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의 준 드롭
백수로 지낸 지 2년이 넘었다. 외출이라곤 병원에 검사하러 가거나 수영하러 스포츠센터에 가는 정도이다. 책 읽고 컴퓨터 하고, 글도 쓰면 하루가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오래 놀다보니 지루하다. 30분 일을 하면 한시간은 쉬어야 하는 저질 체력이 되어버려서, 앞으로도 일해서 돈을 벌 기회는 없는 셈이다.
작은 텃밭을 만들어 물주고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는데, 하필이면 올해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이어서 정원놀이도 즐겁지만은 않다. 화초도 물을 덜 먹는 다육식물이나 선인장류로 바꾸길 권하고, 잔디도 인공잔디로 교체하면 수도전력국에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해준다고 한다. 우리집도 스프링클러를 잠그고 호스로 물을 주기 시작했고, 설거지물을 모았다가 텃밭에 준다. 회사의 잔디밭은 인조잔디로 바꾼다고 신청해 두었다.
나처럼 장기이식을 한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는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특히 주의해야한다. 사람 많이 모이는 장소는 되도록 삼가고, 정원일이나 분갈이도 하지말라는 퇴원시의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걸 깜빡하고 흙을 만졌더니 피부에 가려움증이 생겨 고생 중이다. 봉지 흙에 퇴비가 섞인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가만있는 게 돕는 거라며 사고치지 말라는 남편의 잔소리 들었다.
텃밭을 돌보러 뒷마당에 자주 내려가다보니 평소에 관심없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물을 주다보니 여물지 않은 아기열매가 무수히 나무 주변에 떨어져 있다. 꼭지까지 달린 채로 사과·복숭아·자두·감나무·아보카도 등 우리집 유실수 거의가 같은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며칠을 관찰해 보니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달려있는 것보다 떨어지는 게 더 많아 보인다. 물을 덜 주어서 생긴 병인가 싶어 내 탓인양 덜컥했다.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 집에 25년 넘게 살았는데 그걸 처음 봤냐며 혀를 찬다. 해마다 6월경에 과일나무에 있는 일이라며 그래서 '준 드롭(June Drop)'이라고 한다나? 나무의 다이어트 방법이란다. 열매를 먹기만했지 도통 돌보지 않았으니 전혀 몰랐다. 가드닝 전문회사인 허드슨밸리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이런설명이 나와 있다.
"It’s also time for the fruit trees to do a little self-pruning. Over the next few weeks, you should start to see some of the small fruits dropping and littering the ground. Don’t panic. This is normal. They’ve even given it a name. It’s called June Drop."
놀라지 말란다. 그게 정상이라고. 나무의 스스로 걸러내기 방법, 더 튼실한 열매들을 위한 약한 것들의 희생인 것이다. 자연의 질서유지 방법은 신기하다. 당연한듯 비우고 내려놓기를 하고있다.
앞다투어 선두에 서려는 사람들은 남을 밟고 일어서야 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은 돌보지 않는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산다. 알아서 욕심을 덜어내는 나무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내 인생의 6월도 비울 줄 아는 순한 나무 같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담긴 뜻을 헤아려보며 살 일이다.
[이 아침에] 준 드롭(June Drop),나무는 떨구고 사람은 비우고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6.29.15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