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앨런 브렌너트/이지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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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 문학수첩 |
출판년도 : | 2014년 |
▲ 사진신부 진이…앨런 브렌너트 지음·이지혜 옮김 | 문학수첩 | 464쪽 | 1만3500원
한국인들의 하와이 이민은 1903년부터 시작됐다. 초기 이민자들은 10명 중 9명이 남성이었다. 배우자가 필요했던 이들은 한국에
있던 여성들과 서로 사진만 본 채 결혼했다. 이렇게 결혼해 하와이로 건너간 한국인 여성들을 ‘사진신부’라고 한다. 미국 역사학자
웨인 패터슨의 <하와이 한인 이민 1세>에 따르면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하와이에 입국한 한국인 사진신부들은 600~1000명에
이른다.
일본계 미국 작가 우치다 요시코는 190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사진신부의 이야기를 <사진신부>(1987)라는 소설로 쓴 적이 있다. 한국계 미국 시인 케이시 송은 1983년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사진신부 진이>는 미국 작가가 한국인 사진신부를 소재로 쓴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주인공 진이는 1897년 대구 근방의 한 시골에서 태어난다. 딸이어서 실망한 부모는 별다른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섭섭이’라고 부른다. 보배라는 뜻의 이름 ‘진(珍)’은 이모부의 첩이자 그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기생 석란이 지어준 것이다.
진이를 사진신부로 만든 것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다. “계집이 글을 배우는 것은 사치고 부덕”이라 믿는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던 진이는 하와이에서는 여자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을 듣고 하와이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만난 남편 노씨는 사진과는 달리 초췌한 사탕수수밭 노동자다. 음주와 도박은 물론 주먹까지 휘두른다. “남편이
나를 때리는 일은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일어날 수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그의 곁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시한폭탄 같은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진이는 남편의 폭력으로 뱃속의 아이마저 잃게 되자 남편을 버리고 호놀룰루로 도망친다.
미국 이민 초기 하와이로 이주해 정착한 여성들과 아이들. 재미동포 이민사를 다룬 사진집 <100년을 울린 겔릭호의 고동소리-미주
한인 이민사 100년의 사진기록>(현실문화연구, 2007)에 실린 사진이다.
호놀룰루는 매춘부들의 천국이다. 진이는 중국계 매춘부 메이의 도움을 받아 사창가 이빌레이에서 매춘부들의 옷을 수선해주며 새
삶을 시작한다. 파인애플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남성 재선을 만나 새로운 가정도 꾸린다. 전 남편의 위협으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미국 법정에 낸 이혼소송에서 이겨 첫 결혼에서 생긴 어두운 그림자에서도 벗어난다. 나중에는 ‘젬스 오브 호놀룰루’(호놀
룰루의 보석)라는 옷가게를 열어 사업에도 성공한다.
소설은 자아실현의 열망을 안고 낯선 곳에서 어려운 상황을 견뎌낸 다음 마침내 원하던 삶을 성취하는 주인공을 그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한국인 여성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작가의 관심은 한국보다 하와이에 더 쏠려 있다. 앨런 브렌너트는 하와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소설가다. 2004년 출간돼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전작 <몰로카이>는 하와이의 한센병자 강제 분리 사건을
다뤘다. 작가는 2009년 3월 하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신부 진이>의 아이디어는 이전 작품인 <몰로카이>를 위한 자료조사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1920~1930년대 호놀룰루의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어두운 역사를 다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주인공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상당한 분량의 자료조사를 한 흔적이 소설에 뚜렷하다.
주인공 진이가 황진이의 시조와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를 읽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일본인 학생들의 조선인 여학생 희롱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서술도 있다. 한성사범학교, 이화학당 같은 당시 근대 교육기관들의 이름도 나온다.
반대로 한국을 자료로만 읽은 티도 역력하다. 예컨대 “우리는 ‘한’으로부터 앞으로 계속 나갈 불굴의 용기를 얻고, 심지어 실패할지라
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는 문장은 외국인을 위해 쓰여진 한국문화사 개론을 읽는 듯 어색하다. 번역의 한계이긴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주인공과 가족·친구들의 대화가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서울말로 번역돼 있는 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아마존 독자 서평을 보면 영어권 독자들 사이에서 이 소설은 ‘흥미로운 역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
한국인들의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김영하의 <검은꽃> 같은 소설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비슷한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