춰본 후 백을 둘러메고 앞장서서 걸어간다. 산속의 밤은 기괴한 소리를 내는 짐승들의 생활터전 같다. 돌방아저씨는 백 팩에서 손전등을 하나 더 꺼내더니 내게 주며 경고하듯이 말한다. 
   “그 애 다치게 하면 안 돼.”
   우리는 사전답사한 데로 산비탈로 올라간다. 키 큰 나무들 아래 흩어진 관목덤불을 헤치고, 뱀딸기 넝쿨을 밟으며 길 없는 숲을 걷는다. 소녀는 걷질 못하고 뱀딸기 넝쿨위에 주저앉는다. 말목까지 내려온 로브자락에 무릎이 휘감겨서 걷기가 매우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그녀는 보통 아이들 보다 훨씬 뚱뚱한 편이다.
   “그 애 좀 부축 해 줘라.”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준다. 소녀는 나에게 매달려 점점 더 엉긴다.
   “그 아일 업어.”
   어둠속에서 부는 바람은 옷깃으로 기어든다. 나는 등을 돌려대며 그 녀 앞에 앉는다. 그녀는 나의 등을 무시하고 그냥 걸으려고 허둥댄다. 칼날 같은 풀잎이 그녀의 종아리로 달려든다.    
   “그러지 말고……! 내 등에 업혀. 플리즈.”
   내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온다. 영어권에서 살았다는 증거다. 그제야 그녀는 내 등에 업힌다. 그녀의 가슴과 배 부분이 차게 식어있음을 느낀다. 난 성큼 길 없는 산비탈을 오른다. 밤이슬이 우리의 어깨 위로 내린다. 나는 어쩌다가 계집아이의 남치 범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불쾌감에 사로잡혀있다. 정말 왜 그리됐을까. 모르겠다. 나는 내 이름이 물속에 잠겨버리듯이 내 의식이 무의식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언젠가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희망사항이 되었다. 기억이 없어졌으면서 생각은 할 줄 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하여간에……. 돌방아저씨는 납치가 아니라 공주를 안가로 모시는 미션을 수행중이라 했다. 그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우리는 최근에 이 길을 3번이나 왕복하며 예행연습을 했다. 고속도로로 2시간쯤 가다가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 샛길에서 또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차는 한참 가다가 멈춰 섰다. 지난번 태풍 때에 산사태로 길이 막 혀 버린 첫 번째 예행 때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다. 그래서 우리는 되돌아섰다. 두 번째 날은 청명했다.
   “우리는 지금 도둑놈의 별장에 가고 있다.”
   “산사태가 길을 막아 버렸지요.”
   “기억하는 구나. 태풍이 산 하나를 떠다가 길 위에 부어버렸어. 낮은 지역은 도시 전체가 호수로 변할 때이었지. 익사자가 많았다. 수 만 명이 실종됐고, 수 만 마리의 가축이 떼죽음을 했단다. 몇 십만 헥타르의 농지가 유실되었고………. 이 국가적 재난은 천재라기보다 인재라는 보도가 있었다. 토목공사마다 부정이 끼어들어서야. 설계도대로 일을 하질 않는 거야. 자재를 빼돌리고, 용량대로 쓰질 않고, 도둑놈들. 그때 넌 어디에 있었냐? 미국에 있었냐?”
   “기억이 없어요.”
   “나와 함께 빌라공사장에 있었다. 자재 도둑을 지키는 경비보조였어. 넌 정말 기억력이 실종 된 거냐? 아니면 사이코냐?”
   의사 말이 난 싸이코가 아니라 단기 기억상실증일 것이라 했다. 시디 촬영과 스킨으로 정밀검사를 한 번 더 해 보아야 자세한 증상을 알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뇌에는 누구나 해미라는 바나나 같이 생긴 물질이 양쪽으로 두 개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손상되면 어느 순간의 과거를 잊는 다는 것이다. 주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극적 사건 같은 것을 잊는다했다. 해미는 히포캄퍼스 (Hippocampus)의 줄임말이라 했다. 그 의사는 메모지에 스펠링까지 써 보이면서 수술이 성공하고 재활 경비까지 일곱 자리 수의 돈이 들 것이라 했다. 그 얘기를 하자 돌방아저씨는 눈을 부라렸다. 눈을 그렇게 뜨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
   “목격자 말에 의하면 달 밝은 날 하늘에서 다 큰 사내아이가 뚝 떨어졌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네 이름을 천이라 지었다.”  
   돌방아저씨는 가스를 세게 밟으며 크게 웃었다. 
   “천이라, 하하하…….”
   하여간에 돌방아저씨는 유식하다. 그의 화장실엔 중국인으로 노벨상을 탄 모옌의 작품 홍까오량 가족이며, 최근에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집이며 사서삼경, 동물원이야기, 삼국유사, 그런 책들이 쌓여 있다.
   나의 이름과 성을 모르듯이 나는 그의 이름도 성도 몰랐다. 다만 그가 제주 돌하르방과 같이 생겼다 해서 사람들이 그를 돌방이라고 부른다. 돌방아저씨도 그게 좋은 지 그냥 돌방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뚝 튀어나온 왕방울 눈이며, 나팔 코, 마른 버드나무 잎 같은 입술, 그리고 여드름 자국이 숭숭 뚫린 맷돌 면상을 보면 돌하르방의 모델이 그일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진짜 내 이름은 하천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청근이라고 부르지. 물 하자에 하늘 천 그리고 뿌리 근, 그것이 내 진짜 이름이지만 돌방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거 좋다.”
   내가 돌방아저씨를 만난 것도 이상한 인연이다. 그때 돌방아저씨는 새로 짓는 빌라의 건축 자재를 지키는 경비 팀장이었다.
   “조경공사를 위해 쌓아 놓은 쇠똥거름 퇴비 위에 떨어져서 살아났어. 냄새가 외양간이었다. 구급차를 불렀지. 그런데 머리통이 깨져 13바늘을 꿰맸어.”
   그는 내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다 했지만, 문제는 기억력이 실종된 것이다.    “걱정 마.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냐. 나도 내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사는 때가 많다. 넌 의사 말대로 해미 한 부분이 손상 되었을 것이야. 내가 널 고쳐주겠다. 이 동네 사람들 돈 많아. 그냥 창고에 쌓여서 자고 있어. 그 돈 좀 쓰자.” 
   돌방아저씨는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그로부터 돌방아저씨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나는 그의 사랑하는 조수 겸 동생 그리고 동거인이며 공범자가 되었다. 그와 한 지붕에서 한솥밥도 먹고 있다 보니 오늘처럼 소녀 납치도 동업자, 공범자로 함께하게 되나보다. 그건 이해하겠다. 그러나 싫다는 감정이 내속에서 꿈틀거린다.
   돌방아저씨는 도둑질도 묘하게 한다. 오랜 경비 생활을 했기에 네 자리수의 정문 여는 것에서부터 여섯 자리 수의 현관문 따는 것도 떡먹기다. 그리고 돈이면 돈, 보석이면 보석을 보이는 데로 몽당 가져오는 게 아니다. 감춰둔 돈을 찾아내면 딱 오 퍼센트만 가져 나온다. 그러면 잊은 사람은 그걸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단다. 신고를 안 하니 범죄도 없다. 그게 완전 범죄의 방법이다. 그것은 물건을 절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력 까지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방아저씨는 훔친 돈의 십 프로는 익명으로 어디에든 기부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돌방아저씨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 도둑질도 요즘은 새로 개발한 시시 카메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 공사장 옥상에 가끔 너 같은 아이들이 올라가 연애를 걸더라. 나는 그 애들이 놀 자리가 없어 그런 곳을 찾아든다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 해 줬어. 너도 그런 짓 하다가 뚝 떨어진 게 아닐까. 네 관상으로 봐서 파렴치한은 아닌 것 같고……. 넌 참 귀티나 게 잘생겼다. 옥골선풍이야. 남자인 나도 널 껴안아주고 싶은데 계집애야 말해 뭣하겠냐. 어떤 것이든지 네 잃어버린 기억이 찾아져야 진실이 밝혀지겠다. 그걸 내가 찾아주마.”
   그렇게 돌방아저씨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며 보호자이며 병원비의 물주가 되었는데, 최근에 불어 닥친 건축 불경기로 그는 실직을 하게 되었다. 돌방아저씨는 미국에 갈 경비가 필요했고 나는 신경과 병원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돌방아저씨와 가는 길이 어둠의 어둠. 불빛은 없고 그림자의 그림자뿐이란 걸 느끼겠다.
   돌방아저씨의 지시로 준비한 등산용 배낭에 비상식량과 물병, 그리고 소주병들이 준비 되어있다. 안주로는 말린 양념소고기 봉지와 골뱅이 통조림이었다. 곰보빵과 우유도 준비했다. 30킬로의 배낭을 메고 너덜바위지대를 달리던 영상이 내 의식 저 멀리서 지나가는 게 보인다. 그게 뭘까? 나의 명치에선 통증이 인다.
   비탈길을 다 오른 나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끊어진 길을 돌아서 가는 중이다. 돌방아저씨는 내 뒤에서 따라오느라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아저씨는 인상이 착해 보이는 데 왜 저처럼 사나운 사람과 다닐까 생각했어.”
   내 등에 업힌 소녀가 내 귓바퀴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난 아저씨가 아니야. 지금은 몇 살인지 기억엔 없지만…….
   “농담 잘 하네.”
   그녀는 나의 목을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넌, 네가 몇 살인지 기억하냐? 넌 몇 살이냐?”
   “열여섯…….”
   “스위트 식스 틴. 꽃다운 나이다…. 그게 네가 기억해낸 나이냐?”
   “엄마랑 아빠가 말해줘서 아는 나이야. ”
   나는 제 나이를 기억 못하는 건 정상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영 레디답지 않게 웬 살이 그리 쪘냐?”
   난 등 뒤에 업은 그녀의 물컹거리는 볼기 살을 의식하며 말했다.
   “살찐 게 아니야. 부은 거야. 신장병을 앓고 있어. 콩팥이 나빠. 저 사람이 날 죽일까? 난 그 이전에 죽을 지도 모르지만…….”
   “넌  절대로……. 아무도 널 죽일 수 없어. 
   “그럼 왜 날 납치해 가니?”
   “그건 오해다. 우린 널 납치 하는 게 아니야 널 보호하려는 것이야.”
   “왜 날 보호하나. 난 몸이 아파도 부모님의 보호아래 잘 살고 있는데….”
   “그 사정은 나도 모르겠다. 돌방아저씨 말이 너희 가정에 특별한 일이 있어 이 삼 일간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널 보호하는 작전이 우리의 미션이래.”
   “나도 모르는 우리 가정의 특별한 사정이 뭘까?”
   “어른들 하는 일은 우리가 모르는 게 많잖니.”
   “멀쩡한 청년이 납치범과 공범이라니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내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내 애길 해준다.
   “난 집 짖는 오층 공사장에서 추락한 적이 있어. 돌방아저씨가 날 치료해 주고 오랫동안 멕여주고 재워주고……. 아저씬 착한 사마리아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널 남치 하겠냐.”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끊어진 길 너머의 길로 내려섰다. 
   두 번째로 도둑의 별장을 답사 할 때의 일이었다.
   “계집애는 사귀어 봤냐?”
   돌방아저씨는 스피드를 내어 기술운전을 하며 여자 얘기를 꺼냈다. 시간은 그사이를 비집고 과거로 달아나고 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뻣뻣했던 신경 줄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속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열아홉에 열여섯 먹은 계집애를 꼬여냈다. 그 애와 냉수사발 떠놓고 어느 도사스님 앞에서 산중결혼식을 하려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너 좋고 나좋으면 색스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해야 같이 잘 수가 있었거든.”
   그는 마치 한 세기 전 사람처럼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애 부모들이 달려들어 깽판을 놨느니라. 그 아이의 오빠가 내 팔을 비틀었고, 그 에비가 개를 끌고 갔어. 웨딩드레스 대신 흰색원피스를 입고 망사면사포 쓴 그 애는 울부짖으며 끌려갔다. 그때 난 한강 다리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지금도 그 애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애를 사랑했어. 죽도록……. 이십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 그 애도 날 생각할 꺼다. 갠 지금 군인 부대가 많은 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거길 가야겠다. 초고층 빌딩위에 올라가서 그 애를 껴안고 뛰어내리는 게 내 소원이다.”
   돌방아저씨는 빽빽이 겹친 시간 속을 펴내서 그 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추억을 꺼내 보이듯이 말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번 들은 얘기였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우 갈빗집 간판이랑 비닐우비를 뒤집어 쓴 오토바이가 비를 흠뻑 맞으며 곡예 하듯 달려가던 모습은 기억해 냈다.
   “햄버거 배달꾼이야. 철가방을 뒤에 싣고, 학생들의 연수원으로 가는 거지. 애들은 식어빠진 햄버거도 잘 먹거든.”
   그처럼 비가 물 덩어리를 퍼붓는 날의 샛길을 달리던 기억은 생생한데 그 이전에 빌라 공사장 위에 올라갔던 기억은 왜 사라진 것일까? 그게 나를 미치게 했다.
   “너 여자애 조심해라. 그 뒤로 난 여자들 사귀다가 바꾸는 일을 햄버거 먹듯 했다. 얌전해 보이는 애한테서 병이 올랐을 때는 미칠 것 같았다. 쌍년.”
   그는 눈을 무섭게 부라려 보였다.
   “내가 쌍놈이지…….” 
   어쨌든 비 그친 날 돌방아저씨와 산속의 폐가 산장엘 갔었다. 이끼 낀 돌층계로 좀 올라간 언덕위에 일자로 지은 목조 건물이었다. 돌방아저씨는 그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저게 지금은 폐가지만 억대 갑부의 로비용 별장이었다. 그 아들이 장관에 오르려고 청문회를 하는 도중에 땅 매입에서부터 건축법에 이르기까지 위반 안한 것이 없다는 증거가 나왔지. 억대갑부의 꿈은 사라졌다. 비바람 치는 태풍 볼라벤이 지나면서 천둥 벽력과 함께 언덕위에 비스듬히 서있던 아름드리 팽나무를 쓰러트렸다. 그 거목이 쓰러져 지붕을 덮쳤어. 댄스파티가 무르익을 때였는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압사했어. 몇 명이 죽었는지 몇 명이 부상을 입었는지 사건을 축소해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비극적인 별장은 폐가 아닌 흉가 건물이 돼 버렸다.
   돌방아저씨는 그때 그곳의 경비를 맡고 있어서 그 사연을 잘 알게 되었단다.  나는 정말이야.  하듯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돌방아저씨를 바라봤다. 
   “가봐. 임마. 우린 지금 거길 가고 있는 중이야. 거기에 가면  공연히 등골이 서늘해져. 모과보다 향이 좋다는 명자나무도 함께 쓸어졌는데 귀신들이 그 향을 좋아한다고. 팽나무도 향은 좋지. 하하하…….”
   구구구 하는 산비둘기 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나갔다. 소나무 위로 해는 높이 떴고 청명한 하늘 아래에 일자로 지은 집이 산 기슬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담장이나 대문은 없었다. 미닫이의 통유리 문이 길게 옆으로 나 있는 게 보였다. 돌방아저씨는 백에서 연장을 꺼내 문고리를 비틀었다. 안에서는 곰팡이 썩는 냄새 같은 악취가 끼쳐 나왔다. 긴장의 뭉텅이가 이 흉가로 변한 별장의 실내공간에서 굴러 나오는 것 같았다. 농구코트처럼 넓은 홀은 아마도 무도장 이였을 터이다. 그로 인해 건물의 천정에는 타원형 구멍이 뻥 뚫리게 되었다. 통나무 등걸은 죽은 공룡처럼 홀의 중앙공간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나뭇가지며, 나뭇잎이며, 나무껍질의 피부며 그 몸통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 미물의 생명들까지 모두 죽음의 세상으로 변화 시켜 버릴 것인가? 우리는 그런 폐가에서 진군하는 수색 중대원처럼 주위를 살펴봤다. 한 한옆으로는 내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니 호텔 복도처럼 긴 회랑이 있고 방 대여섯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문을 열어보니 벽을 부수고 산더미의 흙이 침대며 고급가구들을 깔고 앉아 방을 점령해 있었다. 그다음방도 그 다음 방도 마찬가지였다. 방의 창문 쪽이 산이었고 산사태는 방의 벽과 유리창을 부수고 쳐들어왔던 것이다. 그 태풍 이전에는 창문을 열면 바로 나무숲이 손에 잡힐 것 같은 언덕이었을 것이다. 피톤치드가 창문 안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왔을 것이고……. 복도 반대쪽 문을 열고 보니 악취가 밀려나왔다. 주방시설이 잘 차려진 부엌이었을 공간이다. 변해버린 음식물들에서 나는 악취로 가득했다. 파리와 구더기 그리고 들쥐 떼들의 천국이었다. 나는 급히 돌아섰고, 돌방아저씨는 코를 쥐고 절절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전답사를 끝마치고 풍선소녀를 납치하는 미션을 시행한 것이다. 홀에는 콘크리트 조각들이나 기와 부스러기 같은 건물잔해들이 나무 등걸위에 쏟아져 수북하다. 천정 밖에선 예외 없이 만년을 눈부시고 찬란하게 살아서 존재하는 하늘이 그냥 벌거숭이로 올려다 보인다. 그것은 거꾸로 보면 마치 산등성이에서 저 멀리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분지안의 호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하늘은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며 새털구름을 흘려보내고 있다. 산들 바람도 넘나들며 투명한 빛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 틈새로 태양열발전기 시설의 잔해인 유리조각이 날이 선채 빤짝거린다. 천정에 매달린 사이키 조명 시스템이며 형광등도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실내화며 하이힐 같은 신발들도 방치되어 뒹군다. 경찰방어선인 노랑 테이프도 서낭당처럼 늘어져 있다. 이처럼 실내공간은 치열했던 전쟁터의 잔상 같기만 하다. 간간이 돌풍이 불어 지붕에서 덜 떨어졌던 잔해들이 먼지가루가 되어 휙~ 날아들기도 한다. 그런 공간 안에서 또 다른 삶의 현장이 헛구역질을 한다.
   돌방아저씨도 슬리퍼 한 짝을 들고 투덜댄다.
   “프라다, 명품만 신었군.”
   나는 그 명품의 임자들이 지금쯤 어찌 되었나 상상해 봤다.
   “불쌍한 접대부는 신발만 남겨놓고 그냥 실종으로 취급해 버렸겠지.”
   나는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구역질 하는 소녀를 본다. 
   “돌방아저씨 저애가 아픈 가 봐요.”
   돌방아저씨는 천정 구멍으로 들어오는 여린 빛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 나는 불안스런 감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냄새가 지독하지? 창문을 좀 열어줄까?”
   “그냥 놔둬라.”
   돌방아저씨가 볼멘소리를 한다.
   소녀는 그 소맷자락으로 입을 닦으며 돌방아저씨와 나를 번갈아서 흘겨본다. 그녀는 토악질을 다시 시작한다.
   “엄마야…!”
   토악질 하던 소녀가 운다.
   “나 죽을 것 같아.”
   “이 얘 좀 어떻게 해 줘요……!”
   나는  돌방아저씨 쪽에 대고 소릴 친다. 소녀는 계속 마른 구역질을 해 댄다.
   돌방아저씨가 그녀를 한참 바라본다. 침묵의 시간이 우리들 사이에 끼어 든 것이다. 나는 나무 등걸위의 한 표적으로 요요를 던져 본다.
   “물이라도 가져다주렴.”
   돌방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뚝 던지고 벽에 달린 두 개의 문 중 그 하나로 들어간다. 문이 삐걱 하고 녹 쓴 경첩의 쇠 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가 지고 온 백에서 물병을 꺼내다가 그녀에게 준다. 돌방아저씨가 안에서 방석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난다.
   “자, 이걸로 적당히 좌정할 자리를 만들어라. 방은 여러 개 있다만 벽이 다 무너지고 쳐들어온 토사로 엉망이거든.”
   돌방아저씨는 방석들을 내 앞으로 던졌다. 모두가 폭신한 꽃 비단 방석이다. 그 위에 붉은 진흙이 말라붙어 새로운 문양을 만들었다. 나는  방석을 나무 등걸 앞에 늘어놓는다.
   “야, 울지 말고 이걸 여러 겹 깔고 앉아있어.”
   난 방석을 손바닥으로 툭툭 쳐 보여준다. 
   “힘들면 누워 있어도 좋아.”
   돌방아저씨는 불안한 듯이 서성거리다가 백에서 소주병을 꺼내 병나발을 분다.
   나도 나무 등걸에 기대앉아 천정구멍위의 하늘을 본다. 밤새 잠을 못잔 탓일까 시야가 흐려지며 막연히 무의식 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눈을 감는다.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나비 떼다. 캄쿤의 바다색처럼 파란 나비들이다. 들꽃 벌판 위를 3D로 날아다닌다. 환상적인 영상이다. 누군가 말했다. 군청색 나비 떼는 마리포사 숲의 요정들이라고. 나는 3D에서 날아다니는 나비 떼들을 향해 요요를 날려본다. 요요는 돌아오지 않고 공중을 날아다닌다. 허공에선 형광불빛의 요요와 환상적인 나비 때들이 함께 춤을 추며 날아다닌다. 작은 새들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와 끼어든다.
   음악소리가 들린다. 베토벤의 넘버 5……. 그 운명의 벨소리는 돌방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난 것이다. 아이 폰이다. 
   “제거에요…….”
   구역질 하며 울던 소녀가 눈물이 범벅 되어 큰 소리로 외친다.  
   “아빠, 엄마가 이제야 네가 사라진걸 알았나 보다.”
   “이리주세요.” 
   “네 것이지만 지금을 줄 수가 없다.”
   “왜 없어요?”
   소녀는 당돌해 졌다. 어디서 왔는지 도마뱀 한 마리가 나무 등걸 위에서 꼬리를 휘졌다가 후딱 달아난다. 돌방아저씨가 그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 전화기로 네 아버지와 연락을 계속 해야 하거든.“
   그는 아이폰을 들여다보고 꺼버린 후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게 없으면 난 죽은 거나 마찬 가지에요.”
   소녀는 그걸 되돌려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게 내 기억장치거든요. 전화번호, 친구생일, 약속시간, 내가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시 구절, 게임……. 모두 그 속에 있어요.”
   “알아. 이게 네 머리통 속의 가짜 두뇌라는 것을…….이제부터 당분간 네 진짜 머리통의 두뇌로 살아야 되겠다.”
   돌방아저씨는 선생이 학생에게 하듯이 딱딱 하게 꾸짖어 말했다. 나는 요요를 계속 돌린다. 
   “네 아버지와 협상이 잘 되면 바로 돌려주마.”
   돌방아저씨는 그걸 주머니에 깊숙이 넣는다. 나는 풍선소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피로한지  몸을 벌레처럼 작게 웅크리며 방석위에 누워서 기침을 한다. 돌방아저씨가 아이 폰을 다시 꺼내 두드리며 나무 등걸에 기대선다. 나는 그를 주시하며 요요를 손 빠르게 가지고 논다. 돌방아저씨는 코를 쥐고 가성으로 말한다.
   “여보세요. 회장님. 네에.  따님은 저희가 잘 모시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나는 풍선소녀에게 다가섰다.
   “기침은 왜 하니? 마음이 몹시 불안하지? 나도 그래.”
   나는  요요를 풍선소녀에게 내민다.
   “이걸 놀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해 볼래?”
   나는  요요를 풍선소녀의 손에 쥐여 준다. 그녀는 안 받는다. 나는 그녀에게 요요묘기를 보이며 돌방아저씨의 전화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풍선소녀도 대화에 온 신경이 다 가 있어 보인다.
   “머리털 하나 손 안 댔죠. 공주처럼 잘 모시고 있어요. 회장님의 제안은 …….”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목청을 높인다.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돌방아저씨는 내게 가까이 와서 풍선소녀가 못 듣게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돈 많은 놈들은 지독해. 깎자는 거야.”
   “저애를 안가에서 보호하겠다더니…. 거기가 여기에요?”
   “여기이상 안전한 곳이 없다. 여긴 헬리콥터래도 쉽게 올수가 없는 곳이야.”
   나는  습관적으로 요요를 던지고 받으며 돌방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풍선소녀를 바라본다. 측은 해 죽겠다.
   “회장은 우리 미션의 경비를 대야 하는 거야. 그런데 원래  약속과 달라졌어. 안 된다 했지. 그것 좀 치워라 제발. 짜증난다.”
   돌방은 내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니는 요요를 탁~치면서 화를 냈다. 
   “그자 말은 싫으면 말래. 배짱이야. 어차피 쟤는 한 달 후면 죽는대. 혈액 암 말기래. 폐에서 간에까지 확 퍼졌다는 거야.”
   난 풍선소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기침을 심하게 한다. 나는 계속해 요요를 던지고 받는다. 돌방이 신경질을 버럭 낸다.
   “제발, 그것 좀 치우지 못해!
   나는 돌방아저씨! 내게 소리치지 마요! 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목안으로 넘긴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명치에서 복통이 살아난다. 나는 요요를 빠른 동작으로 하며 방안을 맴돈다. 나의 내부에서 감금된 목소리가 튀여 나오고 싶어 발광을 한다. ‘내게 소리치지 마! 내게 소리치지 마! 나의  발밑에선 마른 나뭇가지와 가랑잎이 와글거리며 부서진다. 돌방아저씨가 놀래서 나를 껴안으며 달래준다.
   “알았다. 알았으니 제발 가만히 좀 있어봐라.”
   나는 눈물이 울컥 나오는 걸 참는다. 풍선소녀가 헉…!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천정에 뻥 뚫린 구멍으로 차츰 더 강한 빛이 쏟아진다.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헉헉 흐느낀다.  나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마음을 진정하며 다가간다.
   “나는 내 진짜 이름을 모른다. 내가 오층 건물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쳐서 기억력이 없어졌다. 난 그걸 내 아이 폰이 없어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도 그걸 뺏겼으니 기억상실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다 잊는 거야. 하여간에 돌방아저씨가 내 이름을 천이라고 지어줬어. 네 이름은 뭐냐.”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흐느끼듯이 말한다.
   “내 이름은 하늘, 김 하늘이야.”
   “하늘이. 좋은 이름이다. 하늘아. 내가 그리 나쁜 놈은 아니거든.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있어.”
   “인명은 제천.”
   그래 넌 이름이 하늘이 아니냐. 하늘을 우리가 어찌 하겠냐.”
   돌방아저씨는 저만치 나무 등걸에 기대앉아 소주 병나발을 또 불며 시근거린다.
   베토벤의 운명벨소리가 돌방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또 울린다. 모두 시선이 그리로 쏠린다. 돌방아저씨가 아이폰을 꺼내며 나무 등걸 너머 구석진 곳으로 간다. 그리고 폰에 대고 속삭인다.
   “이제 좀 괜챦냐?”
   하늘이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 젓는다.
   “배고프냐?”
   하늘이는 또 고개를 젓는다.
   “빵과 우유가 있어.”
   하늘이는 나를 빤히 바라만 보고만 있다.
   “우리가 무섭지?”
   하늘이는 끄떡인다.   “조금만 참아라. 네 아버지가 전화를 한 것 같다. 협상을 하자나 보다. 얘기가 잘 되면 즉각 널 보내줄 꺼다. 그 사이에 이걸 배워 봐라. 재미있어. 불안 할 때 난 이걸 가지고 논다. 배가 고플 때나 몸이 불편할 때도 이장난감이 날 위로해 주고 있어.”
   나는 요요를 그녀의 손에 쥐여 준다. 하늘이도 이번에는 순순히 받아든다.
   “손가락에 고리를 끼고 아래로 던져. 하늘이는 내가 시키는 데로 해 본다. 
   “잘 하는데. 일어나서 더 해봐. 더 길게 내려갔다가 되돌아올 걸.
   “다리가 부어서 일어나기 힘들어.”
   “그렇겠구나. 그럼 앉아서 해. 하늘이 내 이름하고 같구나. 난 천이, 하늘천자 천이야. 우연의 일치 같아도 다 인연이 있어 만나는 거다.
   하늘이가 갑자기 또 욕지기를 한다.
   “난…….원래 구역질이 나는 병을 앓아. 토하고 나면 전신의 힘이 다  빠져. 그러다가 죽는 거지. 난 귀는 밝거든. 난 아빠 말처럼 혈액 암이 아니라 신장병이야. 아까 말 했지. 신장이 다 녹아서 지금 투석중이야. 이삼일에  한 번씩 온몸에 피를 모두 뽑아내서 필터에 걸러 맑게 한 다음에 다시 몸속에 넣어야 생명이 유지 되는 병이야. 그 피갈이 할 때가 되면 구역질이 나. 난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해.”
   하늘이는 요요를 내게 도로 주며 바닥에 눕는다.
   “협상이 또 깨졌어.”
   나는 창백한 풍선소녀, 하늘이를 본다. 돌방아저씨가 말을 계속 한다.
   “로스앤젤레스에 폴 게티 센터라는 미술관이 있다. 현대적인 건물로 유명한 곳이래. 그 미술관 설립자는 석유를 팔아 재벌이 된 사람이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명작들을 보여주고 싶어 거금들 들여 그걸 설립했어. 미술관에 돈을 물 쓰듯 하는 거야. 어느 날 악당들이 그의 손자를 납치 했어. 그리고 백만 불에 흥정을 하자고 했는데 이 재벌 할아버지가 노……! 했다는 군. 그런 다음날 조그만 소포가 배달되었는데 그 속에선 손자의 귀 한 짝이 나왔어. 그 얘길 쟤 아버지에게 해 줬지. 너 내 얘기 듣고 있냐?
   “돌방아저씨는 물론 그 악당처럼 할 수 없을 꺼죠.”
   “난 선한 사마리아 인이거든.”
   그는 눈을 부라려 하늘이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회장님에게 배달될 소포에는 귀 뿐 아니라 눈알도 들어있을지 모를 겁니다. 라고 말해 줬다.”
   “아저씨, 정말 그리 할 건가요?”
   “자식, 순진하긴. 난 아니고, 네가 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요.”
   나는 그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든다
   “아니야, 지금은……아니야.”
   돌방아저씨는 내 팔을 비틀어 칼을 빼앗아 허리춤에 찬다. 그의 손아귀 힘이 무지 세다.
   “정말 그 악당들이 살아있는 아이의 귀를 잘랐을까요?”
   잡지에서 그렇게 읽었어. 그건 실화야”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나는 돌방아저씨의 정수리를 향해 요요를 날릴 지도 모르겠다고…….
   “너나 나나, 우린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 악당들처럼은 못 할 꺼다.”
   그는 나를 이끌고 소녀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가서 소근 거리듯이 말 한다.
   “재 아버지와 한 협상 얘길 해주겠다. 저 애는 혈액 암이 아니라 신장이, 콩팥 말이다. 그게 모두 훼손 됐다는 거야. 그래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사는데 그걸 누군가에겐가 기증을 받든가, 신장 협회에 등록을 하고 제 차례가 오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신장 도너는 교통사고라든가 그런 경우로 급살을 맞은 사람의 것이 나오는 것 이외에 누군가가 생으로 떼어 줘야 하는 데 그게 쉽지가 않다는 거고. 그래서 우리가 납치범이 되는 것보다 신장 기증자가 되는 게 어떻겠냐는 게 재 아버지의 협상 제안이다. 재벌이 된 장사꾼의 아이디어는 소름 끼치게 무서워.”
   나는 돌방아저씨의 장황한 얘기를 다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고 그의 눈을 봤다. 돌방아저씨의 눈은 악당과는 거리가 먼 제주도의 선하디 선한 왕방울 돌하르방의 눈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신장을 팔아라. 그거죠. 돌방아저씨 생각은 어때?”
   “우리는 지금 세 가지 중에 하날  선택 할 수 있다.”
   돌방아저씨는 허리춤에 꽂힌 칼을 뽑아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인다. 
   “하나는 그 악당처럼 하든가, 아니면 협상자의 요구대로 너나 나의 콩팥을 떼어 기부 해 주던 가, 그도 아니면 이 일을 포기하고 저 그 아이 아버지에게 이곳에 오는 길을 알려주고 다리야 날 살려라 도망을 치는 것이다. 넌 뭘 택할 것이냐.”
   “그런데 먼저 물어봐요. 아저씬 왜 저 아이를 납치했지요. 그런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강탈한 돈을 어디에다 쓰려고요?”
   “다 너를 위해서야”
   “내가 왜 돈이 필요한데?”
   “너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야지.”
   “그건 뇌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죠. 차라리 잃어버린 기억을 안 찾는 게 낳아요.”
   “자신의 과거 행적을 모른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이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만, 자신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살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난 안다.”
   “난 지금 하나도 괴롭지 않은 데요.”
   “아니야. 넌 괴로워하고 있어.”
   “아저씨가 내 속에 들어와 봤어요.”
   “넌 밤마다 악몽으로 잠꼬대를 했어. 그 악몽 속엔 분명 네가 잊고 싶어 하는 너의 과거 한토막이 있을 것이다. 넌 그게 알고 싶은 거야. 우린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야.”
   “그런 목적을 위해서 어린소녀를 납치해오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요.”
   나는 돌아섰다. 돌방아저씨가 막말을 하기 시작한다.
   “난 그 악당들처럼 해 낼 꺼다. 돈이 많은 놈이니까 중국이든 동남아 어디든 가서 콩팥을 사다가 딸을 살려놓겠지. 거기에선 악당들이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떼어 파는 조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런 아저씨의 생각이 마음에 안 들어. 정말이야.”
   “그런 생각이 뭔데?”
   “사실을 말해 봐요. 아저씬 재 아버지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서 첫사랑의 애인을 찾아가려는 거지. 찾아가서? 어쩌려고? 그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려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둘 다 할 꺼다.”  
   돌방아저씨는 그 문제로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으려나보다. 우리는 나이로 보나 사회경험으로 보나 논쟁의 상대가 안 된다는 되는 걸 서로가 잘 안다. 다만 나는 그를 위해 흉악 범죄를 저지른 다는 게 싫다. 아니다. 그걸 막아야 한다. 마침 그때 아이폰 벨이 또 울린다. 그는 폰을 꺼내들고 나무 등걸 뒤로 돌아간다.  하늘이의 귀에 전화기를 대준다. 그는 소근 거리듯이 말한다.
   “아빠...! 그래.”
   전화기 속에서 넌 괜찮느냐고 묻는 가 보다.
   “아빠. 전 괜찮아요.”
   그녀는 모기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가 나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아빠 나 죽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게 아닌가. 돌방아저씨가 아이폰을 잡아챈다.
   나는 돌방아저씨의 표정을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납치범들은 돈을 챙기고 아이는 죽여 버리지 않는가. 그는 나, 공범도 죽일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일을 막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잘 됐어. 폴 게티 영감의 소포 얘기가 먹혀들었어. 내가 얼른 다녀올게 넌 여기 있어. 내가 전화를 하면 넌 저 애를 여기 놔두고……. 내가 준 전화기 갖고 있지?”
   나는 주머니 속의 고물 핸드폰을 만져본다. 버전이 낮은 그냥 손전화통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도 누군가의 기억일부가 들어있다는 걸 생각한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돌방아저씨가 내게 바짝 다가와 귀에 속삭인다.
   “저 아이는 여기에 놔두고 넌 저 아래 갈비 집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와. 그 숲속에 숨어 있으면 내가 그리로 갈께.”
   “신장을 팔기로 했잖아요.”
   “우리가 사온 소주 마시며 기다려, 골뱅이 안주가 괜찮다.”
돌방아저씨는 딴소리를 하고 나가면서 문을 안에서 잠그라고 했다. 그가 나간 발자국에선 마른나무 잎 소리가 남아서 허공을 맴돈다.
   우리는 둘만이 남았다. 나는 하늘이가 하는 요요를 받아 시범을 보이며 생각한다. 이제부터 나는 저 아이를 감시해야 한다. 하늘이는 내가 시범을 보이는 요요는 안보고 쓰러진 나무 가지 쪽을 보고 있다.
   “여길 보지 않고 뭐하니?”
   “저길 봐요.”
   “……. 뭘 봐.”
   “새에요. 어떻게 여길 들어왔을까.”
   나는 천정 구멍을 바라본다. 날은 완전히 밝아졌고 하늘은 푸르다.
   “이 샌 둥지를 찾아왔겠죠.”
   “새가 어디 있다고 그러냐?”
   난 나뭇가지를 헤쳐 본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아, 날아갔구나. 금방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어디로 갔지. 새야……!”
   하늘이는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뻥 뚫린 천정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 곳엔 빛이 가득하다. 하늘이는 등걸에 기대앉는다. 나도 그 앞에 서서 천정 구멍 안에 존재해 있는 하늘을 본다. 그 하늘엔 날아다니는 새가 있겠지만 이 나뭇가지에선 새를 못 봤다. 나무 가지 사이엔 뿌리 한 가닥에 새파란 잎이 생생한 그대로 살아가는 가지가 있다. 나무 가지 사이를 헤쳐 본다. 자세히 보니 개미며 진드기며 무당벌레 알 같은 것들이 꼼지락 거리는 게 보인다. 나뭇잎 뒤 쪽에는 벌래 알도  달라붙어 있다. 벌레집도 있다. 투명의 거미줄도 있다.
   “여길 봐라! 이건 벌래 집이다. 새집이 아니야. 벌레가 단단한 집을 만들었어. 이게 실크 코쿤(silk cocoon)이라는 거야.  이속에서 나비가 날아오를 거야.”
   나는 마리포사 숲의 바다색 나비를 기억해 낸다. 사람들은 그 나비 떼들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숲속의 요정이라고 했다. 그런 기억은 일어나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나비. 나비야. 넌 어제쯤 나올 거냐? 네가 오라고 파란 하늘이 널 기다리고 있단다.”
   “ 하늘이는 나뭇잎 뒤의 벌레집을 보며 환상 속에 빠져 있는 표정이었다.
   “너 신장병 앓고 있다고 그랬지. 그게 어떤 병이냐?
   나는 날개니 껍질을 깨고 나오니………. 그런 말 대신 신장병과 신장 기증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네가 알고있는 신장에 대해서 얘기 해봐.”
   그녀의 말은 이랬다. 사람은 누구나 신장을 2개 가지고 있다. 허리 뒤쪽으로 비스듬히 놓여있는 주먹만 한 것이 콩 같이 생겼다 해서 콩팥이라고도 한단다. 이런 콩팥 안에 피를 거르는 사구체가 있단다. 가느다란 실타래를 말아 놓은 것처럼 긴 실핏줄을 돌돌 감아 부피를 적게 한 조물주의 기막힌 창작품이 있단다. 인체는 정말 신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실핏줄로 피가 통과 하면서 노폐물과 필요 없는 수분이 보우만 씨 캡슐로 빠져나가 오줌이 된단다. 이렇게 실핏줄이 뭉쳐서 생긴 피를 거르는 사구체가 한쪽 콩팥 안에만 약 백 만 개씩이나 들어있단다.
   하늘이는 콩팥이 많이 나빠져서 피를 거르는 투석치료를 받는 환자란다. 신장이식을 받으면 그 순간부터 투석은 안 해도 된단다. 혈액투석은 신장 센터에 일주일에 3번, 한 번 갈 때마다 3시간에서 4시간의 투석치료를 해야 되는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단다.
   신장투석 환자들은 공휴일을 무척 기다린다. 그 이유는 그런 날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죽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침하며 몸을 웅크린다.
   나는 하늘이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녀에게서는 체온이 안 느껴진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는 걸까?. 그녀가 가늘게 말한다.
   “난 집에 가서 죽고 싶어. 내 아이 폰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 친구랑 이모랑 강아지 또또의 사진이 입력되어 있어. 그것들이 보고 싶어. 난 샘 스미스가 부른 스테이 위드미를 좋아한다.”
   나는 안타까웠다. 돌방 아저씨가 왜 하늘이의 폰을 가져갔는지 원망스럽다. 하늘이가 여기에서 죽으면 안 돼. 내 심장이 펌프질을 한다. 나는 하늘이에게 묻는다.
   “많이 아픈 게로구나.”
   “그런데 음악을 들으며 참고 있으면 좀 나아지긴 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
   그런 말을 했지만 답답하게 기억나는 노래가 없다. 이시대의 젊은이가 아는 노래가 없다니. 아델(Adele)의 노래를 좋아했는데 기억이 깜깜하다.
   “밖에는 해가 떴나 봐요.”
   그녀가 날 살려준다. 난 얼른 밖을 본다.
   “아주 높이 떴어. 아직도 춥냐? 해가 더 높이 오르면 양지쪽에 나가 앉아있자.”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촌보도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소녀를 더욱 꼭 껴안아 체온을 유지해주고 싶다. 그녀는 내 품에서 노래를 부르듯이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한다. 
   “어느 큰 산에 불이 났어. 그때 새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벌새가 산불을 끄려고 작은 입에 물을 물어다 불난 곳에 뿌렸어. 그러면서 다른 새들에게 도움을 청했어. 참새에게도, 비둘기, 까마귀에게도 그랬으며 황새에게도 같이 불끄기를 청해 보았다. 그러나 새들은 그런다고 우리 작은 몸으로 산불을 끌 수가 있느냐'고 비웃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모두 다 잘 발달된 날개를 이용해 불을 끄기보다는 저 살기에만 바빠서 도망갔다. 그러나 가장 작은 벌새는 상관치 않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할 뿐이야 라며 작은 날개로 파닥거리면서 날아와 물을 뿌렸다는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숨을 새근거렸다.
   “그래서 그 벌새가 불을 껐냐?”
   “아니, 아직은 몰라. 그 새가 아직도 불을 끄려고 물을 나르고 있거든.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동화책에서 읽은 얘기야. 그러나 지금 그 새가 내 앞에 있네. 나 물 좀 마시자.”
나는 그녀를 나무 등걸에 기대 앉혀놓고 물병을 가져다가 주었다. 하늘이 물병을 입에 살짝 대어 입술을 축이고 말을 계속했다. 
   “가망이 있건 없건 그 벌새는 지금도 입에다 물을 물어다 불을 끄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동화는 끝이 났어.”
   나는 악의 동반자가 되어 인질소녀 앞에 앉아있는 자신에게 들으라고 그런 동화를 들려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재미난 얘기로구나. 나도 그런 벌새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생각을 말하자 그녀는 힘주어 말을 잇는다.
   “자수 해?”
   그녀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수를 말했다. 
 “평생 도망 다닐 수는 없는 일이야. 내가 살아나면 자주 면회를 갈게. 아빠에게 말해서 좋은 변호사도 대고…….”
   “다른 사람처럼 내게도 신장이 두 개 있겠지.”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내 안의 신장하나가 내게 소릴 쳐 말한다.”
   하늘이는 눈을 감고 말없이 듣고만 있다.
   “그 하나가 네 것이라고……”
   “왜 그런 말을 하지?”
   “너희 아버지가 돌방아저씨에게……아니다. 내 고민은 지금 내가 누구인가란 것을 알아내는 것이고, 내 스스로 말한 소리를 실천하고 싶다는 의지뿐이거든.”
   하늘이는 내게서 요요를 뺏어 묘기를 해 본다. 잘 안 된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자수가 문제가 아니야. 내 안의 콩팥이…….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 헌데 그런 호의는 사양하고 죽겠다.”
   “내가 자수를 하면 그게 이루어질까?”
   하늘이는 대답이 없다. 나의 손에서 그녀의 손으로 옮겨진 요요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요요가 나의 손에서는 뱅뱅 돌며 분광을 일으킬 때는 분명  살아있는 물체였다. 나는 하늘이의 손을 바라보며 말한다.
   “네 손에 들려있는 요요 말이다. 그걸 내 머리통으로 던져봐. 쎄게……. 내가 쓰러지면 구급차를 불러. 내 숨이 끊어졌어도 내 장기는 한동안 살아있을 꺼다.”  
   나는 하늘이에게 고물 전화기를 준다.
   “왜 그런 무서울 소릴 하냐.”
   “부탁이다. 내 피는 오형이니 아무에게나 줄 수 있을 걸.”
   “난 이미 그 제안을 거부 했어. 그리고 나더러 살인자가 되라고. 말도 안 돼.”
    나는 내 자신의 갈비뼈 아래서 소리치는 신장에게 속삭인다. 신장, 내게 소리치지 마. 내가 도토리나무 위로 올라가서 아래로 다이빙 하면 어떻게 되겠냐?
   하늘이는 요요를 손아귀에 꼭 쥐고 나를 의아스레 보며 말한다.
   “지금 누구하고 얘기하는 거야.”
   “모르겠어. 헷갈려.”
   “자수가 아니라 자살을 하겠단 소리야.”
   “자살, 지금 난, 내가 왜 그 공사장의 옥상에서 아래로 뛰어 내렸는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다. 그때도 자살 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다구.”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겠어.”
   나는 하늘이의 얼굴을 연인들 끼리 헤어져야 말 할 때 하는 그런 모습으로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다가 돌아선다. 하늘이가 나의 등 뒤에서 소릴 친다.
   “잠깐만!!!”
   나를 돌려세운 그녀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늘이의 손에 든 돌방아저씨의 고물전화벨이 울린 거였다. 돌방아저씨의 허스키가 전화기 안에서 웅얼거린다.
   “천이야. 사장님은 결국 콩팥을 사시겠다는 거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어. 그런데 내 것은……. 날 용서하지 마라. 난 몸을 함부로 굴린 적이 많아. 성병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더라. 그걸 먼저 치료해야 신장 도너를 할 수 있댔어. 수고스럽지만 그 애를 업고 길 쪽으로 나와라. 아니면 그 아일 팽개치고 도망을 치던가. 미안하게 됐다. 공을 네게 넘긴다.”
   돌방아저씨는 그런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천정구멍의 하늘을 봤다.
   “그 사람이 뭐라고 그래.”
   “가자. 내 등에 업혀.”
   “어디로 가자는 거지.”
   돌방아저씨의 배신을 탓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체온이 거의 없는 그녀를 업은 후 나는 숲을 달린다. 갈 때와 달리 산은 내리막이 되어 그냥 달려 갈 수가 있다. 내 의식 속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살아서 떠오르고 있는 듯하다. 매미 소리가 고막을 따갑게 한다. 그건 내 귀 울림이다. 발에 밟히는 관목들 사이로 바다색 나비 떼가 춤을 추는 게 보이는 듯하다. 미국 요세미티 공원 머시드 강가의 마리포사 숲에 서식하는 나비 떼들이다. 나는 막 달린다. 관목 숲을 지나 뱀 딸기 넝쿨을 밟으며 달릴 뿐이다.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 숲 사이로 원시의 햇살 무늬가 어른거린다.
   병실 냄새가 느껴진다. 눈을 떠보니 간호사가 혈압 기를 들이댄다.
   “이식수술은 잘 됐어요. 혈압 맥박 모두 정상이고요.”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숨이 차게 숲속에서 뛰어 나오자마자 앰뷸런스가 서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하늘이를 데려갔다. 나는 다른 차에 태워졌다. 의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신장 기증을 자발적인 의사로 하겠다는 서약서였다. 나는 사인을 했다. 그리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초스피드로 했다. 그리고 곧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링거 병에 마취주사를 섞는 걸 바라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내 신장을 떼어 하늘이에게 주는 구나. 나는 기쁨을 의식했다. 이제 하늘이가 구역질을 안 해도 되는 구나. 뚱뚱 부은 얼굴로 창백하게 누워만 있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잠이라는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깨어났을 때는 햇살이 창문의 블라인드를 뚫고 빗살무늬로 들어온다. 나는 혼자 누워있다. 아마도 독방 회복실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낮선 신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무테안경을 쓰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었으며 줄무늬회색 정장에 쑥색 넥타이를 맨 40초반의 사나이다.
   “나, 변호사 김종석이오.”
   그는 서류를 뒤적이며 겸손하게 말했다. 
   “소녀 납치범. 물론 주범은 아니고 공범이네. 난 당신의 변호인이오. 수사관이 다녀갔소. 내가 변호인으로 그간의 이야기를 다 해 줬소. 기억 상실 증세가 있다는 진단서를 줬지요. 아마도 불구속으로 기소유예 판결을 받을 꺼요. 또 올지도 몰라요. 한 생명을 구한 훌륭한 청년이란 말도 해 줬소. 뭐 질문 같은 건 없소?”
   나는 빠르게 질문을 했다.
   “돌방아저씨는 어찌 되었나요?”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소.”
   “체포되었군요.”
   “아니, 자수 했소. 이걸 읽어보시오. 그가 써준 편지요.”
   변호사는 제비날개로 접은 쪽지를 나에게 주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든 내게 먼저 알리고 행동해야 해요.”
   그는 자신의 명함을 주고 돌아섰다.
   “하늘이를 만날 수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그는 돌아서서 열린 문으로 사라졌다. 나는 쪽지를 펴 들었다.
   ‘사랑하는 천이야. 병원에서 나오면 먼저 내 방으로 가거라. 거기 창문 맞은 쪽 벽에 걸린 뭉크의 절규를 떼어봐라. 그림은 물론 카피야. 그림 밑 벽엔 감추어진 구멍이 있을 꺼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네 것이다. 그 방에서 네 기억이 살아나고 네가 집을 찾아 질 때까지 살아도 된다. 그리고 날 찾지 마라. 참. 한 가지 더…… 하늘이 아버지도 한패고 우리의 미션을 잘 끝났다. 정말 날 용서하지 마라. 안녕.”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지를 읽고 잠을 더 잤다. 음식은 영양식으로 잘 나왔다. 나는 건강했고 잘 먹으며 잠을 많이 잣기 때문에 외복이 빨랐다.
   택시를 타고 돌방아저씨와 같이 살던 아파트로 갔다. 그의 편지내용대로 침실 벽에 걸린 가짜뭉크의 그림을 떼고 벽을 주먹으로 두드려 봤다. 벽이 뻥 뚫어진다. 그 속에서 작은 비닐손가방이 나왔다. 그 안에 내 지갑이 들어있다. 아이폰도 나왔다. 패스포드도 있다. 지갑에는 달러 5백 불과 한국 돈 50만원이 들어있다. 젊은 시절에 찍은 어머니의 사진도 들어있다. 어머닌 매우 아름다웠다. 사진을 보자 눈물이 흐른다. 아이폰을 열었다. 성욱형에게서 문자가 엄청 많이 와 있다. 모두가 비슷한 내용이다. ‘정우야, 어찌 된 일이냐. 우리 집으로 온 다더니. 대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널 종일 기다렸다. 그리고 또 오백년간 더 기다렸어. 걱정된다. 연락 바람.’ 모두 그런 내용들이다. 날짜를 보니 일 년  하고도 몇 개 월 전 문자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돌방아저씨와 일 년 넘게 같이 지냈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고속 터미널로 달렸다. 차 안에서 성욱형에게 전화를 했다. 성욱형은 큰소리부터 친다.
   “어떻게 된 거야. 오천 년 동안 네 전화를 기다렸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해. 지금 터미널로 가는 중이야.”
   터미널은 복잡했다. 표를 끊고 나니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이폰 안에는 어머니의 샐폰 번호가 있었다. 미국 홈(Home),그게 어머니의 전화번호다.
   “어머니 저 정우에요.”
   나는 천이라고 하지 않고 거침없이 생각난 내 본 이름을 말했다. 아이폰이 나의 기억을 의식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것 같다. 어머니는 우시기부터 하신다.
   “정우야. 얘야. 어찌 된 일인지는 묻지 않겠다. 나는 너를 찾아 그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아냐. 신문에 광고를 내고, 네 이모가족이랑 너를 찾는 다는 전단지를 뿌리고 다녔다. 현상금도 걸었어. 암튼 거기가 어디냐? 내 그리 가야겠다.”
   “거기 기다리고 계세요. 다음 주에 집에 갈 거예요. 가서 다 말씀드릴 게요.”
   “뭐가 잘못 된 건 아니지. 아픈 데는 없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주랴?”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로 그간의 지나간 사연을 다 얘기해 드릴 수는 없다.
   그 냥 다음 주쯤에 집에 돌아간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에 앉은 다음 생각해 보니 변호사에게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명함을 찾아 내 행선지에 대한 문자를 넣었다. 버스는 유람선처럼 조용히 흔들리며 달리고 있다. 들판에선 농부들이 일을 하고, 먼 산의 나무들은 해를 향해 가지를 뻗고,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서 바람을 불러들이며, 옆길에선 승용차들이 나란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눈을 감는다.

2. 엘캡
 
   그때, 나는 매우 흥분상태였다. 세계에서 제일 큰 화강암 바위. 1천2백 미터 높이의 거대암벽 엘캡의 노즈 루트를 등반할 기회가 왔기 때문이었다.
   “엘캡은 엘 캐피탄(El Capitan)의 줄인 말로 대장이란 뜻이란다. 노즈란 절벽이 옆에서 보면 잘생긴 코(Nose)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다. 화강암 직벽 1천2백 미터……, 해발로 2천 5백미터. 63빌딩높이 274미터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두바이의 부르츠 칼리가 828미터이다. 이를 비교하면 엘캡이 어느 정도 높이인지 알만 할 것이다. 노즈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암벽타기 루트다.
   이런 엘캡 노즈는  베테랑 록클라이머들도 완등시간이 5일 내지 7일이 걸린다. 그들은 바위벽을 타는 중에 절벽의 허리, 공중에서 먹고 자고 볼일 보면서 지내야 한다. 허공에서 먹고 자고는 일은 진공상태에서 지내는 일과 같단다. 한편으로 등반가들은 그 기간 동안의 먹을 식량과 물, 그리고 등반 장비등 엄청난 무게의 짐을 함께 운반해야 한다. 그것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폴백이라는 든든한 자루에 넣은 짐을 끌어올리며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어지간한 체력과 인내와 기술과 의지가 필수조건이다. 이런 거벽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구에 엘 케피탄이란 이름으로 우뚝 서있다.
   요세미티란 인디안 부족의 이름으로 ‘죽이는 자들’이란 뜻이란다. 그래서인지 엘캡에 오르는 록클라이머들이 심심치 않게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그 요세미티국립공원은 수많은 산 봉오리와 계곡과 폭포들이 한 덩어리가 된 광활한 지역이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덩어리를 평풍으로 계곡을 만들었고 침엽수와 천년의 거목인 자이언트 세꽈이어(Sequoia)들이 빽빽한 밀림을 이루고, 아홉 개의 개성이 강한 폭포수가 굉음으로 안개를 피운다. 그중에 새신부의 베일 같다는 브리덜 베일 폭포와 요세미티 폭포가 유명하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눈 녹은 물에 송어 떼가 서식하는 머시드 강가엔 (Merced river) 마리포사(Mariposa)숲이 있고 바다색 나비 떼들이 환상적인 요정의 나라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광활한 천연융단 엘케피탄 잔디 광장(El Capitan Midow), 바베큐 시설을 갖춘 캠핑 그라운드, 콘도형 호텔 등으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요세미티국립공원이다. 이 원시림 파라다이스에는 불곰과 꽃사슴, 청설모, 딱따구리  종류와 자연속의 주인공인 야생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황갈색 붉은 머리 작은 새들의 휘파람 소리도 자연의 음악으로 연주되는 곳이다. 아무튼 그곳에 수문장으로 우뚝 선 거대암벽 엘캡은 별들에게 가는 길목 같기도 하다. 한국의 산악인들도 심심치 않게 암벽 클라이밍의 꿈을 실현 시키는 곳이 엘캡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보라! 알만한 이름의 한인 등반가들이 자유등반으로 엘캡 노즈를 오른 기록이 있다. 강성욱형도 그들 중에 한사람이다. 
   원래 내 이름은 이정우이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을 하고 미국인과 재혼을 하면서 호적상 쟌 밀러라는 이름을 더 붙이게 되어 ‘쟌 정우 리 밀러’가되었다. 나의 양부 밀러씨는 공군의 기술사관으로 한국에 파견 나와 있었는데 어머니가 공군 부대의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와의 재혼을 나의 장래를 위해서 15년 나이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게 되었단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신 어머니께 늘 감사하며 지낸다. 내가 9살 때이다. 그 후 우리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사이프러스 고교를 다녔다. 그곳이 미국 비행기회사인 보잉의 조립공장이 있는 근처이며 양부 밀러씨는 제대 후에 그곳의 기술 고문으로 근무 하였다. 그는 양아들인 나를 매우 사랑하였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밀러씨는 요요를 잘 놀려서 요요국제 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탄 사람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는 요요놀이를 양부 밀러씨에게서 배웠다. 우리는 요요를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놀이를 하며 즐기기도 했다. 양부 밀러씨는 우리모자와 행복하게 살다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보험과 퇴직금 그리고 회사에서 배당받은 주식을 남겨놓아 어머니가 나 하나를 키우면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교회봉사로 평생을 사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다섯 번은 어머니를 뵐 수 없는 때가 있기도 했다. 그분은 교회에 가서 허드레 일을 하시면서 사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게 약간은 불만이었다.
   하여간에 나, ‘쟌 정우 리 밀러’가 세계적인 명문대학 입학허가서를 세 군데나 받았을 때, 나의 선배이며 한국연수 때에 늘 학습 맨토였던 강성욱형이 거벽 엘캡 등반을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다. 나는 강성욱형을 따라 북한산일대와 인수봉, 선인봉에서 암벽타기를 여러 번 해서 바위타기의 초보는 면했다. 이번에 나는 등반을 하며 성욱형과 어느 대학을 선택할지 의논도 하고 싶었다. 성욱형은 한국유학생으로 미래에 영문학 교수가 될 사람이며 그때에 USC에 박사코스중인 청년이다.
   “전 세계의 암벽 등반가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한 절벽. 엘캡을 정복하자……! 완등에 성공한 후에 성취감이란 바로 자신감이며 꿈의 완성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모든 인간에게 꿈이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예고편을 보여주자. 우리 엘캡으로 가자!”
   성욱형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감명 받았다. 그보다 더 나를 설레게 하는 초점이 하나 더 있다. 성욱형의 여자 친구 이사벨 길레즈가 함께 등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성욱형은 한국의 국보급 전통 한옥을 지켜야 할 장손이기도 하단다. 이사벨은 그런 전통 가문의 장손 집 며느리가 된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단다. 벽안의 젊은 여성이 한국의 종갓집의 맏며느리가 된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부럽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이사벨이 좋아보였다. 그녀의 눈은 여름호수처럼 깊은 빛을 풍겼고, 그녀의 미소는 상대방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야 말로 나의 이상형 여인인 것 같기도 했다. 어떨 때 나는 이사벨을 가운데 놓고 성욱형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건 발상자체가 망상이었다. 존경하는 성욱형의 애인인데……. 좋으면서도 갈등이 생긴다. 그녀의 아버지 밥 길레즈씨는 카나다 출신 미국인의사이다. 그리고 그는 등산가이다. 히말라야를 네 번이나 등반한 베테랑이란다. 그녀도 아버지처럼 의사가 장래희망이란다. 그리고 성욱형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 하여간에 나는 존경하는 성욱형과 함께 하는 등반이 즐겁기만 할 것 같았다. 성욱형은 나에게 참고하라고 자신의 등정 일지를 보내 주었다.
   “이사벨과 나는 엘캡 노즈(Nose)를 자유등반으로 오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루트 상의 틈들이 매우 좁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등반 용어는 거의가 영어이기에 틈을 크랙이라고 했다. 또한 이 루트의 자유등반은 실패확률이 높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천연 조각품 같은 절벽의 자유등반을 정우, 너와 함께 도전 하게 된다는 게 기쁨이 될 것이다. 이사벨도 너와의 등반을 몹시 기뻐한다. 록클라이머라 하면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을 오르고자 하는 꿈을 한번쯤은 가져 봐야한다. 이처럼 높고 큰 거벽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일백만 년 전 빙하시대의 지각변동으로 생긴 화강암 절벽이란다. 빙하시대에 살아남은 바윗덩어리 절벽 그게 매력 아니냐? 그 바위틈에서 공룡들의 설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상상도 해보자. 그 안에 공룡 시대의 디엔에이가 가득 찬 미생물들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우리 그 신비를 벗기자. 그런데 막상 요세미티에 가서 엘캡을 바라다보면 올라갈 생각이 반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만큼 바위벽이 크다는 것이다. 말이 거벽 클라이밍이지 막상 현지에서 하늘 높이 솟아 오른 벽을 쳐다보노라면 겁부터 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약해지고 절망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이답게 거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8월 5일 까지 요세미티 캠핑장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5일간 캠핑을 하며 대자연을 즐겨보자. 바비큐해서 맥주를 마시면서 장비점검을 한다. 물이랑 식량과 암벽용 도구들을 꾸린다. 식량은 우주식과 산악 식으로 준비할 것이다. 더러는 한국군의 전투식량이 좋을 것이다. 거기엔 김치찌개와 비빔밥이 있거든. 장비는 내가 준비하고 식량과 물은 이사벨이 한다. 넌 디저트와 음료를 준비해라. 커피와 녹차 그리고 코코아가 좋겠다. 그다음 우리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4피치, 그걸 한국말로 마디라고 하자. 첫날 네 째 마디까지 연습등반을 한다. 그곳엔 일 미터 폭의 바위선반, 시크 렛지(Sickle Ledge)가 있다. 거기에 물과 짐을 가져다 놓고 하강한다. 하강 점프, 하늘을 나는 하강점프가 얼마나 신이 나냐? 8월 9일에 엘캡 등반을 시작해서 총 32마디를 8월15일까지 정상에 오른다. 거기에는 붉은 소나무가 한 구루 있을 것이다. 그 적송 아래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이다. 누구의 생일이냐고? 이사벨의 생일이다. 그날이 우리의 약혼식 날도 될 것이다. 기억하자 절벽아래서 절망을 느껴 본 사람만이 그 절벽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난 지금 절망을 느낀다. 하하하.”
   성욱형은 앨캡의 등반 루트를 그림처럼 설명했다.
   우리는 예정대로 베이스 캠프장에서 퓨전 스타일 바비큐를 즐겼다. 그리고 물살이 빨라 안개포말을 껴안고 흐르는 머시드 강가로 갔다. 해는 뜨겁고 바람은 찼다. 우리는 셋이서 나란히 앉아 네바다 시에라 산맥의 눈 녹은 물이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며 맥주를 마셨다. 강물은 빙수처럼 차가웠다. 내가 마리포사 숲엔 환상의 캄쿤 바다색 나비가 요정처럼 날아다닌다고 말하자 이사벨은 그 요정은 보는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이 보인다고 했다. 난 이사벨을 보며 말한다.
   “나비만 보고 요정은 못 봤어.”
   이사벨이 요정을 불러주겠다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건 피콜로 소리였다. 황갈색붉은 머리 작은 새들이 이사벨의 휘파람소리에 응답하며 날아와 세찬 강물 위를 넘나들며 논다. 그 모습은 바람에 흔들리는 라벤더 꽃을 보는 듯했다. 뒤 배경으로 멀리 엘캡이 보였다. 8월의 저녁놀이 강물위에 붉은 장막을 펼친다. 한 무리의 대학생 등반 팀이 왁자지껄하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엔 영국 악센트가 강했다. 
   그런데……! 그런 등반을 했을 ‘쟌정우 리 밀러’인 내가 어찌하여 천이라는 이름으로 강남의 맨션 골목에 서있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게 나의 고민이다. 대구행 버스 안에서 나의 기억은 다시 거벽 엘켑으로 달려간다.
   해뜨기 전인 5시 반시부터 등반준비를 시작했다. 숲속에 웅장한 아침이 왔다. 두려운 아침이기도 했다. 그런 신비의 아침은 붉은 햇빛을 몰고 왔다. 우리는 장비들을 기어렉에 걸었다. 기어렉은 등반 시 장비를 매다는 재킷이다. 캠3조, 너트 2조, 퀵드로우 대,중,소 20개, 케러비너 10개, 슬링 10개, 등강기인 주마. 기타 등등……. 장비무게만 30킬로……. 
   성욱형은 벽에다가 키스부터 했다. 나도 성우형을 따라 벽에 뺨을 대 보았다. 화강암 바위는 분명 내게 어떤 느낌을 전달했다. 미지의 연인을 대하는 설렘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드디어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마디는 자유등반과 인공등반을 섞어서 했다. 인공등반은 장비나 이미 확보된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고 자유등반은 그 반대다. 선등자 이사벨은 작고 긴 크랙에 적은 사이즈와 중간 사이즈의 캠을 설치하며 인공등반으로 올라갔다. 코스 중 4피치까지가 가장 어렵단다. 그래서 예정대로 4피치까지 연습 겸 짐을 부리는 계획을 했다. 1피치를 한 시간 이상 소모하며 겨우 로프를 고정했다. 후 등반은 성욱이형이 맡고 나는 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4피치는 작고 불규칙한 크랙 때문에 캠을 설치하기가 까다로웠지만 손이 작은 이사벨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아보였다. 거기에서 옆으로 팬듈럼을 두번을 해야 4피치의 시클 렛지(Sickle Ledge)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 이사벨은 휘파람 새소리를 세게 내면서 몸에 기를 모으고 있었다. 팬듈럼은 수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코스에서 조금 하강한 후 그네를 타듯 옆으로 크게 스윙을 해서 이동하는 암벽 등반법이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스윙을 했다. 4피치에 짐을 부려두고 다시 하강하여 일찍 자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4피치 짐 있는 곳으로 향하려는 계획인데, 강가에서 본 영국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질척이고 있었다. 그들은 다섯 명 정도가 한 팀인데 그중 몇은 초보자 같았다. 이사벨은 휘파람 소리를 기합대신 내면서 천천히 따라 오르다가 조급해진 모양이었다. 그녀가 옆 루트로 질러가려 했을 때이었다.  영국팀의 홀백이 바위비늘 낙석과 함께 굴러 내리고 있었다. 앗-. 조심해!, 할 새도 없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위가 흔들렸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이사벨의 머리를 내리쳤다. 나는 그녀의 헬멧 쓴 머리가 45도로 꺾이는 걸 보았다.  눈부신 태양은 바위벽에 빛을 뿌렸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는 굴러 내렸다. 뛰 따라 오르던 성욱형이 허공으로 부양했다. 그 아래로 내가 로프에 발이 걸리며 굴러 뒤엉킨 로프에 매달렸다. 내 눈엔 이사벨이 약간 경사진 절벽 아래로 럭비공처럼 제멋대로 튀며 추락 하는 장면이 보였다. 성욱 형은 벼랑 아래로 곧장 돌덩이처럼 빠르게 떨어져 버렸다. 허공에서 해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블랙홀인가? 시간의 확장이 거기에서 멈추었나보았다.
   나는 삼일 만에 깨어났다.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었고 온몸의 뼈마디가 조금씩 틀어지고, 명치끝의 갈비뼈는 금이 갔다. 성욱형과 이사벨은 각기 다른 병원 응급실로 분산되어버렸단다. 그때 그 추락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순간 그 장면이 트라우마가 되어 살아있는 의식에 가득 차 지워지질 않는다. 그처럼 끔찍한 사건을 잊을 수 있는가.  그걸 억지로 기억해야 할 것인가? 잊을 수만 있다면……. 주치의는 신경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 시간이 흘렀다. 나는 시간의 역사라는 것이 가능한가를 고민스레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명치끝의 진통이 머리로 올라간 느낌이었다. 귀울림이 심하다. 그 아픔 때문에 절절매다가 요요를 찾는다.  요요를 돌리는 동안에는 생각이라는 기능이 마비된다는 걸 나는 안다. 양 아버지가 16세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대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바쁜 걸음으로 사라진다. 나는 길 잃은 양처럼 엉거주춤 서서 성욱형을 찾는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을 쯤 해서 휠체어 한 대가 다가온다. 성욱형이다. 나는 넋 빠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굴러오는 휠체어를 바라봤다. 투명의 바지를 입은 것처럼 그의 허벅지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다. 나는 터미널 빌딩의 벽을 바라봤다. 형형색색 먹을거리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차라리 배고프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 성욱형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난 그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미안해서 죽을 것만 같다.
   “자, 우리 집에 들러서 1백만 년 전 빙하로 침식된 곳으로 다시 가자.”
   휠체어가 빠르게 앞장선다. 전기 작동 휠체어다. 그를 따랐다. 1백만 년 전 빙하로 침식된 곳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그 곳에 엘캡이 있고, 우리는 그 벽을 오르다가 초반부에서 추락했다. 나는 지금 멀쩡한데 함께 오르던 성욱형은 하반신이 사라진 반 토막 인간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명치끝의 통증이 까무러치도록 일어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성욱형은 장애자 전용 주차 칸에 서있는 하얀 미니 밴 앞에서 리모컨을 누른다. 차문이 스르르 열리자 휠체어가 굴러들어간다. 운전석 앞에는 의자가 없다. 휠체어가 그 자리에 들어가 정착을 한다. 나는 조수석에 올라가 앉으며 입을 딱 벌린다. 성욱형은 아이폰으로 차를 움직인다. 뒤로 빼고 브레이크를 조작하고 앞으로 나가고 신호등을 돌아 고속도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마치 에스에프(SF) 소설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이사벨은 어찌되었는가? 나는 그간의 일이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를 못하고 성욱형이 아이폰을 통해서 손으로만 운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성욱형은 손을 재게 놀리면서 물었다.
   “그동안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난 거냐?”
   “교통사고를 당했어.”
   나는 빌라 건축 장 오층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졌었다는 말 대신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 말이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해를 못하겠다. 나는 또 혼란스러웠고 명치에 진통이 왔다. 신장이식이야기는 건너뛰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형은 어찌 된 일이야.”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는 엘켑 노스 넷째마디를 오르다가 추락 했잖냐. 너도 함께 떨어졌지만 넌 폴백 로프에 엉켜서 60미 쯤 아래에서 어망의 고기처럼 걸려있더라. 난 산탄총을 맞은 기러기처럼 떨어지면서 그게 보였어. 우리의 추락은 영국팀의 폴백이 떨어지면서  우리를 덮쳐서야. 내 잘못이야. 후등자가 확보 자일을 단단히 고정시키질 못했어. 이사벨은 동쪽으로 하늘 다람쥐처럼 바람에 날리며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어. 난……. 바위틈이 거대한 조개가 되어 황새의 주둥이를 물듯이 내 양다리를 물고 놔주질 않았어.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양다리의 무릎 위를 절단 해야만 했다. 무릎 아래를 잘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어. 의료진은 사고가 난지 열 두 시간 후에야 나타났어. 구조대는 그녀를 구해내지 못했어. 일주일 만에 서쪽 타우어 아래 눈향나무 덤불 밑에서 찾아냈는데……미안하다. 감정이 연약해 져서…….”
잠시 침묵 후에 성욱형은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소리로 말을 계속한다. 
   “나의 사랑 이사벨은 먼저 빙하시대로 되돌아가 버렸어. 지금쯤은 아기공룡을 타며 놀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바다색 나비가 날아다니듯이 요정이 되었거나. 황갈색 휘파람새가 되었겠지. 우린 그리로 가야 하지 않겠니. 이사벨을 찾아서…….”
   성욱형의 집은 고풍스런 한옥이었다. 사랑채가 있고 중문으로 안채가 구분되어 있는 집이다. 사랑마당에 푸른 소나무가 늘어져 있다. 그 소나무  향기가 한국의 전통 가옥을 멋과 함께 품위 넘쳐 보이게 하나보다. 한옥은 벽이 숨을 쉰다는 말도 들었다. 
   “형, 소나무 향기. 내가 여기에 왔었든 것 같은 생각이 드네.”
   “넌 중학교 때부터 해마다 한국에 언어 연수차 와서 우리 집에서 며칠간씩 보낸 적이 있다. 넌 이집을 참 좋아했지. 연못에서 잉어에게 밥을 던져주며 즐거워했고. 너 학교 졸업하고 이집에 와서 살 생각은 없냐.”
   난 아직 학교에 입학조차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옥이 좋다고는 했지만 어머니가 좋아 하실 지를 생각 해 보지 않았다.
   “심각하게 생각해 볼게.”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다시 엘켑으로 가야 해.”
   성욱형은 계속 엘캡에 다시 오른다는 말을 반복한다. 나는 차마 그 몸으로, 하는 말을 못 하겠다.
   “그래. 우린 엘캡에 다시 오른다구. 미국인 케빈 조르게슨과 토미 골드웨이가 맨손으로 엘캡을 등정 했다는 뉴스를 봤어.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그들은 11번이나 실패한 끝에 장비나 로프 없이 사상처음으로 거기에 오르는 데 성공했어. 우리는 그보다 길고 높은 엘캡 노즈 루트로 가는 거다.”
   나는 성욱형의 하체를 바라봤다. 하체가 텅 비어있는 몸으로 어찌 그 벽을 오른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성욱형은 휠체어를 휙 돌려 앞서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말없이 짚으로 이엉을 얹은 긴 돌담을 돌고 돌아 후원마당으로 갔다. 그 곳엔 어린이 놀이터의 정글놀이 같은 철봉 매달리기가 특전사들의 훈련장처럼 설치되어 있다. 성욱형은 몸을 날려 그 정글에 매달렸다. 그리고 두 팔로 거미원숭이보다 빠르고 자유롭게 그 시설을 옮겨 다니고 있다.
   “너 스티븐 호킹 박사알지. 시간의 역사를 쓴 분 말이다.”
   “알아, 블랙홀.”
   “그분은 전신마비가 된 덕분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난 두 다리의 무게가 없는 것만큼 몸이 가벼워 졌어. 사람들은 나더러 엘캡가는 일을 포기하라고 성화들이지만 난 호킹박사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외모로 보아도 상대가 안 되지.” 
   성욱형은 남성미 넘치는 서구 형 얼장이다. 그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폼은 안색이 좋은 한의사처럼 건강미 넘쳐 보인다. 그의 상기된 표정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욱형은 무릎 위의 10센티 부분의 허벅지 위에 덧신을 신는다. 고무 신발이 산양의 굽처럼 붙어있고 말목에 해당하는 곳에 강철 스프링을 장치해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고안 한 덧신이다. 그가 일어서면 키는 작으나 성성이처럼 약간 굽을 자세로 걸을 수 있고, 엎드려 두 손으로 땅을 집고 네 발로 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바위 타기를 위해 고안한 내 다리야. 록크라이밍 슈즈보다 바위에 더 잘 붇는 다는 걸 시험해봤어. 성공이야. 이름이 코끼리 덧신이다.”
   그는 으하하 웃는 다. 그 웃음소리에는 유쾌함과 서글픔이 섞여있는 듯하다. 
   “재미있지? 2주일 후가 8월이야. 우리는 8월 15일 까지는 엘캡에 오를 것이다. 준비는 다 되어있어. 널 기다리느라고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는지 아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엘캡에 오르는 걸 반대해도 너만은 찬성하고 동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닥터 길레즈, 이사벨의 아버지야. 그가 팀장을 해 주기로 했어.”
   성욱형의 눈은 파랗게 빛이 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물론 형제들이나 친구들.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불구의 몸으로 엘켑에 다시 오르겠다는 것을 찬성할리가 없어 보인다. 나도 찬성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사정이 다르다. 그와 함께 오르다가 추락했는데, 나는 멀쩡하고 그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나는 성욱형과 함께 엘캡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시간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이쯤 해서 돌방아저씨 생각이 난다. 그를 따라서 신장병 앓는 소녀를 납치하고……. 신장을 나눠주고, 물론 내 의지로 한 행위지만, 결국 난 남을 위해서 사는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 그게 어때서? 그럼 나는 어디에 있는 가. 이럴 때 요요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런데……. 요요를 하늘이에게 준 기억이 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꺼내 돌리며 그 내부에서 나오는 형광불빛을 상상해 본다. 하늘이는 건강하게 잘 있겠지. 궁금해진다.
   햇살이 따가운 바위벽에 붙어있다. 80미터 쯤 위에 성욱형이 바위틈으로  갈라진 벽에서 벌레처럼 꼼지락 거리는 게 보인다. 수평으로 3미터쯤에서 희끗한 턱수염의 장년사나이가 나를 도와 폴백을 끌어 올리느라고 절벽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의 이름은 밥 길레즈. 의사이며 히말라야의 14좌 중 다섯 봉을 정복한 산악인이다. 특히 브로드피크는 `95년에 엄흥길 대장이 정복한 곳이며, 낭가 파르밧은 고영미 여성 산악인이 실족사망한 곳이다. 그밖에도 그는 마나슬루와 안데스 산맥의 침보라소도 완등 했다는 베테랑 산악인이다.
   그와 한조가 되어 엘캡을 오르는 영광의 순간이다. 각자가 물병과 개인 장비가 든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절벽바위에 붙어있다. 선등자 이외에는 로프를 타고 오르는 주마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록 클라이머들이 엘캡 노즈를 오르는데 5일 내지 7일이 걸리는 데 비해 우리는 시작부터 느린 편이다. 성욱형이 로프 한 끝을 매달고 올라가 다음 마디를 등반 할 수 있도록 확보물을 정하면  닥터 길레츠가 사용한  장비를 회수하며 후등반을 보아주는 중이다. 여러 날 먹을 물과 식량의 짐은 50킬로가 넘는 홀백 2개다. 성욱형은 바위틈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가며 팔 힘만으로 오르는 모습이 스파이더맨 영락없다. 그는 한 땀 한 땀 오를 때 마다 쩌렁 울리는 기합 소리를 낸다. 그는 기합소리를 외친 다음 허공에 매달려 바위틈에 귀를 대 본다. 그리고 뒤따라 오르는 내게 목청을 돋운다.
   “정우야 바위틈에서 소리가 난다. 동굴 속에서 어느 고생대의 존재가 보내는 전파소리 같기도 하고, 고래 등가죽에서 기생하는 소라 고동의 울림 같기도 해. 저게 이사벨의 휘파람 소리일까? 정우야 너도 바위틈에 귀를 대고 들어보렴.”
   나도 바위틈에 귀를 대본다. 알 수 없는 귀 울림의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첫째 마디는 약 75도의 수직으로 바위 면은 차돌처럼 미끈해 보이지만 넉장 바위이기에 거칠게 이어진다. 성욱형은 속도는 느리지만 거미원숭이 같은  팔 힘으로 허공에 매달려 잘 버티며 오른다. 둘째마디는 역시 첫째 마디와 비슷했다. 등산가들은 마디대신 피치라는 용어를 쓴다.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제3피치는 바위틈에 손가락 두개만을 넣어 매달리며 올라야 하는 수직인데, 올라갈수록 틈이 좁아진다. 그때 확보지점에 로프를 고정시키고 10여 미터쯤 도로 내려와 그네를 타고 스윙을 하다가 건너편 바위틈이 있는 곳으로 건너뛰어 진입해야 한다. 그곳에도 성욱형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우리는 전신이 땀범벅이다. 물을 좀 마시고 제4피치로 향했다. 제4피치, 이곳은 엘캡 노즈 등반 중 가장 어려운 피치이다. 여기에서 그들이 추락하여 이사벨을 잃은 곳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성욱형은 울컥하고 흐느낀다. 딸을 잃은 닥터 길레즈도 슬픔을 참기 어려워하는 표정이다. 나 역시 가슴에서 끌어 오르는 슬픔이 참기 힘들다. 엉엉 소리 내어 마구 울고 싶어진다.
  우리는 4피치의 시클 렛지(Sickle Ledge)에서 추모의 예식을 하며  일박하기로 했다. 주위는 무인도처럼 침묵하다가 순식간에 격정의 파도가 덮치듯 감정을 날카롭게 내려친다. 렛지끝에 앉아 절벽 아래를 바라보던 성욱형이 사자의 포효로 큰 소리를 지른다. 닥터 길레즈가 그를 껴안아준다. 나는 주머니에서 요요를 꺼내들고 싶어진다. 그냥 손에 쥐고만 있고 싶어진다. 8월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강렬한 오후의 태양 볕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미풍으로 지나간다. 그 대양 볕이 지나가면 높은 절벽위에 기후 변동이 있을 것이다. 싸늘한 강풍이 산악인들의 체온을 사정없이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닥터 길레즈는 폴백에서 꺼낸 산악식량으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에너지와 열량을 위한 식단이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우리는 일찍 자리에 들어야 했다. 나는 피로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불안하다. 궁금한 것도 많다. 내 신장을 이식받은 하늘이는 어찌 되었을까. 건강해 졌을까. 어머니는 엘 케피탄으로 떠나는 나를 잡고 우시기만 했다. 저 아래는 하반신이 없는 장애인이 엘캡에 오른다는 뉴스로 인해 세계의 기자들이 다 모여 있을 것이다. 특히나 세계적인 유명 산악인 닥터 길레즈를 취재하기 위해서도 그들은 경쟁을 할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망원렌즈로 우리들의 엘켑 노스 등정을 모두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지만 문뜩 떠오르는 악몽 같은 것이 있었다.  이년 째 쉬었고 USC에 등록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 성욱형에게 멜이 왔다. 자기는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그가 장애인이 되었는지 몰랐다. 어쨌든 그를 만나려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서 내려 막내 이모 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시외버스를 타려고 길을 나섰다. 좁은 골목의 커브길이다. 아이폰으로 문자를 보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길에 나선 것 까지 기억이 나고 캄캄하다. 그때 아이 폰이며 지갑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오층 빌라 신축 장에 올라가서 아래로 뛰어내린 걸까?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돌방아저씨였다. 그의 은혜를 입은 건 분명하다. 그로 인해 소녀 납치공범이 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신장 하나를 도너 해 준 것은 잘한 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돌방아저씨가 내 아이폰이며 패스포드를 숨겨 가지고 있었을까? 그걸 왜 진작주지 않고 감추어 두었다가 내 놓았을까. 소녀 납치사건은 그녀의 아버지와 합동 작전이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주범인 돌방아저씨는 감옥에 있고 나는 풀려나서 바위절벽에 붙어있다. 순간의 일이지만, 바위절벽이나 감옥이나 몸의 부자유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돌방아저씨는 재판을 받을 것인데 몇 년 형이나 받을 까? 사형 아니면 무기일까.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를 면회하고 왔어야 했을 까. 나는 명치끝에 또 진통이 왔다.      성욱형은 선등작업이 힘들었는지 깊은 잠에 빠진 듯하다. 요세미티 침엽수 군락지에서 휘파람 새소리가 들리다가 말다가 한다. 달이 떠오르는 게 보인다. 반달이다. 별들이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3D로 가까이 내려오고 있다. 은하수가 면사보처럼 퍼진 속으로 별똥별이 날아간다. 나는 손끝에 있으나 잡히지는 않는 별나라를 놔두고 슬립핑 백을 펴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닥터 길레즈는 돌부처같이 꼼짝 안하고 앉아있다.
   우리는 해뜨기 전에 일어났다.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잘 잔 것 같다. 닥터 길레즈는 이미 일어나 아침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커피와 머핀을 하나씩 들고 다시 높고, 긴 절벽 엘캡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6피치, 7피치를 지나 8피치에 도착한다. 성욱형은 아직은 여유만만하게 잘 오르고 있다. 바위틈에 손가락을 넣어 온 몸을 끌어올려 중심을 잡으며 그 틈에서 나오는 소리에 응답을 하는 지 얍~. 얍~하며 기합소리를 지른다.
   15피치에서는 허공 침대 포타렛지(Portaledge)를 걸어놓고 휴식과 잠을 잣다.
   다음날도 해뜨기 전에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엘캡에서 비박지로 가장 좋은 25피치의 턱 아래까지 도착했다. 뒤따라 오르던 닥터 길레즈가 장비를 회수하고 난 다음 낙석을 피해 로프를 타고 올라오는 나의 짐 끌기를 돕는다. 우리는 한낮의 복사열 때문에 바위가 불덩이처럼 끓어오르기 전에 25피치까지 올라야 한다. 나의 짐 올리기 작업이 너덜바위틈이나 갈라진 바위 턱에 걸려서 애를 먹였다. 따라서 나의 체력이 엄청 소모됐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짐을 올린 후에 기진맥진하여 늘어졌다. 몸이 힘드니 절망적인 감정이 뼈 속에서 울어난다. 성욱형도 기진해서 호기 있게 기합을 넣는 대신 울음을 터트린다. 손끝은 헤어져 테이프로 돌돌 말았으나 그것마저도 다 헤어져 피가 맺히고 손목은 부어올랐다. 우리는 겨우 비박지 까지 올랐다. 물을 나누어 마시며 나를 바라보는 닥터 길레즈의 표정이 심각하다. 성욱형의 몸이 불덩어리였다. 닥터 길레즈는 해열제를 먹이고 물도 많이 먹였다. 상대적으로 나와 닥터 길레즈 자신은 물을 아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벽을 오르다 실패하는 경우는 물 부족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욱형은 정신이 좀 드는지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조금도 전진을 못하고 탈진 상태로 추락한다. 후등자인 닥터 길레즈가 확보한 위치까지 30미터나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바위틈에서 불운의 냄새가 나는 느낌을 받는다. 닥터 길레즈는 모든 짐을 그 자리에 매달아 놓고 물병만 몇 개 챙겨서 쉴 자리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성욱형는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가슴과 배는 바위에 쓸려서 피투성이가 됐다. 아까 추락하며 미끄러질 때 난 상처 같다. 부은 손목에도 피멍이 들어있다. 그의 허벅지에 싸맨  코끼리 덧신 속에서 냄새가 나고 있다. 그 상처 때문에 고열이 나는 것 같다. 닥터 길레즈는 엘캡 등정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 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는 나에게 성욱형을 데리고 하강준비를 하자고 했다.
   “노……! 안돼요!”
   죽은 듯이 누워있던 성욱형이 소리친다.
   닥터 길레즈는  성욱형의 덧신을 벗겼다. 그곳은 피고름이 맺혀있다.
   “여기가 곪느라고 열이 난 것이야. 이걸 치료 안 하면 살아 날수가 없어. 내려가서 치료하고 체력단련과 연습을 더 하고 내년에 다시 오자.”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미래란 불확실의 롤러코스터이지요. 모두 내려가셔도 나 혼자 오르겠어요.
   “알았다. 그럼 우선 여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해열제를 더 들자. 우선 네게 진통제를 주사하겠다. 이 걸 맞으면 잠이 많이 올 것이야. 잠을 충분히 자두자.”
   닥터 길레즈는 짐 속에서 구급약통을 꺼내 항생제와 진통제를 주사했다. 나는 가급적 응달쪽에서 바람이 부는 곳에 포타렛지를 설치해 그늘을 만들어 봤다. 성욱형은 그냥 잠이 들었다. 나도 눈을 감았다. 절벽 아래서는 사진기자들이 망원렌즈로 개미보다 더 작은 까만 점이 된 록클라이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포착 한 것 같다. 닥터 길레즈도 쉴 공간이 적은 절벽에 로프로 몸을 매달고 비스듬히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정상의 문턱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내가 눈을 떠 보니 파랗던 하늘은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해는 절벽 뒤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기온이 급강하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닥터 길레즈는 저녁 준비를 하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고 그 밤은 그곳에서 더 쉬기로 했다. 성욱형은 한술 뜨더니 접시를 내게 내 밀고 다시 잠을 잔다. 뜨겁게 달은 바위는 식기 시작한다. 바위도 달았다가 식을 때는 소리를 낸다. 때로는 산 전체에서 굉음을 내는 소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9월경에 두 명의 일본 록클라이머가 갑자기 급변한 밤 일기에 얼어 죽은 곳이 방금 지나온 비박지 근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닥터 길레즈가 말했다. 성욱형은 잠이 깊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조용하다.  나는 별들이 가깝게 내려앉고 은하수위로 유성이 끊임없이 선을 긋는 것을 보며 잠을 청했다. 
   내가 잠을 깼을 때다. 해는 공중에 높이 떴고 하늘은 청명하게 파란색이다. 구름 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닥터 길레즈는 홀백에서 모든 짐을 꺼내고 있다. 성욱형은 그 자리에 아직 누워있다. 내가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닥터 길레즈가 손으로 막는다.
   “왜요?”
   “성욱은 떠나고 있어.”
   “떠나다니요?”
   “서두르자.”
   닥터 길레즈는 짐을 다 꺼낸 빈 홀백에 성욱의 몸을 넣고 있다. 나는 멍청이가 된 듯이 바라만 보고 있다.
   “거들어. 여길 잡아라.”
   닥터 길레즈가 짧게 말했다. 우리는 자고 있는 성욱형의 몸을 슬리핑백에 한번  더 감은 후 홀백에 넣는다. 그리고 닥터 길레즈는 옷가지며 그런 것들로 쿠션을 만들어 백 옆에 끼워 넣는다. 다리가 없는 그는 홀백에 쏙 들어갔다.
   “우리 빠르게 정상으로 가자.”
   닥터 길레즈는 장비를 챙겼다.
   “물과 하루분의 식량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 두고 간다.”
   나는 닥터 길레즈의 의도를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장비도 있는 데 아깝게 그걸 모두 두고 가다니…….
   “하루 만에 정상에 오르는 속공등반을 하려는 것이야. 야간 등반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전기로 헬리콥터를 불렀다. 성욱을 데리고 온 곳으로 하강 한다면 사오일이 더 걸릴 것이야. 그러면 이 더위에……. 우리는 영원히 성욱을 잃는다. 그는 지금 혼수상태야. 우리는 정상으로 향해 가야한다. 구조대에 열락을 하자. 그들은 하이킹 코스를 타고 엘캔 뒤쪽에서 삼나무 숲을 헤치고 정상으로 올 것이야. 우선 배불리 먹어두자.”
  닥터 길레즈는 치킨누들 두통을 내게 주고 자신도 연어를 여러 캔 먹는다. 선등자 닥터 길레즈는 매우 빠른 속도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나도 등강기인 주마를 잡는다. 선등자가 내려준 로프를 타기 위해서다. 나는 3단 도르래를 써서 성욱형이 든 백을 올린다. 무거웠다. 우리는 오르고 또 오른다. 나는 힘이 들어 죽을 것만 같다. 닥터 길레즈는 노련했다. 그는 크랙을 타고, 침니를 오른다. 나는 주마링을 하여 오른 뒤 성욱형을 끌어올린다. 온몸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느라고 슬픔도 모르고 과거도 미래도 모른다. 생각도 할 수 없다. 나는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바위절벽에 붙어있는 그냥 현재 살아있는 존재일 뿐이다. 존재……? 그것은 과거와 미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대에서 회전하는 비 물질, 영적이라는 이론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무엇인가? 지금은 손끝이 헤어지고 손바닥 피부가 벗겨져 피가 배어 나와 아파하는 생명일 뿐이다. 누가 우리인간은 생각하기위해  존재한다고 했는가. 그런 멍청이의 어록을 기억 하다니……. 생각과 존재는 별개의 의미 뿐 인 것 같다. 나는 절벽 중간에 걸려서 삶을 향해 버둥거리는 생명일 뿐이다. 극한 상황에서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체험하고 있다. .
   종일을 굶으며 29마디까지 마치니 밤하늘에 별이 더욱 가까워 보이는 듯하다. 마지막 세 마디는 짧은 코스란다. 닥터 길레즈는 바위틈이 길게 난 곳을 따라 장비 없이 오르고 있다. 그가 어디엔가 자일을 고정시킨 후에 신호를 하면 난 그 끝에 주마를 걸고 로프를 따라 오를 것이다. 이때다. 아무도 없는 절벽에서 정우야……. 정우야……하는 소리가 앵앵거리듯이 들린다. 아무도 없는 절벽 바위틈에서 날 부를 자가 누구란 말인가. 난 처음엔 귀 울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 들릴 듯 말 듯 하지만 오싹 해지는 작은 소리는 성욱형이 들어있는 풀백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겁이 덜컹 나서 저만큼 올라간 닥터 길레즈을 연거푸 부르는 한편 정우야. 소리 나는 폴백의 주둥이를 얼어 제쳤다. 파란 달빛아래 성욱형이 눈을 부릅뜨고 날 올려다보고 있다. 그는 무섭게 소리친다. 
   “날 여기서 꺼내주라.”
   난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를 우두거니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고함을 친다.
   “난 내 손끝으로 바위틈을 잡고 오르겠다.”
   내 눈에선 눈물이 나온다. 성욱형은 인사불성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 절벽을 오르겠다고? 그게 가능 할까? 이럴 때 어찌해야 하나. 닥터 길레즈를 바라본다. 위로 향해 오르던 닥터 길레즈가 아래의 상황을 봤나보다. 로프를 타고 급히 하강한다. 성욱형은 자빠진 거북이가 몸을 뒤채듯이 폴백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폴백 자루를 잡고만 있는다.  닥터 길레즈가 급히 와서 돕는다. 성욱형은 울음소리로 애원한다.
   “나 스스로 오르다가 죽게 해 줘요.”
   닥터 길레즈가 그를 얼싸 안으며 말한다.
   “알았다. 네 의지를 알았어. 우선은 열부터 재보고 잠시 쉬자.”
   성욱형의 열은 많이 내렸다. 닥터 길레즈는 보조 로프로 간단한 줄사다리를 만든다. 그리고 주마기에 그걸 걸어서 무릎이 없는 성욱형의 가랑이사이에 걸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서 성욱형은 양손만으로 등강기 로프를 잡고 오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나. 이제 남은 것은 성욱형의 체력이다. 그사이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까? 나는 마음이 불안해 진다. 닥터 길레즈도 그게 걱정인가 보다. 진통제를 더 먹인 후에 철야등정으로 한 번에 마지막 마디인 정상까지 오르자고 제안 한다. 그리고 그는 속도 등반으로 역시 장비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달빛이 닥터 길레즈의 그림자를 지운다. 그래서 그의 헬멧에서 나오는 빛이 더 정확하다. 우리는 그가 내려준 자일을 잡고 오르고 또 오른다. 밤이 새도록 오른다. 마침내 바위가 점점 낮은 각도로 누워지며 우리는 기어서도 오를 수 있게 됐다. 저 만치 아래서 성욱형이 자일을 잡고 꿈틀거리는 보인다만. 나도 완전히 지쳤다. 이쯤 해서 두 손을 놓고 허공으로 그냥 날고 싶다. 의식이 가물거린다.  
   “머리를 들어봐라.”
   닥터 길레즈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머리를 들고 보니 빛이 피어오르는 언덕을 배경으로 정상에 서있는 붉은 소나무가 서서히 나타난다. 선등자 닥터 길레즈는 쌍 볼트에 자일을 걸어 위치를 확보하고 뒤를 돌아 나를 본 것이다. 나도 정상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둘은 잠시 포옹을 하고 로프에 매달인 성욱형을 끌어 올렸다. 눈물이 흐른다. 닥터 길레즈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상에 오른 성욱형은 그대로 쓸어져 버린다. 완전 탈진한 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성욱형에게 덮쳐 셋이 함게 얼싸안는다. 그리고 셋은 바닥에 길게 누어 큰 대자로  뻗은 채 파랗게 피어오르는 아침 하늘을 바라본다.
   육로인 하이킹 로드 쪽에서 한 무리의 구조대원들이 들풀먼지를 내며 달려오고 있는 게 보인다. 헬리콥터도 요란한 날개바람소리를 내며 안착한다. 그날이 8월 15일이다. 성욱형이 계획한 날짜도 8월 15일이다. 이사벨이 떠난 날이다. 그들이 약혼식을 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성욱형이 엘캡 정복을 약속한 바로 그날에 우리는 정상에 오른 것이다. 닥터 길레즈가 서두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성욱형앞에 엎드려 울음소리로 말한다.
   “성욱형……! 우리는 결국 해 냈어. 정상에 올라왔다구. 형이 엘캡을 정복하지 않았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야.”
   “강성욱은 장애인으로서…… 최초로 엘케피탄을 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닥터 길레즈가 성욱형앞에서 무릎을 꿇고 선포하듯이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헬리콥터 안에서 구급상자를 든 요원들이 달려 나온다. 닥터 길레즈와 그들은 성욱형을 살려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주사를 놓고 링거를 꽂고……. 해가 빠르게 떠오른다. 뒤따라 하이킹으로 도착한 구조대원 중엔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기에 바쁜 사진기자들도 있다.
   닥터 길레즈와 나는 성욱형을 헬리콥터에 싣는 것을 보고 나서야 물을 마시고 음식 먹는다. 구조대원이 우리를 위해서 물과 음식을 가져온 것이다. 긴 휴식 후에 우리는 하강 준비를 시작한다.
   “암벽 타기는 오를 때 보다 내려 갈 때가 더 위험해.”
   “알고 있어요. 하강이 쉽고도 더 어렵다는 걸.”
   “성욱은 살아서 건강해 질 것이다. 천천히 내려가서 만나자.”
   우리는 로프에 몸을 감고 바위벽을 힘차게 걷어찼다. 나는 그 숲속의 생명체들이 내품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절벽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태고의 신비다. 원시의 냄새고, 살아있는 생명의 향내들이다. 우리는 비박지에 버리고 갔던 장비를 회수하며 절벽을 내려왔다.
   하강을 마친 나는 야영지에 짐을 풀고 곧바로 강가로 갔다. 황갈색 붉은 머리  새들이 노래잔치를 벌이는 속에서 마리포사 나비들이 요정이 되어 머시드강으로 내려앉는 게 보이는 듯하다. 그들이야 말로 어떤 존재일 것이다. 나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근다. 전신에 활력을 넣듯이 서늘하다. 닥터 길레즈가 옆으로 와서 강물에 들어서며 넌지시 말한다. 
   “우린 지금 너무 피로해 있다. 이틀간 한 잠도 못 잤어. 아와나(Ahwah Nna)산장호텔에 방을 얻었다. 가서 샤워를 하고 한잠 자며 휴식을 취하자. 그런 후에 성욱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 보자. 거기에서 성욱과 함께 우리들의 엘캡 정복 이야기를 기자회견 하기로 했거든.”
   난 호텔로 내려가 싸워를 하고 깜박이는 아이폰을 연다. 김종석 변호사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보낸 날짜를 보니 일주전이다.
   ‘돌방아저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의 옷을 찢어 밧줄을 만든 뒤에 목을 매신 것입니다. 유서에는 자신의 시신과 장기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봉헌 한다고 했지요. 기증이란 말 대신 봉헌아란 단어를 썼군요. 이정우씨에게 따로 유서를 썼어요.’
   “네가 고민하는 5층 빌라에서 떨어진 기억의 진실을 고백하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운전수는 나고……, 음주운전을  했었다. 너는 사람 키만큼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졌다. 내가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어. 이번엔 날 용서해다오. 안녕히……!”
  김 변호사의 문자는 계속된다. 김하늘이가 연락처를 물어왔기에 폰 번호를 알려줬지요. 이상입니다. 변호사 김종석.’ 나는 아이폰을 닫는다. 지금은 잠만 자고 싶다. 곧바로 침대로 들어간다.                                            -끝- 

 

 (한국소설 2015. 5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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