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외웠던 행성의 순서 기억하십니까?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그런데 8년 전 이 순서에서 ‘명’이 사라졌습니다. 명왕성은 행성의 자격이 없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명왕성을 그리워합니다.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명왕성이 행성 자리를 유지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내고 신들의 왕 자리를 차지한 크로노스는 항상 불안했다. “너도 아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라는 저주 때문이었다. 불안감을 못 견딘 그는 아내 레아가 아이를 낳는 족족 삼켜버렸다. 견디다 못한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빼돌리고 대신 바위덩이를 삼키게 했고, 제우스는 장성해 아버지의 배를 가르고 형제들을 구했다. 첫째로 태어났던 하데스는 가장 먼저 삼켜진 탓에 세상에는 마지막으로 꺼내졌다. 아버지 크로노스의 종족인 티탄족과 전쟁 끝에 승리한 올림푸스 신 3형제는 하늘과 땅, 바다, 명계(지하)를 나눠 지배하기로 했다. 첫째로 태어났으나 막내가 된 하데스는 명부(冥府)의 왕, 명왕이 됐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하데스의 모습은 음울하기 그지없다. 그가 유일하게 반한 여성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억지로 아내로 삼았지만 그나마 1년 중 3분의 1만 같이 지낼 수 있다. 머리 3개 달린 지옥견 케르베로스, 죽은 사람들을 강 건너 죽음의 세계로 태워주는 뱃사공 카론 등을 신하로 삼고 영원한 어둠의 세계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 로마 신화에서는 플루톤이라고 불리는 이 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명왕성은 처음부터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행성의 자리마저 빼앗긴 채 태양을 돌고 있는 그 명왕성 말이다.
LA다저스 에이스 커쇼의 종조부가 발견
행성(Planet)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떠도는 별’이라는 명칭에서 유래됐다. 밤하늘을 주의깊게 살피던 옛날 사람들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는 5개의 별을 발견했다. 행성을 제외한 다른 별들은 너무 멀리 있는 탓에 하늘에 고정돼 천구와 함께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다섯개의 별은 혼자서 하늘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가끔씩 거꾸로 가기도 한다. 이들 행성과 지구의 공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역행운동 때문이다. 마치 이들이 별들 사이를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을 터이다. 행성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7세기 바빌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이 다섯개의 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다섯 행성과 태양, 달까지 합쳐서 7개의 행성에 신의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은 로마식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동양에서도 일찌감치 이 별들에 ‘수금화목토’의 이름을 붙이고 오행을 음양(태양과 달)과 함께 세상을 이루는 이치로 여겼다.
‘천해명’ 세 행성은 나중에 과학기술이 발전한 뒤에 발견됐다. 이들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19세기에, 명왕성은 20세기 초 발견됐다. 명왕성의 존재는 일찍부터 과학적으로 예견돼왔다. 천왕성의 궤도가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해왕성이 나중에 발견됐지만 그것만으로도 천왕성의 궤도 변화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9번째 행성 찾기에 나섰고, 결국 1930년 클라이드 톰보가 행성운동을 하는 천체를 발견했다. 직접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톰보는 현재 엘에이(LA) 다저스의 에이스 투수인 클레이턴 커쇼의 종조부(외할아버지의 형)다. 커쇼는 토크쇼에서 “명왕성은 여전히 내 마음속의 행성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별에 무슨 이름을 붙일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영국의 11살 난 소녀가 제안한 명왕성(Pluto·플루톤의 영어식 표현)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춥고 어두운 곳을 떠도는 행성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이름에 얽힌 또다른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있다. 1940년 발견된 원소 94번에 이 행성의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다. 92번 원소는 천왕성(우라노스)의 이름을 따라 우라늄, 93번 원소는 해왕성(넵튠)의 이름을 따라 넵투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4번에는 이 전통에 따라 명왕성의 이름을 부여했다. 플루토늄. 말 그대로 죽음의 원소,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원소는 이렇게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