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일찍 가르쳐야 한다

조회 수 10227 추천 수 1 2015.02.13 08: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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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복거일>

원시시대에 과학기술부가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 정교한 돌도끼를 쓸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원시시대에 교육부가 있었다면?’ 모범답안은 ‘우리는 아직 돌도끼를 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어가 생존에 필수적인 세상에서 교육부는 사교육을 억제한다며 영어교육을 억제한다. 초등학교 1~2학년 영어교육 금지는 특히 문제적이다.

 이 조치의 근거는, 외국어는 언어적 정체성이 세워진 뒤에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일상적 경험과 맞지 않고 언어학의 정설과 어긋난다.

 사람은 언어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태어난다. 이어 둘레에서 쓰는 언어를 모국어로 배운다. 이처럼 선천적 능력이 환경에 맞춰 발현되는 과정은 각인(imprinting)이라 불린다. 동물의 새끼들이 어미를 알아보는 것이나 연어가 태어난 하천을 기억하는 것도 각인 덕분이다.

 아기는 무척 빠르게 언어를 배우니, 나흘 된 아기가 언어들을 구별한다. 첫돌 지나면 둘레에서 많이 쓰는 언어에 대한 편향이 깊어져 언어적 정체성이 결정된다. 세 살엔 모국어로 소통하는 기본 능력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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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인은 일정 기간만 작동한다. 그래야 올바른 정보가 입력될 수 있다. 그런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는 새끼들이 어미를 알아보는 일에선 생후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다. 언어의 습득에선 11세까지다. 즉 11세까지 배우지 못한 언어는 뒤에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원어민처럼 쓸 수 없다.

 언어 능력은 보편적이므로 보통 사람도 여러 언어를 쓸 수 있다. 물론 먼저 배운 언어를 더 잘 쓴다. 두 언어를 동시에 배워도 한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세하다. 그렇게 먼저 배운 언어가 모국어가 되므로 언어적 정체성에서 혼란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되도록 어릴 적에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모국어를 배우고 바로 세계어인 영어를 배운다.

 이중언어 사용은 크게 이롭다.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삶이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이중언어 사용자의 뇌는 단일언어 사용자의 뇌보다 민첩하고 갈등을 잘 풀고 치매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문화적 공감 능력, 열린 마음 및 사회적 주도력에서도 낫다. 지능계수가 2~4점가량 높다는 조사도 있다. 당연히 경제적 혜택도 커서 미국의 경우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연간 소득이 3000달러가량 높다.

 반면 여러 언어를 배우는 데서 나오는 부작용은 없다. 단 하나의 문제는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distractive bilingualism)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첫 언어의 습득이 중단되거나 불충분하면 그 아이는 두 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민가정의 아이들에게서 때로 나온다.

 이것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라는 교육부 조치의 근거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민을 오지 않았다. 모두 엄마 품에서 한국어를 배워서 첫돌 지나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는다.

 더구나 우리 아이들은 어릴 적에 한글을 깨친다. 이민가정 아이들의 언어 습득에서 읽기는 매우 중요해 새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첫 언어로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그 언어를 계속 배워서 습득할 수 있다. 일찍 한글을 깨친 우리 아이들이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에 시달릴 가능성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현상은 나온다. 한국어를 모르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민가정에서 자라는 셈이어서 때로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을 겪을 수 있다. 교육부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도록 관심을 갖고 필요한 자원을 들여야 한다.

 우리 시민들의 다수는 영어를 제2언어로 삼은 이중언어 사용자다. 아쉽게도 그들은 결정적 시기를 지나 영어를 배운다. 그래서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하지만 영어로 말하지는 못하는 수용적 이중언어 사용자들(receptive bilinguals)에 머문다. 그들이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생산적 이중언어 사용자들(productive bilinguals)로 도약하도록 돕는 것이 영어교육의 현실적 목표다. 그 목표는 아이들이 되도록 일찍 영어를 배우도록 해야 이룰 수 있다.

 세계화와 인터넷의 보급 덕분에 세계적으로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단일언어 사용자들보다 많다. 이제 영어를 수용적으로만 쓰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손해를 본다. 특히 부모 소득이 자식 영어 실력에 영향을 미쳐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영어 격차(English Divide)가 심화된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두 해 동안 영어를 배우지 못해 생산적으로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그렇게 만든 것이 교육부라는 사실은 희극적이다. 이 비희극은 웃어넘기기엔 너무 심각하다.

 

 


 


이금자

2015.02.14 18:18:06
*.56.31.244

좋아하는 분의 칼럼이 올라 왔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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