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열전 3>
기다리고 용서하는 것
김 붕 래
미국 영화를 보면 좀 싱겁습니다.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키스까지 했는데, 점심때가 되면 집으로 전화해서 또 “당신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살다가 사랑이 식었다고 이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얼굴 한번 못 보고 혼인이란 것을 했는데도 오남삼녀 줄줄이 낳고 잘만 살았는데 말입니다.
아내의 고어 ‘안해’를 안방에서 빛나는 태양’의 뜻이라고 우기면 이건 견강부회가 될까요?
사랑방에서 담뱃대 터는 소리만 들려도 저 영감탱이가 오늘은 왜 심술이 났는지, 안방 문 여닫는 소리만 듣고도 저 할망구가 오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훤히 알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백 년을 해로 했습니다.
말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사용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는 말이 진정이라면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부부간에 오히려 사족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머물러야 합니다. 사랑은 그를 위하여 맛있게 배춧국을 끓여 주는 정성이며, 그녀를 위하여 무딘 칼을 갈아주는 실천입니다.
‘페르퀸트(Peer Gynt)’는 바람둥이 청년입니다. ‘솔베이지’라는 청순한 소녀를 만나 언덕 위에 오두막집을 짓고 잠시 행복했지만 타고난 방랑벽으로 그녀를 떠나 버립니다. 그리고는 세파에 시달리며 젊음을 탕진한 채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늙고 병든 몸으로 고향을 찾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쭈그려 앉아 양파 껍질을 벗기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이놈은 꼭 내 인생을 닮았단 말이야. 까도 까내도 껍질이네. 어디에도 알맹이는 없네.”
이때 저편 오두막집에서 한평생 남편을 기다리느라 머리가 하얗게 센 여인이 물레를 저으며 그 유명한 ‘솔베이지 송(Solveig's song)을 부릅니다. 그녀의 품으로 달려간 페르궨트는 마지막 평온을 얻습니다.
참는 것, 기다리는 것 용서하는 것, 이런 영원한 여성적인 본질에 의하여, 승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정복하고, 파괴하는 남성적인 추악함은 구원을 받는다는 입센의 메시지는 21세기 오늘날에도 고수의 반열에서 우뚝할 것입니다. (愚川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