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화 문학평론가

조회 수 478 추천 수 1 2022.10.01 07:12:29

 

                      실향을 딛고 고향 미천리에서 찾은 행복 보고서

 

                                                                                      이택화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사람의 살과 혼이 처음으로 놓인 시공간이 고향이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의 발상지인 고향을 첫사랑으로 삼는다. 고향은 오감에 올올이 새겨져 영원히 각인된다. 에덴동산처럼 고향은 사람에게 태초이면서, 영원히 회귀하고 싶은 파라다이스(paradise)이다.

  현대인들은 태어난 곳에서 생을 마치던 전통사회와 다르게 타향을 떠돌며 살고 있다. 타향살이는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려도 허허롭다. 뿌리가 없는 꽃꽂이처럼 겉은 화려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듯해도 중심의 심신은 시들시들하다. 우리들은 따스한 안정과 행복한 충족을 주었던 보금자리인 고향을 잃어 아프고 서럽다.

고향을 잃고 중병을 앓는 우리들에게 실향을 딛고 고향을 찾아 행복을 누리라는 메시지를 담은 시집을 내미는 시인이 있어 반갑다. 시집의 내용은 육십갑자 인생살이 한 바퀴 하고도 삼분의 일의 지점에서 깨달은 행복의 보고서이다.

  문곡(文谷) 이명우 시인은 회갑에 첫 시집 <사랑의 편지>를 낸 후 2년마다 1권씩 10권의 시집을 발간하겠다는 계획을 완성하였다. 시인의 나이 80세에 출간하는 시집의 제목은 나의 고향 미천리이다. 시인이 사는 미천리는 문의 마을로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에 둥지를 튼 지가 근 30년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양성산을 등에 업고 안온하게 자리 잡은 미천리에 오래도록 살다 보니 산도 좋고, 물도 좋고, 경치도 좋고, 사람도 좋은 미천리가 내 고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천리는 작은 동네 하나가 아니고 일곱 개 마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4리만 없고 미천1리부터 미천8리까지 있는데, 우리 집은 미천8리에 있습니다.

  고향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나의 고향 미천리를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 시인의 말

 

  『나의 고향 미천리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나의 고향 미천리는 문의 마을 미천리에 대해 65편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2사랑하는 님이여는 사랑과 인생의 단상들을 표현한 시들이다. 1부에서는 생기의 원동력이면서 위안의 자리인 고향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2부에서는 시인의 아내를 통해 고향의 이미지와 행복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집을 통해 고향을 떠나서 분리의 통증을 느끼는 우리들은 타향에 세우는 파라다이스인 고향에 안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타향을 고향으로 변환해 행복의 틀을 짜고 행복의 정화수를 들이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인 이명우의 행복 보고서를 들여다보자.

 

  어디를 가서 살아도

  정들이면 고향처럼

  살 곳이야 있겠지만

  미천리에 둥지 틀고

  수십 년 살다 보니

  예가 바로 내 고향

 

  이곳이 너무 좋아

  정붙이고 살았네

  살다 보니 더 좋아

  펄떡 주저앉았네

 

  이 세상 그 어디에

  좋은 곳이 있다 해도

  처다도 보지 않고

  여기서만 살리라

 

  등 넘어 성당묘지

  어머님 뼈를 묻고

  누이 내외도 죽으면

  그들의 뼈도 묻고

  우리 내외 살다가

  어느 날 죽어지면

  마누라 손잡은 채로

  한 무덤에 묻힐 곳

  나의 고향 미천리

 

   - 나의 고향 미천리 3 - 펄떡 주저앉았네 -전문

 

  고향 상실의 시대에 고향을 세우다

 

  미천리의 많은 주민은 대청댐을 건설하면서 대청호 아래 고향이 수장되는 상실을 겪었다. 대청댐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하석리 사이의 금강을 가로질러 막은 댐이다. 19753월에 착공하여 19816월에 완공한 대청댐으로 생긴 대청호는 저수량으로 소양호, 충주호에 이어 우리나라 3위의 호수이다. 도시의 수돗물을 공급하고, 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 저장된 대청호를 위해 4,075세대 26,000명 지역 주민이 고향을 잃었다.

  미천리 수몰민들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정책으로 살아서 고향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고, 죽어서 고향 땅에 묻힐 수 없게 되었다. 수돗물을 원활히 공급받고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덜 받게 된 도시의 사람들은 이들의 눈물과 한을 이해하고 감사해야 한다.

 

  초가집 별로 없고

  시멘트로 지은 집들

  쌀도 많고 물도 많아

  그 이름 미천리에

  인공호수 달려들어

  바다가 되었구나

 

  물속에 잠긴 옛집

  부서진 벽돌 조각

  공구리친 벽들이

  나뒹굴어 있는 것이

  보나 마나 뻔하게

  보이는 것 같구나

  그 많은 집과 논밭

  동네를 지켜오던

  케케묵은 고목나무

  차들이 달리던 도로

  요리조리 오솔길

  한 아가리에 삼킨

  무심한 대청호야

 

  물을 잔뜩 들이켜고

  출렁이는 파란 물결

  염치도 모르는 듯

  찰랑찰랑 춤을 추며

  사시사철 뻔뻔히

  의젓하게 고였구나

 

   - 무심한 대청호야전문

 

  이명우 시인은 대청호를 미천리의 집, 논밭, 고목나무, 도로, 오솔길을 다 한 아가리에 삼킨 염치를 모르는 뻔뻔하고 무심한 인격체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바다가 없는 충청도에 아름다운 호수가 생겼다고 수몰민의 고통은 모른 채 혜택과 감상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하늘도 무심하지 / 금쪽같은 문전옥답 / 따뜻한 보금자리 / 어느 한 날 갑자기 / 물바다 된다하여 / 대대로 정든 고향 / 떠나가던 고향 사람 / 줄줄 흘린 그 눈물이 / 바다처럼 고였느냐’(나의 고향 미천리 1 - 물속에 잠긴 고향 -일부)를 통해 시인은 고향을 잃은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많이 드러나는 고향 상실의 아픔은 시인이 직접 겪은 타향살이의 처절한 상처와 맞닿아 있다. 시인 이명우는 태어난 고향을 떠나 타향인 청주에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병약한 몸으로 여덟 식구를 건사하면서, 시골뜨기의 순수와 정직한 마음은 끝없이 훼손당했다. 시인은 청주로 오자마자 사기꾼의 모사로 전 재산을 잃게 된 후 피와 땀을 흘려도 해결되지 않는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또한, 먹고 살기 위해 나선 장삿길에서는 시인의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이 온갖 이득을 얻으려는 이기의 칼에 수없이 찔림을 당했다.

  고향을 상실한 사람은 고향을 닮은 성스러운 장소와 시간을 찾게 되어 있다. 그러한 장소를 찾게 되었을 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고 회복된다. 시인은 미천리를 찾아 파괴된 인성을 회복하고 평안한 휴식을 얻었다. 미천리는 시인의 해방구였고 구원처였다. 시인에게 있어 미천리는 세속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초월의 성지가 되었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좋고 살기 좋아

  살아도 살아봐도

  미운 것 하나 없이

  모두 다 아름다워

  끝없이 살고 싶은

  나의 고향 미천리

 

  마주치는 사람마다

  따뜻하고 친절하여

  내 마음을 모두 다

  주고 싶은 사람들

  잡은 손 놓기 싫어

  꼭 붙잡고 싱글벙글

  정이 철철 넘치는

  나의 고향 미천리

 

  인심이 너무 좋아

  뱃속의 간이라도

  빼내 주고 싶어라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하나도 안 남기고

  다 퍼 주고 싶도록

  아까운 것이 없는

  나의 고향 미천리

 

   - 나의 고향 미천리 7 - 끝없이 살고 싶은 -전문

 

  다시 찾은 고향인 미천리는 순수 영혼이 시들지 않는 영원의 장소이면서 숙명의 공간이다. 미천리는 시인 이명우가 반드시 찾아야 했던 지향지이고, 삶의 진실을 되찾을 수 있는 고향이다. 고향 상실의 필연적 시대에 고향을 건설한 이명우 시인은 행운아이다. 백세시대에 반백 년을 복락원 같은 파라다이스인 고향에서 살 천국권을 획득한 시인이 부럽다.

 

  고향인 미천리는 파라다이스다

 

  『나의 고향 미천리는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건설할 수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 행복의 바탕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하고 대답을 얻게 한다. 사람은 이상 세계인 파라다이스를 현실 세계인 고향으로 건설할 수 있다. 사람이 추구하는 영원한 고향이 파라다이스이다. 상대에게 이득을 보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그곳이 바로 고향이 되고, 파라다이스가 된다. 집착이 놓였던 자리에 사랑과 진심, 정과 친절, 따뜻함과 다정함이 고이면 파라다이스는 저절로 건설된다. 결국 사람은 물질은 적당히 부족해도 정신을 더 많은 사랑과 진실로 채울 수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행복의 바탕은 정신의 충족이다.

  미천리에서 시인은 정신을 충족시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30평의 행운 빌라에서 검소한 생활을 바탕으로 아내와 윷놀이하고, 누나와 다정히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서로 대접하고, 성당에 나가 이웃과 환하게 미소를 짓고, 오일장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마음 편하고 즐겁게 하루를 일생처럼 산다. 미천리가 고향이고 자신의 전부라는 진심이 없다면, 그러한 행복을 누리기 어려우리라.

 

  우연히 오게 되어

  오래 살아 고향이 된

  산도 물도 터도 좋은

  미천리 내 고향 땅

  모든 이의 고향이야

  이런 고향 저런 고향

  수도 없이 많겠지만

  진짜로 살기 좋은 곳

  이런 고향 갖은 나는

  정말로 행복하네

 

  동서남북 곳곳마다

  옛날 조상 유적지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오기까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예가 바로 내 고향

 

  고향이 좋다 해도

  예보다 더 좋은 고향

  어디에 또 있으며

  역사가 깊다 해도

  예보다 더 깊은 곳이

  어디에 또 있으랴

  이런 곳이 고향이라

  눈물 나게 좋구나

  나의 고향 미천리

 

   - 나의 고향 미천리 26 - 예가 바로 내 고향 -전문

 

  시인은 미천리의 건물들, 양성산, 도당산, 산책로, 팔각정, 집들, 관공서들, 유적지들을 사랑한다. 특히, 미천리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을 다 주고 싶을 만큼 미천리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한다. 시인의 눈에는 미천리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미운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다.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자신과 아내를 품어줄 미천리를 살과 혼을 내고 거두는 고향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언행이 가능하다. 고향을 잃었던 미천리 사람들도 동병상련으로 수몰의 아픔을 딛고, 고향을 다시 세워 함께 고단함을 잊고, 걱정거리를 내려놓는다.

  사람의 생각은 위대하다. 시인은 미천리를 고향으로 삼았다는 생각만으로 악과의 대적에 따른 긴장도 풀리고, 교만도 사라지고, 정신도 확장되고, 행복의 열매도 무한히 거둔다. 이 시집을 읽으면, 사람이 고향을 세워 행복해지는 길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우리가 파라다이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늙거나 병들어 파라다이스에서 행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너무 크다. 살아서 파라다이스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죽어서 파라다이스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어서 특별한 행복을 바라기 어렵다. 죽음 이후는 죽은 이후에 경험하기로 하고, 자신을 늦은 시간 끝에서 후회하게 하지 말라. 행복을 찾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인간 여행을 온 것이다.

 

  뿌리내린 땅과 사랑하는 사람이 고향이다

 

  행복의 마음길에 여러 가지를 놓아두지 않고 오로지 하나만 놓을 때,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게 고향도 하나이고, 남편이나 아내도 하나이다. 사람의 마음에 고향이 하나라야 안착이 깊고, 아내나 남편도 하나라야 애정이 두텁다. 부인을 열 가진 왕은 열 가지 고민이 있고, 부부간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은 10분의 1이 되기 쉽다.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고 갈등이 끝없이 조장되는 왕궁에서 왕이 행복하기는 어렵다.

  이명우 시인은 미천리라는 고향에서 부인인 조순식 여사와 행복하다. 시인에게 미천리라는 고향이 있기에 비교가 필요 없는 따스하고 안정된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60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한 아내가 있었기에 만나는 대상마다 경탄하고 찬미를 바칠 수 있었다. 시인에게는 아내도 미천리처럼 고향이다.

 

  뿌리박은 내 고향

  나와 사는 우리 님

  둘이서 육십 년을

  마주 보고 살았어도

  미워한 적이 없는

  사랑하는 내 짝이여

 

  고향 땅의 보금자리

  안온하게 틀어놓고

  눈만 뜨면 마주 봐도

  왜 그렇게 예쁜지

  시도 없이 때도 없이

  안아주고 싶어라

 

  얼싸 좋다 두둥실

  알뜰살뜰 아껴주며

  자나 깨나 언제든지

  붙어사는 나의 짝

  혹여나 다칠세라

  업은 채로 살고 싶네

 

  서로 보고 서로 웃고

  정을 주고 정을 받아

  비둘기 한 쌍처럼

  정다워라 우리 부부

  고소한 깨 알알이

  줄줄줄 쏟아지는

  나의 고향 미천리

 

  - 나의 고향 미천리 46 - 사랑하는 내 짝이여 -전문

 

  실향민에게 고향을 찾고 싶은 열망은 최초로 형성된 고향의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 만족하고 싶어 생겨난다. 그들은 고향의 좋은 기억들이 물방울처럼 고인 마음의 호수인 고향에서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추억의 물풀을 흔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명우 시인은 내 고향 따뜻한 둥지 / 들랑달랑하면서 / 금실 좋은 우리 부부 / 비둘기 한 쌍처럼 / 재밌게 사는 거야’(나의 고향 미천리 28 - 내 고향 따뜻한 둥지 -일부)라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 상실은 회상의 소용돌이를 몰고 와 실향민은 현실이 더 괴롭게 느껴진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름다운 시공간을 상상하게 해 현실은 더욱 초라해진다. 수몰민이 가닿을 수 없는 대청호 물밑의 시공간을 그리움으로 끌어올린들 고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향은 영원히 하나뿐이라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관을 버리고, 뿌리내린 땅이 고향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고향이라는 새로운 시야와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은 고향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고향 회복의 시대이다. 타향살이는 남의 땅에서 더부살이하는 격이니 이제는 마음에 드는 땅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수십 년 전보다 많은 물질을 가졌으나 행복으로부터 더 멀어진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이 땅을 고향으로 삼고 내 곁의 사람을 고향으로 삼아보라. 새로이 세운 고향에 꽃밭도 만들고, 꽃도 선물하며, 행복의 열매를 거두어보자. 80세 지혜의 나이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에 행복을 한 아름 안을 수 있으리라.

 

이택화- es.jpg

약력:

교육학석사(고려대), 정책학석사(고려대), 문학박사(충북대), 충북대, 충북과학대 출강 역임, 새한국문학회 이사회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미래예술총연합회장, 미래시학작가회장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문인 신인상, 탐미문학상, 새한국문학상 수상. 저서: 시집 6, 소설집 2, 수필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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