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미문단> 행사를 끝내고 나서-
이번 <한미문단>행사는 나에게 특별했다.
1972년 1월,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가 본부로부터 명계웅 문학평론가(시카고 거주)에게 활동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그 당시 몇 안 되고 흩어져 있는 문인들을 규합하기 힘들어 포기상태의 미주지회가 2005년 신세훈 당시 한국문협
이사장의 요청에 의해 다시 엘에이~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1대 고 최백산 문학평론가와 2대 엘에이 고 배정웅,
고 전달문 등의 원로들이 다시 뭉쳐 재설립을 하면서 태동했다.
이후 4~5대 이언호 희곡, 6대 고 박요한 회장을 중심으로 축을 이루다 전 박 회장의 지병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후,
2013년부터 7대에 이어 8대를 지금의 강정실 회장으로 한국문협 미주지회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저는 경정아 시인으로부터 오로지 12명의 회원명단과 정관만을 받았다. 이후 은행개설, 주·연방정부 등록,
웹사이트 개설 및 전자책 설치를 중심으로 해마다 연간지를 만들어 왔다. 특히 올해는 반 연간지를 만들어
<한미문단>이 더욱 활성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올해 1월, 갑작스럽게 한 산속에서 앞이 흐려지고 심장에 통증을 느끼는 현상 등이 찾아왔다. 이후 두 군데의
종합병원에서 심장에 스텐트를 서너 개를 넣었는데도 머리를 들면 어지럼증이 계속 찾아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리에도 스텐트를 넣자는 제안이 왔으나 “이건 아니다!” 싶어 제주도에 있는 자택에서, 딸이 근무하는 종합병원과
가족이 있는 대학병원과 개인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서 <한미문단> 겨울호를 편집하며, 국내 문단의 주요 인사들을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만났다.
이후 최종적인 몸 검사의 최종날짜가 12월 4일에 잡혀 있어 이번 행사에는 본인이 빠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으나, 부득이하게 출판일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본래 13일에 엘에이로 가려는 계획을
취소했다. 되돌아가는 티켓에 대한 돈은 되돌려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11월 30일, 행사 당일
새벽 제주공항에서 항공권을 즉석에서 끊어 제주-북경-시애틀-엘에이로 도착하기 위해 22시간 넘게 비행기를 3번
갈아 탔다.
13일 새벽, 돌아오는 한국행 비행기 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저의 임기까지는 자금이 부족해도
어떻게 하든 계간지를 턱 하니 만들어놓고 물러나고 싶으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없고,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해서 내년 4월 임시이사회에서 새로운 정관을 만들고, 새로운 임원이 구성되어 더 탄탄하게 미전역에서 움직이는
명실상부한 한국문협 미주지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벌써, 내년 국내 주요문단에서 여러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더욱 활성화가 된 <한미문단>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제주도에서 강정실 올림
조선 2대 왕 정종은 아우 이방원에게 자신의 생존을 위해 평안함과 만족감을 주기 위해 적절한 행동으로 대응했습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지요. 한국문협 미주지회도 앞 회장의 길처럼, 책이나 조직의 길은 팽개치고 회장. 이사직의 명분만으로 만족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개인단체도 아닌 1만 3천이 넘는 한국문인협회라는 대단체가 있기에, 나름대로 미주지회를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의욕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껴안고 지금껏 밀고 온 결과, 스스로 나뒹굴어 졌습니다.
새로운 용맹의 길을 달려가기 위해 다 함께 협의해 나갑시다.
고맙습니다.
제주에서 강정실 올림
여독으로
회복되지 않으셨어도
몸 사리지 않으시고
자판 몸소
잡으시었음에
맘 놓이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아
당부 하옵나니
건강에 유의하시어
이사회 때엔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소망 합니다.
은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