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을 끓이는 여자

조회 수 233 추천 수 1 2022.08.25 11:16:12

   숭늉.jpg                  

 

                                     숭늉을 끓이는 여자

 

 

                                                                                             정순옥

 

 

숭늉을 끓인다. 숭늉은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드는 음료수다. 누룽지를 넣고 만든 숭늉은 아주 특이하게 구수한 향과 살짝 달콤함을 느끼게 하여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한다. 요즈음 나는 보글보글 숭늉 끓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돌솥에 밥을 지을 때 타다닥 타-닥 소리가 들리도록 가스불에 올려놓고 생각은 세월의 추억여행을 한다. 한참 동안 아름다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구수한 밥 냄새가 나고 한참 있으면 약간 타는 듯한 누룽지 냄새가 난다. 그러면 나는 빨리 밥을 퍼내고 바삭바삭하고 노릇노릇한 누룽지에 물을 부어서 끓인다. 나는 오늘도 고유한 우리 음료수인 숭늉 끓이는 여자가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숭늉은 한민족의 고유 음료다. 요즈음 나는 우리의 자랑거리인 건강음료 숭늉을 보급하여 숭늉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고 싶어진다. 1980년대 전기밥솥이 보급되면서 숭늉이 점차 잊혀 가고 있지만, 그전에는 식사 후엔 숭늉을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숭늉은 건강식 천연 음료다. 불에 팔팔 끓이니 박테리아 등 몸에 해로운 미생물이 없어서 좋고 곡류를 끓인 물이어서 영양가가 있는 건강음료여서 좋다. 내가 어렸을 때는 늘 먹던 음료다. 앞으로는 나뿐만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도 즐겨 마시는 건강 음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숭늉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개화기에 외국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생활습관을 관찰하기 위해 어느 대관 집에서 점심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백의민족이라 흰옷을 입고 갓을 쓰고 점잖게 발을 접고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시아버지 앞에 예쁜 새 며느리가 공손히 밥상을 갖다 놓는다. 밥상을 놓은 후 얼마 있다가 며느리가 숭늉을 밥상에 놓는다. 밥을 먹던 시아버지는 밥을 숭늉에 넣어 후후 뒤적이더니 밥을 건져 먹는다. 관찰하는 선교사는 속으로 생각한다. 흰옷을 선호하는 조선 사람들이라 음식도 참으로 깨끗하게 먹는다. 깨끗한 밥을 또다시 씻어 먹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시아버지는 밥그릇을 손에 든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밥알을 씻은 물을 꿀컥 꿀컥 들이켜는 모습을 보고서 선교사는 무릎을 탁- 쳤다는 얘기다.

 

 

나는 맹물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동네는 물이 귀한 시골이었다. 공동우물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우물이 너무 깊고 소금기가 있어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안 했었다. 우리 집 흙담을 반절쯤 돌면 있는 낮고 둥근 우물은 물맛이 좋은데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릴 때 반절만 차도 기분이 좋았었다. 더군다나 가뭄이 심한 여름철에는 더욱더 물이 귀해 한나절에 모래알이 섞인 물을 조금씩 두레박으로 퍼 올려 우물가 물통에 부어 모래알을 분류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물이 귀하니 우리 집엔 항상 커다란 물그릇이 몇 개 있어 물을 부어 놓고 사용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끓인 물을 마셨고 맹물은 별로 마시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조금 허약한 부분이 있어 어머니나 새언니는 고소한 숭늉이나 국물을 마시도록 해서인지 지금도 맹물을 마시는데 익숙하지 않다.

 

 

 숭늉을 끓이는 여자는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만 생각하고 미래는 희망 있는 일들만 생각하니 현재가 감사하고 즐거울 수밖에. 지금 숭늉을 끓이는 여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맘 속에 모시고 사니 어떤 삶을 살아도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 행복은 순간이고 고난과 염려가 끊이지 않은 일생이다. 희생과 봉사가 필요한 신앙생활을 평생토록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갈수록 더욱더 느낀다. 나는 미주이민자 1세로 어려운 환경에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며 성실히 살아온 사람이다. 더구나 나의 전문직업은 희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내 혈관을 흐르는 핏속에는 정서를 안정시켜야 할 호르몬이 많이 흐르고 있다. 이 시간은 내가 삶의 보람을 느끼며 숭늉을 끓이는 여자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행복한 선물에 감사하고 있다.

 

딩동~

도어벨이 울린다. 수경 집사가 맛있는 음식을 문 앞에 갖다 놓았다는 신호일까, 아니면 딸이 보낸 우편물이 온 걸까. 문만 열면 뜻하지 않은 보물들이 있는 방문을 향해 눈과 귀를 돌린다. 어떤 때는 꽃나무가 놓여 있고 어떤 때는 채소가 놓여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쁨을 주는 소포가 놓여 있기도 하여 나는 우리 집 방문 앞을 보물창고라 부른다. 우리 고유의 음료수인 숭늉을 끓이는 여자가 행복한 이유는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일 거다. 누구일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또다시 벨 소리가 울린다. 나는 스토브 불을 끄고 방문으로 향한다.

딩동~ 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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