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열린 서울옥션의 가을경매에는 문화재 3점이 출품돼 2점이 낙찰됐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97호 ‘오공신회맹축’(추정가 2억5000만∼4억원)이 3억4795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185호 ‘아미타후불도’(1800만∼2700만원)가 4194만원에 팔렸다. 관심을 모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199호 ‘혼천의’(3억∼4억원)는 유찰됐다.
‘오공신회맹축’은 세조 2년(1456) 11월 14일 왕세자와 5공신, 그리고 그의 자손 239인이 나라의 은혜에 감사하고 공신 자손 간에도 골육처럼 마음을 합할 것을 종묘사직에 다짐한 글이다. 1996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이 유물은 개인 소장품으로 규장각 도서에는 탈락돼 없는 앞부분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미술품 경매에 문화재 출품이 늘고 있다. 26일 마이아트옥션 경매에는 보물 1033호인 고려청자 ‘상감국화문주자·승반’(추정가 20억∼30억원)이 나왔으나 유찰됐다. 문화재의 경매시장 등장은 2012년 K옥션 경매에 나온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첩’이 시발이다. 1000원짜리 지폐 그림인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수록된 이 서화첩은 34억원에 낙찰됐다.
역대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2012년 마이아트옥션 ‘백자청화운룡문호’·18억원)를 경신한 ‘퇴우이선생진적첩’은 고미술품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서울옥션 경매는 문화재의 고가 낙찰에 힘입어 낙찰률 72%, 총액 83억2400만원을 기록했다. 2010년 이후 최고의 성적이다. 25일 K옥션도 문화재는 아니지만 고미술품으로 구성된 ‘사랑방’ 섹션 덕분에 낙찰률 65%, 총액 80억원을 올렸다.
국가 지정 국보나 보물, 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 가운데 경매시장에 나오는 것은 대부분 개인 소장품이다. 처분하려고 할 때 문화재청에 신고하고, 주인이 바뀌면 소유주 변동사항을 신고하면 얼마든지 매매가 가능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에서 지정문화재를 보존·관리하더라도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판매하는 것을 간여하거나 재제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개인 소장자들은 조상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던 문화재를 판매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퇴우이선생진적첩’ 낙찰 이후 경매 출품을 의뢰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매사 관계자는 “개인 소장자가 보물 등 유물의 값어치에 대해 막연히 추정만 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 추정가 등을 적극적으로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경매사 입장에서도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가 출품될 경우 이슈가 되기 때문에 개인 소장자의 출품을 적극 권유하는 실정이다. 지금까지는 보물과 서울시 문화재 일부가 출품됐지만 앞으로 국보까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인사동의 한 고미술품 상인은 “고미술품 경매시장이 점차 회복될 기미를 보이면서 문화재 출품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유주는 개인이라 하더라도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지정하고 문화재청에서 보존·관리하는 문화재를 아무 때나 매매해도 되느냐는 논란도 없지 않다. 문화유산계 한 인사는 “소장자 가운데 가치를 높여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 자신의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며 “개인 소장자가 국가 관리 문화재를 손쉽게 팔아먹을 수 있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