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광이

조회 수 10185 추천 수 3 2015.04.25 20: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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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희곡>

                                                                                 희광이

                                                                                                                                                                        이언호


등장인물:

망나니1
망나니2
강완숙 (콜롬바, 명도회 여회장)
김화진 (전 형조판서)
주문모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
김조순 (홍문관 대제학. 의정부 실세)
기찰포교(오늘날의 정보부원)
수복 (김화진의 심복)
박서방(김조순의 청지기)
홍지영 (강완숙의 남편)
순이 (망나니1의 딸)
시어머니(강완숙의..)
동리사람1,
동리사람2.....
아이들..... 판관들.... 포졸,........ 형졸들...... 그 밖에.....

이 연극은 신유사옥(1801)을 중심으로 과거와 과거속의 과거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장면이 전환 될 때에는 조명과 함께 주제 음악이 이 강렬하게 따른다.
각종 북소리 같은 타악기면 좋겠다.

예비조명이 들어오면 승지가 배경 막 뒤에서 교서를 읽는다.
낭랑하지만 음산한 목소리다. 북소리 리듬에 맞추어 따른다.

승지 : 선포! 사학교서! 이 나라에 유학이 쇠하면서 오늘날 서양에서 들어온 불치의 사학 이라는 것은 아래 위 상반이 없이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 하니 이 나라엔 어버이도 없고 인륜도 없다는 말인지라 어리석은 백성이 물들어 그릇되어가니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는 듯하다. 이에 국법으로 사학을 엄격하게 금하니 각 고을 수령들은 국법의 두려움을 일깨워 주라. 조선 팔도의 관장들은 오가작통법으로 창궐하는 사학들을 뿌리 채 뽑도록 하라. 선참후계도 왕명으로 윤허하리라!

주제음악과 함께 먼동이 트이는 서소문 밖의 형장이다. 배경 막 속에서 아침 안개가 피어오른다. 북소리. 망나니들이 칼춤을 춘다. 칼춤 아래 죄수의 목이 뎅겅, 뎅겅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안개 더욱 피어오르고, 형조와 좌우포청, 의금부 판관들이 이곳저곳에서 판결문을 들고 외친다.

판과1: 판서 이가환 현감 이승훈 승지 정약용을 비롯해 최장현, 권철신은 사학을 신봉하며 국법을 어긋나게 했으므로 삭탈관직하고 귀향으로 형신하라!

판관2: 죄인 윤지충 권상연 최필공 정낙종 홍교만은 참수형에 처한다.
연좌 법을 실시하며 재산은 몰수한다. 그 식솔 중 남자들은 교수형에 처하고 여자들은 관노로 삼는다.
판관3: 그들의 괴수 청국인 주문모 신부를 군문 효수하라. 주가의 추종자 여신도 회장
강완숙과 동정녀 과부 강경복 김연이 한신애 궁녀출신 문영인은 참수형에 처하라.

(북소리 울리고 망나니들 한바탕 춤춘다. 단말마의 비명소리)

망나니들의 마지막 칼날이 번쩍임과 동시에 천둥 벽력이 일고 천지가 캄캄해진다. 암전상태에서 소리 들린다. 호곡소리 같기도 하고 그레고리안 챤트의 곡 같기도 한 소리다.
망나니가 칼날을 번쩍이던 그 언덕에서 흰옷 입은 여인이 불꽃을 들고 나온다.
배경 막 뒤 무대 위엔 불꽃을 든 사람들로 가득해 진다. 소리는 노래로 변한다.

노래 : 기리엘레이숀 기리엘레이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크리스테 엘레이숀. (크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흰옷의 사람들 아침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지며 그 가운데 강완숙만 남는다. 잠시. 암전.

정상조명. 무대 한 가운데. 술동이 앞에서 망나니2가 넋이 빠진 채 서 있다. 방금 사라진 실루엩의 흰옷 무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한손엔 칼 다른 한손엔 술 바가지가 들려있다. 망나니1 바지춤을 쥔 체 굴러들듯 뛰다가 비스듬히 선 장승 앞에서 합장하며 꾸벅 절한다. 정성 없는 형식적인 습관이다. 뻐구기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망난1: 에구야 혼났네. 요즘 웬 배탈이 그리 자주 나냐. 먹은 것도 없는데.
(망난 2를 본다)야, 인석아! (대답 없다)아 이 녀석아! (엉덩이를 걷어찬다. 망난2 주저앉는다)정신 차려 이놈아. 배탈 때문이야. 배탈 때문에 정성을 다해 목을 쳐주지 못했단 말씀이야. 그처럼 짜증나는 일도 없어. (주저앉아 있는 망난2를 보고) 아프냐?
망난2: 밑구멍을 냅다 찾는데 안 아파요.
망난1: 녀석 엄살은...
망난2: 거기에 씨받이 망태가 있오. 아저씨 외손자 보기 싫어요.
망난1: 이놈아 그럼 장인어른 해야지 아저씨가 뭐냐 이 망난이 자식아.
망난2: 난 망난이가 아니오. 어엿한 이 나라의 군졸이오. 망난이가 모자라 재수 없게 차출된 군졸이란 말이오. 이 환란이 끝나면 원대복귀 할 몸이오.
망난1: 알아. 안 다구. 난 죽을죄를 사면하는 댓가로 망나니가 됐고 넌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망나니의 제자가 된 군졸 나으리다.
망난2: 세상엔 목 쳐 죽일 죄수가 이토록 많은지 몰랐우. (뻐구기 소리 여전히 시끄럽다)
망난1: 그놈의 천주학쟁이들은 죽이고 죽여도 또 생겨나니 어쩌겠냐? 조선 팔도 사람의
씨가 마른다음에나 끝이 날려는지...비러 먹을 뻐꾸기!
망난2: 딸 준다는 약속은 어찌 됐소?
망난1: 나두 그 때문에 맘이 아프다. 시방. 그년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져버렸는지.... 그년을 네놈과 짝을 맞추어서 망나니 마누라가 아닌 군졸 여편네로 만들어 아들 낳고 딸 나아가며 깨 쏟아지게 잘 살도록 해 주고 싶었는데... (훌쩍이며) 에미가 일찍 다라나서 에미정 모르고 자랐으니 서방 정이라도 있어야지....강완숙 마님이 데려다가 딸처럼 키워서 달 떵이 같은 처녀가 되었잖냐. 그 년이 천하절색 이란 건 봐서 알 잖냐?
망난2: 아니면 이 옥골선풍의 이 군졸 나으리가 거들떠나 보겠우.
망난1: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그 바가지 이리 넘겨.(술 퍼 들이킨다)그년이 아무래도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쟁이가 됐나봐. 그래서 무릎 매를 맞고 주리를 틀린 모양으로 기어왔어. 온몸이 성한 곳이라곤 없는 애가 새벽녘에 집은 나가서 안돌아 온지가 열흘이야.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옥사장 놈도 그렇지 좀 봐 달라고 은전을 한 주머니 찔러주었는데 그 지경을 해 놓다니... 하기야 제 놈도 사학죄인이니 봐줄 수가 없었겠지. 그년이 나오면서 천주학쟁이들이 줄줄이 잡혀갔다니 매를 못 당하고 죽음보다 더 무서운 배신을 하지 안했나 몰라. 어느 날 이리 끌려오면 난 모른 척 할 테니 네가 알아서 잘 처리 해 줘라. 네놈 볼 면목이 없다. 매에 장사 없다고 주리를 못 당한 게야.(또 마신다)
망난2: 똥질 하면서 술만 퍼도 되는 게요?
망난1: 안 그래도 우리딸년의 주인마님, 아니지. 우리딸년의 시웅 어머니이신 강완숙마님을 모실 때 마음이 흩어져 제대로 치질 못했어. 물찌똥이 확 쏟아질 것 같아 칼 잡은 손에 힘을 쓸 수가 있어야지. (바가지 주며) 난 그렇다 치고 네 녀석은 뭣에 정신이 팔려서 칼질을 그 모냥으로 하냐. (칼을 고처잡고)망나니 법도에 칼질할 때 정성을 다 해야 한다고 내가 안 했냐. 잿밥에 눈이 어둔 놈들이 엽전 냥이나 울거 내려고 슬쩍 슬쩍 베는척해 죄인은 자지러지고 가족들 애간장을 태우고 그런 놈들은 진정 망나니가 아니야. 죄 엄청 받아.
망난2: (술 한 모금 물어 홱 뿌리고 나서) 그런데 별 요상한 것 하나 봤우. 장인님이 뒤보러 갔을 때 술 바가지를 입에 물고 공중에 푸-하고 뿌려봤지요. 회자수 칼에 냉수 사발 뿌리듯 말이우 .그 순간 저 언덕 빼기 아래 골짜기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떼가 빛나는 광채를 하나씩 들고 저쪽 언덕 위로 솟은 찬란한 무지개를 타듯이 올라 가드라 이거요. 아주 고운 소리를 내면서 말이우.
망난1: 네 놈이 헛것을 본 게로구나. (비탄에 젖어)환갑이 다 되도록 홀아비로 살며 무남독녀 외딸 하나 온 몸에 성한 곳 없이 매 맞고 어디로 가 종무소식이고 평생 죄인들의 목이나 치며 살아온 인생. 그 중에 죄인 아닌 무죄인도 끼었으니 그 억울한 마음을 정성들여 칼질이나 해 고통이나 달랠 도리밖에 더 있겠냐. 그런 마음으로 이 짓을 하며 살아간다. 천주학쟁이를 잡아 죽이면서 망나니들도 하늘의 죄를 받을 까 겁이 나서 슬슬 다라나 버리지 않았냐. 그래서 너 같은 군졸 놈들이 망나니 노릇을 하는데 원 칼질이 서툴러서 쯔쯔쯔... 내 마음이 썩 불편해.
망난2: 죽여도 어지간히 많이 죽이니 안 그렇수. 지난봄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당한 청국인 신부얘기 들었잖우. 그 형을 집행 할 때도 어영청 대장이 병을 핑계로 사직서를 냈쟎우.
망난1: 알아. 그 얘긴 나도 들었다. 대왕대비전에서 대노하여 서둘러 다른 대장을 임명하여 겨우 목을 쳤겠다. 그 청국인 신부의 목을 치는 긴 예식을 하는 동안 청명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고 형장위에 괴기한 돌풍이 맹렬히 일어났다지. 천지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런데 그자의 목이 떨어지자 하늘이 거짓말처럼 개이고 그 시신 위에서 찬란한 빛이 하늘로 뻣쳤대는구나. 사람들은 태양이 망나니들의 죄악을 보지 않게 하기위해 그 얼굴을 가렸다가 그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고 난 후에 다시 보였다고도 하고...
망난2: 군문효수로 걸어 논 그 청국인 시신에서 밤이면 상서로운 빛이 나타나 하늘을 밝혔다 했오. 그걸 내가 봤으니 알우. 궁녀출신 문영인의 목을 칠 때 내 칼에 붉은 피 대신 해산어미의 젓 영락없는 뽀얀 게 묻었드라구요.
망난1: 백피가 묻은 게야. 네놈을 아무래도 여길 도망쳐야 되겠다.
망난2: 말이야 바른말이지 죄 없는 사람의 목을 치자니 손이 떨렸지요. 그 사람들이 남의 등을 쳤우. 도둑질을 했우. 사람을 죽였우. 정작 목을 쳐야 할 놈들은 벼슬아치 양반님네들에 더 많다구요.
망난1: 이놈아 입방아 조심해라.
망난2: 내가 틀린 말 했우.
망난1: 그래 틀린 말 아니니 더 큰 소리로 동네방네 다니며 질러대라.
망난2: 사실 노론이니 소론이니 벽파니 시파니 그런 양반님들이 나라꼴 망치는
죽일 놈들 아니우. 돈에 미쳐 벼슬까지 팔아먹는 놈들 아니유.
망난1: 소리 실 컨 질러라 난 뒤 보러 가야겠다.
망난2: 그런데 똥 싸게 영감에게서 구린내가 안 나고 분 냄새가 나니 뭔 조화요?
망난1: (가다가 돌아서서)무...무슨 냄새?
망난2: 엊저녁에 여자 끼구 홀아비 때 베꼈우?
망난1: 이 녀석. 장인에게 하는 말버릇 좀 봐 여자 냄새 맡아본지 천년을 된 듯
싶다. (궤춤에서 천 조각 꺼내 보이며)옳거니 여기에서 나는 냄새 렸다.
망난2: (받아서 맡아 보고)이건 무슨 냄새 유?
망난1: 치마 자락이 땅에 끌린 들풀의 냄샐 꺼다. 난 급해서 간다. (뒤를 잡고 뛰어간다)
망난2: (천조각의 냄새를 맡으며) 어 좋은 것. (계속 코를 벌름댄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기분이 좋아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엉덩짝 치며 돌아간다.
노래는 적당한 곳에서 중략해도 좋다)
아이들: (천주 공경가. 1779년 이벽 지음. 전문)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 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무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가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면은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는 불사공경 하지 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 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아비없는 자식있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뵈었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징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아이들 노래하는 동안에 망난1 돌아온다. 뒤이어 평복 입은 전 형조판서 김화진과 그의 노복인 수복이 지나다가 노래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들의 수작을 엿본다.

망난1: (엉덩이 차고) 예이키 이녀석아! 저게 무슨 노랜지 알고나 엉덩춤이냐?
망난2: 알게 뭐요. 춤이란 흥이나면 추는 게지.
망난1: 저거 천주학쟁이의 창이라는 것이다(목에 손 긋고)이거 되고 싶냐?
아이1: 아저씨. 아저씨가 여기에서 망나니 짓 하는 망난이죠?
망난2: 그래 내가 망나니짓하는 회자수 희광이 망나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벌래 보듯 저승사자 보듯 하는 데 느이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냐?
아이1: 무섭지만 참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 좀 살려주세요?
망난2: 느이 어머니가 어찌 되었는데?
망난1: (잽싸게 키어든다) 얘들아 우리는 지체 높으신 분들이 판결을 내리는 대로 행하는 희광일 뿐이다. 우리 마음대로 누굴 살리고 죽이고 하질 못해.
망난2: 이 어른 말씀이 맞아. 우린 그냥 몽둥이나 돌맹이 같은 존재라구.
아이1: 우리 엄마가 천주학으로 참수당한 사람의 피 묻은 수건이나 걸레 같은걸 얻어 오래요.
망난2: 그런 끔직한 걸 뭐에 쓸려구.
아이1: 그걸 품에 꼭 안고 신공을 바치고 나면 무슨 병이나 난데요.
아이2: 그게 영험하데요.
망난2: 거 신통 하구나
망난1: 그거라면 어렵지 않다. 너 언젠가 젖 빛나는 흰 피 흘렸다는 젊은 여인을 치루고 난 후 그 칼 닦아 낸 걸레 어쨌냐?
망난2: 버렸지요.
망난1: 어디에다?
망난2: 개울 창...아니지. 세검정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에 버렸지요.
망난1: 그걸 주어오면 되겠다.
망난2: 벌써 제물포까지 흘러갔겠우. 느이 엄마가 많이 아프시냐?
아이1: 백약이 무효하셔요.
망난1: 저런 안 됐다. 다음번엔 칼 딱은 걸레를 꼭 챙겨두마. 가만. 있다. 있어.
(궤춤에서 천 조각 꺼내든다) 요것이 엊그제 돌아가시면서 내게 주신 강완숙 마님의 치맛자락인데 여기에 글씨가 가득 써 있긴 한데 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니 그런 건 알 것 없고 여기에 아직 마님의 피가 묻어 있다 이거야. 내 실수지. 이게 걸레로 알았거든. 이걸 가져가거라. 그런데 꼭 돌려주어야 한다. 마님께서 잘 간수 하라 당부 하셨거든.
아이1: 예 꼭 돌려 드리겠어요.
아이2: 엄마가 낳으시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망난1: 오냐. 어서 가봐라. (아이들 노래 부르며 간다)
수복 : 얘들아 잠깐 게 섯거라.
김화진: 느이들이 부르는 노래 그것 어디에서 배웠냐?
아이1: 박물장수 아주머니에게서요.
김화진: 그 아주머니들이 어디에 계신데?
아이1: 몰라요.
아이2: 지나가다가 말고 가르쳐 쳐 두었어요. 콩엿 한쪽씩 주면서요.
아이1: 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가자. (아이들 뛰어 도망간다)
수복 : (망나니에게) 느이들 이 어른이 누구신지 아느냐? 전 형조판서 나으리시다.
망난1: 아구 죽여줍쇼.
김화진: 지금은 병들어 낙향하는 백면서생이니 개념 치 말라. 그런데 저 아이들이 가져간 헝겊 짜투리가 무엇이라 했느냐.
망난1: (벌벌 떨며) 강완숙 마님의 치맛자락에서....
김화진: 강완숙이면 엊그제 대역죄로 참수형 당한 사학죄인 아니냐?
망난1: 그냥 죽여줍쇼.
김화진: 내가 다시 이곳에 들릴 터이니 그걸 소중히 간직해 두렸다.
망난1: 예. 어느 명이라 거역 하리까.
김화진: 그리고 아무에게도 발설 하지 말라.
수복 :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망난들: (깊이 숙이며)예에. 명심 하겠사옵니다. (조명)

정자관을 쓴 홍문관 부제학겸 장용대장 김조순이 사랑 뜰에서 서성인다. 청직이 박서방 대령해 있다.

김조순: 대왕대비전에서는 아직 기별이 안 왔는가?
박서방: 큰 상궁 마마께서 기쁜 소식이 곧 있을 것이란 기별이 왔아옵니다.
김조순: 어흠. 큰 마님께서는 어떠하신가?
박서방: 그저 그만 하신 걸로 아옵니다.
김조순: 아직은 몇 해 더 수를 누리셔야 하지 않겠느냐?
박서방: 이를 말씀이 옵니까. 백약이 무효 하시지만....
김조순: 항간에 떠도는 말이 있지 않더냐?
박서방: 사학죄인 강완숙의 치맛자락....
김조순: 어흠. 기찰포교를 들라 했는데 어찌 되었느냐?
박서방: 곁 사랑 뜰에서 대령하고 있사옵니다. (박서방 나간다) 어머님 소자가 부원군이 되고 당신께서는 정경부인으로 봉해진 다음 수를 다하시면 그 가문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박서방: (들어오며) 좌포청의 기찰포교 이존수 대령이오.
김조순: 어서 오시게. 넌 나가서 잡인을 금하라.
기찰 : 그동안 기체만강 하시었나이까? 대제학 대감마님.
김조순: 기체만강 못 하고 있네. 아직은 부제학이고, 집안엔 우환이 깊고 나라엔 민심이 흉흉해. 대왕대비마마의 노함은 대궐 기와짱이 들썩 거리고 있는 판에 좌, 우포청의 포도대장들은 기생방에 앉아 술타령만 하나봐. 어흠. 자네 기찰 포교노릇 몇 년이나 했능가?
기찰 : 금년으로 만 십년 이옵니다.
김조순: 그랬으면 냄새는 사냥개 빰치게 잘 맡겠지?
기찰 : 냄새뿐 아니라 탑골 승방의 기저기가 몇 개쯤인가도 훤히 압니다.
김조순: 아무렴 그래야지. 자네가 게 눈 감추듯 한 사학도당들을 잘도 찾아냈다지?
기찰 : 청국인 신부라는 괴수를 6년 동안 감추어준 여두목과 그 일족을 줄줄이 검거 했습죠. 그 속에 박물장수로 가장한 패거리도 수십 명은 되었고....
김조순: 그만 됐네. 공은 자네가 세우고 상은 기생방에 앉아 뭉개는 자가 타고...
세상이 왜 이런가. (눈치 보며 충동한다) 자네가 포도대장 감이란 걸 잘 알고 있네.
내게 귀 뜸 하게. 우포청인가 아니면 좌포청인가?
기찰 : 어느 곳이라도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 올습니다.
김조순: 내 말 잘 듣게. 자네가 아무리 냄새를 잘 맡는 기찰이라 해도 의정부에서 일어난 희괴한 일 까지야 다 알 수 있겠는가? 조정이 발칵 했던 사건이 있었지.
기찰 : 황사영이 백서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요?
김조순: 바로 맞추었네. 그중에서도 청국인 주문모 사건은 골치를 아프게 하지. 애초에 나는 그자가 중국인이므로 죽이지 말고 매만 처서 쫓아내자 하였네. 우리 두 나라 중 신민에 대한 국제 조약이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 사학의 무리를 뿌리 뽑자하여 외국 죄인을 처벌하는데 있어 우리 국법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더 거세었네. 자네도 아다 시피 이 이 나라 조정의 일은 옳고 그름보다 당론이 앞서지 않은가. 국록을 먹는 자들이 나라 일을 함에 있어 당의 이익부터 따져서야 되겠나. 아무튼 그 죄인은 우리국법의 절차를 밟자는 결의안이 받아드려져 군문효수를 당하고 몇 달 후 황사영의 밀서가 발견되었어. 거기엔 이 청국인을 군문 효수형에 처 했다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말씀이야. 그래서 또 한 번 법석이 벌어졌네. 청국인을 그 속국인 이 나라에서 죽였다 이 말이야. 그것도 죄명이 죽일 죄인가 하는 것도 분명치 않은 채 말이야. 그러니 조정에선 청국 황제의 벼락이 떨어질까 겁이 나지 않겠나?
기찰 : (재빨리 끼어든다)부랴부랴 가짜 백서인 안작을 만들어 동지사 일행이 달려 갔습죠. 바리바리 금은보화를 싣고서 말입니다.
김조순: 어쨌거나 그건 지나간 일이니 접어두기로 하세. 요즘 항간에 떠도는 얘기가 있어 또 골칫거리일세.
기찰 : 무슨 얘기 말씀이옵니까?
김조순: 포도청에는 기찰이 있고 형조에도 사찰이 있지 않나. 그런데 대왕대비전의 정보가 의정부보다 더 빠르니 이런 불충이 또 어디 있겠나. 자네 강완숙의 밀서라는 말 들어 봤나?
기찰 : (능청스레)금시초문입니다.
김조순: (혀 차고) 포도대장감이 포도군졸로 쫓겨나게 생겼나 보이.
기찰 : 황송하옵니다.
김조순: 강완숙이 누군지는 알고 있는가?
기찰 : 알다 뿐입니까. 소인이 그 아들 홍필주와 함께 직접 잡아들였습니다요. 신출귀몰한 포도청의 기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속에서 청국인을 6년간 숨겨주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과부가 사는 양반집 내실에 뭇 사내가 얼씬 못한다는 이 나라의 법도가 문제였습죠. 포도군사들도 사내 아닙니까. 어명을 받아 시행하긴 했습니다만 이 나라 법도를 어긴 것이지요. (김조순 못 마땅한 표정) 강완숙의 밀서 말씀을 하시었습죠?
김조순: 어험. 일을 조용히 처리하라는 대왕대비마마의 밀지를 받았네. 강완숙이 죽기전에 그녀의 치맛자락에 기록한 깨알 같은 밀서가 있다는 군. 제2의 황사영 백서 같은 것이겠지. 그 치맛자락에 씌어진 밀서가 지금 떠돌아다닌다는 것이야. 거기에 주문모 신부의 행적도 상세하게 펼쳐져 있다는 거구. 아주 영웅적으로 말씀이야. 그 밀서가 뿌리 채 뽑힌 줄 알았던 사학교도들을 들불처럼 퍼지게 한다는 우려가 있어. 죽이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러다가 조선 민족 씨를 말리우면 어쩌겠나. 그 보다도 그 밀서가 청국 황제에게라도 전달되고 청국 황제가 대노하여 상감께 추궁이라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더 가져다 바칠 금은보화는 있는가? 그럼 노비라도 바치라 하겠지. 그 이상 민족 수난이 또 어디에 있겠나? 그 밀서를 찾아야 겠네.
기찰 : 나으리 그것뿐입니까?
김조순: 그럼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기찰 : 그 치맛자락이 죽어가는 사람을 소생시킨다는 유언비어도 있습죠.
김조순: 어흠.
기찰 : 노마님게서 백약이 무효이신 걸로 아는 뎁쇼.
김조순: 핫하. 사랑으로 좀 드세.(자리를 옮기어) 이 사람아 그래서 자네를 은밀히 부른 것이야.
기찰 : 강완숙의 치맛자락은 오리무중에 떨어진 구슬을 찾아오라는 말씀 같사와...
김조순: 포도대장 자리는 세도가 당당한 직위라구. (잠시) 그런데 단서는 있네. 그 밀서를 찾는 냄새는 있어.
기찰 : 냄새라니 무슨?
김조순: 내가 알아보니 강완숙에 대한 공초 기록이 미약하기만 하네. 아녀자라서 그런가? 사학교도의 여두목인데. 왜 그런가? 그거 이상하지 아니한가?
기찰 : 소인도 그 부분이 묘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입니다.
김조순: 그런가? 그래서?
기찰 : 전 형조판서 김화진 대감 말씀입니다. 강완숙, 그의 일당인 박물장수들을 직접 공초하지 않았습니까? 청국인 주문모에 대한 기록은 많은데 함께 활동을 한 강완숙에 대한 공초 기록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하시었지요. 사실이옵니다. 강완숙이 죽자 그는 낙향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이 충청도 내포지방의 덕산 아닙니까. 강완숙의 친정과 동향이라 이 말입니다. 그의 갑작스런 낙향이 종내 궁금하던 차 였습니다.
김조순: 즉시 내려가서 그를 불러오게.
기찰 : 알겠습니다. 곧 잡아오겠습니다.
김조순: 명색이 당상관인데 정중이 모셔야지.(조명)

보름쯤 후 같은 장소. 전 형조판서 김화진 김조순 그리고 기찰포교 마주앉아 있다.

김조순: 대감이 *신유년의 일들을 다 관장하시었지요? *(1801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
김화진: 그렇습니다만...
기찰 : 대감께서 사학죄인의 여두목과 그 일당을 문초 하시였습죠?
김화진: 무슨 권한으로 내게 그런 말을 물으시나?
기찰 : 대왕대비마마의 밀지가 있었나이다.
김화진: 어명이 아니고선 당상관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법을 아시오?
김조순: 오해는 마시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는 중차 막대한 일을 의논하고자 모신 것 이오.
기찰 : 강완숙의 공초 기록이 미비하여 그 연유를 여쭙고자 합니다.
김조순: 그 죄인이 어찌 하였기에 그 집에 모여들었던 여인들이 피와 살이 튀고 목을 베는 형벌에도 숫자가 늘기만 하는 가 그 연유를 알고 싶소이다.
기찰 : 듣자니 귀신처럼 요설을 잘 했다던데요.
김조순: 강완숙은 어디 출신이며 어떻게 자랐는지 또 왜 사학을 하게 되었는지 죄인이 죽은 후 따르던 무리는 어찌 되었는지가 궁금하오.
김화진: 그녀는 참판을 지낸 명문가의 소실에게서 낳았지요. 글공부하는 작은 사랑에 심부름을 하면서 사서삼경을 익혔고 사기에도 능통하다 하더이다. 그래서 아마 같은 부녀자를 설득하는 힘이 있나봅니다.
기찰 : 대감께선 죄인과 동향이시라지요?
김화진: 그렇소.
기찰 : 충청도 내포지방 의 덕산이오? 그녀의 오라비들과 동문수학을 하시었고...?
김화진: 그렇소.
기찰 : 그럼 그 때 강완숙에게 물심부름도 받았겠군요?
김화진: 그 오라비들과 사랑에서 글공부를 할 때 그랬었겠지요.
기찰 : 죄인은 한때 승방의 비구니가 되려 한 적도 있구요?
김화진: 공초 때 물으니 서녀신분을 늘 한탄 하였다고 합디다.
기찰 : 대감과의 실연 때문은 아니고요?
김화진: 어험. 이 사람이 어디에다 대고!
김조순: 무슨 연고로 갑작스레 낙향 하시였는지요?
김화진: 밤낮으로 죄인을 문초하다 보니 고단했던지 병이 깊어 상감께 윤허를 받고 낙향을 하던 길이오.
김조순: 죄인에 대해 자세히 말씀 해 주시면 우리 선에서 만 알고 넘기 겠오이다.
김화진: 승방에서 귀가한 그녀는 얼마 후 홍지영의 후처가 되었지요. 시가는 양반으로 가세가 넉넉하고 덕성 좋은 시어머니와 온순한 전실 아들이 있었지요. 남편은 마음씨는 좋지만 무골호인이며 난봉기가 있어 총명한 강완숙의 마음을 늘 허허하게 했다 합니다. 그러던 중 시가 쪽의 당숙인 이단원이란 사람에게 서학을 배우게 되었다 합니다. 이단원도 내포사람으로 권일신에게 천주학을 배우고 그 지방에 자칭 사도라 칭하고 전교를 하던 사람이지요.

김화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중반쯤 해서 배경 막 뒤에서 과거의 조명과 함께 강완숙 나타난다. 잠시. 이단원 다가선다.

이단원: 이 책을 한번 읽어보겠느냐.
강완숙: (받아 보고) 표지에 천주실의라 했군요. 하늘의 주인이란 말인가요. 시숙님.
이단원: 하늘과 당의 주인이신 천주님에 관한 책이란다. 만물의 주인이시지. 한 처음에 어둠이 깊은 곳에서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생겼지. 그 빛을 보시니 참 좋았다.

단원이 얘기하는 동안에 홍지영이 다가선다. 강완숙 홍지영에게 다가서면 이단원은 사라진다.

강완숙: 여보 천주학을 알게 되니 우리가 다시 태어난 듯해요. 천주님은 여섯째 날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그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심은 여필종부가 아니라 남녀가 동등하시다는 말씀이시래요.
홍지영: 당신 말을 들으니 참 그럴 뜻하고 좋소.
강완숙: 그럼 저를 따라 천주님을 이세상의 창조주로 믿으시는 거죠?
홍지영: 그 창조주라는 이가 내 눈으로 보질 못 했으니 안보고 믿어야 할지....
강완숙: 우리가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나무 가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있는 걸 알죠. 하느님도 바람처럼 계시 답니다.
홍지영: 바람처럼 계시면 함께 연날리기에 안성마춤이겠소. (조명)

다른 조명 속에 동네사람들 들어온다. 홍지영 그리 시선 돌린다.

동네1: 천주당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지?
홍지영: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가?
동네2 : 천주당에서는 피와 살을 나눠 준다 쟎나. 그게 사람 잡은 피와 살이래.
홍지영: 그런가?
동네1 : 조상의 제사도 못 지내게 한데.
강완숙: 만물이 주인이신 천주님을 높이 섬기라는 계명이 있죠. 천주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서는 하지 말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네1 : 부모의 제사를 안 지내면서 어찌 효도를 말해.
동네2 : 윤지충이 그 호로자식 얘기 들었능가?
홍지영: 거 무슨 얘긴데?
동네2 : 모친상을 당했는데 신주를 불 태워 버리고 제사도 안 지냈다는 군.
동네1 : 저런 불쌍놈! 양반집 자식으로 그런 망덕한 짓을 하다니...?
동네2 : 육시하고 능지처참할 놈이네.
동네1 : 천주당은 그런 교라네.
홍지영: 거 안 되겠네.
동네2 : 자네 부인에게 단단히 일으게 천주학 하면 폐가 망신 한다구.
강완숙: 천주실의 대로 살면 이세상은 천국으로 화 합니다. 부모에 효도하고 사람을 죽이지 말며 간음하지 말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라라.
동네2: 천주당의 교리대로 살면 숨 막히겠네. 그럼 소실도 얻지 말고 기생집도 가지 말라. 사내대장부가 어찌 그리 살겠나.
홍지영: 그 말 들으니 그럴듯 하이.
동네1 : 상놈이 양반 앞에서 허리펴고 다녀도 되고 애 재 하며 해라해도 되고.
강완숙: 그건 천주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형제자매란 얘기지요.
동네2 : 종놈이 상전과 겸상을 해도 된다면 천지개벽을 하는 거 아닌가?
홍지영: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네.
강완숙: 그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고요.
동네1 :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내주고.
동네2 : 겉옷을 뺏기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동네1 : 게다가 오만에는 겸손을 질투에는 애덕을 분노에는 인내를 탐욕에는 자비를 식욕에는 절제를 성욕에는...뭐더라 또.... 중놈이 아닌 다음에는 그렇게 못살지.
홍지영: 난 정말 안 되겠네.
동네1 : 나라에서 법으로 금 한건 당연한 처살세.
동네2 : 나라 법을 어기면 참수형을 받게 되지.
홍지영: (부인에게) 난 안되겠네. 믿으려면 당신이나 믿어. 난 더 두구 봐야 겠어.
강완숙: 약하기만 한 제 남편을 성령으로 강하게 이끌어 주소서. (조명. 북소리와 함께 한 떼의 포졸들이 사람들을 연행해 간다. 잠시. 조명이 김조순의 사랑마루로 옮겨간다)

김화진: 강완숙의 남편은 이런 사람인데 그때 어머니의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운 윤지충의 사건은 벽파인사들의 정치도마위에 올랐지요. 그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그 패륜아를 극형에 처하라고 상소문을 올려 상감께서는 하루에 30통의 상소문을 읽어야 했소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학문을 좋아하시던 정조대왕도 남인파의 우두머리인 좌의정 채제공 대감도 죄인들에게 극형만은 피하자 했지만 쏟아지는 상소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말았지요. 그런데 그 상소문들은 대왕대비전에 아첨을 해 보이려는 유림들의 부추김으로 한층 기세를 더 부렸지오.
기찰 : 정치평론 발언은 빼구 강완숙의 얘기만 말씀해 주시지요.
김화진: 그리하여 사교집단의 검거령은 다시 내려졌는데 그 덕에 소인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죄인들을 공초하고 처형장으로 보내고 해야 했소이다. 그때 춥고 어두운 감옥에서 처음 강완숙을 보았지요. 그녀는 지극히 품위 있는 자세로 소인을 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광채가 서려 있더이다.
기찰 : 죄인의 모습에 요기가 넘쳐흘렀다는 말씀인가요. (사이)
김조순: 계속 하시오. (조명. 테마음악과 함께 김화진은 강완숙이 나와 있는 배경 막 뒤로 간다)
김화진: 죄인은 듣거라. 그대가 왜 이 춥고 캄캄한 옥에 잡혀와 있는 줄 아는가?
강완숙: 이웃에 사는 죄 없는 죄인들이 춥고 어두운 감옥에 잡혀와 있기에 그들에게 따슨 음식과 입을 것을 좀 가져다주었나이다.
김화진: 그것뿐인가?
강완눅: 배 곱아 떨며 에미에비를 찾는 그들의 어린 자식들을 돌봤나이다.
김화진: 그리고 또오?
강완숙: 춥고 어두운 감옥을 지키는 옥졸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주었나이다.
김화진: 단지 그것뿐이란 말이지?
강완숙: 그러하옵니다.
김화진: 그것뿐이라면 죄 될 일이 되겠는 가. 오히려 상을 받아야 마땅하거늘...
본관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애긍을 베풀어준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겠네.
또한 가문도 만만치 않은 집의 부인으로 마음 씀이 곱고 품행이 쌍것과 다르니
사학에 관해서는 언급을 일부러 피하겠노라. 차후 허황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근신하며 아녀자의 본분을 다하기 바라노라.
강완숙: (돌아서 가며)주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단신의 은총으로 얻은 생명 당신을 위해 바치겠나이다. (홍지영 조명 안으로 들어온다)
홍지영: 당신 정신이 있는 사람이오.
강완숙: 집을 비워서 죄송해요.
홍지영: 지금이 어느 때인데 옥에 갇힌 사학죄인에게 밥을 주며 돕다가 잡혀 들어갔었소.
강완숙: 성교의 형제자매들에게 사학죄인이란 말을 감히 하다니요.
홍지영: 그들이 당신을 왜 그냥 내 보내 주었단 말이오?
강완숙: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 죄가 되겠냐며 풀어주었어요. 관리다운 사람 하나 봤어요.
홍지영: 그 사람이 당신을 놔 준 것은 덫 일수도 있소. 그러니 이 기회에 성교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삽시다.
강완숙: 깊은 산중이라니요. 저는 오히려 서울로 나가시자고 하려는 참입니다.
홍지영: 거긴 지금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어요.
강완숙: 지금 윤지충, 권상연같은 성교의 지도층 교우가 순교치명 하시었고 그 박해의 물결이 충청도 까지 밀려와 시당숙 아저씨께서도 잡혀가시어 가진 고초를 다 겪으시는데 그 분을 도와야지 어디로 도망간단 말씀인가요. 감옥에서 삼일동안 있으면서 저는 이런 묵상을 했습니다. 천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하나라도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옥에 갇힌 형제들이 매에 못 이겨 배교자가 되지 않도록 돌보고 용기를 주어야 겠어요.
홍지영 : 배교 배교 배반! 누가 누구를 배반 하는가 생각해 보시오.
강완숙: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그분께 등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빛의 반대쪽은 어둠뿐이잖아요.
홍지영: 여필종부라 했거늘 남편이 있는 규수가 옥에 갇힌 외간남자들을 찾아가 음식을 넣어주고 하다가 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쫙 퍼졌소. 이제 부인이 자중하지 않는 한 문중에서 우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강완숙: (정색으로)아시다 시피 저는 서출의 몸으로 태어났나이다. 비록 재취이긴 하지만 이제 양반이신 서방님을 만나 어지신 시어머님과 전실 아들 필주와도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나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사람은 왜 사는가? 우리가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 속을 헤매다가 이제 성교의 진리를 알았고 그 의문이 눈 녹듯이 풀어져 샘처럼 솟는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이다. 이제 서방님이 이 좋은 성교의 진리를 알려드려도 믿지 않으시고 자신의 영혼 구제보다 문중과 세상일을 더 중요시 하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서방님의 결심대로 하소서.
홍지영: 부인이 그 사교를 버리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어절 수 없는 결정이오. 대신 땅과 임야 그리고 노비 중 절반을 부인께 떼어 주겠오. 나는 이제 풍류남아로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돌다가 부인이 자중하면 그때 돌아오겠소.

(그들은 서로 돌아서서 간다. 조명 다시 김조순의 사랑마루다)

김화진: 그래서 남편과 헤어진 강완숙은 서울 북촌에 집을 장만하고 바쁘게 움직였지요.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녀의 시어머니와 전실 소생 홍필주도 그녀를 따라서 서울로 왔다는 사실입니다. 동서고금에 남편에게 소박맞은 며느리를 따라 나서는 시어머니가 있다는 소리는 보도 듣도 못 했지요.
기찰 : 미쳐도 단단히들 미쳤구먼.
김화진: 조정에서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편에서는 대책을 세웠어야지요.
기찰 : 조정에서 국록을 먹던 어른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김화진: (버럭 화를 낸다)그 시어머니는 옥사했고 그 아들을 효수형을 당했소.
기찰 : 그건 대감께서 친히 하신 일 아니오.
김화진: 그렇긴 해도 난 그 착한 사람들의 죄상에 대해서 재고하고 싶기만 했오.
기찰 : 사학은 대역죄로 다스린다는 어명을 모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오.
김조순: 어험. 말씀을 계속해 보시지요.
김화진: 윤지충 사건으로 일어난 검거 선풍은 정조대왕의 은밀한 관대 정책으로
이어지다가 청국인 주문모 신부가 이 땅에 영입되면서 세가 더욱 불어났지요. 그러다가 신유년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 되었지요. 사학죄인들에게 일벌백계의 영이 다시 내려 진 것입니다. 그로부터 우리 형조는 발톱이 달도록 장안을 헤매게 되었소이다. 밤잠을 못잔 형졸들은 눈이 싯뻘개지고 연약한 백성들은 발길에 체이는 돌부리 격이 되었는데 강완숙의 집에서는 주문모의 냄새는 났지만 증거는 찾지 못했지요.

(조명과 테마 음악속으로 강완숙 걸어 나온다)

강완숙: 주님, 신부님게서 삼복더위를 장작광속에서 언제까지 웅크리고 계실수가 있겠습니까. 온몸엔 땀띠와 짖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시니 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부디 시어머니를 설득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어 비어있는 안사랑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도마친 그녀는 머리를 싸맨다. 시어머니 든다)
시어머니: 얘야. 네가 약 한 첩 안 먹고 사흘째 굶으며 누어있는 걸 보니 그것은 필경 가슴에 맺힌 병 일진데 그 깊은 병을 너만 믿고 예가지 따라온 내게도 얘기 안하는 것을 억지로 말하라 하진 않겠다. 그러나 네가 허망하게 죽으면 너를 믿고 예까지 따라온 나도 살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나도 이틀을 굶었다. 너는 닷새를 굶은 편이고 나는 이틀을 굶었으니 얼마를 더 굶어야 사람이 죽을 수 있느냐? 네가 나보다 더 굶었으니 먼저 죽겠구나.
그럼 시어미인 내가 며느리인 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죽게 되겠구나. 그러니 여기 가져온 미음을 한 술 뜬 후 다시 더 굶어서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죽든지 해서 우리 순리 것 행동을 같이 하자.
강완숙: 어머니께서 자식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이토록 크시니 기쁘고 황송하기만 하옵니다.
시어머니: 난 너를 딸로서 생각해 왔다. 그러니 네 가슴에 맺힌 한을 어서 말해 보려무나.
강완숙: 청국에서 신부님이 와 계시다는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시어머니: 그런 소리는 얼른 들은 것 같다. 정말 신부님은 이 땅에 와 계시냐?
강완숙: 그런 것 같사온데.... 다만 분명한 것은 조정에서 그를 잡아들이려고 별수단을 다 쓴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거처를 제보하면 포상도 많이 준다는 것을 보면 언제 잡히실지 모를 일이옵니다. 잡히시면 분명히 목이 잘리시는 형벌을 받으실 것입니다. 저희에게 영적 양식을 주시는 목자의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과 같고 지금 어디에서 주무시는지 무엇을 잡수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제가 어찌 편하게 먹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제 가슴에 맺힌 한이며 병이옵니다.
시어머니: 지금까지 나는 네가 대단한 여자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형편없구나. 그게 어떻게 굶은 병이냐. 그런 병이라면 굶을게 아니라 먹자. 우리 먹고 힘을 내 그 신부님을 찾아 나서자. 찾아서 우리 안사랑에 아무도 모르게 모시면 될게 아니냐.
강완숙: 오 하느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조명. 다시 김조순의 사랑마루)

김화진: 그리하여 청국인 주문모는 강완숙의 안 사랑에서 묵으면서 그녀와 함께 그들이 말하는 사목 활동을 했지요. 신도들에게 영세도 주고 고해성사도 주고 심지어 혼배성사도 주며 6년을 보냈는데 강완숙은 대담하게 행동했고 치밀하게 주문모를 숨기고 다녀 포졸들이 들끓는 서울 한 가운데서 바람에 날리는 들풀의 씨앗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향기를 남기면서 교세를 넓혀나갔지요. 그리하여 황사영의 백서에는 조선 천주성교에서 남녀를 통 털어 강완숙이 으뜸이라 평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자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유폐생활을 하며 절망에 바진 은언군의 가족을 찾아가 삶의 희망을 주었고 가난한 사람들, 죄 없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불우한 여인들과 과부를 모아 새로운 생활을 하게 했지요. 그중에서도 수 십 명의 박물장수를 거느렸는데 그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천주성교를 전파하는 조직으로 활약하게 하였지요. 그들이 가르친 것은 인간 평등이니 억눌리며 사는 하층민들이나 서출들에게는 빛이요 희망이 아닐 수가 없었지요. 정조대왕이 승하하시면서 피비린내는 다시 머리를 쳐들었지요. (조명. 주문모 나와 섯고 강완숙 닥아 간다.)
강완숙: 신부님 상감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주문모: 등창으로 고생 하신다더니...
강완숙: 저희 천주성교의 중심인물이시던 남인 시파 학자들을 아껴 주시고 은연중에 보호해 주시던 상감께서 승하하셨으니 장차 이 나라의 성교가 어찌될지 걱정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정순왕후 김대왕대비께서 벽파들과 짜고 상감을 독살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주문모: 설마하니 독살까지야....
강완숙: 대왕대비 김씨는 영조대왕의 계비입니다. 그 오라비 김구주가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죽게 한 패거리로 당시 세손이던 정조 대왕마저 없애려고 역모를 꾸미다가 귀양 가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앙갚음으로 틈만 나면 남인 시파가 천주성교의 집단이라고 모함을 하여 권력 다툼을 해 왔습니다.
주문모: 이제 나라일이 벽파들과 대왕대비 김씨의 손에 들어갔으니 무서운 박해가 몰아칠지모를 일이겠군.
강완숙: 신부님께서도 더욱 몸조심을 하셔야 겠어요.
주문모: 박해로 선종하신 최인길 회장님을 생각 하면 가슴이 아파져요. 윤유일 형제님도...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묵상해 봤오.
조선의 조정은 잔혹한 짓만 하고... 이 죄를 다 어이 할려고.....생각 할수록 가슴속에 미움이 피어올라 용서라는 말이 무색하오 사제인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강완숙: 신부님을 위해 기구하겠어요.
주문모: 지난 6년간 자매님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 어찌 잊으리오.
강완숙: 왜 새삼스레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주문모: 이제 또 한바탕 박해가 시작 될 것 같아서 그래. 나로 인해 너무 많은 양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아서.....잠시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이 박해가 진정된 다음 다시 올까도 생각 중이오.
강완숙: (단호하게) 신부님 그건 안 됩니다.
주문모: 내가 없어지면 그들도 박해를 중지할 것이오.
강완숙: 신부님이 가시면 밤안개처럼 무리지어 찾아오는 허기진 양들의 영적 양식을 누구에게 받습니까? 신부님이 계시어 그들에게 고해 성사를 주시어 영원을 늘 신선하게 해 주시고 신입교우에게 예비자 교리를 가르치시어 영세를 받게 해 주시느라 지치고 피곤하시고 게다가 포졸들에게 쫓기고 도망치며 밤길 백리 길을 걸어 시골 공소를 순례하시는 신부님의 어려운 사목활동을 뵈며 우리는 희망을 가집니다. 그런데 양들을 두고 가시다니요.
주문모: 그러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죽어가고 또 죽어가는 살육의 마당에서 울부짖는 양들을 보면서 계속 숨어 다니란 말이오. 난 더 이상 못할 것 같소. 자매님이 잡혀가서 악형을 당하고 배교하거나 참수 당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미칠 것 같아.
강완숙: 배교는 안합니다. 주님을 버리고는 이 땅에서도 천상에서도 갈 곳이 없습니다.
전 그걸 압니다. (서쪽새의 울음소리가 피를 토하는 듯하다)
주문모: 그 이상의 은총은 없을 것이야. (긴 사이 서로의 눈빛을 피한다)
미안 하오 신부도 사람이오.

밖에서 군화 발소리가 요란하다. 창검을 든 무리들이 그림자로 난무한다. 조명.

배경 막 뒤. 기치장검이 휘날린다. 강완숙 형틀에 묶인다. 형졸들과
수복이 부복하고 있다. 김화진 들어선다.

김화진: (높이 앉아서) 그대가 사학꾼의 도당이 모인 명도회의 여회장 강완숙인가?
강완숙: 강완숙 콜롬바입니다.
김화진: 사학군의 무리는 국법을 거스르는 대역부도 죄인이란 걸 아는가?
강완숙: 나라에서 그리 정했지만 저희는 죄인이 아니라 나으리 처럼 이 나라의 어진 백성이옵니다.
김화진: 죄인을 스스로 백성임을 포기한 자 들이야. 죄인이 형조에 끌려 오기 전에
회괴한 일이 몇가지 일어났다는 얘길 들었다. 우선 묻겠다. 포도청의 군사들이 죄인의 집을 덮쳐 죄인과 아들을 포박하고 요상 망칙한 그림과 책자와 물건들을 모조리 압수하고 있을 때 집안은 불난 초상집과 같았을 께다. 군졸들의 고함 소리와 비복들의 통곡소리가 대들보를 들썩이고 있을 때 죄인은 하인들을 시켜 술과 밥과 안주를 내었다니 거 괴이하지 않은가?
강완숙: 소인이 보매 그들은 저희들을 잡느라고 주야로 헤매어 피로하고 허기진 모습이 역역하였나이다. 명색이 양반집인데 자기 집에 들어 온 배고픈 사람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조금 요기를 시킨 것이옵니다. 그것이 어찌 회괴한 일이옵니까?
김화진: 그들은 그대들을 잡느라고 온 포도군사들이야.
강완숙: 국록을 먹고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김화진: 딴은 그렇군. 저승사자 같은 무리에게 음식을 주다니 무엇을 원하는 음모였나?
강완숙: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다만 저희들 성교에서는 원수를 더욱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에 이를 실천한 것뿐이옵니다.
김화진: 원수를 사랑하라...? 제 부모의 제사를 안 지내는 금수와 같은 자들이기에 부모죽인 원수도 사랑한단 말인가?
강완숙: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기에 어떤 죄인도 사람에 의한 심판은 아니 되옵니다.
김화진: 그럼 나라의 기강은 누가 바로 잡는단 말인가?
강완숙: 그것은 법으로 보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행해져야 평화로운 나라가 된다고 감히 아뢰옵니다.
김화진: 하느님의 말씀. 그것이 무엇인데...?
강완숙: 그것은 사랑이란 것이 바탕이옵니다.
김화진: 그럼. 사랑이란 무엇이더냐?
강완숙: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습니다.
김화진: 오래 참아?
강완숙: 또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도 무례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안보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김화진: 그만 됐다. 네가 나와 선문답을 하자는 게냐.
강완숙: 여쭈어 보시니 대답을 한 것뿐입니다.
김화진: 그 선문답 같은 괴변 때문에 목숨을 마구 던져 버린단 말이냐?
강완숙: 저희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옵니다.
김화진: 알겠다. 그 알송 모를송 한 말 장난으로 해를 보내진 말자. 그런데 그것이 죄인을 잡으러 간 무지막지한 포졸들에게 술과 밥을 준 사연이란 말이냐?
강완숙: 천주님을 사랑하듯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하옵니다.
김화진: 서로 사랑이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어놓고...? 그도 모를 말이다. 내 아내도 사랑하고 내 친구도 사랑하고 저 행낭것들도 사랑하고... 그 말은 이해를 하겠다만 내게 도둑질을 한 자도 사랑하고 내 자식을 죽인자도 사랑하라. 그건 요설아니냐? 그렇담 죄인이 잡혀 오는 도중 길가에 구경군들이 겹겹이 모여 사학꾼의 여괴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들 하였다는데 그건 어찌 아뢰겠느냐?
강완숙: 그건 사학군의 여괴수를 보러 모여든 사람이 아니라 천주성교의 모임인 명도회의 여신도 회장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이였나이다.
김화진 그 여신도 회장을 무엇 때문에 구경하려 하였는가?
강완숙: 저들은 저희 회원들이 행한 사랑의 행위에 감동하고 있으나 국법이 무서워 그것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사료되옵니다.
김화진: 그대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데?
강완숙: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병든 사람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외로운 사람과 함께 했으며 슬퍼하는 사람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해 주었으며 또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짐을 함께 져 주었나이다.
김화진: 그런 걸 모두 주문모에게 배웠느냐?
강완숙: 주문모 신부님에게서도 배웠지만 말씀의 책자로서 배우기도 했나이다.
김화진: 그것이 무슨 책자이냐?
강완숙: 천주실의 성교요지. 칠극 등입니다. 나으리께서도 그 책을 읽어보시면 이 세상을 사는 이치와 영혼불멸의 진리를 깨달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저 마음속 내면에서 샘솟는 평화와 행복감이 충만해 짐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긴 사이)
김화진: 그래서 주가를 네 집에 숨겨두고 사학을 펴게 했느냐?
강완숙: 처음에는 제집에 얼마동안 계셨으나 후에 다른 데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 셨습니다.
김화진: (고함친다)6년이 얼마나 긴 세월이냐! 지금까지 너희 집에 숨겼다가 얼마 전에
다른 데로 숨긴 걸 다 안다. 그놈이 있는 데를 이실직고 하렸다. 그러면 네가 양반집 부인이니 너그럽게 용서 하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나라 법을 어긴 대역죄로 다스릴 것이야.
주가 놈 있는 곳만 대라. 그러면 너는 당장 풀어줄 것이야.
강완숙: 저도 그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또 안다 하여도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김화진: 말 할 수 없겠지. 포도청에서 다리 뻐가 부러지게 가위주리를 네 번이나 당했다지? 당근 질과 태형도 맞았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말하지 않아 이 여자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라 했다지? 이 나라에선 양반집 부녀자에게 가위주리 같은 악형은 행하지 않는 법이거늘 어지 그런 형벌을 당했는고....(감정이 흔들리듯) 대역부도 죄인에 연좌되었기 때문이야.
강완숙: 천주님을 사랑하기에 받는 어떤 고통도 감사하며 또한 천주님을 증거하기위해
당하는 참수치명은 크옵신 은총으로 알겠나이다. (긴 사이)
김화진: (소리친다)이 여인의 결박을 풀어주라! (측근을 부른다)수복아. 수복아...!
수복 : (급히 대령한다) 예에 대감마님.
김화진: (손짓으로 형졸들을 다 나가라 한 후 수복에게) 용봉탕을 가져오너라.
(좌불안석하며 그녀 주위를 맴돌다가)나를 보라 강완숙. 나를 알아보겠느냐?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강완숙: 울던 아이도 그 목소리만으로 뚝 그치고 세도 높으신 당상관 나으리들도 벌벌 떠는 형조판서 어른을 왜 모르겠습니까?
김화진: (낮게) 그게 아니고 나를 어디에서 본 듯한 생각이 없느냐 이 말이다.
강완숙: 그 옛날 친정집 작은 사랑에서 오라버니들과 동문수학 하시던 김화진 나으리를 왜 모르겠습니까?
김화진: (용봉탕을 받아들고) 옳지 바로 맞추었다. 진작 알아맞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용봉탕이야. 잉어에 인삼을 넣고 밤새 고라 했어. 네가 그동안 가진 악형으로 굶주리고 지쳐 있을 것 같아 준비시킨 것이야. 이제 천천히 한술씩 뜨면서 얘기를 계속 하자.
강완숙: 고맙사옵니다. 그러나 목에 넘기지 못할 것 같사옵니다.
김화진: 바쁠 것 없다. 나에게는 다급 한 일이지만 네게는 서두를 일이 아니란 말이다. 천천히 한술씩 떠 넣어라. 사실 난 너를 이런 곳에서 만나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인간의 운명이란 언제나 기구하게 짜여 지는가 보다. 지난 몇 년 전 포도청에 수장으로 있을 때 너를 만났었지. 그대 넌 사학죄수에게 밥을 넣어주다가 잡혀 왔었다. 생각나느냐. 그때 난 네가 그 죄인들이 불쌍해서 도와주었다 하길래 그 말을 믿고 너를 훈방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문모가 네 집에 묵고 있다는 걸 배교자 김여삼이가 밀고 하였으며 네 몸종이 그 말을 자백 했다. 그러니 어찌 너를 내보내 주겠는가. 너는 이제 말을 안 할 것이지만, 나는 그 중국인이 있는 곳을 너로부터 알아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처지가 되었다. 가진 악형으로 목이 부어 음식을 넘기기 어렵겠지만 한술씩 떠 넣도록 해 봐라. 내가 떠 멕여 주랴? (강 고개 젓는다. 긴 사이. 혼잣말처럼) 삼십 년 전 일이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이었지. 너희 작은 사랑에서 글을 읽던 우리는 The아지는 졸음으로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때 네가 찬 냉수에 꿀물 쟁반을 들고 거길 왔었지. 너의 그 섬섬옥수와 한 대접의 밀수는 내 졸음을 번쩍 깨게 했었다. 밖에서는 매미소리가 한가롭고 너는 빈 대접을 받아들고 한참 동안 거기서서 우리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너는 거의 매일 와서 우리들의 목을 축여 주었고 어떤 날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어. 그때 나는 너를 보고 황홀한 감정을 느끼곤 하였지.
강완숙: 주님께서는 매순간마다 그처럼 오시어 마실 것을 주십니다. 또한 주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황홀한 감정을 느끼게 되옵니다.
김화진: 그때 네게 연정을 품었었다는 말이다.
강완숙: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옵니다. 그렇게 그분을 사랑하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실 수 있사옵니다.
김화진: 천주 얘기는 두었다 하자. 지금은 우리의 얘기를 할 때이다. 그때 난 밤마다 그대의 꿈을 꾸었다. 너는 그때에 어떤 생각을 하였드냐?
강완숙: 저도 그때에 나으리의 글 읽는 소리가 몹시 좋았었나이다.
김화진: 네가 서출만 아니었어도 우리집안은 너희에게 청혼을 하였을 것이다.
강완숙: 제 처지를 잘 아는지라 탑골 승방에 들어가 불제자가 되려 했나이다.
김화진: 그 얘기는 들었다. 그러면 그때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될 일이지 왜 어려운 처지를 만들고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강완숙: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으로 승방에서 못 찾은 진리를 천주실의 안에서 찾았나이다. 그 진리의 나라에서는 양반이니 향반이니 하는 것이 없고 서출이니 적자니 하는 차별도 없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귀하고 천함은 없나이다. 선인이나 죄인들 까지도 천주님의 사랑하는 자녀일 뿐입니다. 이세상은 잠시의 들풀언덕과 같고 천주님의 나라는 영원하니 나으리께서도 그 진리를 믿으셔야 합니다.
김화진: 내가 장원급제로 등과할 때 네 아비 강진사에게 너를 소실로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너를 그 무골호인 홍지영의 후처로 보낼 줄을 몰랐다. 너를 차마 소실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후처가 소실보다 나을 것도 없지 않느냐? 후회막급이다.
강완숙: 소인은 나으리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나이다.
김화진: 지금이라도 사학을 버리고 나와 남은 생애를 함께 하면 어떻하냐? 내 후원에 별당이 비어있어. 거기에서 혼자 조용히 그 교를 믿으면 되지 않겠냐.
강완숙: 저는 천주성교를 믿는 여인이니 이 나라의 법대로 하여 주소서.
김화진: 지금 청국인 주가의 거처를 대고 그 천주사학을 버리겠다고 하지 않는 한 참수형을 당할 수밖에 없어. 아직 젊은 나이이고 할 일도 많을 텐데 잠시 거짓 배교하고 풀려 난 다음 다시시작하면 되지 않겠냐? 성난 파도가 몰아칠 때는 배를 잠시 포구에 넣었다가 항해하는 것이 뱃길을 가는 지혜 아니냐.
강완숙: 저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순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김화진: 그런 요설을 주가와 토론으로 족 하느니라.
강완숙: 그분은 사제로서 저희에게 영적양식을 주실 뿐이었습니다.
김화진: 그럼 한마디 더 묻겠다. 천당 가는 길은 좁고 지옥 가는 길은 넓다며?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좁은 천당 말고 넓은 지옥 길로 가면 어떻겠냐?
강완숙: 나으리께서 만권의 책을 보신 걸로 압니다. 그 지식이 모두 어디에 있사옵니까.
다섯자 몇 치의 나으리 몸속에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만권의 책을 보신다면 나으리의 몸이 커지실 것입니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은 바로 그러하옵니다.
김화진: 정말 말은 잘 한다. 내 만권의 책을 읽고도 당할 수가 없구나. 생각건대...
나도 애긍심을 털끝만치 갖춘 인두겁을 쓴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난리가 웬 말이냐.
나라 법을 어겼으니 법대로 해야겠지. 죄란 바로 그런 것이야. 내 기필코 청국인 주가를 잡아들이겠다. 그래서 그가 너희 집에 숨어 있지 않았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겠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그 기록으로 너를 살릴 수 있을 것이야. 죽을 사람은 주가 하나로 충분해! (수복이 들어와 대령한다)
강완숙: 제발 그리 마옵소서. 머리 숙여 간청 드립니다.
김화진: (수복에게) 무엇이냐? (귀에 대고 소근 거린다) 상복을 입은 자가 조랑말 한필로 자하문 밖으로 빠져나갔다구? 그가 청국인 주가 아니겠냐? 발 빠른 말을 대령해라.

조명과 함께 망난1 풀숲 가운데에 쭈그리고 있다가 일어나며 바지춤 여민다.
막 뒤를 보고 일어나는 것이다. 뻐꾸기 소리. 그는 고개를 돌려 뻐꾸기를 찾는다.
순이 급히 등장한다. 보퉁이를 들었다.

순이 : 아버지!
망난1: 순이야. 네가 몹시 보고 싶었다. (손잡는다)
순이 : 편찮으시다면서요.
망난1: 그 녀석에서 들었냐?
순이 : 환약을 지어오겠다며 김주부에게 간데요.
망난1: 내 걱정은 마라.
순이 : 그거 어째셨어요.
망난1: 그거라니?
순이 : 강완숙 마님이 주신 치맛자락이요.
망난1: 그걸 애들에게 빌려 췄는데....
순이 : 애들 누구요?
망난1: 넌 모르는 애다. 나도 잘 몰라. 다만 이 근처에서 노상 만나는 애들이란다. 그 애들은 박물장수들이 가르쳐 준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강완숙 마님이 돌아가시었어도 박물 장수들이 지금도 있는 게냐?
순이 : 그 분들은 이세상이 끝나도록 계실 꺼에요.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찾지요.
망난1: 그 애들 염려는 마라. 이따가 해질녘이라도 여길 지나갈 꺼다. 그 애들 어미가 몹시 아프다는 구나. 그 어미가 낳으면 고마워서라도 여길 올 것이야. 그런데 참수당한 사학죄인의 피 묻은 걸레가 신통을 부린다는 말 너도 들었냐? 그런 말을 믿어도 좋을지 원....
순이 : 믿으셔도 될 것이예요. 참수치명보다 더 큰 은총이 없다 했지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오묘하신 증거가 도처에서 보여 지고 있다구요. 모두 그걸 찾느라고 눈이 빨개 질 것이구요. 설마 아버지가 그걸 가지구 계시리라 생각지 못하겠지요. 마님의 당부에요. 교우촌에 꼭 전하라 했어요. 그걸 땅에 묻어두었다가 이다음 성교가 자유로워 질 때 그곳에 성당을 지으시라 했어요.
망난1 : 알았다. 세상 천지에 하나밖에 없는 혈육의 부탁인데 어쩌겠냐. 목숨 걸고 잘 간직하고 있을 테니 염려마라.
순이 : 아버지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아버진 시방 세상에서 가장 험한 일을 하세요. 이제 저 세상으로 가실 때 영생복낙을 준비하셔야 해요. 주문모 신부님께 성세를 못 받으신 게 한스러워요. 전 지금 쫒기는 몸이에요. 산골 깊은 곳에 교우촌이 있어요. 게 가서 연락 할 테니 아버지도 그리 오세요.
망난1: 저 녀석과 함께 가거라.
순이 :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요. 아버지....!(서둘러 큰 절 올린다)
망난1: (눈물 짜며) 너를 봤으니 죽어도 원은 없다.
순이 : 아버지. 소식 드릴테니 기다리세요.
망난1: 어서 가거라. 어서... (순이 급히 퇴장한다. 뻐꾸기 소리) 염병할 뻐꾸기. 울어라. 실컨 울어! 피를 토하고 실컨 울어버려! (반대쪽에서 망난2 등장한다)
망난2: (둘러보고) 순이는요?
망난1: 가버렸네.
망난2: 왜요. 얼마 만에 왔는데 후딱 가면 어째요. 기다리라 해야지요.
망난1: 쫓기는 몸이래.
망난2: 왜요? 왜 좇겨요?
망난1: (버럭 지른다) 그건 네놈이 알아서 뭐해. (자제하며) 나도 모르겠네. 왠지...!
(포졸 몇이 급히 등장한다)
포졸 : 이것봐. 여기 웬 계집아이 하나 지나가는 것 못 봤어?
망난1: (칼 고쳐잡으며) 봤습죠.
포졸 : 어디로 가든가?
망난1: 인석아 네놈도 봤지. 그 애가 어디로 가든가?
만난2: 글쎄. 이쪽? 아니지 저족인가?
망난1: (칼을 휘둘러 가르키며) 이쪽이면 이쪽이고 저쪽이면 저 쪽이지 이 쪽 아니면 저쪽은 또 뭐냐?
망난2: (같이 칼 휘두르며)이쪽 아니면 저쪽이- 조쪽 아니면 요쪽이지 뭐유.
(포졸들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춤을 피하느라 허둥댄다)
망난1: (반대쪽을 가르키며)저 쪽으로 뛰어갑디다. (포졸들 그쪽으로 달려 나간다.
망나니들 순이 나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뻐구기 소리 계속 난다. 조명)

배경막 뒤에 조랑말을 탄 주문모신부가 힘겹게 무대를 가로지르는 실루엣. 푸른 달빛이 그의 등 뒤를 따른다. 멀리서 승냥이 우는 소리가 괴기스럽다. 스크린에선 서부영화의 한 장면같이 김화진과 형졸들이 질풍같이 말을 달린다. 이에 따른 음악 고조된다.
압록강가의 한 숲이다. 무대 한편에서 주신부 제구를 땅에 묻는다.

주문모: 천주님. 이 강만 건너면 청국 땅 이옵니다. 제가 이렇게 제의와 제병들을 이 강가에 묻고 감은 이 나라를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로 인해 많은 양들이 잡혀가 혹독한 형벌로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없어지면 당분간 학살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때 다시 돌아와 양들을 사목 하겠나이다. (김화진 뒤에서 주문모를 공격한다. 주신부 무의식적인 쿵푸동작으로 방어한다)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시오? (일으켜 주려고 손을 내 민다)
김화진: (넘어진 채) 네가 사학괴수 주문모렸다.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주문모: 대감이 내게 덮쳤을 때 나는 백두산 호랑이인줄 알았소. 그런데 다시 보니 이 나라의 호랑이격인 형조의 우두머리니 어찌하겠나이까. 아직은 이 나라 땅에 발을 딛고 있으니 순순히 앉아 오라를 받겠나이다.
김화진: (갑자기 칼을 빼 들고 화를 낸다) 아니, 너 같은 놈은 오라를 지을게 아니라 목을 쳐 선참후계 해야 마당하리라. 네 놈 명색이 사학 교도의 괴수일진데 졸개들은 잡혀서 가진 형벌로 피 흘려 죽어가면서도 그 괴수에게 충성을 다 하는데 네 놈은 혼자만 살려고 도망을 치다니 말이 되느냐. 너로 인해 죽은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너로 인해 차디찬 감옥에서 신음하는 자 몇몇인 줄 아느냐? 굶주리고 매 맞고 주리 틀리는 그 형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건지 아느냐?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내 아무리 치죄하는 형조판서의 몸이지만 가슴이 메어지고 식은땀을 아니 흘린 적이 없었다. 그런 고난을 영광으로 아는 무리들을 버리고 다라 나다니 그런 염치가 있는가. 청국인은 의리로 산다더니 금수만도 못하지 않은가!(칼을 들어 친다)
주문모: (칼을 피하며)잠깐. 묻겠소. 강완숙자매는 어찌되었소?
김화진: 네 놈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준 그 여인? 아름답고 똑똑하고 영리한 그 여인. 호걸남아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그 여인. 중년의 우아함이 넘치는 그 여인은 좌포청에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가위주리를 네 번이나 당하고 살이 터지게 곤장을 맞고 담금질을 당하고 형조로 왔어. 온 몸에 성한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는데 생명은 별빛처럼 반짝여 살아있다.
주문모: 오 주여.
김화진: 눈이 샛별처럼 빛나.
주문모: 오, 예수마리아.
김화진: 육년을 그 집에서 살았다니 정도 많이 들었겠지?
주문모: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져 말을 못 하겠소.
김화진: 그런 사이였나?
주문모: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오.
김화진: (감정을 억제하며)강완숙이도 그런 소리를 했어.
주문모: 감사주은 이로다.
김화진: 그렇담 함께 도망칠 일이지 어째 네놈만 도주하는 게냐!
주문모: 나는 도망치려는 게 아니오.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하거늘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양들이 목자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비극이요.
그것이 천주님의 듯이어도 그 잔을 마시기가 괴롭소. 그래서 잠시 피하려는 것 뿐이오.
더 이상 양들이 피를 흘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내 소망이오.
내 말을 못 알아들었으면 내 목을 치시오.
김화진:(기진하여) 당신을 잡아가야 강완숙을 살릴 수 있다 생각했소. 그런데 당신을 보는 순간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오. 당신이 내 조작극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인물이라는 판단이 섯기 때문이오. 헤엄은 잘 칠 줄 아시오?
주문모: 잘 모르겠오.
김화진: 그럼 나룻배가 오길 기다려야 겠군.
주문모: 그래야 되겠지요.
김화진: 저기 보이는 저 섬 있지 않소. 거기가진 갈수 있겠지. 거기가 청국 땅이오.
주문모: 오라는 어찌 하시고..?
김화진: 청국 땅에 가 있으면 아무도 오라를 못 지우지 않소?
대왕대비마마가 아시면 날 죽일꺼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피는 흘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내 마음속의 얘기요.
주문모: 대감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관리이십니다. 나으리 같으신 관리가 있는 이상 이 나라는 흥할 것 입니다. 우리 성교회의 형제들이 지금 받는 시련은 대박청원 때문에 더 클 것입니다. 서양인의 큰 배를 불러다가 입금을 겁박하겠다는 생각, 그것은 이 나라 조정에서 생긴 오해입니다. 이 나라 조정에선 잠을 깨야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옵니다. 지금 만국에서는 새로운 문화와 문병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고 청국에서도 그 옷을 가져 왔습니다. 그 새로운 문명들을 큰 배에 싣고 와서 이 조선 땅을 부강하게 할 수 있다는데 그 말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 땅은 너무 가난하오이다. 이 땅은 너무 추워요. 그 새로운 문명이 이 땅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해 줄 것입니다. 그걸 믿으셔야 하오이다. 그걸 조정에서 믿도록 힘써주소서.
김화진: 당신 말은 그럴 듯하지만 난 문방사우의 이복동생을 살리고 싶은 마음뿐이오.
주문모: 나으리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 자매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죽음으로서
자신을 살리는 길로 들어선 것이고 나으리는 삶으로서 죽는 길목에 섰으니 먼저 자신부터 살리시지요.
김화진: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린가.
주문모: 나으리께 영세 성사를 주어야 겠다는 소립니다.
김화진: 아서 그만 두어.(다가서는 주신부를 피해 물러서며 사람을 부른다)
수복아! (가위눌린 사람처럼) 수복아. 수복아. 어디 있느냐.
주문모: 나으리의 내부엔 이미 천주님의 영이 들어가 있나이다.
김화진 수복아!
주문모: 이제 자신이 마음을 비우고 받아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김화진: 수우보옥아...!
주문모: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삶을 찾는 길이지요. (수복과 형졸들 등장한다)
김화진: 네놈들은 어디에 갔었느냐!
수복 : (장검을 뽑아들고)나으리를 찾느라고 계곡을 삿삿이 헤매고 있었지요.
김화진: 어리석은 것들.
수복 : 나으리야 말로 지척에서 사라지시더니 여기 계시었사옵니까.
김화진: 어서 가자.
수복 : 그런데 저자는 누구이옵니까?
김화진: 장주부라고 이 고장에서 약초를 캐는 사람이래. 낮선 자를 못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한식경에 강물 속에 뛰어들어 헤엄쳐가는 나그네를 보았다는군. 주가 놈은 벌써 청국 땅으로 내 뺐을 께다. 그만 돌아가자. (주신부 성호 긋고 하늘을 본다)

새 조명과 함께 다시 김조순의 사랑이다.

기찰 : 그... 그래서... 잡았던 주가 놈을 나으리가 놓아 주셨단 말이오.
김화진: 어처구니 없게도 그 모습이 나로 하여금 돌아서게 한 것이오.(한숨)
기찰 : 그게 그 말 아니오. (빈정대듯) 형조판서라는 사람이 그 깐 청국 뙤놈 용모에 질려서 도망을 쳤다. 하...!
김화진: ..........!
기찰 : 나으리도 사학 도당이 된 게 아니오이까? 사학도당은 대역죄인이오. 소인은 그런 자를 잡아드리는 게 소임이오.
김조순: 이 사람아 자중하게. (김화진에게) 이 사람의 직무가 그렇다는 말이지요.
기찰 : 아니면 고무찬양이오.
김화진: 주문모는 이미 죽었고 그래서 형판자리를 내놓고 낙향하던 길 아니오.
기찰 : (김조순에게) 아시고 싶은 것은 강완숙의 치맛자락 아니오이까?
김조순: (헛기침)어흠....
김화진: 압록강까지 따라가서 주가를 놓아 보냈는데 기이한 일이 생긴 건 아시지?
기찰 : 그 후 주가는 의금부에 가서 자수를 했지요.
김화진: 강을 건너려는 주가 앞에 나룻배 한척이 지나갔는데 그 사공 하는 말이 목자가 양과 함께 죽으려면 살 것이고 양을 떠나 혼자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오. 하며 배를 태워주지 안더랍니다. 그 소리를 들은 주가는 그길로 돌아 와서 자수를 했다 하오이다. 그가 의금부가 아닌 형조에 와서 자수를 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았을 것이오이다. 의금부는 대왕대비마마의 힘을 더 받았으니까 말이지요.
기찰 : 그래서 강완숙의 목도 망나니의 칼에 날아가고요? (김조순에게 귀속 말로)대감마님 강완숙의 치맛자락을 찾으려면 저 양반을 공초해 봐야 할 뜻 합니다요.
김조순: 어흠....가만 있어보게. 망나니..!
기찰 : 망나니요? 내 그럴 줄 알았어. (벌떡 일어선다) 망나니 놈이 가졌다.
김조순: 그자를 잡아오게.


김화진 배경막 속의 과거 조명으로 들어간다. 수복이가 그에게 관장의 의관을 챙겨
입힌다. 테마음악 조명 속은 서소문 밖의 형장이 된다. 강완숙과 기치창검의 형졸들, 망나니들. 북소리의 긴장이 시계 침 소리처럼 울린다. 김화진 두루마리를 펼쳐든다.

김화진: 죄인 강완숙등은 나라에서 금하는 사학에 미혹되어 사학 괴수 청국인 주문모를 섬겨 콜롬바란 세례명을 받아 그를 숨겨 거두어 주며 사학을 천지사방에 퍼트렸다. 또 대역 죄인으로 수배된 황사영에게 상복을 지어 입히며 피신시키어 왕명을 거역했으며 스스로 사학의 여괴수가 되어 동정녀의 신비라 하여 처녀들을 시집 못 가게하며 인륜을 파괴하였다. 또 자신은 과부 행세로 방물장수로 가정하여 사학을 전국에 퍼트리고 남녀가 유별함에도 평등하다는 주장으로 한데 모여 경을 외우고 첨례를 같이하여 미풍양속을 저해하였으며 삼강오륜을 범하였고 혹세무민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한 대역부도 죄로(목소리를 몹시 떨며) 참수형에 처하노라! 아울러 동조자 강경복, 김연이, 한신애, 궁녀출신 문영인도 참수형에 처하노라!

북소리 빨라지며 망나니들 열광스레 춤춘다. 그중에 망난1과 망난2가 섞여있다.
강완숙 나직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른다.

망난1: (칼춤을 추다가) 마님 소인을 알아보시죠?
강완숙: 순이 아비 아닌가?
망난1: 맞습니다. (코를 행 풀고) 염려 마십시오. 편안하게 해 드리지요. (망난 2에게)인석아. 넌 저 쪽에 가서 신명나게 춤춰서 사람들 정신을 빼 놔라.
망난2: 그런데 장인님. 마님께선 참수형을 당하시는데도 큰 잔치 집에 초대받아 가시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표정이시니 이해가 안 갑니다요.
강완숙: 순교치명은 천주님의 대궐에 잔치초대 받은 것이나 같은 것이라네.
망난1: (망난2에게 어서 춤추라고 밀어내고) 제 자식 순이의 죄를 용서 하소서.
강완숙: (치마 자락을 주며) 이걸 잘 간직 하다가 순이에게 전해 주시게. 주문모 신부님과 우리 성교행적을 낱낱이 적어 놨어. 그것이 있는 곳에 성전이 크게 지어질 것이네.
김화진: (높은 대위에서) 뭐 하느냐. 죄인의 웃옷을 벗기고 양귀에 화살을 꽂고 얼굴에는 백회를 뿌리어 회칠을 하렸다.
강완숙: (근엄하게 큰 소리로) 나라 법에 죄인의 목을 칠 때 웃옷을 벗기기로 되어있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그러나 여인들의 옷을 벗김은 수치의 형벌을 더 하는 것이오니 이왕에 목을 치는 죄인이니 그냥 이대로 하서서. 형판 나으리께서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김환진: 죄인의 청을 들었느냐?
망나니들: 예이-
김화진: 죄인의 청대로 하라. 그리고 그대들이 나에게 형을 받는 마지막 죄인이 되기를 바란다. (목소리가 떨린다) 북을 울려라 .북을 울려 법을 집행 하렸다. (거의 울음소리로) 바라노니 이제 너희가 믿는 좋은 나라로 가거라.

김화진의 울음소리는 북소리에 묻혀 버린다. 망나니들의 칼춤 안무가 길게 진행된다. 주제음악 고조되다가 한순간 뚝- 그치며 천지가 붉은 노을처럼 물든다. 정적. 강완숙이 앉았던 자리에 별빛 하나가 가물거린다. 조명.

다시 김조순의 사랑. 청직이 신이 나서 들어온다

청직이: 대감마님. 방금 대비 전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경하 드리옵니다.
기찰 : 되기는 무엇이 되었다는 말이오?
청직이: 대감께서 부원군이 되신 것입니다.
기찰 : 부원군 나리가 되셔?
청직이: 대감마님의 셋째 따님이 중전마마님으로 간택이 돼셨다 이 말씀이오. 어험.
이제 우리 나으리께서 홍문관 대제학겸 장용대장에 국구영안 부원군. 일인지상에 만인지상이라.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세도가 이집 대문에 뚝 떨어졌다 이 말이오. 어험. (퇴장한다)
김화진: 진정으로 감축 드리옵니다.
김조순: 고맙소이다.
김화진: 이제 대감께서 대왕대비마마의 수렴청정을 거두시게 해야 합니다.
기찰 : 반골 같은 소리만 하셔.....
김조순: 이제 철렴환청 하시고 상감께서 친정 하실 때가 되었지요.
김화진: 무고한 백성들이 사학을 한다는 명목으로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도록 힘써주시오.
기찰: 내놓고 사학죄인들을 비호하네...
김조순: 안 그래도 토사교문의 초안을 작성해 놨지요. 죄인들 중 일단 벌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죄를 캐지 말고 또 숨어사는 죄인들을 이 잡듯이 삿삿이 뒤져 잡지도 말라는 어명이 내릴 것이오. 혼자만 알고 계시오. 사학을 금하는 국법은 아직 철회하지 못합니다.
(청직이 다시 등장한다)
청직이: 아이고 아이구 대감마님!
김조순: 이 경사스러운 날에 웬 방정곡성이냐?
청직이: 방금 경운동 큰 마님께서 천수를 마치시었나이다.
김조순: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셔...! 이런 불효가 있나. 임종도 못보고.... 이제 날마다 좋은 세상이고 정경부인 작이 내리실텐데 돌아가셔...백약이 무효인 어머니의 병환에 효험이 있을까 하여 이일을 시작 했거는...그걸 기다리지 않고 수를 다하시다니... (김화진의 손을 잡고) 대감 다시 조정에 나와 상감을 도와주시오.
김화진: 가슴 깊은 곳의 병부터 추스르고 나서요.

김화진, 뿌리치고 돌아서서 걷는다. 기찰 그를 바라보며 화가 나서 발을 구른다.

새 조명 속에서 김화진 뒤를 수복이 따른다. 망나니 1과 2가 어정거리며 오다가 그들을 보고 숨으려 한다.
김화진: 이젠 우리들 앞에서 숨지 않아도 되네. 자넨 똥질하던 병이 어찌되었나?
망난1 : 말짱하게 다 낳았습니다요.
망난2 : 이놈이 환약을 지어왔는데 그걸 먹기도 전에 신기하게 낳았지 뭡니까.
김화진: 알았네. 그럼 어서 가세.
수복 : 어서 따라 오렸다.
망난2 : 가시자니요. 어디룹쇼.
김화진: 자네들이 찾아나 선 곳 말이야. (앞서서간다)
망난1 : 그곳이 어딘 뎁쇼?
수복 : 자네 색씨가 있는 곳 이야.
망난2 : 소인의 색씨요?
수복 : 벌써 잊었나. 자네 색시감이 누군가?
망난1 : 에고. 우리딸년 순이...? 거기가 어디죠?
수복 : 교우 촌이야. 어서 따라오게.
망난1 : 그런데 나으리께서 소인이 똥질 했던걸 어찌 알았을 까요?
수복 : 나으리가 누구신가. 나으리는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신 분이라네.
망닌1 : 저희가 은밀히 교우 촌을 찾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계셨다 이 말씀이죠?
수복 : 자네가 교우 촌에 가 있는 딸 순이를 찾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계셨네.
망난2 : 거 귀신 빰 칠 어른이네.

(망나니들 신바람이 나서 따라간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나온다)

아이들: 먼동이 틈니다. 잠을 깨세요. 동녘 하늘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이 새벽 안녕하세요.
아이1: 아저씨 이거. (망난1에게 강완숙의 치맛자락을 준다)
망난1: (받아 허리춤에 넣으며)엄만 어떠하시냐?
아이2: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어미 병이 싹- 낳았어요.
망난2: 거 신통 망통하네.
망난1: (허리춤에서 꺼내 김화진에 내밀며) 나으리.
김화진: (받으려다가) 자네들이 챙기는 게 더 좋겠네.
망난1: (망난2에게 주며) 엤다 네놈이 챙겨둬라.
망난2: (받아서 코를 벌름대며) 아 이 좋은 냄새. (품속에 간직한다)
아이1: 우린 가자(노래 부르며 뛰어간다. 기찰포교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김화진 : 얘들아. 느이들 그 노래 어디서 배웠냐?
아이1: 박물장수 아주머니가요.
김화진: 박물장수 아주머니들이 아직두 있어?
아이2: 아니요. 강완숙 마님이 가르켜주었어요.
김화진: 강완숙 마님?
아이1: 예에, 그 마님이 박물장수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왔어요.
김화진: 어디서 그분을 봤는데?
아이들: 저기요. 저어기.

아이들은 강완숙이 처형당한 자리에서 떠오르는 한 점의 불꽃을 가리킨다. 순간 불꽃은 하나가 둘, 셋으로 늘어난다. 불꽃은 촛불을 든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되어 무대에 가득 차며 노래로 이어진다.

노래: (마냐니따의 노래) 먼동이 트네요. 잠을 깨세요. 동녘 하늘에....
저 하늘에 별둘 따다가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기쁨의 하나는 사랑의 선물이 되시게....

기찰포교도 슬그머니 그 속에 끼어든다. 그만이 촛불대신 번쩍이는 비수를 들었다. 그는 슬그머니 망난1에게 다가간다. 노래 계속되고 기찰포교의 행동은 매우 은밀해서 눈 빠른 관객만이 감지할 수 있다. 기찰 망난1을 끌고 무대 한편인 서소문 형장터로 간다. 잠시의 몸싸움. 기찰 망난1의 목을 서리한 닭 목을 비틀듯 해서 긋는다. 그리고 그의 품속을 뒤진다. 그의 몸에선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실망스러운 표정의 기찰. 그는 먹이를 찾는 솔개처럼 다른 대상을 찾으나 어딘가 외롭게 보인다. 노래 계속 되는데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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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광이 file 웹관리자 2015-04-25 1018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