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들의 아우성(정순옥 수필가)

조회 수 249 추천 수 1 2024.08.05 22:59:02

  자연의 섭리.jpg

 

                                              세포들의 아우성

 

                                                                                               정순옥

 

  세포들이 아우성이다. 부려 먹는 것도 한도가 있지 더는 못 참겠다고 반란을 일으킨다.

  온몸을 쿡쿡 쑤셔 대면서 육신을 아프게 한다. 세포들은 충분한 영양과 적당한 햇빛과 휴식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세포들을 달래가면서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활했더니, 아뿔싸! 허리가 너무 아파 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영유할 수 없어 나는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더니, 척추 협착증뿐만 아니라 심한 골다공증과 관절염이라는 병명을 주면서 세포들이 당신을 무척 사랑하고 있는 표시라 했다. 나는 세포들의 아우성에 병을 찾아냈고, 지금은 소통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세포는 처음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엄청난 숫자로 분열해 가면서 우리 몸을 이루고 있음을 안다. 각 기관마다 다른 기능을 하는 세포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몸의 육신과 영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있건만, 나는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해 주지 못했다. 끝내는, 세포들이 냉정한 나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피부로부터 시작하여 골수까지 몸 구석구석에서 일하고 있는 세포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빨리 빨리만 외치지 말고 쉼을 주라고, 사랑해 달라고, 관심을 둬 달라고 ……

  세상과 소통하는 온몸의 감각 기관들은 세포들의 아우성에 예민하게 대응한다. 눈에서 일하는 세포들의 아우성은 나에게 백내장이라는 병명을 붙여주었다. 귀에서 일하는 세포들의 아우성은 청각장애를 갖게 한다. 입에서 일하는 세포들의 아우성은 입맛을 잃게 한다. 피부에서 일하는 세포들의 아우성은 무좀을 갖게 한다. 코에서 일하는 세포들의 아우성은 엘레지를 일으켜 재채기와 기침을 연발시킨다. 세포들은 날마다 나의 육신과 영혼이 괴로울 정도로 자기들을 보살펴 주라고 애원하면서 병을 일으키고 만다. 급기야, 나는 세포들의 아우성을 다스릴 줄 아는 전문가를 찾아가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번 시작한 세포들의 아우성은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빨리빨리 더 많이 외치며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하며 쉬엄쉬엄을 외치며 살았던가.

  그러니 내 몸을 지탱해 주는 세포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세포들의 아우성에 병을 얻으니, 죄를 많이 짓고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순수한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관조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세포들에게 쉼을 주기 위해서는 삶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 꽉 막힌 삶보다는 어딘가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인생살이를 하는 게 훨씬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까지는 욕심이 많아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먹고,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살아 왔음을 안다. 그래서 죄가 되어 각종 병이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불필요한 것들을 차츰 없애면서 죄를 덜 짓고 좀 더 단순하고 정결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삶의 여백을 갖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인생에도 자연현상처럼 사계절이 있는 것 같다. 유년기의 봄, 청년기의 여름, 장년기의 가을, 노년기의 겨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노년기를 살아가고 있다. 유년기에는 빨리빨리 자랐으면, 청년기에는 빨리빨리 결혼했으면, 장년기에는 빨리빨리 안착했으면 바랬는데, 노년기에 접어들어서야 쉬엄 쉬엄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 사람의 인생살이가 다 이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부터 천천히 삶의 여유를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를 알기까지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듯하다. 세포들의 수고를 알 수 있는 시기도 체력이 저하되는 노년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세포들의 아우성을 느낄 때, 비로소 고마움을 느낀 어리석은 인생임을 인정한다. 지금은 세포들과 대화를 하면서 병을 통제하며 천천히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통 오감(五感)이라 말하는, 미각 촉각 청각 시각 후각을 통해서 자연을 좀 더 가까이 보면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살짝 스쳐버린 야생 꽃들과 결 고운 노을 하늘을 자세히 보며 천천히 길을 걷고 싶다. 나도 자연 일부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세상에선 사라져버릴 존재라 생각하면 이 한순간이 참 귀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세포들은 나에게 삶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소리 없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으니, 따라서 새봄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순리는 누구도 거슬릴 수 없는 것, 나는 세포들의 아우성에 내 인생살이를 점검해 본다.

 

  세포들의 아우성은 나를 빨리빨리 행동에서 쉬엄쉬엄 행동으로 전환해 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남은 인생은 삶의 여백을 갖고 천천히 쉬기도 하고 시간을 즐기며, 나를 사랑 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 맘대로가 아니라 육신의 세포들과 소통하며 병 없이 평온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나를 구속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 뿐이다. 세포들의 아우성은 내 삶을 사랑하게 하는 하나의 새싹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의 봄이 찾아오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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