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의 시 한편
사막의 달
기청
너는 빈 허공에 떠서
깊은 바닥까지 비우고 비워내는
외로운 구도자(求道者)
이 저녁 붉게 물든 노을
서걱이는 모래 언덕 위
할키고 간 바람 흔적도
이제 너의 너른 품안에서
순한 아기가 된다
먼 그날 신라의 *)혜초 스님
부르튼 맨발로 사막을 건너던 밤
등불 켜들고 길을 밝혀주던
목숨보다 사무치는 님의 얼굴
생명의 풀씨 하나 묻을 곳 없는
불모의 타클라마칸 사막
오도 가도 못하는 절망의 끝에서
환영(幻影)처럼 떠오르는 *)다르마여
우우 어디서 피에 주린 늑대가 울고
댕그렁 두고 온 절간 풍경소리
환청으로 저려오는 밤
너는 텅 빈 허공에 떠서
사막과 사막의 거친 꿈까지도
잠재우는 외로운 구도자.
주) 혜초 스님; 인도(천축국)로 구법여정을 마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의 스님,
다르마; 산스크리트어로 만물을 지배하는 진리 법칙
*출전; 기청 시집 <<열락의 바다>>(2024.06)중에서
열락의 바다, 내안의 푸른 바다
“시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선한 마음의, 가장 선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시의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부족함을 느낀다. 어찌 삶이 선하고 행복한 순간만 있을까? 그 이면의 외롭고 쓸쓸한, 아프고 슬픈 순간까지도 재해석하여 성찰하는 것이 시의 묘미다.
지금까지 시작(詩作)과 더불어 문예지에 시론 연재나 시 비평 글을 집필해왔다. 또한 다른 시인의 시집해설도 제법 많이 써왔다. 하지만 막상 나의 시에 대해 쓰려니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자칫하면 시에다 불필요한 곁다리를 붙이는 사족(蛇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의 시는 발표되면 독자의 몫이다. 독자는 자신이 읽은 시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시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어떤 실마리는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설계 시공자 겸 배포자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 용인될 수 있으리라 본다.
시는 한 마디로 ‘낯설게 말하기’가 주요 관건이다. 반복되고 강요되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언어의 수사(修辭)가 요구된다. 비유와 상징에 의한 함축적 표현이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활기와 상상력을 넓혀주는 것이다.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시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시를 일상적 언어로 이해하려니 어려울 뿐이다. 비유와 상징의 원관념을 파악하면 시는 생각보다 쉽고 읽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게다가 시인이 강조하는 것, 무엇인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주제)를 파악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시는 그 낯설음의 새로움을 통해 삶의 활력, 희망과 성찰의 계기를 주는 것이다.
오래 묵은 <달 항아리>의 뿌리
새 시집을 출판하기 위해 신작과 기존 발표작을 수집(?) 퇴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첫 시집 <풍란을 곁에 두고>에 실린 시 <공간>과 이번 시집의 <달 항아리>의 통시적 상관성에 관한 것이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 7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책의 중심이미지를 담고 있는 <달 항아리>와 <열락의 바다> 두 편에 대해서만 사족 아닌 해설을 붙여보기로 한다.
가) <있음도 없음도 모두 / 엎질러 비워놓은//
오백 년 맑고 푸른/ 조선의 하늘엔
비 갠 날 절로 떠오르는// 무지개도 지운다.>
나) <비어있음으로 더욱/ 고귀한 자태/
있음도 없음도 다 비운
맑고 고운/ 지순(至純))의 여백
흙으로 빚고 / 불로 구워낸 뽀얀 살결
저리 서늘한 맥박의 온기는
인욕과 비움의 절제
이름 없는 도공(陶工)의 눈물
어른어른 얼비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