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삶과 문학

조회 수 14006 추천 수 3 2015.04.20 07:55:33

 

피천득은 절필(絶筆)에 대한 결심이 확고하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지켜나갈 것임을 필자에게도 서너차례 말한 바 있다. 금아는 절필의 이유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돈, 명예가 필요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무엇보다 예전 작품보다 더 잘 쓸 수 없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 금아 수필의 핵심
 첫째, 시적인 문장
 둘째, 서정적인 문장
 셋째, 고결한 인품이 담긴 문장
 넷째, 순수하고 투명한 동심의 문장
 다섯째, 유미주의적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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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의 피천득 선생

 

 

  2010년은 피천득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오월, 신록, 장미를 좋아했던 피천득은 자신이 좋아했던 5월에 태어나 2007년 5월에 97세로 타계했다.

  1930년대 현대문학의 초창기에서부터 2007년까지 피천득은 수필계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요지부동의 정점에 있었다. 그 이유는 작품성이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피천득만의 작품 세계의 구축이었다. 금아(琴兒) 선생이 수필을 쓰기 시작한 1930년대 그 전후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피천득 수필은 그 본(本)이 될만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금아의 수필은 스스로가 독창적으로 유형을 만들어 한국 현대수필의 전형, 전범을 이루고 있다.

 

20여 년간 70여 편 수필 남겨

  한문을 익히며 성장했고 영문학 교수로서 재직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전통적인 문장체계와 중국 임어당, 루쉰, 서양의 찰스 램 등의 문장에서 피천득만의 유형이랄 수 있는 수필문장을 구축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피천득의 문장은 시적이고 산뜻하다.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하고 아름답다. 주제가 선명하고 핵심을 파고든다. 피천득은 77편의 수필을 남겼다. 대개 200자 원고지 4~10매에 이르는 짧은 글이다. 금아의 대표작으로 <수필> <인연> <오월>을 든다.

  금아는 1930년대에는 시를 썼으며 1940년대에 <수필>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면서 수필로 전향하여 20여 년간에 70여 편을 남겼다. 1년에 네 편도 안 되는 작품을 쓴 셈이다. <인연>은 피천득 선생이 쓴 마지막 작품인데, 1974년에 <수필문학>지에 발표했다. 사실상 1960년대에 절필했기 때문에, 40년이 넘게 한 편의 수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한국 최고 수필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이 금아 수필을 사랑하여 애독하였기 때문이다. <인연>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아사꼬’ 를 세 번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인연>은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미지를 완벽한 구성과 낭만적인 아름다움으로 형상화시킨 수필의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피천득은 절필(絶筆)에 대한 결심이 확고하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지켜나갈 것임을 필자에게도 서너 차례 말한바 있다. 금아는 절필의 이유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돈, 명예가 필요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무엇보다 예전 작품보다 더 잘 쓸 수 없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종전 작품보다 진전이 없는 작품은 쓸 가치가 없다는 자신의 문학관을 분명히 한 것이다. 피천득 문학의 지향점은 최고, 최상, 최대, 고결,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었고, 이런 방향성은 수필 개척기에 수필의 위상, 성격, 품격, 방향, 경지를 설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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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수필>은 수필 쓰기의 전범(典範)

피천득의 <수필>은 한국 수필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피천득의 <수필>은 오랜 동안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수필의 정의와 개념이 돼왔고, 수필 쓰기의 전범(典範)이 돼왔다. 당시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 로 여기고, 여가가 생기면 써보는 비전문 장르인 것처럼 인식하던 때, 이 ‘수필’ 은 수필문학의 방향과 경지를 새롭게 설정해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수필쯤이야 누구나 쓸 수 있는 아마추어 문학으로 알았던 사람들에게 최상의 경지를 지닌 문학임을 천명한 새 수필론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수필로 쓴 수필론이다. 수필론이지만 논리체계가 아닌 은유법으로 된 문장은 일체의 설명과 묘사를 생략하고 있다. ‘수필=청자연적’ ‘수필=난초’ ‘수필=학’ ‘수필=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에 대하여, 설명이 있어야 함에도 생략했다. ‘수필은 ~이다’ 는 전개는 논리가 아닌 정의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런 문장은 결론이요, 깨달음이요, 궁극의 말이다. <수필>에서는 서두부터 결미에 이르기까지 은유법을 구사하고 있다. 아마 한국문학 작품 중에서 이런 스타일은 피천득 문장에서만 볼 수 있는 유형이 아닐까 한다.

  ‘~은 ~이다’ 라는 것은 개념을 정의하고 규정한다. 확신이고 지론이라고 할 수 있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수필에 대한 개념과 경지에 대한 자리매김을 해준 계기가 되었다. 수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 로 비전문 문학, 아마추어문학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피천득의 <수필>이라는 작품 출현은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수필은 청작연적, 학, 난’ 으로 비유하여 최상, 최고, 절정, 완성의 세계와 결부시킴으로써 경지와 품격의 문학으로서 성격을 알려주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하찮은 문학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생경지와 인격을 갖추지 않고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문학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필자도 고교 시절에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읽고 언젠가 수필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수필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필>은 작품으로 쓴 수필론이라는 데 묘미가 있다. 논리적 전개에 따른 결론의 도출이라는 틀에 박힌 이론은 딱딱하고 도식적이어서 흥미를 끌기 어렵다. 피천득은 서정과 상상과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자신의 수필론을 전개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동조시키려 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마음에 스며들게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느끼게 만들어버렸다.

  논리적인 이론의 전개가 아니고, 감성적인 생각의 전개이기 때문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이 작품은 중등교육을 받은 국민들이 피천득의 <수필>을 전범으로 삼는 결과를 빚었다는 김우종 문학평론가의 지적도 있다.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다섯 가지의 독창적인 문체 특징

  금아가 획득한 가장 큰 문학적 업적은 한국 수필의 진수, 진가를 보임으로써 수필 발전에 공헌한 점이다. 지금까지 금아만큼 독자들의 사랑과 많은 독자를 가진 수필가의 출현이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피천득 수필 진면목의 핵심은 문장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문체를 구축하였다. 금아 수필의 핵심이라고 할 문장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작품을 알아보는 첩경이 된다.

  첫째, 시적인 문장. 금아는 처음에 시인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수필로 전환하면서 자연스레 시의 산문화를 취하는 방식을 썼다. 시와 시조를 창작하였던 분이고,《 내가 사랑하는 시》라는 세계 명시집과 서양의 정형시집인《세익스피어의 소네트시집》을 번역한 경력을 보더라도 시인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금아의 수필문장이 시와 같은 경지를 느끼게 하는 요소는 간결하고 압축적이라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시에서 사용하는 기법인 상징, 비유, 리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에서 자주 쓰이는 비유법 구사가 능란하며, 산문에 있어서 은유법의 탁월한 구사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서정적인 문장. 피천득은 서정수필의 선구적이며 상징적인 존재이다. 서정수필의 본령을 지켜 왔다. 금아는 생전에 “수필은 서정수필과 논리적 수필로 나눌 수 있지만, 한국 수필의 전통은 서정수필에 있다” 고 하였다. 피천득의 수필들은 한국 서정을 계승함과 동시에 현대 감각을 살리고 있어서 신선감을 자아내며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 서정 속에 전승돼 오는 선비의식, 청렴의식, 풍류의식을 이어가면서 시대감각에 떨어지지 않는 세련됨과 미의식을 살린 것이 피천득 서정수필의 특징이다. 1930년대 수필로서 정비석의 <산정무한>, 김진섭의 <백설부>는 교과서에 실려서 널리 알려졌지만 시대감각이 떨어진 옛 문체는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아 차츰 외면 받고 있다. 피천득 선생의 <오월> <엄마> <가든 파티> <장난감> 등의 작품들은 현대 감각에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산뜻한 서정을 보여준다. 이런 특별한 감각과 미의식은 한국의 전통 서정에다 서양수필의 감각, 시적인 문장에서 얻어진 것이다.

  셋째, 고결한 인품이 담긴 문장. 시, 소설, 희곡 등 픽션문학은 상상을 토대로 있음직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수필은 사실을 토대로 상상과 느낌과 철학을 보태어 의미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을 담아내는 문학이다. 따라서 인생경지가 곧 문학의 바탕이 된다. 인생이라는 악기가 좋아야만,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종이 좋아야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수필에서 유독 인격이 요구되는 것도, 글을 쓰고 나서 책임을 요구받는 것도 이런 이치 때문이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나기 마련이다. 좋은 인생이어야만 좋은 수필을 낼 수 있다. 물질은 풍요하지만, 마음은 황폐하고, 지식은 넘치지만 지혜가 부족하다. 재주는 탁월하지만 인격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좋은 인생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 드물기에 좋은 수필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천득 수필을 아끼고 애독하는 이유는 고결한 인품에서 얻는 인생의 감화 때문이다.

  넷째, 순수하고 투명한 동심의 문장. 피천득 선생은 어린이를 좋아했다. 딸‘서영 ’을 좋아한 나머지 서영이 갖고 놀던 인형을 ‘난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양딸로 삼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집에 온 방문자에게는 방명록에 아이의 이름을 써주길 부탁했다. 97세로 타계할 때까지 주변엔 인형이 함께 있었다. 구순의 동심으로 순수 무구한 삶을 살았다. 딸 서영을 좋아하여, <서영이> <서영이와 난영이>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다섯째, 유미주의적인 문장. 피천득 선생의 수필의 특징으로 유미주의(唯美主義) 경향을 들 수 있다. 예술로서의 문학이 근본적으로 미의 추구나 탐구와 닿아 있지만, 피천득 선생의 경우에는 유독 유미주의 경향이 짙다는 인상을 준다.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서라도 완벽성을 추구한다. 시적인 기법들을 구사하며, 소재 선택도 유미주의 요소가 있는 것을 즐겨 택한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아름다움이다. 정선되고 압축된 것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후대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수필가

  피천득 선생에게는 ‘수필의 금자탑’ 이라는 말이 붙여져 있다. 한국 수필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수필가였다. 첫째 작품성으로 최고의 경지임을 보여주었다. 금아 수필은 교과서적인 전범이 되고, 독자들의 폭넓은 인기와 사랑을 받았다. 수필을 쓴 1930대부터 타계 때까지 요지부동의 정상에 있었다. 문장만이 아닌 인격과 삶이 개결하고 고결하였기에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수필의 성격과 방향성에 대한 제시를 통해 수필문학의 길을 밝히고, 수필문학의 발전을 도모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수필가였다.

  물론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일제시대 지식인으로서의 시대∙역사의식의 부족, 사명감의 결여, 서민들의 삶과 체취의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요소와 작품성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진수와 경지를 꽃피워 준 위대한 분이요, 후대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수필가이다.

 
글: 정목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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