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와의 차이점

조회 수 5814 추천 수 1 2015.05.10 09:37:40

이 웃음들에 주목한다. 올 연말, 전 세계 사람들을 잔잔한 기쁨에 빠뜨릴 아름다운 얼굴들이다. 인간의 마음이 순진무구, 천진난만의 푯대되어 마침내 승리의 뜻으로 세상을 흔든다. 청각을 잃은 채 이룬 베토벤의 의지는 이렇게 다음 세대 인류에게 승계된다. 그렇다. 인간의 혼은 끝내 불굴(不屈)일 것이다. 고난을 넘어서, 환희로.

창설 70주년을 맞은 유엔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여는 이 전시회(11월 30일∼12월 11일)는 장애인에게 헌정하는 인류의 송가(頌歌)이기도 하다.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3일 개막식이 열린다. 화가 김근태(57·전 목포 문태고 교사)씨와 부인 최호순씨(전 무안현경초교 교사)가 친구들과 함께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졸랐고, 이 지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졸랐다. 이 열망에 유엔이 꽃을 들어 화답했다.

비장애인들과는 좀 다른, '천사'들의 사계절을 그린 100호 그림 77개가 모여 길이 102m의 큰 뜻을 이뤘다. 목포와 대구에서 선을 보였고, 7월에는 청주(15∼28일, 우민아트센터)에서, 이어 서울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그 앞에 서면 기쁨이 밀려온다. 거센 해일 같은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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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유엔본부에서 장애인 그림전을 갖는 화가 김근태.그림을 보자. 이들의 천진한 웃음은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웃음과 다른가? 또는, 틀린가? 이 작가가 느끼듯, 그 '다름'은 꽃처럼, 인간의 존엄을 가리키는 귀한 품성일 터다. 위와 같은, '다르다'해야 할 대목에서 '틀리다'라고 하면 이는 틀린 어법이다.

"내 초상 같은 저들의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보며,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 작가의 나지막한 고백이다. 김 화백은 지적장애인들의 심상(心象)을 인간 존엄의 상징이라 믿는다. 오래 그들을 그렸다. 그 작업이 즐겁기에 편견 등의 여러 시련에 굴하지 않아도 됐다. 그들을 '틀리다'하면 안 된다.

'다르다'는 A와 B가 같지 않다, 즉 차이(差異)가 있다는 뜻이다. 영어로 'different'다. '틀리다'는 옳지 않다는 뜻, 'wrong'이다. 반대말은 '옳다'이다. 정의롭다는 'right'이니, '틀리다'는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어문상의 규칙으로도, 생활에서의 쓰임에서도 별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적하고, 옳게 쓰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런 지적과 주장의 근거는 이런 규칙과 규범의 나열 말고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글자가 다르지 않은가?'하는 무책임함도 있다. 이 이상한 어법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는 까닭인지 모른다. 서너 해 전에 이 주제에 관해 썼던 글 일부다.

"…왜 우리말에 이런 미운 습성이 생겼는지 짚은 연구는 없는 것으로 안다. 과거 식민지, 전쟁 경험과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겪으며 생겨난 비참한 자기 검열이 상처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닌지. 다르면 안 된다는, 남과 달라 주목의 대상이 되는 '두려움'을 겁내는 무의식의 표현은 아닌지…."

버려야 할 폐습(弊習)으로 이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용 현상을 규정하고, 이 상처를 벗고 바르고 당당한 표현을 쓰자고 다짐해 주기를 당부했던 글이다. 아직 세상은 변함이 없는지, 제 뜻을 바로 펴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그 혼동이 끊이지 않는가? 독재가 뿌려둔 획일주의에 줄 서는 것이 아직 '개인적 미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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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뜻의 글자 이(異)의 변천. 귀신 또는 귀신 탈을 쓴 사람의 그림이 어원이다. 민중서림 '한한대자전' 삽화공자님 말씀 중 대여섯 번째로 자주 인용되는, '논어'의 이름난 구절 '화이부동'(和而不同)에 이 '다르다'와 '틀리다'의 바른 구분을 설명할 뜻이 담겨 있다. 신사 또는 선비라 할 군자의 도(道)를 이른 대목이다. 화할 화(和), 말 이을 이(而), 아닐 부(不), 한 가지 동(同)의 합체로 글자의 뜻으로는 '친화하되 같지 않다'는 단순한 숙어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곧,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이라고 한자사전은 풀었다. 같지 않음 즉 다름이 가리키는 큰 금도(襟度)의 품을 이르는 것이러니.

그 말의 짝인 동이불화(同而不和) 즉 '같지만(어울리지만) 화합하지 못함'은 소인배들의 조잔한 성품일 터다. '우레 소리에 맞춰 천지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자기 생각이나 주관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하는 부화뇌동(附和雷同)과 다를 바 없는 개념이다.

화이부동의 '不同'이 곧 '다르다'의 뜻이겠다. 같지 않은 데서 큰 공덕은 빚어진다. 동아시아의 지적 토대는 이미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 '다름'의 그 가치를 보듬고 있었던 것이다.

21세기 혁신의 상징 스티브 잡스가 'Think Different'라는 책을 냈다. 이를 그 말버릇대로 '틀리게 생각하라'라고 우리말로 떠올릴 이도 있겠다. 국내 번역본 이름은 '다르게 생각하라'다. 틀린, 옳지 않은, 나쁜 생각은 좋은 결과를 이끌 수 없다. 화가 김근태의 저 천사들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달라서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은 묻는다, 세상을 끌고 갈래? 세상에 끌려갈래? 달라야 한다. 틀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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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록(鹿)자 갑골문과 그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토기(황하 유역 출토)의 사슴 그림.■ 사족(蛇足)

깊은 눈과 아름다운 뿔, '사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3500년 전 황하유역 사람들이 그린 사슴 록(鹿)의 갑골문과 그 이전 시기 토기(土器)의 그림을 비교하면 한자의 원리가 오히려 잘 보인다.

사물(事物) 즉 일과 물체를 그린 것이 그림글자다. 사슴과 같은, 형태 있는 물체는 그 모양이나 특징을 그렸다. 해 일(日)도 달 월(月)도 뫼 산(山)도 물 수(水)도 다 한가지다.

'다르다'는 뜻은 어떻게 그릴까? 눈에 안 보이는 추상(抽象)적인 현상이다. 갑골문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솜씨를 보자. 갑골문 금문 전문을 거쳐 우리가 지금 쓰는 해서체(楷書體)까지 '다르다'는 글자 이(異)자가 어떻게 생겨 변해 왔을까를 살피는 것이다.

김태완 교수(전남대 중문과·문자학)는 귀신 탈을 쓴 사람이 팔을 벌린 그림으로 '異'자의 어원을 푼다. 괴상한 그 모습에서 '(우리와) 다르다'는 뜻을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초기 글자들이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 그림과 뜻의 작동원리를 읽는 것이 문자학이다.

한국어의 바탕을 지지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모양도, 원리도 사슴 눈과 뿔처럼 깊고 아름답다. 우리말을 다르게 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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