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사진)은 1900년 10월 2일 평양부 하수구리 6번지에서 아버지 김대윤과 어머니 옥 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호는 금동(琴童)과 춘사(春士)이며 메이지학원 중학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19년에는 근대문학 최초의 동인지인 ‘창조’를 주요한, 전영택, 김환, 최승만 등과 발간한다. 초기에는 오만한 예술지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1930년대 이후에는 통속 역사소설과 야담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감자’ ‘김연실전’ ‘발가락이 닮았다’와 같은 자연주의적 경향과 ‘배따라기’ ‘광염소나타’ ‘광화사’처럼 탐미주의적 경향을 보인 단편소설의 세계이다. 이 작품들은 문학을 공리적인 것으로 보는 계몽주의나 프로문학과 대척점에 놓여 있다.
두 번째는 ‘젊은 그들’ ‘대수양’ ‘운현궁의 봄’과 같은 통속적 성격의 역사소설이다. 세 번째 범주는 ‘조선근대소설고’와 ‘춘원연구’와 같은 평론 활동이다.
이 평론들은 한국근대문학사와 관련해 선구적인 업적일 뿐만 아니라 김동인의 비평적 재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5일에 가족들이 피란한 사이 홀로 서울 하왕십리동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