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예수에 관한 시시한 고찰

                         -꿈에 찌든 시시(詩詩)한 남자 이야기

 

 

                                                                                     강 정 실

                                               (문학평론가.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장)

 

 

  1885년 래프 톨스토이가 저술한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Men Live By)가 있다. 전체 내용은 사람에겐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힘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이다. 천근만근 제각각 무거운 제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극복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인 구원의 믿음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래 목적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황금열쇠인 것이다.

  시인 김준호는 제1시집에서부터 지금 제4시집까지 예수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구원의 배경과 해답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고 그 정답을 찾고자 자신만의 고행을 통해 찾아가고 있다. 정신적 고뇌에서 나오는 단순한 소리의 흉내(imitation of physical sound)가 아닌 의성우의어(擬聲寓意語onomatopoeia)일 것일 게다. 1시집 축제의 노래에서의 머리글 또한 간결하고 한결같다. ‘나의 이 첫 시집을 꽃을 피우도록 거름을 준 사랑하는 딸 美美의 손에 살며시 쥐여 준다.’ 2시집 우물가에 핀 꽃에서는 이 두 번째 시집을 예수라는 인물을 나에게 소개해준 아내에게 바친다.’ 3시집 늦게 피는 꽃나무의 神話에서는 나의 이 세 번째 시집을 나 자신에게 정중하게 바친다.’ 그리고 이번 제4시집 詩人 의 예수에서는 나의 이 네 번째 시집을 예수님과 같은 날 태어난 수필가 김지향 님에게 드린다.’라고 했다.

 

 들어가기

 

빙판 위의 댄스

나는 人間 世上에 내려간 적이 없다

싱거운 스릴러

왜 이 世上에 내려오셨는지 알겠네

가자! 베들레헴으로

그림의 떡

성경 중독

블루 크리스마스

새치기

사막이 된 요르단

꿈을 이룬 男子

나도 人間답게 살고 싶다

지뢰밭의 세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작은 예수

-땅에 떨어진 외로운 별 하나⌟ , 전문

 

  이 시작품은 시집의 첫 자리에 예수가 탄생한 것을 서시(序詩)로 방향을 알리는 에피그램 <어떤 강생(降生)>이 나온다. 강생은 말 그대로 신이 인간으로 태어난다이다. 그런데 서시 1 땅에 떨어진 외로운 별 하나부터 수상쩍다. 평자는 평소 화자의 시구를 잘 알고 있는 듯했으나 막상 시집을 펼치자마자 평자 스스로 갑작스러운 시어들에 당황하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본래 이사야 714절에 의하면 이 세상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그는 풍채나 아름다움도 없고,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고귀히 여기지도 않는다고 했다. 화자의 마음도 그랬을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작은 예수’ ‘빙판 위의 댄스등의 단어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존재가 잘못된 것처럼 대한다. 예시당초 태어난 날부터 블루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 예수가 마구간 구유에 태어난 게 새치기일까? 평자의 눈에 형용사 블루(blue)가 눈에 들어온다. 우울한 크리스마스. 이 단어는 푸른, 혹은 하늘빛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울하다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의미가 깔려 있다. //빙판 위의 댄스/나는 人間 世上에 내려간 적이 없다/싱거운 스릴러/왜 이 世上에 내려오셨는지 알겠네/가자! 베들레헴으로나도 人間답게 살고 싶다/지뢰밭의 세례/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작은  예수//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고 과학이 새로운 종교인양 날뛰고 있는 작금에 시인 김준호는 시 전체 곳곳에 지뢰밭이 깔린 성경적 시빗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화자는 시인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예수를 메시아라는 무거운 짐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고 싶은, 우리와 같이 인생 여정과 구원이라는 본래의 목표나 이상향을 함께하고자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성경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예수님  돈주머니 속의  黃金

하얀  구름

나는 아직 살아 있거든

나눔의 행복

맹물은 맹물 와인은 와인

버릴 것이 없다

밭을 일구는 예수님

젊은이

반짝이는 것

기적

물을 최고급 와인으로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내 삶을 사는 예수님

내 쓰레기를 지고 가는 예수님

진수성찬

나는 장님이 아니었다

내로남불의 神話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결혼 파티에 초대받은 詩人, 전문

 

  예수의 첫 번째 표적(2:1~11)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머니와 예수의 제자들 앞에서 만들어낸 사건이다. //물을 고급 와인으로/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내 삶을 사는 예수님/내 쓰레기를 지고 가는 예수님/진수성찬//

  왜 최고급 와인일까?  2 천 년 전의 생활 환경적 과정의 역사를 보며 자신은 이기적이지 아니하다고 느끼면서도 물질의 풍요로운 삶, 그때와 비교하며 물질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허세가 발동한 것일 것일까?  예수가 맹물을 좋은 와인으로 만들어 낸 일종의 마술 같은 것 혹은 기적을 내로남불의 신화라고 단정한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늙은이의 꿈이라고 말하며  빠져나가면서도 다른 시에서  물은 최고급 와인으로⌟⌜맹물은 맹물 와인은 와인으로 계속 시어를 만들어 내고 있고, 간절한 욕심에서도 예수의 여러 기적을 나열하면서 또 와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있다. 차라리 봉이 김선달의 행위쯤으로 코믹하게 바라보는  풍자적 사건으로 재해석했으면  좋을 듯싶다.

  나이가 들면  좋아하는 벗이나 이웃을 초대하여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갑게 술 한잔하며 함께 인생을 나누고 싶어 한다. 자연히 어디에서, 어떻게 기억에 남는 기발한 방법의 유흥을 고민한다. 개성 있는 풍류문화를 찾고 있는 우리들의 세대다.

  주성(酒聖) 이태백에 필적할 만한 고려시대 인물 이규보(1168~1241)가 있다그를 삼혹호(三惑好· 시와 술과 거문고를 좋아한다는 뜻)라 부른다. 이규보는 술이 없으면 시도 지어지지 아니하고/시가 없으면 술도 마시고 싶잖아/시와 술을 내 모두 즐기니/서로 어울리고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규보가 말한 술 애찬가의 음주가 풍류가 되려면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그보다는 아낙네가 있는 평범한 술집을 벗어난 자연을 벗 삼으며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자고 노래한 조선 9대 국왕 성종(成宗)의 형 월산대군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왕위에 관심도 없었고 정치는 아예 담을 쌓고 살다가 34세에 사망했다. 예수의 나이와 비슷한 젊은 나이에 사망한 월산대군은 술과 함께 벗들을 위해, 국화가 피니 담가 놓은 술로 친구와 함께 밤새 거문고를 치며 노는 멋이다. 월산대군은 미리 잘 빚어놓은 술을 꺼내어 자연과 함께 분위기를 반전한 시적인 여유가 얼마나 좋은가. 명색이 화자는 시인인데, 이러한 시어를 예수 시인에게 적당히 배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예수님에게 병 고침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예수라는 사람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그냥 말 한마디로 모든 사람을 고치면 될 것을

사람들을 뙤약볕에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혹시 그 많은 사기 예언자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도 혹시 하며

나는 죽어가는 고양이를 안고 긴 줄 뒤에 선다

(중략)

갑자기 험상궂게 생긴 베드로라는 人間이 나타나

고양이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요

집에 두고 다시 오시오

사실은 이 고양이가 죽어가서

사기꾼같이 생긴 유다가 달려오더니

지금 이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어찌 동물을 살려달라고 오다니

다른 제자들은 합세하여 나를 밀어내려 한다

(중략)

나는 많은 사람을 제치고 예수님 앞에 선다

그래 네 고양이가 죽어간다고

네 간절한 믿음이 네 고양이를 살렸다

돌아가서 네 믿음대로 살아라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니

이 사람같이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면 결코 구원받지 못하리라

나보고 어린아이라니 하지만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찌 저런 허접스러운 人間들을 제자로 불렀는지

요즘 교회가 흔들흔들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네

고양이를 살려주신 은혜를 받고도 이런 소리하니

나도 저 후줄근한 제자들과 무엇이 다르랴

-고양이를 살리신 예수님, 부분

 

  화자는 베드로와 유다를 험상궂고 사기꾼 같다고 강조하면서 //네 간절한 믿음이 네 고양이를 살렸다/돌아가서 네 믿음대로 살아라---//예수가 인간이 아닌 일반동물인 고양이를 살릴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의 확신을,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다는 구원의 확신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평자가 어릴 때 집 옆 로터리 가운데 큰 포장을 쳐놓고 뱀술과 두꺼비기름을 들고 만병(萬病)을 고치는 귀한 약처럼 장사하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와 유다는 무대에서 북을 치며 손님들에게 바람 잡고 호객하는 마치 협잡꾼처럼 그려진다. 그 무대는 믿음의 과정을 연마하는 장소일 것이고, 주인공 예수가 만복의 근원인 구원이라는 뱀술과 두꺼비기름을 판다는 장사꾼을 대변하는 듯 그려내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구는 요즘의 교회, 고양이를 살려준 은혜를 받고도 왜 이런 신성치 못하는, 믿음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을까? 화자는 믿음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교회에서 현 세상의 공존과 상생이라는 기표와 기의의 조합을 통해 자칫 싫증이 날 시각적 상투성에 벗어나고 싶다는 상상력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념의 대립 속에서도 인간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추구와 평화라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를 많이 받아 마음이 강퍅해져 있다. 진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아니라 무너져 내리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화자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웬 짐이 이렇게 무겁냐?

내 짐을 스스로 지겠다고 하더니

얼마 가지도 않아 불평하는 예수님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네놈은

길거리에 쓰러져 못 일어났을 것

공치사까지 하는 예수님

 

뭐가 이렇게 무거운지 열어보자

멈추시고 자루를 열어보는 예수님

차라리 내가 지고 가는 게 편할 듯

 

네놈은 웬 쓰레기를 이렇게

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네

쓰레기라니 나에겐 다 귀한 것들

 

지고 가기 싫으면 관두지 내 귀중한

물건을 쓰레기라니 이러니 예수님의

후예라는 사제들이 입이 험한 듯

 

쓰레기라고 다 버릴 줄 알았더니

주워담고 등에 짊어지는 예수님

내 쓰레기를 대신 지어주는

 

예수님이 이상한 분인 걸 알지만

내 비록 짐은 지고 있지 않지만

내 어깨는 더 무거우니인생

 

예수님에게 미안해서라도

내 귀중한 쓰레기를 버려야 하나

안 가냐? 손짓하는 예수님

 

예수님이 요즘 할 일이 없나

詩詩人間의 쓰레기를 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나를

-내 쓰레기를 지고 가는 예수님, 부분

 

  화자의 인생을 짊어지고 가는 예수님, 사실은 화자가 인생의 짐을 스스로 지고 가고 있다. //웬 짐이 이리 무겁냐?/내 짐을 스스로 지겠다고 하더니/얼마 가지도 않아 불평하는 예수님 (중략) 네놈은 웬 쓰레기를 이렇게/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네/쓰레기라니 나에겐 다 귀한 것들//

  먹고 살아가는 에너지를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쓰레기는 생명의 양식이자 삶 그 자체이다. 화자는 사랑도 아가페 우위를 말하기 위해서 에로스를 끌어들인다. 인생이라는 삶에 대한 사랑이다. 이 쓰레기에는 먹고살기 위한 도구와 생명의 에너지가 되는 밥그릇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물질과 정신을 대비시켜 정신 우위를 주장하고, 친구인 화자는 사랑이 밥 먹여주나?며 딴전을 부린다. 밥은 세상 살아가는 육체의 양식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삐까뻔쩍한 금빛 나는 숟가락이 있어야 훨씬 더 모양이 난다며 은근히 세상의 쓰레기를 강조하고 있다.

  화자의 치기가 번쩍인다. //예수님이 요즘 할 일이 없나/詩詩人間의 쓰레기를 지고/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나를// 비유와 직설, 실재와 관념, 풍자와 정색, 그러면서도 메시아를 향한 사랑과 포용되어 조화를 빚어내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눈먼 거지가 되어

거리에 앉아 까만 세상을 보며 구걸하고 있다

사람들이 와서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눈먼 사람을 보게 한단다

너도 한 번 부탁해 봐

글쎄

내가 눈을 뜨면 더는 구걸을 못 하고 일을 해야

나 지금 무척 편하고

人生 얼마 안 남았는데

눈을 떠서 뭐 ?

사람들이 또 와서 귀찮게 한다

예수가 저 앞에서 오고 있다

곧 네 앞을 지나갈 것이니 소리를 쳐라!

예수 발걸음 소리가 나는 듯해서

나는 모깃소리로 외친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가 못 들었겠지 했으나

뜻밖에 예수가 와서 말한다

무엇을 원하느냐?

나는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내 여생에 먹고살 만한 돈을 주십시오.

구걸도 이제 지쳤습니다

나는 예수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 본다

돈을 줄까?

눈을 뜨게 해 줄까?

돈도 주고 눈도 뜨게 해줄지도..

모르지 그냥 가버릴 있고

예수는 내 귀에 대고 말한다

 

넌 장님 아니거든! 눈을 떠!

 

나는 놀라서 번쩍 눈을 뜬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아우성친다

 

기적? 기적기적.

 

내가 장님이 아니었나?

그런데 세상은 왜 그렇게 깜깜했나?

그래도 구걸로 잘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

다시 장님 행세를 할 수도 없으니

안 될 건 없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거적에 앉는다

누가 내 귀에 속삭인다

정말 장님이 되고 싶으냐?

앞이 보이고 안 보이고 무슨 관계?

장님 행세로 잘 살아왔는데

-나는 장님이 아니었다, 전문

 

맹물을 맛있는 와인으로 변화시키신

비리비리한 저를 멋있는 男子로 바꿔주십시오

 

넌 이미 멋있는 男子

뒤를 돌아다 보아라

 

장님들에게 빛을 주신

저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넌 장님이 아니다

밤하늘을 보아라

 

문둥병자를 고치신

도 고쳐주십시오

 

넌 고칠 이 없다

네 주위를 둘러보아라

 

五天 명을 먹이신

저에게 平生 먹을 것을 주십시오

 

얼마나 오래 살 계획이냐?

그래도 내일 먹을 것은 있겠지

 

물 위를 걸으신

저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넌 물 위를 걸을 필요가 없다

날아가는 참새를 보아라

 

폭풍우를 잠재우신

저에게 世界 平和를 이룰 힘을 주십시오

 

넌 구세주가 아니다

나도 못 하는 것을 네가 하려고?

 

부활 후 영광을 받으신 주님

저도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싶습니다

 

네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냐?

 

님의 옷자락을 잡은 女人처럼 간절합니다

기꺼이 강아지도 될 수 있습니다

 

네 간절한 욕심이 마음에 든다

영광의 무게를 견딜 힘도 주겠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고

지질한 솔로몬 생각이 나는 것은

- 간절한 욕심, 전문

 

  이 시작품에는 모든 요소가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 나는 장님이 아니었다에서는 마가복음 10:51의 구절을 인용한다. 맹인 바디매오의 믿음과 예수가 자신을 구원해 준다는 확신을 입증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간절한 욕심에서는 한 발 더 나간다. 여호수아 10:11~13을 보면 아모리 족(Amorites) 다섯 왕의 연합군과 이스라엘군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태양이 잠시 멈추지는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낮시간을 늘렸던 사건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는 지구를 잠시 멈춘 사건이다. 여기서 믿음은 존재의 체험을 구체화하고 형상화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큰일 날 영화 내용 같은 오류의 장면이 연출된다.

 성경에서도 인식의 오류와 이해 못 할 신화적 논리의 오류들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을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설득시킨다. 어쩌면 좋을까? 사랑의 행위에 대한 기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그 당시 기록자들의 한계성이다. 성경 속에는 많은 민족의 이질성이나 전쟁이란 수난의 긴 역사가 담겨 있다. 이데올로기의 제물이 되었던 시대의 비극이 상존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원초적 문제인 사랑과 평화를 그리고 있다.

  사랑의 종류가 많다. 이웃사랑. 진정한 사랑, 목숨사랑, 삶에 대한 사랑. 형이상학적 관념적 말로 된 사랑, 예수님의 사랑 등과 눈먼 사랑, 돈 사랑. 입술 사랑 등이 서로 반목하면서 어느 것들은 느슨하게 결합되고 어느 것들은 맞춤법과 관계없이 한통속이 되어 합성어로 나타난다. 이럴진대 화자의 시()의 구체성은 때로는 벅차게, 때로는 맥 풀리게 하는 단어들이 문맥에서 제구실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예 성경이라는 신화(?)에서 해방시키고자 김준호 시인은 두 팔을 벗고 나서고 있는 듯하다.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들음과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이미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물질적, 정신적 세상적 맹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치기(致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화자가 참 구원에 대한 눈을 뜨는 순간, 그건 캄캄하여 두려워하지 않았던 진실의 세상과 하나님의 세상 그리고 진리의 삶에 대한 고행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부활의 소문은 2 千年을 달려와

귀에까지 이르렀으나

천지개벽은 일어나지 않았다

 

世上의 추상화는 그대로 걸려 있고

방에 먼지는 다시 쌓이니

빈 무덤은 누구를 기다리나

 

소문은 빛같이 빠르고

살아난 발걸음은 한 발자국씩 오려나

빛바랜 부활의 소문이

깊은 가을의 낙엽이 되어

산산조각이 될 때

부활의 발걸음 소리는

바로 방문 앞에……

 

그래

가을이 오기 전에

봄의 발소리가 문 앞에 들리면

방문을 박차고 나가

부활의 땀 냄새를 찾아

킁킁거린다 숨겨놓은 뼈다귀를

찾는 배고픈 강아지가 되어

-부활의 소문, 전문

 

  현대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교회 교의학(Die Kirchliche Dogmatik)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심판자로서 우리의 자리를 취했고, 심판당하는 자로 우리의 자리를 취했다. 그는 우리의 자리에서 정의롭게 행했다그는 우리의 자리에서 심판을 당한 심판자였다. 화해의 교리에 연이어 나오는 그 교리가 나가는 과정의 모든 신학은 이 신학적 핵심에 의존한다. 모든 것의 종이 되었던 예수는, 먼 나라로 갔고 우리를 위해 왔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행하였던 사실에 의존한다. 곧 예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언약을 성취할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에게 임한 것이다.이 좁은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교회교의학 IV: Die Lehre, von der Versohnung, T&T Clark, 1992)고 했다. 따라서 바르트는 예수의 부활과 예수의 삶, 죽음, 부활의 믿음을 기독교의 근간이고 계약이라 강조한다. 이 계약을 레위기 26:12와 에레미아 30:22를 인용하고 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부활의 소문은 2 千年을 달려와/내 귀에까지 이르렀으나/천지개벽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그래/가을이 오기 전에/봄의 발소리가 문 앞에 들리면/방문을 박차고 나가/부활의 땀 냄새를 찾아 킁킁거린다 숨겨놓은 뼈다귀를/찾는 배고픈 강아지가 되어//

  그렇다면 지금도 부활의 방문과 천지개벽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요한계시록 21:4에서 말하는 저희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이 되어 죽음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고대하는가?

  위의 시에 근거해서 바르트는 예수 안에서 성취된 역사의 의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인간 이해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근거로 교회 공동체를 설명한다. 첫째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둘째로 화해사역의 전제로서 계약. 셋째로 깨어진 계약의 성취이다. 그 중 이 화해는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낮춤의 역사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이고 객관적인 주님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 계약을 성취하심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으며, 하나님 영광의 계시를 위해 육체가 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화해 사역은 예수의 핵심 삶이며 사랑이다. 그리고 완성된 기다림이다.

 

  결론

 

  이 시집은 사랑인 애피그라프가 맨 앞에 자리하고 있다. 예수에 대한 사랑이다.

  21세기 지금은 화성을 넘어서 금성의 실제모습과 주변의 소리를 듣고 연무층에 둘러싸인 명왕성까지 구조와 모습이 공개되는 살아 움직이는 과학이 발단한 시대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싶은 2천 년 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인간으로서, 갈대가 되지 않고 혼자 몸으로 구원의 본질을 넘어서야 하는 시대인지라, 참 종교인은 단단한 자기 최면의 아이러니 언어를 벗어나야만 한다.

  시인 김준호가 산출해 낸 시들은 완전한 성경에 유래해야 한다는 자기 고백의 형식일 것이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예수를 친구처럼 대화체를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반항체를 사용하며 비꼬기를 거듭 반복하면서 스스로 시시詩詩한 시()로 엮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 돌출되는 관념어와 함께 일상용어가 많이 등장하기에 시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화자 김준호가 예수에 대한 비평과 허구라는 과학적이고 날카로운 주장의 등짐을 자신이 다 짊어지고 갈 지게란 걸 잘 알고 있다. 화자다운 사랑을 표현하는 연민(憐憫)의 방법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적인 언어와 철학적 언어는 생활 속의 시와 생활 속의 신앙철학이다. 화자의 시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산물이며 고행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해 주어야 할 짐을 화자가 대신 지고 있다. 성경과의 사랑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여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되는 인간성의 타고난 한계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때때로 아집을 수 있는 푸념을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도 바리새파, 사두개파가 활개를 치며 에세네파까지 메시아를 불신하며 조롱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을 무디게 하는 요소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어느 때 어느 곳곳에 널리 있다. 인간이 타고난 절대적 고독, 개인적 체험, 지금의 시대상황 등은 개인과 인류의 삶을 피폐 시켜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 죽음의 직전에서 탈출하려는 우리 모두는 종교로서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사용해서라도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시켜야 한다.  

  키가 다 자란 대나무는 외부 불신의 모순을 하얀 얇은 막(竹茹))으로 그 빈속을 막으며 성령이 꽉 찬 모습으로 커간다. 아무리 세찬 비바람과 추위에도 비틀림 하나도 없이 꼿꼿하게 서서 세상 풍파를 다 비워내기에 대나무숲의 울림은 청정하지 아니한가.

                                                                      

 

김준호 1.jpg

 

아호: 裸神.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졸업. 미네소타대학 의료전산학 박사. Sage Software 근무.

2011년 짚신문학 시 등단. 2017년 짚신문학 수상. 서울문학 시부문 문학상. 짚신문학 부회장.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원.

시집:축제의 노래』 『우물가에 핀 꽃』 『늦게 피는 꽃나무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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