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풀어 펼쳐 낸 구경(究竟)적 삶의 지도
이택화
문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1. 하얀 빛깔을 품은 삶의 지향
소금은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서게 하는 근본적인 성질을 지니고 세상에 풀려 있다.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캔버스의 하얀색처럼 소금의 흰색은 삼라만상을 세우는 바탕색이다. 소금의 결정체는 흰색이지만 물에 녹아 스스로를 희생하고 만물에 스며들어 세상을 유지한다. 흰색의 소금은 만물을 청정하고 순결하게 정화하여 신성성을 회복하는 힘을 지닌다. 바다에 풀린 소금물이 지구의 오염을 순화하여 항상 정결의 상태로 만들어 놓기에 오늘도 지구는 푸르게 빛나는 별이다.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소금이 함께 한다. 소금은 의식주를 유지하는 필수요소이다. 음식, 옷, 종이, 세제, 유리, 의약품, 가죽, 플라스틱 등을 만드는 데 소금이 사용된다. 지구의 70%가 바다로 이루어진 것처럼 사람의 몸도 70%가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은 작은 바다다. 체액은 0.9%의 염도를 지니고 있는데 염도가 높아지면 고혈압이나 위암을 유발하고, 낮아지면 소화 기능 부진이나 의식을 잃게 된다. 한 마디로 사람은 소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렇게 비범한 소금이 물이나 공기처럼 흔하기 때문에 평범해 보일 뿐이다.
소중한 세 가지 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대답한다. 이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소금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데, 황금과 지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최고의 금은 소금이다. 강정실은 이러한 소금의 소중함을 시로 풀어 제3시집 『소금 맛』을 세상에 내놓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 13절)
성경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는 소금 맛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명구는 사람을 소금에 비유하여 소금이 짠맛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은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맛의 근본은 짠맛이다. 짠맛으로 간을 맞추지 않은 음식은 맛이 없어서 버려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근본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는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 강정실 시인은 소금 같은 시를 선물로 주고 순수하고 진실하게 삶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시인의 천명을 실천하고 있다.
내 삶의 기억 속에
짭짤하게 간을 맞추어주던
횃불 든 여인의 등대는
이제사
한 줌의 소금을 빚는다
오랜 항해로
내 머리카락도
바닷바람에 젖었다가
되돌릴 수 없게끔
하얗게 염색되어
또 다른 삶을 기다리며
간수를 빼고 있다
검붉은 낙엽에
나 불타 죽으면
한 뙈기 소금밭 항아리 안에
부서진 흰 알갱이가 되어도
소금 맛은 그대로 남아 있을까
- 「소금 맛」 전문
「소금 맛」에서는 소금이 되기 위한 인생길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참된 결과인 ‘소금 맛’을 지향하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소금 맛’이 ‘그대로 남아 있’도록 이끄는 ‘등대’는 시각적으로 인생 항로를 알려주는 표지로 ‘횃불 든 여인’이다. ‘횃불 든 여인’은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 Auguste Barthold)가 디자인하고,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유의 여신상을 의미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발판 위에 세워져 있고,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를 담은 책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7개의 가시관으로 인간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횃불’은 이들을 이끌어가는 밝은 빛으로 ‘한 줌의 소금’을 빚는 힘이다. 바닷물은 햇빛을 받아야 비로소 천일염이 되고, 천일염은 ‘간수’를 빼야 쓴맛이 제거된 소금이 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와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 만나 빚은 소금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아야 인류 문화는 발전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오랜 항해로’ ‘하얗게 염색’된 ‘머리카락’이나 ‘한 뙈기 소금밭 항아리 안에 / 부서진 흰 알갱이’에서 드러나는 흰색은 다양한 빛을 합하면 하양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인생 전반에 대한 진정한 결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집에는 현란한 솜씨를 부려도 마음을 미혹하게 하지 않는 정심(正心)이 알알이 석류알로 박힌 정갈한 흰색의 결정체인 소금처럼 읽히는 시들이 많다. 이는 「이른 아침에」에서 드러나듯 ‘나 홀로 / 허공 구석구석을 적시는 물의 소리를 들으며 / 내 안에 접혀 있는 줄사다리가 스스로 펼쳐놓는다 / 산다는 게 / 뭘까’ 하는 시인의 궁극적 삶에 대한 탐구의 표출이다.
강정실은 「브로드웨이에서」의 ‘왜 그리 몸과 마음이 무거운지’, 「빈 주머니」의 ‘빈 주머니에서 찾으려 애쓰니’, 「거미집」의 ‘무엇 하러 힘들게 집을 지었나’, 「귀뚜라미 울음」의 ‘내 안의 귀뚜라미도 울어댄다’, 「기억」의 ‘즐겨 불렀던 노래가 뭐였을까’, 「냉장고가 울어댄다」의 ‘내 속에 있는 가시를 걸러낸다’, 「미혹」의 ‘오늘도 / 당신의 환한 웃음을 / 역술가의 부적처럼 / 가슴에 품고 / 기다리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의 귓밥을 짜를 정도의 용기가 있기나 한가’, 「칠십령, 재에 들어서니」의 ‘흥얼거리는 / 내 모습이 초승달 같다’, 「설산」의 ‘오늘따라 / 유독 포만감에 / 황홀을 먹고 있다’, 「눈송이」의 ‘깊은 밤 늑대 울음을 되새김질한다’ 등의 표현을 통해 참된 진실을 위한 선한 의지를 세워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한다. 이런 시들은 부산스럽고 우렁차서 주목받는 것들보다는 조용하고 순결한 세상을 신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흰색의 목소리를 표방하고 있다.
2. 소금 길이 펼쳐지는 세상의 만화경
(1) 알맞은 소금기가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
작가의 현실 인식은 작품의 바탕과 골격을 이루는 중요 요소이다. 강정실은 예민한 사물 포착 능력을 사진작가의 렌즈로 담아내듯 감정과 거리를 두고 있어서 치열한 성취나 처참한 불편을 심하게 노출하지는 않는다. 그는 소금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순환되고 있는 개인과 사회로 보지 않기에 필요로 하는 곳마다 소금이 풀려야 세상이 건강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소금은 녹으면 무색으로 풀려 무형의 하얀 뼈로 맛의 골조가 되고, 생명을 유지하는 실핏줄이 된다. 시인의 눈은 예리하여 제대로 소금이 풀리지 않거나 지나치게 풀려 허덕대는 개인이나 사회의 갖가지 문제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만족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짠맛에 목말라하는 허기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인지한다. 또한,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은 비열과 멸시로 찌들어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소금기가 적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이 시의 소재와 주제가 되고 있다.
비눗물에 씻겨
구멍 난 채 마른 고통이 춤추는
황톳빛 절은 바위산을 노려본다
공룡 발에 남겨진 상처
코끼리 뼈만 앙상히 남겨져 있는
바닷속 해초가 말라버린
허리춤에 붉은 안개 서리고
허기진 먼지 펄펄 이어진 길
작년 말 부모님 안 계신
형님 댁에서 전국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한데 모여 소주 한잔했는데
멀쩡했던 남동생은 전립선암이 다른 곳까지
넓게 전이되었다는 급작스런 연락은
얼마 전 장모님의 사망 소식과 함께
자꾸 슬퍼지고 메마른 눈물이 난다
파도에 몸 담그고 노래하는 옛 시절을
눈물겹도록 소원하건만
애달파라
이만큼 고독 속을 걸어왔으니
하늘길 풍선을 타고라도
머언 바다
깊은 바닷속
고래등에 올라타 함께 놀아 봤으면
- 「고향상실증 환자」 전문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강정실은 고향 상실의 아픔을 시에서 자주 드러낸다. 시인은 시적 화자를 내세워 소금기가 빠진 사람의 아픔을 노래한다. 고향은 인간 본성의 근원이므로 고향을 상실한 사람은 삶의 지축을 흔드는 고독 속으로 빠진다. 그의 삶은 ‘구멍 난 채 마른 고통이 춤추는 / 황톳빛 절은 바위산’ 같다. 그런 인생은 ‘코끼리 뼈만 앙상히 남겨져 있는 / 바닷속 해초가 말라버린 / 허리춤에 붉은 안개 서리고 / 허기진 먼지 펄펄 이어진 길’로의 행군이다.
고향의 이미지가 함축된 ‘부모님’, ‘장모님’과의 사별이나 한쪽 팔 같은 ‘남동생’의 병듦은 ‘자꾸 슬퍼지고 메마른 눈물이’ 나게 하는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적 화자는 ‘파도에 몸 담그고 노래하는 옛 시절을 / 눈물겹도록 소원하’게 되고, ‘하늘길 풍선을 타고라도 / 머언 바다 / 깊은 바닷속 / 고래등에 올라타 함께 놀아’보기를 희망하게 된다.
들어 있는 서너 개의 스프를 뜯어 넣고 라면이 끓기 시작하자 냄비째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과 함께 국물맛을 본다. 짠맛이 혀끝을 자극한다. 바닷물이 햇볕을 받아 순백의 결정체인 소금은 물에 닿으면 녹아 사라지며 맛의 원초적 풍미를 주는데, 내 입에서 느껴지는 라면은 짠 소금 맛뿐이다. 냉장고에 있는 냉수를 꺼내어 간을 맞춘다. 면발은 퉁퉁 불어나고, 내가 원했던 라면 맛은 예측된 맛이 아니라 먹기를 포기한다. 싱크대에 붙어 있는 디저포저에 갈아 버린다. 그리곤 후추가 들어 있는 또 다른 짠맛의 감자칩을 우둑우둑 씹는다.
우리의 인생은 이승에 밥 빌어먹는 비렁뱅이인지라
평소 내 밥상은 침묵이 참 밥상이었다고 자부했는데
저마다의 맛에 대한 이유와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 마침내
파란색의 하늘과 닿아 있는 먼 바다의 조화에 합당한 합리성과 균형을 어느새 이의를 달고 자신도 이기심의 욕망 도구가 되어, 그 맛마저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갖가지 땟국물이 뚝뚝 흐르는 허망한 세상의 빛깔과 맛을 찾는 기생충이 되어 버렸다
- 「기생충」 부분
「기생충」에서는 ‘라면 맛은 예측된 맛이 아니라 먹기를 포기’할 만큼 소금기가 지나치게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가 ‘파란색의 하늘과 닿아 있는 먼 바다의 조화에 합당한 합리성과 균형’을 갖춘 먹거리에 대한 감사를 잊고, ‘이기심의 욕망 도구’로 전락해 ‘기생충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소금물은 옅어도 진해도 고통의 비탈길을 만든다. 비탈길에서 염도를 맞춰 수레를 멈추지 않으면 생명체들은 부서지는 수레처럼 상하고 만다. 소금 농도가 만드는 인간사 경사는 가파르고, 충동만 남은 자들은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고 부질없이 부서질 확신만 안고 떠밀려 다닐 뿐이다.
「휘파람」의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국화꽃」의 ‘잠 못 들고 / 과거 현재 미래를 / 이 밤 내내 끌고 다니는지’, 「껍데기의 침묵」의 ‘껍데기 속에 감춘 침묵을 / 요리조리 자르고’, 「눈사람」의 ‘아직도 한겨울 사람냄새 그립다’, 「느림의 미학」의 ‘인생이 꼬인 사연이 굴비 두름처럼 쌓여 있는데도’, 「되새김질」의 ‘그건 억측이고 오해인데 / 그게 아니었는데 하며 / 구불구불 접혔던 불편했던 기억’, 「얼룩말 산책」의 ‘빠져나갈 길이 안 보인다’, 「어이없을 때는」의 ‘고독증이랄까 울화로 멍든 자리 누가 건드리지 않게 오롯이 혼자 품어 안고 살아가는데’, 「알약」의 ‘진득하게 덮여 있는 / 곪아 터진 곳이’, 「비 오는 날의 여로」의 ‘하나님은 하늘나라 높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의 권력자들도 땅 위 높고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려 한다.’ 「밤의 소리」의 ‘중생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 「밤거리」의 ‘현실이 마땅치 않아’ 「수갑 찬 그녀」의 ‘안 간다고 고함을 지르다가 /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에게 / 두 팔이 등 뒤로 수갑 차인 채 / 그녀는 정신과병동으로 끌려갔습니다’ 등에서 강정실의 어두운 현실 인식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려면 개인과 사회가 소금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2) 소금의 정화로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 표출
소금은 음식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데 사용되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육류, 생선, 계란, 야채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으로 음식을 저장하는 염장법(鹽藏法)이 성행했다. 생선에 소금을 뿌려서 보존하는 방법인 산염법(散鹽法), 오이를 소금물에 담가서 보존하는 방법인 입염법(立鹽法)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소금을 사용해 부패를 막는 것처럼 강정실은 시를 통해 완전한 순수에 가까워지기 위해 죄의 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화는 어둠에 빛의 세례를 내려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분석에서의 정화는 억압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안정을 찾게 하는 일이다. 정화된 사람은 우울함이나 불안에서 벗어나 긴장하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다. 시인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 마음의 심화를 겪고 있는 인물을 내세워 정화로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추운 새벽녘 요세미티로 가는 협곡에 접어들자 꼬부랑 산길에는 군데군데 모래소금이 뿌려져 있고 옆길에 치워져 있는 눈은 성벽처럼 견고하다. 달리고 있는 차는 추운 날씨 탓인지 자꾸 엔진이 꺼져 가다서다를 반복하는데도 운전해야 하는 자나 그 옆에 앉아 있는 자, 둘 다 되돌아갈 수도 없는 난감한 곳이라 각자 현실을 예상하며 뜨악한 표정을 감추고는 서로의 불안을 숨기며 격려부터 한다.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안 하던 차멀미다. 급하게 차를 세워달라 요구한다. 문을 열자마자 애꿎은 눈 위에 꾹꾹 눌러놓았던 걱정이 구토로 터져 나온다. 점심때 이 자와 함께 먹었던 음식에 들어 있던 고깃덩어리가 쏟아져 나오고 또 한 바가지 썩은 구정물을 쏟아낸다. 온몸이 떨리고 심한 한기가 든다.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도솔궁 밟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세상 살면서 지은 죄 다 벗어버리고 오라하는 듯 힘들기만 하다. 긴 터널을 지나고 드디어 예약한 25번 지정 자리에 텐트를 치고 옆에 앉아 있던 자는 차 안에서, 운전하던 자는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 「요세미티로 가는 길」 전문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은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기암절벽이 유명한 곳으로 1890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198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약 1백만 년 전에 빙하가 침식해 화강암 절벽과 계곡이 형성되었고, 1만여 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300여 개의 계곡, 폭포,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 투올러미 협곡, 브라이들베일 폭포, 앨캐피탄 절벽의 명성이 높아 관광객이 많다.
시적 화자는 자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요세미티로 가는 길’이다. 대체물이 없는 소금처럼 견고해서 무너뜨리기도 사라지게도 할 수 없는 요세미티는 언제나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추운 새벽녘 요세미티로 가는 협곡에 접어들자 꼬부랑 산길에는 군데군데 모래소금이 뿌려져 있고 옆길에 치워져 있는 눈은 성벽처럼 견고하다’는 표현 속에는 소금을 뿌리는 정제의식(精製儀式)과 단단한 순수를 지키려는 의지가 서려 있다.
이런 길에서 화자는 ‘속이 계속 울렁거’리다가 ‘안 하던 차멀미’를 한다. 그의 ‘눈 위에 꾹꾹 눌러놓았던 걱정이 구토로 터져 나’오는 행위는 부끄러운 과욕의 찌꺼기를 내쏟고 하얀 소금으로 돌아가는 정화 행위이다. 그가 ‘먹었던 음식에 들어 있던 고깃덩어리가 쏟아져 나오고 또 한 바가지 썩은 구정물을 쏟아’내고, ‘온몸이 떨리고 심한 한기가’ 들자 ‘세상 살면서 지은 죄 다 벗어버리고 오라하는 듯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육체적 정화와 정신적 정화가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세상살이로 영육에 달라붙은 죄를 겉에서 속까지 정화하는 입염법(立鹽法) 중이다.
「건망증」의 건망증에 시달리며 이를 극복해보려는 ‘나’, 「개꿈」의 자신의 시체를 태워 뼛가루를 유골단지에 넣는다는 전화를 받는 ‘나’, 「반달」의 어릴 때 기억으로 친척들을 생각하며 애환을 겪는 ‘나’, 「해 질 무렵 출근」의 카지노 호텔에서 게임하는 자들, 「자전거 전용로에서」의 자전거 타기가 어려워져 마음이 불편한 ‘나’, 「이를 어쩌나」의 출국 날짜의 재조정 문제로 심한 갈증을 느끼는 ‘나’, 「우리들 이야기」의 무질서의 도시에서 유혹받는 우리들, 「영정사진」의 부모님의 속을 썩여 드린 것을 자책하면서 부모님을 닮아가는 ‘나’, 「꿈이로다」의 휘어진 등으로 홀로 우는 법을 배우는 ‘나’, 「개 같은 날」의 인종에 대한 편견에 불편한 ‘나’ 등은 정화로 억압을 풀어 심신이 하얗게 편해져야 할 인물들이다. 강정실은 정화가 필요한 민낯의 어지러움을 아는 나이인 고희에 이러한 인물들을 내세워 소금으로 버무린 시 80편을 펼치고 있다.
파란 공기 흰 물감을 펼친 곳
높은 산 병풍처럼 펼쳐진 곳 아래
하늘로 솟구친 나무숲 사이
깊은 계곡에 샘터가 하나 있다
목마른 길손이 찾아오면
편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땅속 깊은 곳에서 샘물을 퍼올려
작은 강처럼 흘러내린다
옛날 요세미티 인디언들은
이곳을 물의 원천이고 생명의 성지
행복의 씨가 자라는 곳으로
길흉사에 몸과 마음을 정화했던 곳
황톳잎 떨어져 있는 샘터
입을 대고 듬뿍, 또다시 듬뿍
흘러내리는 겨울의 물소리는 가까이에 있는 듯
멀리 있는 듯 그리운 소리로 들린다
- 「샘터」 전문
샘터는 정화수가 흘러나와 생명을 살리는 성지이다. ‘파란 공기 흰 물감을 펼친 곳 / 높은 산 병풍처럼 펼쳐진 곳 아래 / 하늘로 솟구친 나무숲 사이 / 깊은 계곡에’에 있는 ‘샘터’는 ‘옛날 요세미티 인디언들’이 ‘물의 원천이고 생명의 성지 / 행복의 씨가 자라는 곳으로 / 길흉사에 몸과 마음을 정화했던 곳’이다. 이러한 샘물을 시 속의 등장인물들이 ‘입을 대고 듬뿍, 또다시 듬뿍’ 마신다면 신의 목소리를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는 듯 그리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3. 신성성 회복으로 구원의 삶 실현
우리는 복잡하고 모호한 수학의 부호처럼 풀린 정보들로 방황하면서,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행복하지 못한 병에 걸려 있다. 이제는 단순하면서 명쾌한 소금의 원리에 순응하는 혜안을 가진 소금이 되어 행복을 되찾거나 발견해야 한다. 소금은 신의 섭리가 녹아 있어 사람살이의 기본 원리를 품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소금기가 부족해서 싱거운지, 넘쳐서 짠지 마음의 농도를 살펴 평안해져야 한다. 평화와 안정이 행복의 쌍두마차인 사랑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성은 하늘 멀리 떠 있는 별만 닮은 것이 아니다. 만물의 원리인 신이 주는 통제권 안에서 만족을 주는 모든 것에 신성성이 내재한다. 바람이 불어야 하는 방향대로 순순히 불 때도, 꽃이 최고의 정점에서 필 때도, 사람이 마음의 평정에서 얻은 감사의 악수를 이웃과 나눌 때도 신은 함께 하신다.
강정실 시인은 경험한 바를 일인칭 시점을 중심으로 시의 내용을 펼쳐내기에 같은 사람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독자는 감정이 공감되면서 이성도 문을 열고 사색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과오의 깊이에 침몰하지 않고 시인이 열어둔 환한 신의 문으로 들어와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이는 부정적 현실의 직시로 인해 생긴 마음을 상처 난 상태로 방치하여 불안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습하여 희망의 세계로 이끄는 시인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눈 내린 깊은 산 속
지극한 추위를 견디며
밤새 돌언덕을 타고 조금씩 내뱉는 고통의 흔적은
달빛을 받아 거꾸로 매달린 채
여러 형태의 수정 원석이 되어
그 흔한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한 올 한 올 일렬로 내리꽂기만 한다
끝은 살아 있는 비수처럼 날카롭다
자신을 다독이는 단단한 고집들은
훈련병처럼 기합이 단단히 들어 있다가도
한낮 햇살이 길게 비치면
끝의 날카로움은 조금씩 무뎌지고
그 위로 맺히는 수정방울은 초롱초롱 빛나다가
아래로 똑똑 떨어진다
예쁘다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고드름을 따서 큰 잔에 넣고 위스키를 부어 한 잔 마셔본다
톡 쏜다
불같이 화끈 달아오른다
고드름의 열반
고드름의 승천
아니
내 목구멍은 고드름에 찔린 듯 찬바람이 도는데
얼굴과 심장이 대신 승천한다
- 「고드름」 전문
「고드름」은 총천연색의 유혹이 낭자하게 펼쳐진 도심에서 벗어나 아득하고 쓸쓸하고 허접한 시대의 한편에서 구겨진 삶을 살지 않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때로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처럼 신성성을 획득하는 일이 격정의 가지를 자르고 흰 뼈만 남기기 위해 육신에 단단히 포박된 죄들을 녹이는 힘든 과정일 수 있다. 신성한 자는 ‘눈 내린 깊은 산 속 / 지극한 추위를 견디며 / 밤새 돌언덕을 타고 조금씩 내뱉는 고통의 흔적’을 몸과 마음에 새긴 사람이다. 그는 ‘흔한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 한 올 한 올 일렬로 내리꽂’으면서 ‘끝은 살아 있는 비수처럼 날카롭’고 ‘자신을 다독이는 단단한 고집들’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간다. 드디어 신성성을 획득하면, 그는 ‘열반’이나 ‘승천’의 밝은 이미지를 담은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망림목」에서 시인 강정실은 ‘대형화재로 불타 침묵하고 / 불 꺼진 자리 / 독야청청 높은 절개는 / 시커멓게 그을린 / 허울뿐인 몸뚱어리만 서 있는’ 상태에서조차 희망을 놓지 않는다. 시적 화자가 ‘망림목(亡林木)’에게 ‘맥주를 따라’ 뿌려주고 ‘비워진 자리에 봄이 오면 / 구름, 비, 바람, 햇볕이 / 연초록 무늬를 만들고는 / 복사꽃부터 피울 거야’라며 위로하는 장면에서 구원의 삶을 희구하는 시인의 간구를 느낄 수 있다.
장모님의 옆자리엔
큰 글자로 인쇄된 굵은 성경과 돋보기안경이 항상 놓여 있었다
주일날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조는 사이 성령님이 다녀가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었다
그랬던 장모님이
육십 넘어 예수님을 만나 성경 100번 넘게 완독했고
성경을 볼 때와 설교 시간에는 잠이 오지 않게 해달라던
기도를 잊고
깜빡 잠이 든 사이 하나님이 직접 데려가셨다
- 「기도」 전문
강정실 시인의 장모님은 2023년 3월 말에 만 95세로 소천(召天)하셨다. 장모님은 ‘육십 넘어 예수님을 만나 성경 100번 넘게 완독했고 / 성경을 볼 때와 설교 시간에는 잠이 오지 않게 해달라던 / 기도를 잊고 / 깜빡 잠이 든 사이 하나님이 직접 데려가셨’을 만큼 신실한 신자였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녀를 기쁘게 맞이하고 싶으셨으면 ‘기도’마저 잊으시고 직접 데려가셨겠는가! 시인의 영혼과 ‘성경’을 ‘100번 넘게 완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시간에 졸고 싶지 않은 그녀의 영혼이 하나로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 구절을 살펴보면 시인이 거룩한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골단지」에서 화자는 ‘예측 못 하는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을 터. 한국에 있는 딸 가족과 타주에 있는 아들 가족에게 부음을 전하고 급하게 찾아오고 정리하는 시간을 고려해 생명보험회사에서, 나의 시신을 화장해 재를 유골단지에 담아 아들딸에게 넘겨 주는 절차까지의 장례보험금을 완납해 놓았다.’ 그는 재가 ‘강가에 뿌려지면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하다 하늘 높은 곳에 수증기가 되어 올라 영혼은 바람 부는 곳에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이고, 수목장림에 묻히면 사철 내내 따뜻한 나의 영혼이 깃든 나무 거름이 되어 벌 나비 춤추는 볕 밝고’ ‘물 잘 먹는 영혼의 터가 되어’ 주겠다고 한다.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시인의 마음이 내는 소리이다. 사람이 재로 변하면 불순물은 사라지고 소금을 닮은 순결한 결정체만 남는다. 그의 진실을 향한 소망만이 하얗게 남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아래 있게 된다. 휘발할 수 없는 진정성만 모은 ‘유골단지’를 통해 시인의 시 세계가 현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성하고 거룩한 세계까지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산국화」의 ‘야들아 / 내 서재에 묻힌 철자들을 끄집어내어 / 오감에다 옮겨 놓으면 / 명주바람에 흐트러진 노란 매무새가 / 붉게 익겠다야’, 「무지개」의 ‘설빔을 입었던 오방색 꼬까옷 같은 / 즉석 사진을 그리운 이에게 / 카톡으로 보내야겠습니다’, 「귀향」의 ‘내 영혼은 뭇별이 되어 / 한 아름 쏟아져 내린다’, 「하늘」의 ‘하늘은 아무 소리 없이 동행하다가 돌아간다’, 「해상마을 사람들」의 ‘욕심 없는 단순한 삶의 인생들은 / 낮은 은빛 물비늘 세계 / 밤은 반짝이는 별세계’, 「안스리움」의 ‘언덕 위 세워져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는 꼭대기 층, 나의 방 베란다 화분 속에서 안스리움은 일 년 내내 목대를 높여 빨간 꽃을 피운다’ 등에서 강정실 시인의 높은 세계로의 탐구를 엿볼 수 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지평이 현실부터 이상까지 펼쳐져 있음을 알게 하는 동시에 창조적 고뇌의 흔적이 넓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강정실 시인은 시를 창작하면서 신성성에 손가락이 닿는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고, 구원의 삶에 발바닥을 놓으면서 걸어가는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제3시집에 실린 시들이 아름다운 정갈함을 품은 흰 결정체로 세상에 나가 빛이 되기를 고대한다. 또한, 시인의 많은 창작물이 사랑의 부패를 막을 소금 맛을 물고 소금 말로 흐르는 세상의 바른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약력:
교육학석사(고려대), 정책학석사(고려대), 문학박사(충북대), 충북대, 충북과학대 출강 역임, 새한국문학회 이사회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미래예술총연합회장, 미래시학작가회장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문인 신인상, 탐미문학상, 새한국문학상 수상. 저서: 시집 6권, 소설집 2권, 수필집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