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쓴 詩 담긴 ‘노설첩’ 등 조선후기 미공개 문헌-서화, 日 교토대 서고서 수천점 발견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최근 조사에서 확인된 추사 김정희의 친필 시첩 ‘노설첩’ 표지(위쪽 사진)와 시첩에 담긴 ‘석노시’의 일부. 일본 교토대 부속 도서관 다니무라 문고에 소장돼 있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보물’이 긴 잠에서 깼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12∼19일 일본 교토대 서고를 조사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친필 시첩을 비롯해 조선 후기 문화의 정수가 담긴 귀중 고문헌과 서화 400여 종 등 수천 점을 발견했다. 귀중본이 이처럼 다량으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 중 ‘노설첩(노舌帖)’은 추사가 함경도 북청 유배생활을 마치고 1852∼1856년 과천에 은거하던 시절 자신의 시 석노시(石노詩)와 영백설조(詠百舌鳥)를 행서로 쓴 것이다. 고려대를 통해 작품 일부를 확인한 대표적 추사 연구가 박철상 씨(50)는 “추사 말년의 완숙한 글씨로 줄을 친 종이에 쓴 것으로 보아 (잘 쓰겠다고) 마음먹고 선물용으로 쓴 것”이라며 “실물을 봐야겠지만 첩으로 묶인 추사 글씨가 드물어 가치가 크다”라고 말했다.
노설첩은 교토대 부속도서관 다니무라 문고에 귀중서로 분류돼 있었으며 국내에는 공개된 적이 없다. 12절(折)로 나뉘어 있는데 1절의 크기는 세로 22.1cm, 가로 12.8cm로 전체 길이는 약 154cm다.
시첩에 담긴 ‘영백설조’ 뒤에는 “下?田舍(하손전사)”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문집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하손전사는 도연명이 은거하던 자신의 거처를 지칭한 것으로 이를 빌려 추사가 과천의 거처를 표현한 것이다. 이 표현은 지금까지는 소동파 관련 글 한 군데서만 발견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교토대에서도 존재를 몰랐거나 목록에 이름만 올라 있던 자료가 상당수 발견됐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경세유표 가장본(家藏本·다산 집안에 소장됐던 본) 11책(완질)도 자료 목록에는 없었으나 이번에 먼지 덮인 상자 속에서 발견됐다. 다산 저작집 연구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보름 씨는 “상단 주석은 다산 본인이나 제자 등이 썼을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향후 여유당전서를 보완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산의 저술은 다산이 오늘날의 연구책임자와 같은 역할을 맡고 제자들과 함께 썼다. 상단의 글씨도 다산이 직접 쓴 것이 아니더라도 다산이 한 말을 제자가 썼을 가능성이 있다.
영조 시기 전국의 비문을 탁본해 편찬된 금석집첩(金石集帖), 조선 상업사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업문서 등 고문서 3500여 점도 확인됐다.
이번 발견은 해외 한국학 자료 조사의 쾌거로 평가된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장인 정우봉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각종 자료들은 향후 수십 년간 한국학의 연구 소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