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고 피는 꽃
정순옥
철모르고 피는 꽃이 있다. 살짝 연분홍 색깔을 머금은 하얀 사과 꽃이 탐스럽게 커가는 열매들 사이에서 피어나고 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시절인데 당당하게도 철없이 꽃이 피어나고 있다. 열매 맺을 생각은 없이 삶에 대한 초연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피워보고 싶었나 보다. 환경엔 아랑곳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철모르고 피는 꽃, 아~ 어쩌면 그렇게도 철모르는 꿈을 품은 나의 마음을 닮았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나의 발길을 앗아가는 뒤뜰엔 사과나무가 있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작은 나무여서 형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주렁주렁 열린 사과나무 사이에서 예쁘게 피어나는 연분홍에 가까운 하얀 사과 꽃을 발견하곤 가슴이 뛰었다. 아니~ 이제야 꽃을 피우다니~ 다들 열매를 맺어 익어가는 시기인데... 철모르고 피는 꽃을 보면서 노년의 꿈을 생각해 본다. 소박한 나의 꿈은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슴엔 꿈을 품고 있다.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철모르고 피는 꽃처럼 내 꿈은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꿈을 품고 있으니 생의 의욕을 느끼고 호흡하는 이 순간이 기쁘다.
인생의 사계절도 꽃을 피우는 계절, 신록의 계절, 열매의 계절 그리고 휴식의 계절이 있다. 보편적으로 은퇴 후의 삶은 이미 휴식의 계절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휴식의 계절은 노년시절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노후걱정이 따른다. 내일의 삶을 알 수 없는 인생살이에서 노년까지 살았으니 제일 중요한 건강을 챙기면서 감사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면 무사하겠다. 거기에 남이 생각하면 하찮은 꿈일지라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꿈이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인생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노년의 꿈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꿈은 지극히 소박하다. 수필로 미주이민 1세들의 삶과 정서를 표현하여 먼 훗날 후세들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은근과 끈기로 환경과 언어장벽을 이겨내면서 이방인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미주이민 1세들의 삶은 참으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인내로 한 평생을 살다가 이젠 노년기에 접어든 미주이민 1세들의 꿈은 2세 또는 3세로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미주이민 1세의 꿈은 고난과 슬픔 속에서 얻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살이의 희망이다. 사랑의 향내를 풍기며 뻗어 나가는 한민족의 핏줄을 보면서 나의 믿음이 확고해지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인이 이 지구촌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하는데 앞장서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진실된 마음과 성실하면 인생살이에서 성공된 삶을 이루어 갈 수 있고 노년의 생활도 순조롭다. 그런데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거나 무언가 공허한 마음이 인다면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은퇴 후 성가시게 하는 일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나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인지 신비로운 행복이 나날이 밀려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늘 곁에 계신다는 믿음이 나를 안심시키나 보다. 내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기에 항상 죄에서 자유를 주시는 전능자의 은혜를 사모 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 귀한 소망을 하늘에 둔 이 세상의 나의 노년의 꿈, 철모르고 피는 꽃은 신선하게 생각된다. 이 세상에서 늦게 피는 꽃은 없다. 그저 아름다운 꽃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늦은 꿈이란 없다. 그저 싱싱한 꿈일 뿐이다. 나는 영원히 살고 픈 나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현실에선 이민 1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철모르고 피는 꽃이기에 더욱더 삶에 대한 초연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추억속에서만 존재한다. 미래는 이 세상 아무도 알 수 없는 상상속의 세계다. 현실만이 가장 귀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이에 철모르고 피는 한송이의 꽃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나 보다. 따스한 햇빛과 보드랍게 스치는 바람, 신선한 공기와 포근한 흙, 생명을 이어가도록 힘을 주는 맑은 물, 밤에는 아름다운 달과 수많은 별들 …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을 누리며 살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경배한다. 철모르고 피는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나의 꿈은 고귀한 분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는 삶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가는 시절에 철없이 피어나는 나의 꿈은 웬일일까. 그래도 나는 때늦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나의 꿈을 사랑한다. 달콤하고 향기 품은 상큼한 열매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 즐거워하며 철모르고 피는 사과 꽃처럼.
나는 주름살 많은 노인이지만 아직도 가슴 설레며 꾸는 꿈이 있어 행복하다. 후세에 대한 희망의 꿈이 있기에 하루가 새롭고 귀하다. 이 시간을 참으로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살기에 어쩌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철모르고 피는 꽃처럼 나의 소박한 꿈이 실현될 수 있게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한다. 가슴속에서 생기가 돋아나게 하는 철모르고 피는 꽃이 있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