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 문학평론가

조회 수 158 추천 수 1 2025.04.01 08:22:16

 <작품평>

 

                                                     요강 화분花盆

 

                                                                                                                姜 正 實

 

  오후 늦게 집주변을 산책하려고 대문을 나섰다. 창고세일(garage sale)이라는 안내종이가 붙어 있는 건넛집 마당에 눈이 갔다. 사용하던   단순한 물건 사오십여 가지가 소꿉장난이라도 벌인 듯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다. 서녘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그릇 하나에 무심히 눈이 갔다. 순백색에 무슨 그림이 그려진, 눈에 익은 사기그릇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릇을 집어 들고 살펴보았다. 흠집 하나 없고 호박 줄기 같은 손잡이가 달린 뚜껑까지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각종 영수증이나 담뱃갑을 넣어두던 그릇이라고, 그 집 손자가 설명한다. 그릇에 코를 대어보니 과연 담배냄새가 훅 끼쳐온다. 왠지 낯익은 물건 같아서 대뜸 몇 푼 건네주고 샀다. 중국인 할아버지의 흔적과 담배냄새를 지우려고 몇 번이나 비눗물로 씻어낸 후 차고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튿날 아침, 그릇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먹빛 대나무 두 줄기에 청자색 구름이 한데 어우러진 백기단지는 요강이 틀림없다. 십여 년 전, 북경의 한 박물관에서 황후가 사용했다는 순금 요강을 본 적이 있고, 또 어릴 때 요강을 사용한 경험이 있기에 요강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요강이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 내가 어렸을 적 1950~60년대엔 화장실과 얽힌 달걀귀신, 몽달귀신 등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많이 떠올랐다. 어린이에겐 밤을 더욱 두렵게 하는 귀신이다 보니 한밤중 바깥에 외따로 있는 화장실에 가기가 정말 무서웠다. 그때에 요강은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한 변기였다. 밑이 둥글넓적하고 배가 볼록하여 넘어질 염려가 없는 요강. 낮에는 마루 한구석에 놓았다가 밤엔 방의 구석지에 들여놓고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예닐곱 살 때쯤까지 방에서 소변을 볼 때엔 언제나 요강에 궁둥이를 대고 앉았다. 직업상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귀가하시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한방에서 잠을 잤다. 세 살 터울의 형과 네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옹기종기 살았는데 나는 유난스레 어머니의 치마폭을 쥐고 살았다. 그래선지 습관적으로 어머니처럼 요강을 사용했을 성 싶다. 이러다 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도 어머니와 함께 공중목욕탕 여탕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자고 같은 반 여학생을 둘 알몸으로 욕탕 안에서 덜컥 부닥뜨리는 일이 생겼다. 그 뒤부터 여탕 출입을 삼갔다. 아마도 그 여학생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도 어머니와 함께 여탕을 이용했을지 모른다. 요새 같으면 쯧쯧쯧, 혀를 차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여하튼 그 이후부터 요강에 궁둥이를 대는 방법은 사용 안 한 것 같다.

  출퇴근할 때마다 차고 선반에 놓인 요강에 눈이 갔다. 저 용기를 활용할 방법이 없으려나.

  어느 날 몇몇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했다가 난화蘭花를 파는 꽃집 앞을 지나갔다. 순간 요강이 생각났다. 요강에 난초를 앉혀도 괜찮겠다 싶었다. 여러 종류의 난을 대충 훑어 보다가 자주색 꽃망울과 꽃송이가 다닥다닥 달린 게발선인장(schlumbergera)에 시선이 꽂혔다.

~ 저 꽃.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머니는 유독 이 선인장에만큼은 햇빛과 온도에 신경을 쓰셨다. 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한 날, 어머니는 선인장 잎 하나하나를 물걸레로 천천히 닦으며 화를 삭이는 듯했다. 철없는 어린 자식들과 아낙의 속마음을 나누기는 불가능하니, 아버지의 술버릇에 대한 원망을 이 선인장과 침묵의 대화로 나누셨을 것이다. 아마 화를 삭이는 인내심도 닦으며 이 꽃들에서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정성만큼 꽃이 환하게 피어나곤 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이 허물 벗어지듯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리운 어머니를 대한 듯, 게발선인장 화분을 덥석 움켜잡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게발선인장을 요강에 심었다. 요강에 그려진 먹빛 대나무와 청잣빛 구름 위로 선인장의 줄기가 자연스레 늘어졌다. 저만치 놓고 완상하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진짜 맛있는 추억거리를 한군데에 꿍쳐둔 기분이다.

 

  잠에 쉬이 들지 않는 밤이다. 달빛이 환하게 들이비치는 마룻바닥 한가운데에 촛불을 켜고 게발선인장이 담긴 요강 화분을 옮겨 놓는다. 촛불이 숨을 고르며 따뜻하게 타오르면, 어린 내가 요강에 앉아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환영이 아롱거린다.

  젊고 강한 척해도 나이가 들긴 드나 보다. 이렇게 과거의 추억에 애착하는 하는 걸 보면 이곳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상당히 버거웠나 싶기도 하다. 혈기왕성할 때엔 동분서주하며 현실을 움켜쥐려고 뛰어다니느라 과거를 반추해 볼 새도 없었는데, 이건 확실히 나이 드는 징조다 싶다. 저 요강 화분 속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새움처럼 돋아난다. 그러다 어느새 막내 외손녀가 요강 위에 앉아 재잘거리고 어머니가 옆에서 웃고 계신다.

  나는, 밤을 잊고 요강에 담긴 게발선인장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오늘도 찬물로 깨끗이 씻은 물걸레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듯, 포근한 마음으로 선인장 잎과 허리가 볼록한 순백색 요강을 조심스럽게 닦는다.

 

 

 

                                수필의 맛과 멋 그리고 과학성

 

                              -계간지구문학2012. 가을호(통권 59) 수필을 읽고-

 

                                                               최원현/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은 창작이다.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필은 자기 체험이 주로 글감이 되지만 사실의 기록만은 아니다. 만일 자기체험의 사실적 기록에 그친다면 창작인 문학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수필에서 사실 체험이 문학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문학적 상상력이란 이스트(yeast)가 들어가서 부풀게 하고 새로운 맛도 내 주어야 한다.

  작가가 자기 체험적 사실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표출시켜 글로 옮겨놓으면 그것을 읽은 독자는 작가와 정서적 공감이나 감응으로 경험을 연대한다. 그게 공감이고 감동도 된다. 그 경험의 연대가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책임은 작가에게 있다. 만일 읽은 이가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한 글이라면 굳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자기 이야기임에도 다른 사람이 공감한다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상상력이 교직되어 어떤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체험에서 발아한 상상력이 문학이게 하는 힘이다.

  요즘의 수필가들도 단순한 서정에서 벗어나 서사를 곁들여,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야기여야 재미가 있음이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면서 뼈도 있고 철학도 있고 감동거리도 있는 수필이 읽히는 수필이다. 그게 멋있는 수필이고 맛있는 수필이다.

 

  지구문학 2012년 가을호(통권 59)엔 많은 수필들이 실렸다. 다들 나름대로 문학화 하기 위해 애쓴 작품들이다. 그러나 재미있으면서 맛도 멋도 있는 작품은 쉽지 않다. 그중 작품성과 재미가 있어 보이는 수필이 눈에 띄었다. <요강 화분>(강정실)이 단연 돋보였다. 하필 요강으로 화분을 한다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는 창고세일 하는 곳에서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는 사기그릇 하나를 사게 된다. 파는 젊은이의 말로는 중국인인 할아버지가 영수증이나 담뱃갑을 넣어두던 그릇이라고 했다. 그걸 사갖고 간 다음 날 자세히 보니 요강이 분명했다. 요강은 작가의 어린 날 어머니가 쓰셨고 작가도 썼던 변기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그걸 어디다 쓸 것인가. 사다 놓은 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차고 선반에 얹어놓고 용도를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선지 때마다 거리고 눈이 갔다. 그런 어느 날 꽃집 앞을 지나다 난을 보았다. 난을 심으면 될 것 같아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눈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게발선인장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이다. 어머니는 주정을 부리는 아버지에 대한 화를 선인장 잎을 닦는 걸로 삭이곤 했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게발선인장을 사서 그 요강에 심었다. 요강에 그려진 그림과도 어울려 제법 멋스럽다. 게발선인장을 사서 그 요강에 심었다. 요강에 그려진 그림과도 어울려 제법 멋스럽다.

  이 수필의 구성은 수열적이고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한 구성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편안히 읽힌다. 무엇이 이 수필을 그렇게 만든 걸까.

 

  우선 그 구성을 보자.

 

산책길에서 창고세일을 만난다.

순백색에 그림이 있는 뚜껑에 손잡이가 달린 사기그릇을 산다.

다음 날 자세히 보니 요강이 분명하다.

요강에 얽힌 이야기.

공중목욕탕 이야기.

꽃집에서 난을 사려다가 게발선인장을 사다.

게발선인장과 어머니에 얽힌 추억.

요강에 게발선인장을 심는다.

화분을 완상하는 즐거움.

어머니와 유년의 추억을 끌어낸다.

현실의 사유.

의미화.

마무리.

 

  특별한 전환이나 변화를 주지 않고 일어난 일을 수열적으로 전개해 나갔지만, 작가의 마음이 비교적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정말 그것이 요강인 줄을 모르고 산 것일까. ‘눈에 익은 사기그릇이라 했는데 눈에 익은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눈에 익은일까.

 

  ②순백색에 무슨 그림이 그려진무슨은 책임 없는 표현이다.

 

서녘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그릇 하나에 무심히 눈이 갔다. 순백색에 무슨 그림이 그려진, 눈에 익은 사기릇이다. (214)

 

보봐리 부인을 쓴 프로베르는 적확한 단어 하는 찾기 위해 사흘 동안이나 방바닥에 엎드려 고심했다는데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먹빛 대나무 두 줄기에 청자색 구름이 한데 어우러진 백기단지는 요강이 틀림없다.(214)

 

뒤에 나오는 이 먹빛 대나무 두 줄기에 청자색 구름이 그려진을 미리 사용하고, 이튿날 아침에도 그 그림 때문에 샀다는 느낌으로 가져가면 무슨의 무책임함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⑤의 공중목욕탕 이야기도 문제다. 요강 이야기와 별로 관련이 없다. ‘4학년까지 요강을 사용할 만큼 어리광이 심해 목욕탕에도 어머니와 같이 갔다라고 표현되도록 하는 게 낫겠다. 그래도 요강이야기완 거리감이 생긴다. 그 얘길 굳이 넣고 싶다면 그 여탕 사건 이후 요강도 사용치 않는 걸로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연결된다. 수필은 기 승 전 결의 구성 중 부분에 다시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부분에서 다시 기승전결의 구성을 갖는 게 수필이다. 그러니 짧은 수필에선 꼭 해야 할 만한 해야 한다. 빼버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빼버려야 할 부분이다. 공중목욕탕 이야기가 요강과 연결되지 않으면 둘 필요가 없고, 넣고 싶으면 어떻게든 요강과 연결을 지어야 한다.

 

  ⑥ 부분의 꽃집에서 게발선인장을 만나는 이야기에서도 어느 날 몇몇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했다가로 시작을 하는데 독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외출했다가정도이다. ‘어느 날 몇몇 친구를 만나기 위해라는 수식은 독자가 기대하는 아무것도 아니다.

 

  ⑦ 게발선인장과 어머니에 얽힌 추억은 잘 처리되었다.

 

  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한 날, 어머니는 선인장 잎 하나하나를 물걸레로 천천히 닦으며 화를 삭이는 듯했다. (215)

 

  ‘걸레라는 표현이 걸리지만, 이 한 문장만으로도 정황이 충분히 설명 된다.

그래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이 허물 벗어지듯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리운 어머니를 대한 듯, 게발선인장 화분을 덥석 움켜쥐었다. (215)

 

작가의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작가가 게발선인장을 요강에 심은 후 완상한다.

 

  요강에 그려진 먹빛 대나무와 청잣빛 구름 위로 선인장의 줄기가 자연스레 늘어졌다. 저만치 놓고 완상하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215-216)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완상하는 그 눈으로 그리운 한 장면을 이끌어 낸다. 어머니의 모습이다.

 

  잠이 쉬이 들지 않는 밤이다. 달빛이 환하게 들이비치는 마룻바닥 한가운데에 촛불을 켜고 게발선인장이 담긴 요강 화분을 옮겨놓는다. 촛불이 숨을 고르며 따뜻하게 타오르면, 어린 내가 요강에 앉아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환영이 아롱거린다. (216)

 

  작가가 완상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까지 끌어온 이유도 바로 어머니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온 삶이 어느 누구라도 쉬우랴만 작가는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날도 잊을 수 없고, 젊은 혈기로 동분서주하던 순간들에 그런 어머니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비로소 이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게발선인장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요강에 앉아 계시던 모습을 상상한다. 마치 게발선인장이 어머니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가 요강에 앉아 있는 모습처럼 바라보는 작가 또한 그 옛날 초등학생이 된다.

 

  나는 밤을 잊고 요강에 담긴 게발선인장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216)

 

  수필은 가슴으로 써서 가슴으로 읽는 글이다. 그렇다고 정적인 것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쓰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 수필 속에 물걸레란 표현이 두 번 나온다. 마지막 부분에도 오늘도 찬물로 깨끗이 씻은 물걸레로선인장 잎과 허리가 볼록한 그릇을 조심스럽게 닦는다.’라고 했는데 물걸레가 주는 분위기를 크게 훼손한다. 우리는 발걸레라는 말도 흔히 쓰는데 손은 깨끗한 수건을 써야 하고 발은 굳이 걸레를 써야 하는가. 발수건이면 안 될까.

  수필은 품격의 문학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을 문학 언어로 쓰면 일상 언어가 아니라 문학 언어가 된다. 그래서 말로 할 때는 괜찮은 것도 글로 표현할 때는 바꾸어야 할 때가 많다.

  공동체 수필 하늘6, 이달의 수필 1, 신작수필 13편 등 20편의 수필 중 1편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늘 여러 편을 다루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쉬웠던 점이 많았고, 특히 가슴에 와 닿은 작품이 없다가 이런 작품을 보게 되면 눈을 다른 곳으로 띄지 못하고, 1편을 더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수없이 쏟아지는 국내작품을 제치고 미국에서 보낸 걸출한 작품이었으니 오죽이나 할까.

  수필은 멋과 맛의 문학이면서 대단히 과학적이다. 사실적 체험이 진실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만큼 적당한 얼버무림은 용납되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적학하고 과학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요강 화분>은 좋은 수필이고 그런 면에서 적확한 표현을 위한 고심이 필요했고 성공한 작품이다.

  잘 차려입은 옷인데 신발색이나 양말색이 어울림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마지막 퇴고의 펜을 놓는 순간까지, 내 인격 내 품격의 한 편 글로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게 작가의 자세일 것이다.

 

 최원현.jpg

  최원현 

수필가.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감사. 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수필분과회장.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수필세계. 좋은문학. 건강과생명 편집위원. 한국수필문학상. 동포문학상대상. 현대수필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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