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일반화되기 전 1990년대 중반의 '삐삐'시대, 이런 숫자 암호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각각 '천사' '열렬히 사모' '빨리빨리'의 뜻이죠. 숫자만 전송 가능한 상황에서 나온 재치인데요. 이런 재치를 과도하게 쓴 걸까요? 요즈음 어색한 숫자 활용이 눈에 띕니다.
"2틀 만에 배송됐어요!!" "10흘 동안 휴가 써도 괜찮을까요?" 읽는 데 어색하지 않으셨나요? 다음은 어떨까요?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도 사용된 어색한 표현 '4흘'.
"4흘 뒤부터 경기가 시작됩니다." 사흘? 나흘? 어떻게 읽을지 멈칫하게 만드는데요. 이런 표현은 인터넷 기사에서도 간혹 보입니다. 아라비아 숫자의 활용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맞춤법에 아라비아 숫자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고 합니다. 한글맞춤법 규정 부록 편에서 '문장 부호'를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다소 의외입니다.
하지만 국어원도 현실에서 널리 쓰이는 숫자의 활용은 인정하고 있는데요. 1, 2, 3을 일, 이, 삼으로 읽지만 한 명, 두 그릇 등을 1명, 2그릇으로 쓰는 것은 괜찮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표현이 널리 쓰이는 건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 이해에 더 도움 되기 때문일 텐데요. '송년 모임에 스물두 명이 왔는데 남자는 두 명뿐이었다'보다는 '…22명이 왔는데 남자는 2명뿐이었다'가 아무래도 눈에 잘 들어옵니다. 영어의 경우에도 'first(첫 번째), second(두 번째)'를 '1st, 2nd' 식으로 표현하곤 하지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온라인 가나다' 문답 내용 일부 갈무리
숫자의 사용도 사회적 약속입니다. 9990원을 우리는 '구구구공 원'이 아닌 '구천구백구십 원'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010-1234-5678'은 '공일공 일이삼사 오륙칠팔'로 읽습니다.
다시 앞쪽 얘기로 돌아가 '하루'부터 '열흘'까지를 숫자를 이용해 억지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1루,… 3흘,… 6새, …'? 난처한 모양들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이런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소통을 위해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3일'이 왜 '사흘'인지 헷갈려 합니다. 발음 때문일 텐데요. 순우리말로 날을 셀 때는 하나, 둘, 셋에서 열까지 차례로 대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셋-사흘, 넷-나흘'처럼 말이죠. 어원이 불분명한 '이틀'은 예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