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이강에서 최고의 래프팅

조회 수 286 추천 수 2 2024.03.08 19: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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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코이강에서 최고의 래프팅

                                                                                                                                                                             고정희

 

*오코이강은, 세 번의 만남 끝에 드디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 우리는 분명히 교감이란 언어를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난 그런 대화법이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었다. 입을 뻥긋하지 않고도 머릿속의 생각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그런 희한한 경험은 처음이었다그 기억은 처음 며칠간은 부연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수다쟁이였다. 교감이 오가자 몇 번이나 물에 곤두박질쳐지는 내 어설픈 동작이 한심했는지 심하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잔소리들은 그의 삶의 연륜 때문인지 어떤 훌륭한 수도자의 말보다 더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그의 우정 어린 잔소리들을 잊기 전에 여기에 적어두고 수시로 내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네가 내게 마음을 열어 준 것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교감이란 서로를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야만 가능하거든. 호기심 많은 아이야(지천명에 든 나를 감히 아이라고 부르는 그가 난 싫지 않았다). 넌 내 안에 많은 바위가 있는 것이 불만스럽다고 했지. 물론 나도 그들이 자주 싫어지지. 왜냐하면, 그들로 인해 내 몸에 상처가 하루도 아물 날이 없거든.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건 이유가 있지. 그들과 나는 악어와 악어새의 존재라고나 할까? 그들이 있어 나는 소리를 낼 수 있고, 그들은 나로 인해 흉하고 모진 모습을 아주 매끈하고 부드럽게 다듬어 가고 있지. 그들 없이 너희에게 그렇게 맑고 청량한 소리를 선물하지 못하지. 한마디로 벙어리가 되는 것이지.

강이 소리를 내지 못하면 그건 웅덩이와 진배없지 않겠나. 사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너희가 나를 찾아올 리도 없지. 언젠가 누가 말하더군. "큰 물살을 몇 번 만나고 나니 조용한 흐름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라고.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는 걸 나는 벌써 눈치채고 있었지. 안일함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변함없는 일상을 지루해하는 이율배반적인 그 속성 때문에 너희는 가끔 어떤 충격을 주어야만 범사의 감사함을 느끼게 되지. 사실 나도 젊었을 땐 그런 성향이 강했지.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은 그저 한 곳에 나 자신을 주저앉히려 할 때가 잦지. 그럴 때마다 내게 충격을 주어 일깨워 주는  존재가 바로 그 바위들이지.

내 안에서 그 하얗고 멋있는 물살을 가르는 열정이 아직 솟아오르는 것은 그의 일깨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말이 나온 김에 나의 센 물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지. 래프팅하다가 센 물살이 시야에 들어오거든 우선 물길이 두터운 곳을 향해 노를 저어라. 눈에 보이는 두려움 때문에 얕은 곳으로 노를 저으면 자칫 숨어 있는 바위에 걸려 오가도 못하게 될 확률이 높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임을 늘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물살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을 조심해라. 그때는 절대 노를 젓지 말고 최대한 몸을 낮추어라. 가능하면 옆의 짝과 서로 팔을 맞잡아 중심을 잡아주면 더 좋지.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는 안도감은 가장 큰 힘의 원동력이 되지. 무엇보다 명심할 것은 나를 맞서기 위한 힘을 거두고 날 믿고 내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는 관계맺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네가 나를 믿고 신뢰를 하면 그 순간부터 물살은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긴장감과 즐거움의 대상이 된단다. 그러면 넌 그다음부터 그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게 되지네가 살아가는 도 따지고 보면 이 래프팅과 같은 거야. 그러니 네 삶의 여정 중에 거센 물살을 만났을 때는 무조건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나아가려 하지 말고 믿음과 신뢰를 하고 조용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겨봐라. 그 신뢰의 대상이 네가 믿는 신이든 바다든, 믿음이 생기는 순간 그 물살은 단지 너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늘 그렇듯이 센 물살이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물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지 마라.

흐르는 것은 늘 그 두 양면이 존재해야만 가능하지. 바람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하듯이 말이지. 그리고 네가 주위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두고 마음을 연다면 그들은 네 인생의 여정에 많은 도움을 줄 거야. 알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대화를 하지. 그들은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서로의 교감으로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지. 태풍이 불어오기도 전에 눈치를 챈 개미들이 이사한다거나 날 짐승들이 자리를 이동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유독 인간은 남에게 귀를 기울이려 하질 않지. 늘 자신 생각이 먼저고 자기들 필요한대로 살아가는 지극히 거만한 동물이지. 자신들의 대화 이외에 모든 소리는 그저 지저귐애틀랜타 근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단합하며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차타후치강부터 1996년 하계올림픽 카누 대회가 열렸던 전문가들을 위한 오코이강, ‘소리로 치부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피할 수도 있는 자연의 재앙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신을 원망하는 걸 들으면 참으로 안타깝지.”

 아쉽게도 내 형편없는 기억력이 그의 가르침을 다 기억해 내진 못했지만, 장장 2시간 동안 그의 친절한(?) 잔소리 덕분에 나는 내 생애 최고의 래프팅을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진심 어린 경의와 우정을 보내 마지않으며 앞으로 내 삶의 여정 중에 거센 파도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의 말을 명심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소리에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애틀랜타 근교에 있는 강. 1996년 하계올림픽 카누 대회가 열렸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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