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말[신어(新語)]가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사람들은 말을 통해 묘사하고 규정함으로써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드러낸다. 거기에는 고단하고 분주한 세상살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날이 진화하는 사람들의 표현력도 담겨 있다.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이 발표한 ‘2014년 신어’를 훑어보면서 요즘 신어는 무엇보다 언중들의 발랄한 표현력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국어원이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일간지 등 온오프라인 대중 매체 139개에 등장한 새 낱말(신어)은 334개다. [국어원 보도자료 바로가기]
눔푸족, ‘모루밍족’, ‘출퇴근 쇼핑족’, ‘오포 세대’, ‘앵그리맘’, ‘금사빠녀’, ‘꼬돌남’ 등은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어휜데 92개로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숨 가쁜 일상과 사회·경제적 문제, 주목받는 남녀의 특징 등이 반영되어 있다.
‘임금 절벽’, ‘주거 절벽’, ‘디 공포’ ‘일자리 절벽’, ‘재벌 절벽’, ‘창업 절벽’ 등 ‘절벽’ 항렬 자의 어휘들은 지속된 경기불황으로 인한 실업과 경제 문제 등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특정 도서(고재학의 <절벽사회>) 등에서 유래한 ‘절벽’계 어휘가 숱하게 등장할 정도로 우리의 경제 상황은 절벽이다.
스마트폰과 누리 소통망 서비스(SNS)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통신 관련 어휘(‘먹스타그램’, ‘인생짤’, ‘광삭’)도 꽤 늘었고, ‘고급지다’, ‘심멎’, ‘핵꿀잼’, ‘노관심’, ‘극혐오하다’ 등의 감정 표현 어휘도 적지 않다. 감정 표현 어휘 가운데에는 긍정적 어휘가 부정적 어휘보다 많다고 한다.
최악의 청년 실업에 억눌린 젊은이들의 처지를 가리키는 ‘오포세대’라는 낱말은 우리들 기성세대의 마음에 아프게 다가온다. 영자를 활용한 모루밍족, 쇼핑족, 앵그리맘, 먹스타그램, 디공포, 눔푸족 따위의 새말의 뜻을 새기면서 이러한 새말을 만드는 것도 교육받는 이들이라는 걸 확인한다.
공연히 씁쓸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는 것은 정작 더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나 세상을 규정할 새말을 만들 여력조차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2015년 한 해는 모든 '절벽'들이 '광삭'으로 사라지는 희망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