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외교에 2015년 1811억 예산 편성 아베는 위원국에 일일이 친서 보내 韓, 3년 전 등재추진 알고도 늑장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미쓰비시조선소 등 조선인 5만7900여명이 강제징용된 7개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한 것은 일본의 치밀한 준비와 정부의 뒤늦은 대응이 맞물린 결과물이다.
일본은 ICOMOS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며 근대유산의 가치평가 기간을 1850년부터 1910년까지로 한정했다. 1917년 이후 조선인 강제징집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일본 내각관방 당국자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 “한국이 문제시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로, 대상으로 하는 연대와 역사적 자리매김이 다르다”는 논리를 폈다. ICOMOS에 제출한 등재신청서에도 미쓰비시조선소 등이 근대산업화 상징이란 사실을 자세하게 부각했다. 상세한 등재 신청서가 ICOMOS의 판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가 한국 내에서도 나올 정도다. 특히 TV아사히의 5일 보도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에 일일이 친서를 보내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본의 움직임은 아베 총리가 내세운 역사수정주의의 일환이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기 내각을 출범시키며 문화외교를 통한 역사수정주의를 강조했다. 문화외교를 담당하는 일본 외무성 산하 일본국제교류기금은 2013년 166억엔(약 1496억원)에서 올해 201억엔(약 1811억 원)으로 예산을 늘렸다. 반면 한국의 KF(한국국제교류재단)는 같은 기간 861억원에서 708억원으로 예산을 오히려 줄였다.
반면 우리 정부의 외교적 대응은 한발 늦었다. 일본 정부가 2009년 이 시설들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했지만 정부는 3년 뒤인 2012년 하반기에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일본은 발빠르게 2012년 전문가회의를 설치한 데 이어 2014년 정식 등재 신청서까지 제출했다. 이 와중에도 한국은 이상진 전 유네스코 대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해 대사직이 약 2개월 동안 공석이었다.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도 나서 6일 일본 강제징용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친필 서한을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에 보냈지만, 등재 저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6월28일부터 7월8일까지 독일 본에서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정부대표 간 논의가 공개로 이뤄지고, 21개 회원국 중 아시아 국가인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에 일본이 2012년 가장 많은 공적개발원조(ODA) 금액을 지원한 점도 우리에겐 불리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