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성 수필가

조회 수 2162 추천 수 3 2023.10.01 08:18:06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를 가로지르기

                    - 정복성의 수필집 무언, 무형의 유산에서의 사유

 

 

                                                                                       강 정 실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인간은 무엇인가 기억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기억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힘의 원천으로서, 자기를 인식하는 준거점 혹은 기억하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론적 근거로 파악된다. 수필문학은 타 장르에 비해 지나치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을 자주 받곤 한다. 이처럼 그동안의 수필문학은 개인적이고 문화적 추억에만 안주해 있고 인간정신이 앞과 뒤 모두에 열려 있음에도 추억 찾기에 몰두해 있다. 수필이 살아 있는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선택된 생활의 경험 나열이 아닌, 문학적 경로를 거쳐야 할 것이다. 문학이란 언어로 표시된 예술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탐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가다머(H.G. Gadamer)는 이러한 고루한 진부적 존재를 쉼 없이 밀어내어야 하며 새로운 사유의 변화를 강조한다. ‘새로운 사유는 변해야 산다라는 말에는, 생존, 창조, 발전, 진보, 개혁 등의 패러다임의 개념에 함의되어 있다. 과거의 사실을 재해석하는 것은 의미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즉 새것은 다시 헌 것이 되고, 헌 것은 새것처럼 나타나기도 하는 현상 말이다. 그 속에는 우리들의 삶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바로 인간학이다. 다행히 요즈음의 수필에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짐짓 요즈음의 탈장르적 길을 벗어나는 시적이면서도 흥미있는 담론의 구조를 지니는, 반전의 묘미나 비평적 감수성을 지니는 다양한 수필들이 쏟아지고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들어가기

 

하루 날을 잡아 그곳을 간신히 찾아갔다. 말로만 듣고 상상하던 여주인을 겨우 만났다. 그녀의 우아한 차림과 모습, 첫인상에 홀딱 반하여 믿음이 갔다. 소개받은 연유를 말하고 눈 상담 이야기를 꺼내려 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퇴짜 맞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 척 훑어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수술을 안 한다는 것뿐이었다. 놀래고 속상했다. 속이 치밀었다. “돌팔이가 뭐 그렇지!”라고 투덜대며 뒤돌아섰다. 헛걸음과 수치와 모욕감을 변명, 자위, 정당화하려고 떳떳하게 이름난 병원을 일부러 찾아갔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성형전문의 박사의 특진으로 수술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놀란 토끼 눈같이 눈꺼풀이 뒤집어 까져서 밤에 눈을 뜨고 자야 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도사쯤 되는 돌팔이는, 해부학 지식은 없어도 어떻게 수술하는지 풍부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될 것안 될 것’. ‘할 것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하고 능숙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풋내기 전문의 박사는 좌표에서 목적지 위치를 잘 보고 찾아내지만 어떻게 답사하는지는 아직 낯설다. 물론 초급 돌팔이나 풋내기 전문의 박사는 실전이 부족하여 익숙지 않아 서투른 점은 매일반이다.

- 아이러니, 부분

 

여고 동창들 중 예쁘게 눈꺼풀 성형수술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낸다. 그리고는 불법 시술의사를 찾아가 상담했으나 단칼에 거절을 당하고는, 이름이 있는 전문성형의사를 찾아 시술한다. 실전에 약한 풋내기 전문의사였다. 결과는 참담한 결과가 나온다. 화자는 이렇게 설명해준다. 이골이 난 돌팔이는 무난한 여건의 눈꺼풀만 골라서 시술하고, 말썽을 일으킬 만한 눈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처음부터 현명하게 거절한다고. 이런 사고는 경험적 인식과 소통의 담론과 직결됨을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지만, 인간의 사유와 도덕적 상위의 무조건상에 대한 굳센 믿음과 헛된 믿음에는 끔찍한 두 개의 상투어가 숨어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시대라는 근거 없는 시대의식이며, 또 하나는 새로운 사유라는 오래된 환상을 뜻함이다. 이렇게 한 일상적 소재가 <아이러니>이지만 외과의사의 눈으로 보는 평범하지 않고 일상적이지 않다는 데에 이 수필이 갖는 장점이 있으며, 해석의 자유로움과 낯선 시각이 문학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 시절, 김 학장은 모든 학생의 신상을 깨알같이 적은 수첩을 늘 손에 쥐고 다녔다. 겉보기에 노인의 기억상실증으로 여겼으나, 사실은 매 학생을 대할 때마다 진심으로 대하려고 먼저 신상을 파악하려고 그랬던 것 같았다. 어느 강연장에서 연사가 아무리 혼자 열변을 토하거나, 박식한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면 수강생은 그러한가 하고 여길 뿐이다. 교회 목사가 열성으로 설교해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분명히 소통의 불통이다.

대화법에서 공감(Empathy)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 상대를 이해하며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시작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 요건이라 한다. 말하는 언어의 선택도 중요하다. 한 예를 들면, 응급실 의사가 방사선 사진을 가리키며, 가슴에 타박상을 입은 환자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한 교양 있어 보이는 환자에게 우측 제7 늑골이 골절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하면 무난하다. 일반인은 대개 가슴뼈에 금이 갔다.’, ’갈비뼈가 불어졌다.’라고 하여도 잘 통한다. 깡패에게는 서너 대 나갔다.’라고 귀띔하면 금방 알아차린다. 언어불통의 외국인도 사진상에 손상 부위를 아무 말 없이 손끝으로 보여주면 고개를 끄떡인다. 소통은 상대성이므로 쌍방이 건실하지 않으면 대화가 부실하게 된다. 순탄하면 일이 잘 풀리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다. 이해관계 때문이다.

  - 아름다운 소통, 부분

 

화자는 의과 대학시절 김 학장의 이름을 자주 등장시킨다. 그만큼 학창시절 김 학장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제자였을 것이다. 화자에게 인간관계란, 삶에 대한 하나의 보호구역이다. 그것의 중요성과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공통의 분모이다. 이런 존재사태의 해결은 소통과 신뢰라고 말한다. 일찍이 니체는 그의 권력에의 의지짜라투스트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을 통한 세계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과 몸의 해방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전복과 해체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뢰와 소통"이라 했다. 그 소통 속에서 자연과 소통할 수 있고, 음악가는 악보 속에서 이 곡을 작곡한 작곡가와, 신앙인의 기도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 부부나 가족 등 모든 불신의 가면을 벗기 위해서는 진실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화자 정복성은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통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이래 장구한 이분법적 사유 속에서 언제나 영혼과 이성적인 정신에 의해 압박받아온 몸을 새로운 존재론적, 인식론적 주체로 인식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과 긍정, 파괴와 창조, 해체와 생성이는 전위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고성방가가 한바탕 시장 바닥을 울리기 시작하면 점원 아가씨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아저씨가 오늘도 또라고 일러바친다. 어머니는 서둘러 뒷집으로 피신하곤 했다. 그런 장면의 희화(戱畵)는 여태껏 내 기억의 방벽(防壁)에 걸려 있다. 그럴 때마다 어린 가슴은 덜컹 내려앉고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온 식구가 저녁상에 둘러앉아 의좋게 지내는 화목한 가정 드라마를 꿈속에서라도 연출하고 싶었지만, 이웃에 창피스러운 생각과 원망만이 가득 찬 허전한 집안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략)

국민(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중학교 진학 문제로 학부모가 담임선생을 만나야 할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분이라 어머니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하루는 낯설고 꺼림칙한 아버지 대리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나중에 머리가 커서야 비로소 오죽하였으면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당시 동행했던 어른은 대머리였고 나비 타이, 누런 금이빨, 금테 안경으로 말끔하게 차린 임 사장은 경성(서울) 제과업 조합장이었다. 그 신사에 비하면 아버지는 옷차림과 학식 면에서 뒤졌지만, 시장 상인들은 아버지의 신용과 정직과 책임감을 항상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대낮에는 으뜸이라는 모범적인 별칭까지 받았으나 해가 기울면 주정뱅이로 둔갑하여 상반된 소문이 파다했었다.

 (중략)

아버지는 지식이 없어 유식한 말은 한마디도 못 했지만, 지미 헨드릭스의 말처럼 나에게 지적(知的)인 것을 말 없이 보여 준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장바닥에서 장사하며 벌었던,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용, 정직, 책임이라는 말 없는 무형의 유산을 남겼고, 나는 그 유산을 이심전심으로 받아 마음의 벽에 깊게 새겨 간직해오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무언, 무형의 유산. 부분

 

수필은 작가의 일상적 체험을 바탕으로 언어미학적으로 창조한 작품이 미적 관조의 산물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예술의 본질은 모방이나 재현에 있는 게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 모든 존재자의 가슴 속에 묻혀 잊힌 과거의 체험을 일으켜, 우리를 존재 망각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한다. 피카소의 그림이나 고야의 그림을 통해 체득하는 예술의 세계는 바로 우리들 삶의 모습 그대로이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역사는 스핑크스다.”라고 갈파했다. 우뚝 솟아 있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엄두도 못내고 스핑크스처럼 아버지는 우람하게 보일지언정 그 속에 품어 있는 고난과 아픔은, 자신에게 향하는 스스로의 죽임을 겪게 했던 존재일 것이다. 아버지를 애써 잊고자 스스로 자학하다가 용서하고 그러다 다시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섭리이자 이치다. 이것은 만고진리의 불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근본 원리는 모든 이에게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명제로써 진솔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더 나아가 그렇게 아버지에게 모질게 대했던 자신의 시련은, 문학적 가치를 더 높여 주고 수필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보금자리이다. 그리하여 수필가는 묻혀 있던 사유를 끄집어내어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게 진리고 나아갈 길이다.

 

나의 이름 복성은 부모님께서 지어 준 이름이고 호적에는 정복성(鄭福成)으로 되어 있다. 이웃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서 놀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를 찾으실 때면 ~~하고 부르셨다. 짓궂은 아이들은 나를 금방 복숭아라는 별명을 붙이고 먹어 보자고 놀려댔다.

미국에 건너와 처음 수련병원에서 근무할 때 이름만 들어도 우스운 퐁카(Ponka)라는 외과 과장은 나를 밤낮 닥터, 칭챙청이라고 불러댔다. 징을 치는 중국 놈 같은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하루는 한국인의 성(), (Chung)의 철자를 제대로 발음하도록, “C, H, U, N, G”라고, 강조하며 또박또박 말하였다. 청 챙 청(CHING-CHENG-CHUNG), 그게 그것이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한 고약한 백인우월주의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다 한동안 더 공부하러 캐나다에 갔었는데 그 대학병원 과장은 배려 많은 스코틀랜드계의 정중한 교수님이시었다. 나의 가운데 이름 복(Bok)자를 정통 영국식 발음으로 이라고 친절하게 불러주었다. 미국에 다시 돌아오니 영자 모음 오(O)가 미국식 발음 로 둔갑했다. 그 탓에 으로 불리게 되었다. 동료 직원들도 나를 , 이라 불러댔다. 참 터무니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개띠인데 짖으라 (Bark), 짖으라(Bark).”라는 소리로 들려 스스로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행인 것은 많은 옆 사람들이 bark의 끝 자, k 음을 b로 잘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Bob은 매우 흔한 Robert의 애칭이다. 결국 나의 이름은 로버트 정(Robert Chung)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름의 변천과 아호, 부분

 

  정복성, 한국에서는 평범한 이름이다. 멀쩡한 이 이름이 미국에 와서 수난을 받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숱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화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수련병원에서 근무할 때 외과과장은 밤낮 닥터, 칭챙청이라고 불러댔다. 징을 치는 중국 놈 같은 소리가 귀에 거슬려 하루는 한국인의 성(姓)인, (Chung)의 철자를 제대로 발음하도록, “C, H, U, N, G”라고 강조하며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그런데 외과과장은 칭 챙 청(CHING-CHENG-CHUNG), 그게 그것이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화자는 한 마리의 멸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한동안 더 공부하러 캐나다에 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영자 모음 오(O)가 미국식 발음 로 둔갑했다. 동료 직원들은 , 이라 불러댔다. 참 터무니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개띠인데, “짖으라 (Bark), 짖으라(Bark).”라는 소리로 들려 스스로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 등이다. 화자가 초창기 때 정신적으로 억압받아온 경험을 제2차적 언어로 항변하며 그동안의 건더기를 걸러 내며, 유추시킨 사유를 그물에 걸려들었던 멸치. 소금과 바닷물의 운명적 만남에 햇볕에 말려지는 과정을 체험적 형상화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항변하는 것이다. 정복성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초라한 오두막집들이 띄엄띄엄 모여 있는 어떤 마을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왼편에서 사슴처럼 한 어린이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가는 길을 앞질러 건너가려다가 그만 차 앞범퍼에 걸렸다. 차가 덜커덩하자, 나의 가슴도 덜컥하였다. 얼른 내려서 다가가 보니 끔찍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뒤 허벅다리가 받히어 부러진 것 같았다. 나는 쓰러져 있는 십 대로 보이는 사내아이를 두 팔로 들어 안고 바로 길옆에 있는 허름한 움막으로 들어갔다. 군의관이었다. 나 밖에 응급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지붕 귀퉁이의 허술한 나무 한 조각을 뜯어서 부목으로 만들어 골절된 다리를 대충 고정해 놓고 밖에 나왔다. 그런데 있어야 할 지프차와 동행해야 할 대원은 보이질 않았다. 놀랍게도 내 주위에는 벌써 허름한 검은 옷을 걸친 근처 사람, 3~40여 명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움막 안으로 다시 움츠리고 들어갔다. 그들은 저들끼리 뭔가 수군거리며 움막 앞까지 다가와서 손가락질하며 나를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얼씬 못 하고 그 안에서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비록 내 허리에는 45구경의 권총을 차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총을 사용해 본 것은 마산 군의학교에서 훈련받을 때 고작 몇 발의 실탄을 쏘아본 게 전부였다. 그 실력으로 그들에게 총구멍을 들이대고 물러서게 했다간 오히려 몰매를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은 어둠하게 지고 있었다. 움막 속에 갇혀서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초조하고 속이 울렁거리며 불안한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윗주머니에 영문성경 소책을 늘 지니고 다녔지만,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 당시도 관심 없었던 나의 시절이었다. 그 순간순간 나의 수호신은 우리가 치어 쓰러뜨린 바로 그 어린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년은 끝내 아프다고 울고 큰소리치고 발광하지 않고 잘 누워 있었다. 만약 그 소년이 죽겠다고 소리를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나는 짚으로 엮여 있는 벽 구멍 사이로 바깥을 슬금슬금 내다보았다. 운집해 있는 넌라(Non La 원뿔형 월남 모자) 넘어 기린처럼 키 큰 사람들이 나의 움막 쪽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칠팔 명의 미군수색대원들(Green Barets)이었다. 그제야 ',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들은 우리의 동맹군이었다. 만일 조금 앞서서 그들이 베트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한한 나의 시간과 공간의 두 직선이 만나는 불행한 교차점에서 적과 마주쳤으면 비참하게 사살당하였거나, 그 두 선이 휘어 빗나갔으면 포로로 잡혔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분명 걷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생과 사의 갈림길은 마치 햇볕과 그늘이 번갈아 넘나드는 것 같을 것이라 싶다.

     - 나는 이렇게 감동하고 미국에 오게 되었다. 부분

 

  이 작품은 일기체 형식의 자전적 수필이다. 미국에 오게 된 과정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미국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면서 미국인과의 생활이 익숙하게 자리 잡게 된다. 화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덕분에 외과 전문의 제1기생으로 선발되어 후방의 큰 육군병원에 배치될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정반대로 강원도 원통이라는 험준한 산골에 포진한 최전방 사단 의무중대장으로 발령받는다. 어느 날이다. 동료로부터 파월병원 장병모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외출 나온 김에 수소문하여 득달같이 육군본부 의무과에 가서 지망서류를 제출한다. 마침내 전국에서 5명의 외과 군의관이 자원해서 제1이동 외과병원 해외원정군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낯선 월남의 전쟁터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이때부터 화자의 월남 참전기가 시작된다. 반년쯤 지나서 제1이동외과병원 후속으로 비둘기 부대가 호찌민시 동쪽 20km, 비엔호아 (BineBien HOAHoa)에 도착한다. 어느 날 새로 온 부대를 의무 지원 목적으로 방문한 후 사이공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다섯 명이 지프를 타고 무더운 늦은 오후 짙은 먼짓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떤 마을 길을 지나가는데, 어린이가 튀어나와 차 앞범퍼에 부딪힌다. 화자는 쓰려져 있는 사내아이를 두 팔로 들어 안고 움막에 들어간다. 지붕 귀퉁이의 허술한 나무 한 조각을 뜯어서 부목으로 만들어 골절된 다리를 대충 고정해 놓고 밖에 나왔다. 그런데 있어야 할 지프차와 동행했던 대원은 보이질 않았다. 놀랍게도 화자 주위에는 벌써 허름한 검은 옷을 걸친 근처 사람, 30~40여 명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화들짝 놀라 움막 안으로 다시 움츠리고 들어갔다. 그들은 저들끼리 뭔가 수군거리며 움막 앞까지 다가와서 손가락질하며 화자를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화자는 움막 안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비록 허리에는 45구경의 권총을 차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총을 사용해 본 것은 마산 군의학교에서 훈련받을 때 고작 몇 발의 실탄을 쏘아본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화자는 생과 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상대방과 대화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화자는 그 순간 윗주머니에 영문성경 소책을 늘 지니고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에 관심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다친 어린애의 상태를 지켜보던 사이, 반드시 대기하고 있어야 했을 지프차와 대원들은 가고 없다. 참으로 난감한 상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스콧(Walter Scott)은 말하는 전쟁터에서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종교라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화자 또한 베트남이라는 무대가 인간의 존재 문제와 관련하여 깊은 성찰을 하게 하며, 현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능도 갖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삶과 죽음에 대해 창작하는 논리적, 설명적, 교술적 특성을 갖게 함으로써 문학화의 어려움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 그 아픔에 내재한 존재 의미의 성찰은 인생을 통찰하고 달관함으로써 서사적이고 철학적인 감미로움을 씹기도 한다. 마치 담수(淡水)와 같은 심정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며, 철리(哲理)의 심오한 명상에 잠기듯 말이다.

 

 

 

  자동차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서로 장단점이 있다. 나는 단점이 많다는 궤짝 같은 90년도 지프를 20여 년 동안 타고 다녔다. 사람들이 지프차를 한두 가지는 좋다고 하나 보통 지적하는 대로 더 많은 단점이 나에게는 오히려 이점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차대가 높아 탈 때 무릎을 가슴 가까이 당기고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뻗어야 한다. 이 동작은 엉덩이와 무릎관절에 아주 좋은 운동이다. 자동조절 장치가 없어서 의자를 조정하려면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해야 한다. 또 창문을 여닫을 때 손잡이를 쥐고 돌리면서 손목과 팔뚝 운동을 심심치 않게 할 수 있다. 차가 달릴 때는 콩 복 듯 덜컹덜컹 튀어 상하 진동의 충격은 엉덩이 근육을 튼튼히 다져준다. 최근 소비자 잡지에 발표된 자동차 소음 평가 통계에 의하면 지프가 시끄럽기로 최상위이다. 장거리 운전 시 덜커덩거려 깜박깜박 졸 여유를 주지 않아 제일 좋다. 더욱이 뒷자리에 던져 버린 빈 병이나 깡통이 서로 부딪치면서 떨그럭대는 소리의 화음은 소음이라기보다 흥겹게만 느껴진다. 유선형이 아닌 판자벽 같은 앞창으로 바람을 밀어붙이면서 달리면 온몸 전체가 채질하듯 흔들려 오장육부가 다 요동친다. 소화가 잘될 것 같다. 물론 진동이 적고 의자가 편안하고 소음도 적고 자동장치가 많아 편리한 자동차를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지프차. 일부

 

글을 창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보물을 캐는 것이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화적 추억거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그림 그리기와 가로지르기일 것이다. 수필가에는 새로운 소재거리를 찾는 사람에게 애를 먹이기 위한 짓궂음이 아니라, 그걸 찾아내는 사람의 즐거움을 크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화자의 언술은 그의 수필쓰기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말이라 하겠다.

<지프차> 내용을 들여다보자. 지프에 처음 매력을 갖게 된 것은 젊어 월남에서 한창 전쟁 중 육군복무를 하던 때이다. 미 주월 사령관, 웨스트모어 장군이 지프를 타고 한국 이동외과병원을 방문하던 그의 용모가 참 멋있어 보였다. 화자는 그때의 광경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고 한다. 마치 첫 사랑에서 받은 깊은 인상, 존경스러운 스승을 뵈었을 때 잊을 수 없는 첫 모습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지프의 장점은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히거나 차량 대열이 서행할 때 높은 사령탑에서 내다보듯 먼 앞을 볼 수 있어 주행선을 미리 바꿀 수 있고, 또 대수롭지 않은 차량이어서 비좁은 주차장에 끼워 세우던, 거친 진탕 자갈길을 가던, 흙 먼지를 뒤집어쓰던, 조금 긁히거나 크게 부딪쳐 흉측하게 찌그러지지 않는 한 너무 안달 부리거나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으며, 이렇다 보니 대수롭지 않은 일에 마음의 여유와 생각도 넓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이 지프를 추천하거나 선택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제인가 쉽게 올라탈 수 없는 날이 오면 다리가 굳어 간다는 증세를 넌지시 알려 줄 것이다. 그만큼 차주에게 충성하고 끔찍이 생각하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지프가 아닌가라고 지프차에 대한 장점을 나열하고 있다. 이렇게 지프차의 장점과 단점은 상반되는 양태를 가리킨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 일반에서 두 어휘의 거리는 매우 좁은 편이다. 하지만 화자가 바라보는 예술의 내적 형상화 원리에 따라 단점을 포섭하거나 경계를 허무는 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게 각자의 취향과 꼭 맞는 크기는 하나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해방되고 미군의 럭키 스트라이크와 카멜 담배사라고 목판 줄을 목에 걸고 외치하던 어린이가 눈에 들어온다. 뒷골목에서 숨어 담배 피우던 양아치들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훤하다. 바쁘던 수련의 시절, 나도 건방 떠느라 한동안 양키 시장에서 산 말보로(Malboro)와 쌀렘(Salem) 담배를 뻐금거리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꽁초맛을 볼 정도는 아니었다. 중년에 들어서 파이프를 물어댔다. 피나콜라다(pina colada)의 연초를 골통대에 눌러 담고 성냥으로 불붙인다. 그리곤 입속에 빨아 가두고 깊이 한숨 쉬며 공중으로 내뿜으면 세상을 다 덮는 것 같은 희열감이 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오른다. 그 구수한 향기가 진료실과 건물복도를 채워 풍기면 사람들이 강아지처럼 몰려들었다. 추운 겨울에 파이프의 불통을 따듯하게 손에 감싸 쥐고 길 걷는 분위기는 마냥 멋지기만 했다.

-담배, 일부

 

의사들, 특히 외과의사들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폐를 집도하며 눈으로 확인하였을 것인데, 화자이자 외과의사 정복성은 파이프를 물어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의학적으로 담배가 인체에 어떠한 피해를 준다는 것을 잘 아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양면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당시 환자들은 속으로 엄청 싫어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화자는 피나콜라다(pana colada)의 연초를 골통대에 눌러 담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고 했다. 그리곤 입속에 빨아 가두고 공중으로 내뿜으면 희열감이 온다니, 애연가의 참모습을 보는 듯하다. 한때 누렇게 변색되었던 손끝에 묻어 있을 담배냄새의 향수와 기억을 더듬어 본다는 생활체험을 그리고 있다.

이 수필을 보면서 평자는 외과의사로서 담배를 피웠던 당시 경험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를 시켰으면 좋겠다 싶다. 마치 현상학자인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몸에서의 반성과 체험을 말이다. 그로 말미암은 이질적 상상력의 접합, 통섭을 통한 유사성의 접근에 집착했으면 아주 좋은 글감이 되었을 것이라 싶다.

화자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담배로 인한 공간애인 토포필리아 그리고 생명애인 바이오피리아, 더 나아가 창조애인 네오필리아를 근거함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마치 슈틀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와 같이, 낯익으면서도 형식을 평화, 공존과 같은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직조한 기법이라 하겠다. 이는 곧 드러냄과 감춤이라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내가 사는 노인 촌에는 심심치 않게 달포마다 차고 할인판매(Garage sale)를 한다. 일반 동네에서 이사하기 전에 허드레들을 처분하느라 좀 싸게 파는 경우와 달리 이 고장에서는 거주민이 연로해 세상을 떠난 후 자손들이 평생 간직한 부모의 유품을 처리하는 마당이다. (중략) 같이 갔던 이웃에 사는 한 친구가 큰 프라이팬 모양의 깜찍한 벽시계 하나를 어느 구석에서 건져 냈다. 값이 워낙 쌌다. 자기 집에는 온갖 시계 천지여서 나에게 그냥 선심으로 준다고 하기에 고맙게 받아서 가지고 와서 침실에 걸어 놓았다. (중략)

  어느 날 침실의 가구 위치를 옮겨야 할 일이 있어 어차피 이 시계는 바깥 거실로 쫓겨나게 생겼다. 안사람은 잠깐 내가 자리를 빈 사이에 상전같이 모시던 시계를 싸구려 장난감 다루듯 벽에서 뚝 떼어 얼른 밖에 내다 치워 버렸다. 그동안 누가 쓰던 것을 쓰레기 같은 차고에서 거저 얻어 온 것이라 해서 못마땅하게 여겨 왔었는지, 아니면 한때 나의 꼴 보기 싫었던 감정이, 그 시계로 전위 된 것 같았다. 그랬다고 팔팔 뛰는 내 성미가 아니어서 바닥에 나가 곤드라진 시계를 살며시 집어 새로운 장소에 걸어 놓았다. (중략) 초침은 마지막 달리던 위치에서 숨졌고 길고 짧은 바늘은 서로 엇갈려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추는 고리 구멍에서 빠져 떨어져 덜그렁 누워 있었다. 함부로 만지작거리다 결딴내면 더 했지 나의 실력으로 바로 고칠 재간이 도저히 없었다.

시계방에 가져갔다. 주인은 이런 걸 어디서.’ 하며 (중략) “요즘 최신 전자시계가 많이 나왔습니다. 뻐꾸기시계 같은 건 한 풀 갔고.” 꼭 고쳐 쓰려면 수리 비용이 더 드니 이번 기회에 새 시계를 하나 장만하라는 것이었다. 또 부속품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중략) 여기저기서 구박받던 불쌍한 시계를 한적한 벽 한구석에 걸어 놓았다. 벽의 장식용으로 보기만이라도 하려고. 시간을 12점에 맞혀 놓고 추 거는 구멍을 찾아 추의 고리를 간신히 거기에 끼어 놓았다. 바늘은 모두 다 죽어 멈추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중략)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현상이었다. 여태껏 알지 못했던 자석으로 된 시계추는 초침과 전혀 연관 없이 전기장(電氣場)에서 움직인 것이다.

 -1217초에 부활, 부분

 

 

  할인판매장에서 싸구려 벽걸이용 시계를 구입한 이웃이 그것을 선물한다. 화자는 침실에 걸어놓는다. 어느 날 침실의 가구 위치를 옮겨야 할 일이 있었는데, 화자의 부인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전같이 모시던 시계를 싸구려 장난감 다루듯 벽에서 뚝 떼어 얼른 밖에 내다 치워 버린다. 그 탓에 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화자는 시계수리점에 문의한다. 상점 주인은 부품 구하기도 어렵다면서 벽에 걸린 신형시계를 사가라는 이야길 듣고 집에 되돌아온다. 이런 상황인데도 버리지 않고 고장 난 시계를 부인의 눈치가 보여 한적한 구석 벽에 조용히 걸어 놓는다.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바늘은 모두 다 죽어 멈춰 서 있던 시계추가 조금 흔들거리더니 씩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껏 알지 못했던 자석으로 된 시계추가 초침과 전혀 연관 없이 전기장(電氣場)에서 움직인 것이다. 그 시간이 1217초인 것이다.

  화자 정복성 수필가는 그 상황을 목도하고 감격했을 것이다. 바흐가 살고 있던 시대의 음악은 다성음악의 시대였는데, 동시에 여러 개의 멜로디가 진행되는 형태였다. 화자의 마음에는 멜로디가 시계추에서부터 반주가 시작되어야 하듯, 실재적 대상인 시계가 초침소리가 나든 안 나든 반드시 움직여야 하는 게 시계인 것이다. 언어적 음성형상의 층은 문학작품의 외연으로 라틴어 ‘Amo’라는 음향으로,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는 그릇이 된다. 그 그릇에 계절과 분위기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도식화된 시점의 층에서 시공간적 배경 속에 빠져들며 감각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눈이 내린 산야나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사랑했던 젊은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해 그리움을 토설하며 노래로 승화시킨다. 굳이 말을 내뱉을 필요가 없는 묵언의 언어가 추상무늬로 낯설게 가슴속을 헤매게 하는 것이다.

 

 

   나가기

 

  정복성은  1934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후 일반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다가 월남파병 이동외과 병원군의관으로 참전한다. 도미 후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 임상외과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 현대아산병원 성형외과를 창설하고 초대 주임교수로 지냈다. 현재 한국과 미국 외과(성형) 전문의이다. 10여 년 전,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계속 남가주 100여 개 요양병원 창상(創傷) 관리감독관으로 있으며, 또 호스피스 촉탁의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화자의 삶에는 수많은 환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현대의술로도 살리지 못해 애석하게 죽어가는 목숨도 목도했을 것이다. 이 일에 평생을 바친 화자의 노고 산실인 곳에, 새로운 인문학의 통섭이론이 새롭게 회자되고 대통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정복성은 10여 년 전, 시 문단과 수필 문단에 등단하고, 지금은 기성 문학인으로서 정교하면서도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를 가로지르기 하며 감성적인 글을 터치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통섭을 강조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 말이다. 냇물이 강으로 환원되지 않듯 진리는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리들과 합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복성도 이제는 진정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시와 수필로 꿰는 범학문적 접근의 필요, 곧 통섭의 시대에 화자는 담그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필은 1인칭에서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작가와 현실의 정서적 등가에 놓이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관조와 자기투영이라는 수필의 지향은 다난한 현실 위에 구축한 정서적, 사변적 깃발이 된다. ‘글을 쓰되 어떻게 쓰느냐?’라는 의문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이다. 정복성에게도 궁극적 향방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고통스러운 세계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가는 사회이다. 문학도 매한가지다.

  앞으로 그의 새로운 시와 수필의 패러다임을 기대해 본다.

 

정복성-es.jpg

     

    약력:

한국 및 미국 외과 전문의. 해외문인협회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수필 등단. 현재: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미주한인문학 아카데미KALA 회원. 수상: 2020년 한·아세안포럼 해외부문문학상. 2021년 문학공감 수필문학상. 서울창작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2023년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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