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정순옥
느티나무는 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오백 여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성남 성동 성서마을 성삼다리와 성복천에 있는 느티나무가 인연이 되어 믿음직하고 넓은 마음을 만난 기쁨에 들떠 있다. 포근히 감싸주듯이 반겨주는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역사적인 느티나무는 구순에 가까운 세월 품고 계시는 원로 교육자이시며 저술가이기도 한 형부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귀한 존재이기에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인 느티나무는 시골 마을 동구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친숙한 나무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담당해온 느티나무는 주로 고목나무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는 커다란 몸통에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껍질이 벗겨져 있기도 하고 세월의 풍파에 못 이겨 떨어져 버린 가지들도 많다. 상처가 난 어떤 곳에선 아직도 진물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어떤 곳에선 옹이 되어 삶의 소리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지방에선 울긋불긋한 헝겊조각들을 새끼줄에 매어 놓고 신목처럼 대하며 그 앞에서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신비로운 힘을 가졌기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품고 있어 토속신앙의 문화를 보는 느낌이 들게 하는 나무다.
우연히 만나 며칠을 함께한 성북동 보호수 느티나무는 아파트 숲 속에 있는 성복천 가에 늠름히 서 있다. 아낌없이 주고만 산 세월의 무게가 버거운 듯 구부러지고 늘어져 있는 길게 뻗은 가지들을 후세들이 버팀목으로 받쳐주고 있어 한 결 안전해 보인다. 넓은 사랑을 베풀기만 하는 느티나무는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는 쉴 수 있는 둥지를 주고 사람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주고 포근한 정서를 주어 편안히 쉬게 한다. 내가 며칠을 보낸 쉼터 느티나무는 가지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날라오고 밑에는 누구나 쉴 수 있는 의자들과 아름드리나무 가지엔 그네가 매여 있다. 의자에 앉아서 독서도 하고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리며 동심에 젖을 수도 있는 참 아름다운 휴식처를 오백 여년이 된 느티나무가 마련해 주니 고마울 수밖에.
교육계의 한 그루 고목 느티나무인 형부는 이 시간도 후세에게 평온하고 시원한 그늘을 주기 위해 넓은 어깨를 뻗치고 있지만 버겁다. 주위 사람들 사랑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속도가 한없이 느리고 불편한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꾸게 된 날은 황홀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씀하신다. 요즘은 새롭게 영어 회화 참고서를 집필하고 계신다. 구순을 바라보고 계시기에 노년이 된 친구들의 별세 소식도 듣고 요양원에 있는 친구들의 소식이 많다 하신다. 이런 와중에서도 묵묵히 후세들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버팀목 노릇을 해 주고 있으니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사랑받는 원로 교육자가 되리라 싶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이루며 넓은 포용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는 오백 여년이 된 느티나무. 오랜 세월 동안 모든 풍파를 몸으로 견디며 이겨낸 흔적들이 두터운 껍질이 되어 울퉁불퉁한 몸통과 찢겨져 늘어진 가지들이 무언으로 인내를 보여주고 있는 노 거수. 성북마을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내 눈에 책가방을 뒤에 메고 핸드폰을 보면서 걷는 학생이 눈에 띈다. 교육열이나 학문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는데 인성교육이 잘되지 않아 교육현장이 엉망이라고 염려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바람결에 들린다. 지금 세대는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학부모는 학생을 옹호하고, 기관은 무능력하여 이상한 세대로 변해가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나무 이파리들도 수런대는 듯하다. 오늘의 교육이 미래의 한국인데 이 세태를 느티나무는 나이테에 어떤 색깔과 무늬로 새겨 놓을까.
글로벌 세계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갈 후세들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이제는 은퇴한 교육자가 교육현장을 염려한다. 새로운 비전을 갖고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굳게 서고 싶어하는 후세들을 위하여 영어, 중국어 참고서를 만들지만 지적 보다는 먼저 학생들의 인성교육(人性教育)이 필요함을 강조하신다. 한편으로는 선진 문명국가인 한국의 커다란 희망교육 그림을 기다림 속에 그리고 계시는 듯하다. 노 거수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세상살이 돌아가는 모든 것들을 보고 들으며 느끼면서 커다란 생태그림을 나이테에 그려가고 있듯이.
청명한 창공을 향해 온몸을 뻗어 따뜻한 햇볕을 받고 깊게 내린 뿌리로 온 힘을 다해 수액을 빨아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연환경의 쉼터를 제공하는 존귀한 나무, 성북동 느티나무. 후세들을 위해 더 좋은 교육 참고서를 만들기 위해 현지 영어 교육자들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계시는 원로 교육자, 성북동 형부. 그들의 안녕과 고귀한 삶을 위해 가슴에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