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시인

조회 수 386 추천 수 1 2023.08.01 09:22:38

 

                         그리움의 파도가 부르는 몽돌의 노래

                    -작은 모래가 모여 바다를 안는다

 

 

 

                                                                                                  김진광 시인, 문학평론가

 

 

 

   1. 서순우의 삶, 자선 대표작품, 1시집 들여다 보기

 

   서순우 시인, 오랫동안 같은 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 같은 느낌이 든다. 필자가 삼척 문인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사무국장  을 맡아줄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당시 그는 아들 둘의 교육 뒷바라지와 두타문학 사무국장을 맡아 매달 시첩을 편집  하고 시낭송 준비에 바쁘게 살았지만, 기꺼이 삼척문협 사무국장을 겸임해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의 모교인 필자가 근무하는 삼척여고 교장실을 자주 찾아와 각종 행사와 동인지 편집 등의 일을 함께 준비하고 실행한 문학 동지이다.

  그는 그 후 두타문학회 회장, 삼척문협 부회장, 그 외 글샆 동인 회장, 독서회 회장, 모교 동문회 사무국장, 삼척교육문화회관 상주 작가실 운영 등의 일을 요란하지 않고 말없이 잘 맡아 한 줄 안다. 서시인은 1967년 월 일 강원도 삼척군 삼척읍 사직리 번지에서 아버지 서 와 어머니 사이에 13녀 맏이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삼척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보다는 농협에 취직을 선택한다. 같은 직장에 있는 남편를 만나 결혼 후 퇴직하여 두 아들을 키우며, 같은 삼척 당저동으로 이사하여 사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는 효녀이며, 남매들과도 늘 우애있게 산다. 이러한 환경과 생활이 문학활동과 사회활동과 문학작품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장녀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직 장인으로서 생활이 그에게 묵묵히 일하는 리더로, 자기 나름대로 둥글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자태나 화장법이나 몸치장은 늘 수수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는다. 행동이나 성격도 모나지 않고 바다의 몽돌처럼 둥글다. 그가 빚어내는 작품도 사회 참여나 비판적인 면이 적다.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빛도, 예리하기 보다는 따뜻하고, 모나기 보다는 둥글고 긍정적이다. 말이나 행동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술 작품에서도 자기의 성격이나 사상이 드러나며, 그 둘이 잘 맞았을 때 개성 있고 창의적인 좋은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겠다. 서시인이 즐겨 다루는 시의 소재는 엄마와 아빠와 남편과 아들의 가족이야기, 갱년기를 이겨내는 이야기, 가족과 같은 강아지 이야기, 길고양이를 키우는 영채 이야기, 친구 이야기, 동창회 이야기, 시 이야기, 술 이야기, 지역 이야기 등 소소한 작은 이야기가 있는 시를 즐겨 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와 오버랩(overlap)되어 밀여오는 그리움을 받아 적는 몽돌의 노래이다. 돌은 더 부셔져 모래가 된다. 모래가 모여 모래밭이 되고, 그 위에 세상의 모든 강을 받아주는 큰 바다를 안는다. 그의 시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리움을 테마로 한 서시인의 시적 에스프리(esprit)와 가족과 이웃과 동물과 지역 사랑의 변치 않는 동일성(identity) 시도는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도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서 시인이 두타문학 동인으로 발을 들여놓은 해는, 문학과 세상에 시인으로 등단한 2002년이었다. 늘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정순란 시인과 함께 봄의 여신인 백목련으로 두타문학회에 환하게 불을 밝혔다. 그해 두타문학26집에 실린 서 시인의 시는, 기획 특집에 태풍루사가 세상을 쓸고 간 아픔에 시적자아의 가벼운 입술에 대한 반성과 빨간 석류를 보며 자연의 섭리를 노래한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들녘이 슬프고/ 일상만 탓하던/ 내 가벼운 입술도 부끄럽다// 하룻밤 사이// 마음 한 구석 허욕더미/ 같이 보내기로 한 날/ 키를 넘는 석류만이 빨갛다.’(태풍루사일부)가 게재되었고, 태풍루사 직전에 열렸던 삼척 세계 동굴 박람회관련 작품도 게재되어 있다.

 

  필자는 삼척문학 통사(2011, 해가)에서 서순우 시인 자신이 선정한 그의 대표작 10편을 <현실 속에서 꿈 찾기>란 주제로 살펴보았다. 대표작 10편의 특징을 찾아보면 단시가 별로 없고, 모두 호흡이 긴 이야기가 있는, 연 구분이 없는 서사시 구조이다. 고흐 당신에게는 고흐의 자화상 그림 작품을 보면서 시적자아가 주인공에게 자신의 심정을 대화체의 편지글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싶었소 / ~의 어미로 문장의 끝을 마치는데, 이것은 각운을 맞추어 리듬의 반복과 다정함과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소망을 성취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끝부분에는 <부디, 당신을 닮은 한 폭의 자화상처럼 / 나도 그리 살다가 가고 싶소>에서는 고흐처럼 예술세계를 걸어가고 싶은 작가의 의지가 나타난다. 앞의 시와 유사한 내용의 시로 종교가요 시인인 한용운을 떠올려 시적자아의 꿈을 노래한용대리에서가 있다. 무소유도 역시 법정스님을 보내고 시적자아가 이루고 싶은 꿈을 당신(법정스님)에게 쓴 여성적인 대화체 편지글의 시로 무소유에 대한 시적자아의 탐구이기도 하다. 사직동 이야기는 그립고 정겨운 어린 날 풍경화를 시청각적으로 잘 나타낸 작품이다. 엄마에서 <나는 엄마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어가며 / 내 안에 다시 반으로 채워질 / 엄마라는 이름이 되고 싶다>문득 내 역사는에서 <어느 작은 마을에서 / 아들딸 낳고 예쁘게 살다가 갔던 여자로 / 기억 되다가>에서 시적자아는 여인의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내 나이 오십에서는 장맛비, 남루해진 내 살점, 여자에게 좋다는 붉은 자두나무 곁을 자꾸 서성이었다, 슬픈 유행가, 잠들 수 없었던 내 나이 오십등의 어휘나 문장을 통하여 나이 먹으면서 변해가는 몸을 보면서 슬퍼지는 생각을 절실하게 시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서시인의 특징을 살려 더욱 정진한다면 이야기가 담긴 서사구조의 시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을 한 바 있다.

  그가 낸 첫 시집엄마(2015, 해가)에는 7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등단하고도 13년 동안 써온 시를 묶어내었으니 시 소재와 내용이 다양하였다.

  앞에서 서시인 스스로 선정한 10편의 대표작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지역 사랑을 노래한 로컬리티(locality) 소재의 작품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욕망 비우기를 공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혹여,/ 소쩍새 소리에 깨어나/ 해우소라도 갈 수 있다면/ 초승달이라도 차고 앉아/ 시 한 편 암송하겠네 (영은사에서끝부분), 광진산 새벽길에서 본 고라니는 새벽 풀꽃처럼 싱싱하고 똥에서 조차 풀숲 냄새가 나는 수묵화 첩첩산에 시인의 꿈도 피어나는 이슬처럼 맑은 시로 풀이 깨어나던 길/ 고라니의 뒤태를 보았다/ 이슬을 달고 뛰던 몸에서/ 초록물이 떨어졌다/ 까맣게 윤이 나던 똥에서/ 푸른 숲 냄새가 났다 (광진 산에서앞 부분), 10월이 며칠 남은 가을날 친구를 불러, 늙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위의 새, 죽서루 아래 흐르는 오십천, 너럭바위, 왕대나무 숲을 만나고 그들처럼 오래 누워 오가는 숱한 사랑 노래 몰래 들어 보아도 좋겠다는 관동팔경 제1루를 노래한 죽서루에서, 그 외에도 한재에서, 두타산, 도경역, 활기리의 밤, 미로등에서 지역을 사랑하는 향토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1 시집에서 해무와 함께 가장 시적표현이 돋보이며 의미성에서 성공한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건지골을 지나며를 살펴보자.

 

  강바람이 되는 길// 어둠 속에서/ 사내는 도심의 귀퉁이를 잡고/ 새벽인 양 흔들린다// 저 멀리 물안개 오르는 소리/ 내 몸도 이제/ 강자람에 철저히 섞여야 하는 시간// 나지막한 오십천 갈증이/ 올려다보는 철교/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발에서/ 쇳소리가 난다// 소쩍새 숨어든 지금/ 수은등 창백하고/ 오 십천은 一月처럼 떨며 흐르는데/ 나는 건지골 어디쯤에서/ 이렇게 헤매는지

 -건지골을 지나며전문

 

  2. 가족과 고향, 그 따뜻한 이름

 

  (1) 가족, 최고의 사랑을

  필자는 서순우 시인의 제2시집의 해설을 쓰면서 조금 욕심을 내어 되도록 이면 시 이론은 절제하고 지금까지 쓴 여러 시를 통하여 그의 작가론을 겸한 작품론을 시해설을 하며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작품의 진정한 해석은 작가론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시인이 자선한 삼척문학 통사에 실은 10편의 대표작품은 먼저 발간되었지만, 대부분 첫 시집에 실렸기에 다시 언급해 보았다. 그리고 덧 부처 의미 있는 지역 사랑의 로컬리티 소재 작품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그럼 함께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순우 제 2시집 여행을 떠나자

서순우 시인은 가족 사랑이 각별하다. 가족 관련 작품이 반 가까이 차지 할 정도이다. 특히 첫시집에 이어서 엄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남 다르다. 이번에는 남편과 두 아들이 관련된 작품이 여러 편 보인다. 십 여년 함께 가족처럼 살다가 얼마 전에 사별한 강아지 도 가족이다. 혼자 외로울 때, 누군가 그리울 때, 남편은 직장과 퇴근 후 술집에서 공휴일은 낚시로, 아들은 이미 부모의 품 속을 떠나 가슴이 허전한 갱년기에 은 유일하게 대화의 대상이며 곁에 함께 있어주는 동물 이상의 가족이다.

 

좋아하던 윤정수랑 김숙이 이별했다

볼 때마다 진짜 결혼하면 좋겠다 싶었다

왜일까/ 목울대가 아프도록 울었다

이별의 마지막 표정을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

내 늙은 개가 몰아쉬던 세 번의 숨도/ 같은 이별이었다

가상이긴 했어도/ 최고의 사랑이었던 그들과

웃음만 주고 떠난/ 내 늙은 개의 이별도/ 그러했다/

사랑은 이렇듯 슬퍼/ 드라마 속 연인들의 가을 같은 말은

그날따라 마냥 겉돌기만 했다

 

이렇게 흘린 눈물로/ 날이 갈수록 내려앉는 눈꺼풀

내일은 또 얼마나/ 무거운 그 눈꺼풀로 살아가야 할지

 -최고의 사랑전문

 

  소개한 최고의 사랑은 두타문학 홈피 201710두타시 낭송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어본 독자의 공감이 큰 시이며, 필자가 논설위원으로 있는 삼척동해신문 시 초대석에 소개한 그의 대표작품의 하나이다. JTBC TV 방송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인기 프로로 방영된 <윤정수와 김숙>의 가상 커플이 재미있고 잘 어울린다며 진짜 결혼하기를 많은 시청자들이 기원했다. 방영이 끝나고 이별을 하자 서 시인 또한 목울대가 아프도록 울었다/ 이별의 마지막 표정을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하고 슬픔에 빠진다. 그 이별의 광경 속에 파도처럼 겹쳐서 사랑하던 강아지 <폴의 죽음>이 오버랩 된다. ‘내 늙은 개가 몰아쉬던 세 번의 숨도/ 같은 이별이었다이별을 노래한 시와 소설, 영화가 많다. 그리고 애완동물 또한 우리들의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 시가 사람들이 공감하는 좋은 시가 된 것은 요즘 인기리에 TV에 방영된 내용을 시의 소재로 한 점, 그 내용에 애완견과의 이별을 비유적 이미지로 표현한 점, 매정한 시대에 눈물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리라.

  그 외에도 이 등장하는 시는 많다. 아들 같은 폴이 눈을 먹자, 서 시인도, 매화와 동백꽃도 다 함께 나누어 먹는 봄눈얘기, 개와 함께 시적자아의 아픔을 나누는 시 간밤에도 잠은 오지 않아/ 폴이랑 베개 반씩 나눠 배고// 너도 아프니 나도 아프다/ 아프다 했지/ (중략) 별들도/ 초롱초롱 잠 못 들고(잠은 안 오고일부), 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 시 폴이 앉았던 자리에서/ 나는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또 며칠을/ 살아낸다// 죽음을 보여주고 떠난/ 별이 된 폴이 말했다/ 죽음은 세상 누구에게나 다 오는 거야/ 지금 나처럼// 그리고 잊히는 거야/ 이름 없는 별이 되어 반짝이는 거야 (그리고 잊히는 거야일부)

 

단지 잎 떨구고/ 꽃 졌을 뿐인데// 그냥 당신처럼/ 잠깐 쉬고 있을 뿐인데// 매화가 산수유가 오가피가/ 잠시 쉬고 있는 그들을/ 댕강,/ 당신이 저버린 그날/ 바람은 몹시 불었다

 -은퇴일부

 

어제는/ 그토록 바라던/ 퇴근 없는 그 바다에서/ 망상어 몇 마리에/ 좋아라 기가 살았던 남편(중략)/ 비라도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남편은 낚시 채널에서 망상을 낚는다// 낯선 즐거움은/ 또 이렇듯 시작 되는 것을

 -낯선 즐거움일부

 

눈꺼풀에 바다를/ 눈썹 큰 산맥에는 숲을//

어느 부처처럼/ 빨간 입술 칠하면//

그대, 기별 올지도 몰라//

산다는 건/ 때로 누구를 기다리는 것//

그리하여/ 수로부인 철쭉 한 가지 슬쩍하면/

혹여,/바다에서 기별 올지도 몰라//

바닷속 용이 아니어도/ 소금기 가득한/

남편이 올지도 몰라

 -기별일부

 

  위에 소개한 3편의 시는 남편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은퇴는 남편이 꽃과 잎 떨어뜨리고 잠깐 쉬고 있는 꽃나무 가지를 커팅 하는 걸 보며, 당신과 같은 입장의 나무를 자르는 아픈 마음을 표현한 시적 비유가 뛰어난 시이다. ‘댕강당신이 저버린 퇴임한 그날 바람이 몹시 불었고, 잘린 꽃나무 위로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다는 아내의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취미가 낚시인 남편은 퇴임 후 여가를 낚시로 보낸다. 비 많이 오는 날이나 밤이면 낚시 채널을 고정하고 지나온 젊음이나 어떤 망상을 낚아 올린다. 이것이 아내에게는 낯선 즐거움으로 보인다. 낮에 낚아 올린 망상어와 낚시 채널로 낚아올리는 망상의 동음이의가 묘한 재미를 준다.

  시 기별소식을 전함, 또는 소식을 적은 종이란 뜻의 말로,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주로 첫 시집엄마(2015)이후에 나온 시들로 남편이 퇴직 전후 서시인은 갱년기의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을 50대 중반에 쓴 작품들이다. 남편과 깨소금 쏟아지는 사랑의 시는 바라기 힘든 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시적자아는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남편의 기별을 기다린다. 시 속에 신라시대 경주에서 강릉 부사로 부임하기 위해 길을 가며, 절세미인이라서 바다 용 같은 신물(神物)들의 눈길을 받은 아름다운 수로부인 얘기를 삽입하여 시의 격을 높인 작품이다. 시인은 삼국유사 이야기에 나오는 바다용이 아니라도, 낚시를 하느라 소금끼 가득한 남편을 기다리며 사랑의 화로의 불씨를 보듬고 있다. 다음의 세월 씨도 같은 맥락의 시이다. ’접시꽃 돌아/ 집으로 집으로 돌아오세요/ 종일 무슨 낙으로 사는지/ 물어도 꽃들은 대답 없고/ 해가 진 문밖은 벌써/ 풀벌레 울음으로 가득한데/ 하품은 오래도록 귀에 걸리네요// 분꽃 지기 전에/ 잠들어야 해요 /오늘 밤은 당신도 나도/ 그리고 혼자 있을 그 누구도(일부)‘

 

마른 매화나무

새들이 분주하다

 

밤새 뒤척이던

별들 다 어디 가고

 

아무도 없는

빈 아침

 

우리 집 강아지 폴도

엄마 생각으로 운다

 -엄마 생각전문

 

딸년들 보고 싶어

엄마가 청국장 끓여 불렀던 점심

슬픈 날이었다

 

틀니가 참 어울리지 않은

쪼글쪼글한 엄마 입이 많이 슬픈 날이었다/ (중략) /

 

치과에서 빌려왔다는 책

밤새 떠듬떠듬 읽었을 그 책

진작 읽었으면 내 자식들

더 잘 키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울 엄마

 

이제 아무렇지 않다며

틀니 가득 푸성귀로 채우던 울 엄마

 

이빨이 제일 예뻤던 울 엄마

 -틀니일부

 

영정 사진 찍겠다며

한복 입을까, 양장 입을까

엄마가 전화한

슬픈 오후

 -슬픈 오후끝 부분

 

  위에 소개한 3편의 시는 엄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엄마 생각에서 마른 매화나무는 엄마, ‘새들은 자식들, ‘은 자식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런데 꿈꾸던 자식은 다 부모 곁을 떠나고, 텅 빈 아침에 강아지 이 엄마 생각하며 대신 운다. 시적자아의 감정이입이 된 상징성의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가 있는 간결한 좋은 시이다.

  「틀니는 엄마가 딸이 보고 싶어 청국장을 끓여 놓고 초대를 했는데, 음식을 씹는 쪼글쪼글한 틀니 한 입을 보며, 엄마의 빌려온 책을 보며 한 말에 울컥한 심정을 시로 형상화 했다. 마지막 연에 이빨이 제일 예뻤던 울 엄마을 회상하며 역설적으로 맺음한다. 딸은 슬픔이 북받혀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 슬픈 오후에서도 엄마는 영정 사진을 찍으며서도 슬프기보다도 어떤 옷을 입고 찍어야 사후에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일까를 생각한다. 맡딸인 서시인은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엄마 사랑이 담긴 시이다.

 

손자 대학 입학금 모으느라

자식들 쥐꼬리 용돈 아껴

천 원짜리 열장 모아 만 원 만들고

오천 원짜리 두 장 모아 만 원 만들고

근 십 년을 모아온 아버지

입학금 다 모으기도 전

병이 나버린 아버지/ 내 아버지

그 멀다는 저승길 앞에 두고도

부디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누나 동생들이랑 오순도순 살라며

아들에게 쓴 눈물 편지가

오래된 책속에 숨어 있었다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 아버지

팔에 새겨진 문신이 더 좋았던

브라보, 내 아버지

죽어서도 지켜주겠다며

꼭꼭 눌러쓴 눈물 자국

 -눈물 편지일부

 

올케는 아버지가 사랑한

손자를 낳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자랑할 것 없는 자식들/ 시도 때도 없이 기 살려주던

친구 같던/ 그 아버지를 보러/ 산으로 가는 길//

산도 눈을 털고/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나는데

아버지는 아직/ 삼월 속에 누워만 계신다

 -3일부

 

  앞에서 소개한 3편의 시는 아버지를 소재로 하여 쓴 시이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자신을 낳아 젖물려 키워준 자상한 어머니를 좋아하고 작품 소재로 한다. 그런데 서시인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를 불쌍한 눈으로, 슬픔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진작 해병대 출신의 의리의 사나이 상남자 아버지를 친구처럼 좋아한다. 아버지가 사는 지역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한 번이라고 혼이 안 난 사람이 없었단다. 그런 아버지가 암에 걸린 모습을 가까이 보며, 항암도 진통제도 필요 없다던 아버지를 사별 후에도 오래 잊지 못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써서 책갈피에 넣어둔, 죽어서도 가족을 지켜주겠다고 쓴 눈물 편지는 그의 시쓰기 방식처럼 쉬운 언어로 풀어 썼지만 감동적이다. 상남자 아버지 속 마음은 자상하다. 용돈을 모아 손주 대학 입학금을 준비하고, 자랑할 것도 없는 외 손자들을 기를 살려준다. 아버지에게 외손자인 아들을 대상으로 한 시는 아들아, 너는, 안개 길두 편으로 아버지와 엄마와 남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비해 적었으며,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음 기회에 언급하고자 한다.

 

  (2) 로컬리티, 고향에 살아도 고향이 그립다

  서시인의 첫 시집에서도 지역 사랑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다룬 로컬리티(locality) 소재의 작품으로, 영은사에서, 광진 산에서, 두타산, 도경역, 활기리의 밤, 미로, 건지골을 지나며 등이 있었다. 이번 시집에도 몇 편의 지역 소재의 작품이 보인다. 출렁다리는 죽서루 누각 옆 너럭바위에서 오십천 건너 편 성남리를 연결하던 다리를 소재로 한 시로, ‘그녀,/ 죽선이 살던 그곳에/ 바람처럼 흔들리던/ 다리 하나 있었지// 그 후로도 오래/ 오십천은 흐르고// 이제는 마음에만 남은/ 옛 사랑 출렁다리라고 읊으며 철거된 다리를 추억하고 있다. 미륵바위는 오십천이 봉황산에 부딪혀 큰 물소를 이루던 산자락에 전설의 미륵 3불 아래 땅이 수로가 변경되어 집들이 들어섰는데, 태풍 루사가 왔을 때 옛 물길을 찼더라는 내용의 향토성이 짙은 시이다.

 

내가 사는 여기로 오고 싶다는

너의 말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어딘가 떠나 있는 사람들의 몫은 아니다

여기 그대로 남아 있는

내게도 그리움인 거다 (중략)

 

이제 우리는 중년

오고 싶다는 너의 말처럼

남은 그리움으로

 

여기,/ 빈 곳 채우며 살자

 -고향일부

 

4월 맹방은

유채꽃으로 산다 유채바람이 든다

내 아버지 장지에 따라와

갈매기처럼 울던 영희//

영희 엄마는 병들어(중략)

항암을 해야 좋은지

영희가 물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 (중략) //

영희가 태어나 자란

푸른 사내 같은 파도가 사는 맹방

유채꽃 속에서 웃는

환한 영희가 보고 싶다

 -맹방일부

 

여름에는 부쩍 사람도 많아

헐렁한 옷매무새에도 꽃잎 촘촘하다

 

더러는 해당화도 살아 마음 고와지고

어설픈 철길 아래로도/ 꽃잎 날리는

 

폐안에 분진을 쌓으며 아버지 다녔던 시멘트회사

밤새 색등 곱게 밝히는

한때는 코스모스가 만발해

그 위로 바람 불고/ 큰물도 다녀가고

 

어린 내가/ 꽃이 되어 놀았던 오십천 몸짓

 

아직 떠나지 않은 연어 떼

오십천을 오른다 / 장미길을 걷는다

 -장미공원전문

 

  서시인 제2집에서도 역시 시를 관통하는 가장 큰 테마(theme)그리움이다. 고향에서 첫연 내가 사는 여기로 오고 싶다는/ 너의 말은 그리움이다라는 메타포(metaphor)가 이 시의 테마가 된다. 2연을 다른 말로 비유하면, 그대 곁에 있어도 그대가 보고 싶다. 즉 고향에 살아도 고향이 그립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중년, 여기 고향 빈 곳을 사랑하며 살자는 고향(지역) 사랑의 간결한 시이다. 맹방은 십리 모래밭에 해송이 우거진 바닷가 마을로, 얼마 전부터 유채꽃 축제로 유명해졌다. 맹방은 그 곳이 고향인 영희와 서시인의 아버지처럼 암에 걸린 영희 어머니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담은 시이다. 친구 어머니의 병이 완쾌되어 유채꽃처럼 환한 영희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장미공원이 위치한 곳은 죽서루와 오분리항이 있는 중간 지역이다. 천만 송이 아름다운 장미들이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피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각종 행사도 열린다. 장미공원에서 시인은 옛날 꽃이 되어 놀던 철길과 해당화, 분진을 마시며 아버지가 다니던 시멘트 회사, 그리고 어린 시절을 연어처럼 강을 거슬러 오르며 떠올린다. 지역을 좀 넓힌 거제사터(동해), 자작나무 숲에서(원대리) 등의 시들도 있다. 그는 삼척에서 태어나서, 삼척에서 결혼하여. 삼척을 지키며, 삼척 사랑을 시로 쓰고 있는 향토 시인이다.

 

  3. 자화상, 갱년기와 우울의 터널 속 탈출

 

  (1) 자화상, 시 속에서 상상해 보기

  서순우, 그가 쓴 시에는 아직 자화상이란 시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자신을 성찰한 시를 쓴 윤동주와 서정주의 자화상이 잘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은 자화상을 즐겨 쓰지 않는 것 같다. 서양의 이름 난 화가 반고흐, 모네, 램블란트(100여장) 등 대부분 자신을 모델로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 서시인은 갱년기를 겪고 지나면서 나는 누구인가?’을 찾고 있다. 다음의 시 무화과, 전단지, 새해는등의 시에서 서시인의 자화상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잎사귀로

부끄럼/ 다 가릴 순 없어도

안으로, 안으로

꽃 하나/ 피울 수는 있어

 -무화과전문

 

아직 괜찮아//

오늘처럼 바람에 날리고

어제처럼 비에 젖어도//

한 번 찾아와 줄/ 내 희망이

혹시 너의 희망이 될지도 몰라//

너의 절망으로/ 내가 또 일어나고

다시 우리가 되는/ 풀꽃 같은//

밤새 다짐이 되었던/ 종이 한 장

 -전단지전문

 

떠오르는 해를/ 어제 같은 내가/ 눈부시게 바라보는 일은 사치다

 

밤새 밀려왔던 문자/ 내 것인 양 열어 보는 것도 사치다

 

서슴없이 다짐했던/ 지난 목표들로 곱게 늙어가는/ 이 또한 사치다

 

새해는/ 아주 작은 거 하나만 이루라는/ 지인의 문자/ 그 문자만은 사치가 아니길 / 오로지 내 것이길

 

그리하여/ 떠오르는 해를/ 사치스럽지 않게/ 오늘처럼 바라보게 되기를

  -새해는전문

 

 

  「무화과는 시인의 마음을 객관적 상관물인 무화과에 담아낸 간결한 시로, 겉으로 화려한 꽃보다 안으로 피우는 꽃 하나 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lyric(서정시)이다. 전단지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잡지 속에 광고가 못되는 가난한 전단지를 의인화 하여 쓴 시로,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전단지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는, 나지막하게 살아도 풀꽃 같은 생명을 가지고 살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은 특이한 소재로 쓴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 새해는이란 작품은 20181월 두타시낭송 작품으로 발표한 시이다. ‘새해에 떠오르는 해를 어제 같은 내가 바라보는 일은, 새해를 맞아 밤새 온 문자를 내 것인 양 열어보는 것도, ‘서슴없이 다짐했던/ 지난 목표들로 곱게 늙어가는것도 사치라고 시인은 말한다. ‘새해는/ 아주 작은 거 하나만 이루라는/ 지인의 문자/ 그 문자만은 사치가 아니길 / 오로지 내 것이길시인은 욕심 없는 작은 소망을 기원한다. 위의 3편의 시를 통하여 시인은 무화과처럼 안으로 조용히 꽃 피우고, ‘새해는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아주 작은 거 하나만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전단지처럼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풀꽃이기를 바라는 강한 삶의 의지가 담긴 한 폭의 자화상이 그려지리라.

 

  (2) 갱년기와 우울의 터널 속 탈출

  임신을 하고 입덧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듯, 서순우 시인은 유난히도 갱년기를 깊고 오래 하는 것 같다. 먼저 사주, 외풍, 돋보기, 살인의 추억 등의 작품을 통하여 갱년기와 우울한 시적자아의 긴 터널 속을 들여다보자.

 

서 시인은 요즘 장시간 책을 보면 눈 부리가 아파온다고 한다. 돋보기안경 쓴 남편을 얻고/ 안경 쓴 아들도 얻고/ 결국 나도 돋보기까지 얻어/소원 한꺼번에 이루어졌다는 나이 먹는 슬픔, 반어적 현상이 전개된 시이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맨 눈으로 신문 보던/ 운 좋은 100세 노인 부럽다며/ 건강한 몸이 부럽다며 보낸 문자자를 자로 써서 보낸 문자 편지를 받은 사람이 괜찮다, 괜찮다며/ 화면 가득 웃음 보내 왔네격려의 꽃다발을 보내왔다. 그는 갱년기 터널 속에서 눈이 나빠져 돋보기까지 쓰는 우울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는, 자신의 실수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아이러니와 재미성에서 성공한,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오는 실소(失笑)의 시이다.

내 안에 화가 없으니/ 물이 보이는 집은 맞지 않다고/ 그런데도 아파트분양 사무실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꿈같은 말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내 안에는 불이 없고/ 집에는 아파트가 싫다는 남편이 있고/ 온 마당에 방뇨 즐기는 늙은 개가 있으니/ 꿈같은 말 접어야하나/ 쇠붙이도 안 맞는다나 뭐라나/ 그럼 웬만한 반지나 목걸이도/ 다 물 건너간 게지//

 

꿈같은 말/ 아니 꿈 하나씩 작아지고// 나를 가두어 놓은 사주,/ 불이 없으니/ 그냥 영화나 자주 보라는데 / 호랑이나 한 마리 키우라는데// 바다가 보인다는 아파트/ 자꾸 파도로 밀려오는데

 -사주전문

 

바삐 지은 저녁상/ 마주하고/ 아무 일 없는 듯/ 밥을 먹는다//

서로/ 묻지 않아도// 당신 몸에선/ 바다 냄새가 나고/

 

내 눈은/ 어설픈 열정으로 붉은데//

저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는 그냥 밥만 먹는다//

우리만큼 나이 든/ 붉은 집/ 외풍이 심하다

 -외풍전문

 

때마침

시인이라면 어쩌겠다는 노랫말만 난무했고

누구 하나 없어져도 죄가 되지 않는

그 노랫말 곁에 내가 시인처럼 누워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를 작디작은 아이

자궁 안에서 최고로 자유로웠을

아들처럼 잘 생겼을 또 한 아이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내가 고작 하는 일이란

노래 속에서 작당을 꾸미는 일이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도 너무 멀었던 용기 / (중략) /

그 보다 더 큰 죄/ 살며 없었을 터/ 살며 없을 터

 -살인의 추억일부

 

  소개한 시 사주에서는 서시인은 불()이 아니라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는 맞지 않고, 남편은 아파트를 싫어하고, 부를 상징하는 반지나 목걸이 같은 쇠붙이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꿈같은 말/ 아니 꿈 하나씩 작아지고// 나를 가두어 놓은 사주,/ 불이 없으니/ 그냥 영화나 자주 보라는데호랑(남편 혹은 강아지)이나 한 마리 키우라는데, 그에게는 바다가 보인다는 아파트가 자꾸 꿈이 되어 파도로 밀려와 갱년기 삶이 더 우울해 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남편은 직장 일에 바쁘고, 퇴근 길 어울려 술을 좋아하고, 휴일에는 바다를 낚으러 간다. 그래서 더 갱년기 터널이 어둡고 길어지지 않았을까? 낚시는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외풍에서, ‘바삐 지은 저녁상/ 마주하고/ 아무 일 없는 듯/ 밥을 먹는다바다로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아직 꽃이 되어 붉은데,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말 표현 못하고, 텔레비전이 대신 떠들고, ‘우리 만큼 나이 든/ 붉은 집/ 외풍이 심하다며 시인은 낡은 자신의 집에다가 부부의 마음을 투사(透寫)한다,

 

  「살인의 추억이란 제목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영화의 제목인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남자가 아닌 여자들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임신 중인 아이를 본의 아니게 낙태를 결심해야할 때가 있다. 본인이 이런 시를 쓴 작품은 처음 보는 보기 드문 소재이다. 때는 이현섭 작곡 한경애 노래 옛 시인의 노래가 한창 유행했던 때인 것 같다. 그 분위기에다가 작당을 꾸민, ‘그 보다 더 큰 죄/ 살며 없었을 터/ 살며 없을 터시인은 우울한 터널 속에서 가슴 아파하며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지은 죄를 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 감동적인 시이다.

 

난생 처음/ 56도짜리 술을 마셨다//

멋모르고 한 모금/ 혹시나 싶어 한 모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막 어디쯤에서

그대로 타 죽을 것만 같은/ 낙타의 슬픈 울음 같은//

그래,/ 언제 한 번/ 56도 같은 삶을//

살아는 보았더냐// ,

 -낮술전문

 

오늘처럼/ 우울한 날에는

방 한 칸, 바위가 반이었던

젊은 엄마 부엌을 생각한다//

오늘처럼/ 눈물 고이는 날에는

산속에 찬 흙 깔고 누운

내 친구 같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오늘처럼/ 감히 우울하고 슬픈 날에는

아버지 18번곡/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른다

 -오늘처럼일부

 

제때 오지 않는 밥을 기다리다 남의 문밖을 남의 차/ 밑을 눈이나 비처럼 기다렸을 노랑이, 기다림은 그리움도 아닌 / 아픈 그 무엇, 찬 하늘이고 술기운으로 돌아와 늦은 상을/ 차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국그릇은 빙판 밥그릇은 벌판이다/ 도둑질할 곳도 없는 메마른 거리, 도둑이라는 누명은/언제나 벗어내려나

 -길냥이일부

 

거기/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곳/ 언 몸 녹이며/ 멋지게 //

여기/ 꽃에 지치기도/ 간혹, 잔소리에 지쳐 사는/ 아니 살아내는//

거기는/ 황태가 살고/ 여기는/ 내가 남편이랑/ 갱년기 앞세워 살고//

우리,/ 얼었다/ 녹았다/ 황태처럼 폼나게 살자

 -황태전문

 

 

  앞에서 사주, 외풍, 돋보기, 살인의 추억 등의 작품을 통하여 갱년기와 우울한 시적자아의 긴 터널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낮술, 오늘처럼, 길냥이, 황태 등을 통하여 서순우 시인의 갱년기, 우울의 터널 속 탈출의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위의 시 낮술에서, ‘낮술에 취하면 자기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자인 서시인이 그것도 56도 술을 마셨다. 그 느낌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막 어디쯤에서 / 그대로 타 죽을 것만 같은/ 낙타의 슬픈 울음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래,/ 언제 한 번/ 56도 같은 삶을//살아는 보았더냐// 하고 독한 술에 의탁하여 속에 쌓인 말 못하는 어둠을, 우울을 독한 술로 쏟아내고 있다.

  갱년기와 우울의 터널을 탈출하기 위해 시인은, 오늘처럼우울한 날은 엄마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생각하고, 눈물 나는 날에는 산속 찬 흙 깔고 누운 친구 같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우울하고 슬픈 날에는 아버지 18번 곡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른다.

  위의 시 길냥이는 갱년기에 곁에서 함께 해준 강아지 이 사망한 후 시인이 마음을 붙인 길고양이란 생각이 든다. 서시인 집에서 골목을 나오면 삼척고 옆 빈터에 늘 오는 녀석이다. 얼마 전에도 서시인이 요즘 출근하고 있는 삼척교육문화회관 상주 작가실에서 작품집에 게재할 시를 함께 살펴보다가, “어머! 길냥이 밥줄 시간이야!”하며 가려 했다. “남편 밥은?” 하자, “남편은 해놓은 밥을 차려 먹겠지요.” 했다. “길냥이가 남편보다 더 대접을 받네!”하고 둘이 웃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영채 이야기 1 ~ 4’도 삼척해수욕장 옆 작은 후진에서 민박과 커피숍을 하며 별명이 길고양이 엄마인 김영채 시인의 길고양이 사랑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렇게 서시인은 강아지 과 길고양이 길냥이를 통해서 갱년기와 우울의 터널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시 황태에서 시인은 황태를 향해 거기/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곳/ 언 몸 녹이며/ 멋지게’, 자신을 향해 여기/ 꽃에 지치기도/ 간혹, 잔소리에 지쳐 사는/ 아니 살아내는파이팅을 외친다. 남편이랑 갱년기 앞세워 사는 나와 황태야, ‘우리,/ 얼었다/ 녹았다/ 폼나게 살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시인은 갱년기와 우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시를 통해 내가 누구인가(자화상) 확인하고, 갱년기와 우울을 경험하고, 이겨내고, 시의 텃밭을 갈아 작은 소망의 씨앗 뿌리고 가꾸어 가리라. 그 것이 지역적이고 작지만, 어찌 보석이 작다고 가치가 없겠는가? 문학이란, 그늘지고 보잘 것 없고 나지막하고 작은 것에서 얼마든지 삶의 진리를 캐내는 성과를 거두지 않았는가.

 

  4. 나가면서

 

  ‘그리움의 파도가 부르는 몽돌의 노래란 테마로 삼척문학통사에서 자선한 대표시 10, 첫 시집, 2시집을 형식을 구분하지 않고 작가론을 겸하여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는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거나 바라본 가족, 친구, 이웃, 개나 길고양이, 주변의 사물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을 소재하여 언제인가 사랑을 잉태할 그리움을 노래한다. 그리움의 파도가 밀려오는 둥근 몽돌의 노래를 받아 적는다. 그는 동해바다 푸른 파도에서 노래하는 둥근 몽돌의 이미지다. 몽돌이 작게 부셔지면 모래가 된다. 모래가 모여 모래밭을 이루고, 모래밭은 이 세상의 모든 강들이 모여드는 커다란 바다를 안는다. ‘그리움을 테마로 한 서시인의 시적 에스프리(esprit)와 가족과 이웃과 동물과 지역 사랑의 변치 않는 동일성(identity) 시도는 아마도 첫 시집과 제 2시집에 이어 보석을 캐내듯 광맥을 찾아 더 깊숙이 파 들어가리라 예상을 해본다.

  그의 시 스케일은 좀 작지만 결코 작은 시는 아니다. 그는 복잡한 표현으로 비틀지 않고 쉬운 언어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는 시를 즐겨 쓴다. 주변의 작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쉽게 읽히면서도 잔잔한 감동으로 공감을 준다. 다만, 체험한 이야기를 버릴 것과 둘 것을 구분하고, 다른 사물이나 격언이나 경전 같은 사건에 비유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시가 철광이냐 보석이냐 가려질 것이다. 다른 시인들도 응당 해당되지만, 앞으로 그가 지향해서 더 연구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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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탄광문학 부문을 수상한 김진광 시인(전 삼척 미로중 교장)1951년 삼척에서 태어나 1980'소년', 1986'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시집으로 '참매미는 참말만 한다','모시나비'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삼척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김진광 시인은 최근 발간된 '한국탄광시전집'23편의 탄광시가 수록될 만큼 탄광지역에 대한 치열한 문학기록 업적으로 월인문학상 탄광문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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