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 수필의 뿌리로서 고향의 유형
— 《서적굴 디딜방아》를 중심으로
오순자
수필가. 문학평론가
사르트르는 시는 대상을 창조하기 때문에, 시인이 그 창조물에 참여하지 못하고, 산문은 대상을 폭로하고, 세상에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필자가 그 안에 참여한다고 했다. 소설이나 희곡은 작가가 작중 인물을 내세워 그를 통해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때문에 많은 등장인물 중에 작가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필은 필자 자신을 폭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현재 중견 수필가들은 수필에서 소설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경험’을 핵심어로 제시한다.
손광성은 수필이 “고백적 형식을 통해서 작가는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독자는 작가에게 신뢰를 보낸다.”는 말로 수필의 “허구적 서사”를 경계하고 있다. 수필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이 말이 현재 수필계의 대세인 만큼 수필을 연구할 때에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는 다른 분야의 비평적 방법으로는 올바른 비평을 할 수가 없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없는 수필은 작가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과 살아온 경험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거의 예외 없이 한 권의 수필집을 읽고 나면 작가의 전기를 읽은 것처럼 폭로된 작가 자신을 만날 수 있다.
허세욱의 수필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대표적으로 자기 폭로 수필을 쓰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 수필 속에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투여하여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스스로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계간수필》53호에 실린 <문득 뒤돌아 볼 때>에서 선비정신과 수필을 대비시키면서 “자기 성찰을 통한 진리탐구”를 “자아 독백”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그가 수필에서 보인 자기성찰은 경험을 토대로 한 성찰이다.
경험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다. 그 경험은 유년기에서 작가의 현재까지 다양한 시점을 포괄하는데, 이것들은 정신에 남아 있는 흔적들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프로이트는 심리적 과정을 기록의 과정으로 보고, 기록의 흔적을 간직한 집합체가 기억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을 복수적 층위의 체계로 파악했는데, 데리다는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층위들의 흔적을 텍스트로 보고, 하나의 기록은 다른 기록들에, 하나의 흔적은 다른 흔적들에 빚지면서 나타난다. 그래서 현재 기록이 일어나고 있는 텍스트는 결코 현재화하거나 현전화現前化 할 수 없는 흔적들과 함께 섞여 있다. 그런 텍스트 안에서 과거는 미래에 의해서 사후적으로 구성되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미래보다 늦게 온다고 했다. 데리다에 의하면, 현재의 글쓰기는 과거의 흔적들과 섞여 미래화하는 과정이 된다.
허세욱의 수필은 위의 이론들과 잘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적 흔적을 추적하여, 현재의 글쓰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의 수필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기억 중에서 문학의 뿌리가 되는 것은 유소년기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내포하는 고향이다. 고향의 일상적인 의미로는 태어나 자란 곳이거나 조상 누대에 걸쳐 정착해 살았던 곳이다. 문학에서는 은유적으로 마음이나 영혼의 안식처로 많이 사용된다. 주로 시에서 안식처로서의 고향이 자주 등장하고, 소설에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마지막 귀착지를 의미한다.
허세욱의 수필에서 고향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 하나는 태어나서 자란 지리적인 장소이고, 그 장소와 거의 맞물려 있는 정서의 고향인 부모, 특히 어머니가 두 번째이다. 셋째는 소년기에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서 익혔지만, 그의 평생의 업이 된 한학에 의해서 길러진 이조의 선비정신으로 표현된 그의 정신의 고향이며, 그의 부모를 통해 9대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의 고향이 네 번째이다. 다음에서 이 네 가지의 고향의 의미를 살펴 그의 수필의 뿌리를 추적해 볼 것이다.
I. 지리적 고향
그가 수필에서 묘사하는 고향은 지리산 북쪽에 있는 임실이다.〈서적굴 디딜방아>에서 “백두대간 그 길고 앙칼진 등짝에서 갈비뼈 하나를 얻어 서남쪽 황해바다로 줄기차게 달리는 노령산맥. 그 작은 가지 하나가 우리 마을로 맴돌면서 병풍을 이루었다.”라고 묘사 한대로 읍내에서 사십 리 떨어져 있고, 노령산맥의 한 가지인 노산 아래에 있는 서적굴이다. 그곳은 그의 정신이 자란 서원이었고, 그 아래 오리를 격하여 집이 있었다.
그가 이런 깊은 산골에서 자란 것은 그의 감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연을 친구나 육친에 비유할 정도로 사랑하여 <감나무 면회기>에서 자신이 이십 여 년 기르던 감나무를 대학캠퍼스에 옮겨 심어놓고 그 재회하는 장면은 마치 옛 애인을 만난 듯 눈물겹기까지 하다.
첫 번째 그 녀석과의 재회는 눈시울이 젖도록 설렘인지 아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이 지금 노천극장을 에워싼 정원수에 끼여 상당한 자리 하나를 차지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어찌 그 몰골이 우리 집 뜨락에 섰을 때만 못해 보였다. … 하지만 몹시 반가웠다. 사람이면 껴안으련만 그럴 수도 없어서 나는 감나무에 다가선 채 그 한 뼘 남짓의 줄기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잡히는 까실까실한 촉감은 예나 다름없었다.
그의 이러한 사랑은 <자투리땅의 목련 한 그루>에서는 두 평 남짓의 자투리땅에 “겨우 세 줄기로 꺼벙하게 서 있는” 목련을 발견하고, 그 꽃봉오리를 눈망울로 쳐다보며 말동무로 삼는다. 그것을 늘그막에 대학을 옮겨온 자신의 외로운 처지에 비유하면서 의인화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의 성장은 그가 풍부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육친 같은 사랑과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는 모습은 다른 작가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점이다. 그래서 들에서 자라는 풀포기에서도 동류의식을 느낄 수 있고, 앞집에 심겨져 있는 나무 한 그루의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에 가슴이 떨리는 마음은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감성이다. 또 사용하는 비유도 자연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채와 풀잎 사이〉에서는 나약한 자신을 “한없이 연약한 풀잎”으로, 어린 시절의 동생과 자신을 “풋나물 같던 두 형제”로, 〈산과 강아지〉에서는 산을 누에나 강아지로 비유하고 있다. 그가 자연에서 자라면서 키워낸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러한 싱그러운 비유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II. 정서의 고향
그의 지리적인 고향이 사물을 보는 눈을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었다면, 정서의 고향에는 어머니가 있다. <움직이는 고향>에서 그는 “고향이 고향으로 불리우는 내력은 많다. … 나에겐 부모가 계신 곳, 어머니가 계신 곳을 말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아버지가 서거하신 후에 마음을 못 잡고, 자녀들의 집을 전전하는 “어머니가 자꾸만 먼 길을 떠나시니 고향은 더구나 아물아물 멀어지고 여기저기로 움직인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수필 여기저기에서 거의 한에 가까운 정서로 나타난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그는 홍콩의 대학에서 객좌교수로 외롭게 지내는 가운데,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매일 마음에 찾아오는 부모를 만난다.
한반도 서남쪽 깊은 산 속에 깊이깊이 총을 파고 모신 부모님이 중국대륙의 최남단, 비행기로 태평양 서쪽 연안을 줄곧 세 시간이 넘게 날아온 이 타국 땅 연구실을 그것도 날마다 찾아오시는 거였다. 그때마다 극도로 쇠진한 신음과 표표하게 바다를 건너고 있는 구름을 보노라면 돌아가신 부모가 그립고,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양지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치에 승복할 수 없어 나는 혼자서 소리 없이 흐느끼기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섬사람>에서는 중경에서 백리 떨어진 구석진 곳에서 한 달 넘게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살면서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어머니이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에게 잘못[모국어를 쓰지 않은 일]을 저지른 불효 같아서 진땀이 흘렀다. 자다 말고 벌떡 기립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했다.” 그는 어머니를 부르고 나서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안정을 되찾는다. 이때에 마음속에 있는 어머니는 모국이고, 마음의 뿌리가 되어 그의 전인적인 존재의 근원이다.
<서적굴 디딜방아>에서 어머니에 대한 정서적 밀착의 원인이 밝혀진다. 그는 유년기에 잠에서 깨어 소식 없는 자식을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함께 방바닥을 치며 울고 싶어 한다. 또한, 척박한 땅을 호미로 찍으면서 목숨을 키우고 세월을 사르는 어머니의 모습. 서적굴 디딜방아를 “공이가 아프도록 확을 찧던 그 몸짓”에서 디딜방아의 확과 공이는 어머니의 피할 수 없었던 고단한 노동과 지속적으로 아픔을 견뎌온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어머니의 이 세 가지 모습에서 사대 봉사의 종부로, 여섯 형제의 어머니로 살아온 칠십 년 동안의 고달픔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세월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안타까움이 작가가 어머니를 놓지 못하는 이유임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정서적 밀착으로 인해서 떨어져 살거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죄스러움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허세욱의 수필에서 어머니는 더 각별히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장소나 주제와 관계없이 갑자기 어머니가 전경화前景化되어 나타난다.
III. 정신의 고향
위의 작품에서 또 하나의 고향으로 선비정신이 배양된 터전인 서적굴을 소개받는다.
내 종조부께서 옛날의 한적을 방마다 천장에 닿도록 수장하곤 아예 여기서 기거를 시작하셨다. 한말에 마지막 과거에 급제하신 조선 선비답게 세상의 속진을 멀리한 채 은거했었다.
그곳은 제각 겸 서원이었는데, 한 일 합방 후에 작가는 그곳에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소년기를 보냈다. 그것이 정신의 밑바탕이 되어 “꺼지지 않는 호롱불”로 그 후의 삶을 발전시키게 해 주었다.
이조후기에 선비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는 타고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지속적인 학문의 연마를 통해 삶의 도리를 배우고 실천하며, 철학적 사색을 통해서 깊이 있는 정신적 가치를 터득하고 이를 후학에게 전하는 것을 의무로 알았다. 또한, 선비는 예의, 특히 유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의리와 원칙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선비라 했다.
<지팡이 소리>에서 “작은 할아버지는 내가 체험한 이조李朝의 전부요, 내가 마지막 보았던 완고한 가통家統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작은 할아버지를 “내가 연모하는 할아버지를 대신”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였고, 한학에 대한 배움뿐만 아니라 자상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이조의 정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굴비 한 토막>에서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이었음에도 “예의를 정조처럼 지키던 내 고향, 글방 소리가 카랑했던 그 두메가 그립다”고 회상하고 있다.
<분서焚書>에는 암담했던 우리 현대사의 불행한 사건이 잘 나타나 있다. 빨치산들이 이 년여 동안 마을에 들락거리면서 쌀이나 김치, 가용 주를 퍼가는 것을 묘사할 때에는 별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가 모닥불 쏘시개로 4대째 모은 고서들을 태우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40년이 지났는데도 그날 밤, 우리 집 안마당에 요즘 젊은이들의 이른바 캠프파이어처럼 불을 밝혔던 밤, 사지가 떨리면서도 폭포 같은 불길을 타고 우리 집 4대를 내려 온 고서들이 하얀 재가 되어 눈송이처럼 너울너울 하늘로 사라지던 그 캄캄한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 집은 몇 번 더 분서의 아픔을 당했다.
이러한 선비정신에 대한 경외심은 수필의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그것이 그의 정신 속에 가치의 틀로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문득 뒤돌아 볼 때>에서 그는 “수필을 선비문학”이라고 정의하고, 그 규범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풍자하되 극열하지 않고 진솔하되 천속하지 않고 심오하되 회삽하지 않는 그러한 따스함과 전아함 그리고 청려함을 지녀야 상품(上品) … 내가 좋아하는 수필은 선비의 그런 풍모였다.
이러한 선비정신을 그의 수필 <바람소리 빗소리>에서 “심오하되 회삽하지 않는 … 상품”임을 입증하고 있다. 삶의 현장을 우산 속과 비바람으로 은유화한 이 수필은 그의 수필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이다. 비와 바람은 많은 풍상을 겪으면서 살아야하는 험난한 인생살이를 나타낸다.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들어가 있는 우산 속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피난처가 되는 이동식 집이다. 이 집은 그가 일생을 닦아 넓혀온 그의 정신세계이다. 바람과 비를 맞을 때처럼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우산 속으로 들어와 빗방울을 피하라는 도량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글에서 그의 정신의 “따스함과 전아함”이 전해져 온다.
이와 같이 그의 내면화된 선비정신은 그의 수필 속에 단아하고 올곧아서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삶의 도리를 배울 수 있고, 성숙된 인격과 올바른 가치관을 전수받을 수 있다. 또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도 느끼게 한다.
IV. 존재의 고향
마지막으로 존재의 고향은 유교적 성격이 짙은 조상에 대한 경외심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부모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9대조 (270년)까지 언급하고 있다. <노을에 띄운 사연들>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의연한 모습을 “전에 없이 명랑하게 미소 짓던 당신은 ‘이제 내 부모 곁으로 가는 거지’”라고 묘사하면서 아버지의 존재의 고향은 할아버지이고, 자신의 존재의 고향도 부모 곁이라고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어머니를 묘사한 <움직이는 고향>에서도 죽음이 존재의 고향으로 환원하는 과정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2년 전 같으면 정말 낯 설기만한 산기슭에서 지금은 고향집 안방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심중에 쌓인 설음을 털어놓고 계셨다. … 언젠가 정말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고향이라면, 아버님 곁을 자기 고향으로 내심 짐작했고 또 벌써부터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걸까? … 우리는 시종始終과 사생死生을 한 가지로 본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어머님 내심 속에 이미 고향이 옮겨가고 있었다.
이러한 조상과의 일체감은 이조시대의 중기 이후에 시대정신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유교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조상과 어머니에 대한 경외심, 고향에 대한 애착과 그의 수필의 근간을 이루는 선비정신의 태반胎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정신적인 가치들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문학적 역량이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으로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글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그는 글의 첫 문장을 신중하게 고른 것 같다. 〈한그루 나무〉에서 “나무 한 그루가 갑자기 횡명橫命을 당했다.”라고 시작되는 글은 독자가 그 내용에 대한 궁금증으로 열중하여 글을 읽게 하고 잔소리에 해당하는 단락이 없는 깔끔한 구성으로 내용이 무리 없이 전달된다. 그는 적절한 비유들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금문교〉에서 그의 상상력은 창공을 나른다. 두 개의 현수교로 세워진 금문교는 “황야에 세워진 두 개의 깃대”가 되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날은 돛배”가 된다. 금문교가 보이는 작은 동산에 세워진 아파트는 “낚시를 드리우는 조대釣臺”가 되고 그는 “한 마리 까마귀가 되어 오감烏瞰”한다. 중문학자인 그는 폭넓은 한자어의 사용은 물론 한글의 어휘도 맛깔스럽게 사용하면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의미 전달은 물론 심미감을 느끼게 하여 아름다운 수필로 감동을 준다.
문학 작품에서 고향은 향수를 동반한 정서로 미화되거나 작품의 후경後景으로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작품 전체에서 거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수필은 지역적으로는 중국과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을 무대로 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의 즉시적인 사건들의 묘사에서 언뜻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위의 고향의 이미지들은 희미한 흔적들로가 아니고, 현실적인 사건보다 짧지만, 오히려 강하게 전경화前景化되어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가 얼마나 그것들을 삶의 핵으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래서 책 제목인 《서적굴과 디딜방아》는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네 가지 유형의 고향을 잘 표현하는 상징물이 된다. 이 고향은 점점 묻혀가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있다. 신속함과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현대의 주거공간과 환경에서 자연에 대한 일체감과 존중이 그러하다. 부모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존경심은 핵가족 간의 유대조차 해체된 현대인에게 가족 간의 연대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조상에 대한 끈끈한 밀착은 부화뇌동하는 현대의 정신 속에서도 단단한 일관성을 느끼게 한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이조의 마지막 선비이셨던 종조부는 그 존재만으로도 동네 싸움과 아낙네의 수다를 멎게 했는데, 이는 예전에 마을에서 웃어른에 대한 존경심으로 온 마을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집단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곳에서 그는 올바른 가치와 삶의 도리를 알고 바르게 살아가는 선비정신을 배웠다.
서구 문화의 폭우 속에서 전통문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뜻있는 소수의 몫인 지금, 그의 수필은 우리 전통문화의 편린들을 엿보게 한다. 그래서 급속히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옛것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미래와 과거를 아우를 수 있는 법고창신法鼓創新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수필은 필자의 경험 울타리 안에서 건져 올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담에 그치는 이야기가 되기 쉽다. 그러나 수필이 문학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사유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과 접촉이 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흐름이나 역사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쓰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허세욱의 수필은 두 가지를 포괄하면서 넓은 지평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수필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도하고, 수필 계에 하나의 전범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서적:
김상환. <데리다의 문학론>, 《프랑스 철학과 문학비평》. 문학과 지성사, 2008.
사르트르, 장 폴. 《문학이란 무엇인가?》. 김붕구역. 문예출판사, 1997.
손광성. 《손광성의 수필쓰기》. 을유문화사, 2008.
허세욱. 《서적굴 디딜방아》. 좋은 수필사, 2007.
<문득 뒤돌아 볼 때>.《계간수필》53. 수필문우회, 2008.
약력:
한일장신대학교 영문과 교수 퇴임. 뉴욕《한국일보》신춘문예 수필당선(1986). 《에세이문학》,《계간수필》등단. 《수필과 비평》평론등단. 《생활 속의 글쓰기》외 공저 수필집 다수. 신곡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