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

조회 수 3389 추천 수 1 2015.05.19 17:33:52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부부를 모신 영원(英園·경기 남양주 홍유릉 경내)이 45년 만에 공개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친왕이나 이방자(일본명 마사코)나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한 많은 삶을 살았음은 분명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혼백만은 함께 묻혀 있지 않은가.

이 결혼 때문에 61년간이나 독신으로 살았던 여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친왕의 정혼녀 민갑완(1897~1968·사진)이다. 민갑완은 10살 때인 1907년 대한제국 황실의 초간택에서 150여명의 규수 가운데 수망(首望·1순위)으로 뽑혔다. 동래부사 민영돈의 딸이었던 소녀는 영친왕과 생년월일까지 같았다. 간택자리에서 영친왕과 키를 재보고는 '남자가 왜 이리 작냐'고 속으로 투덜거렸단다. 그러나 영친왕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손에 이끌려 일본유학을 떠나면서 혼사가 이어지지 못했다. 대신 황실은 민갑완 집에 약혼선물로 금반지를 보냈다. 영친왕의 정혼녀가 된 민갑완은 국모가 되기 위한 신부수업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사이 정세가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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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영친왕과 일본 황족 여성 간의 혼인을 추진했던 것이다. "구라파처럼 일·한 양국 황실에서 혼인의 의를 맺자"는 것이었다. 1918년 1월30일 21살 처녀가 된 민갑완에게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궁에서 상궁들이 나와 약혼반지를 강탈하다시피 회수해 간 것이다. 민갑완은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요, 열녀는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편지를 썼다. 물론 편지는 배달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금년(1918년) 내에 다른 가문으로 시집가지 않으면 중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서약서까지 써야 했다. 1920년 4월28일 영친왕의 결혼식이 거행되자 민갑완은 상하이 망명의 길을 택했다. 그렇지만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우사 김규식 박사가 "아가씨의 원수를 갚으려면 그 자(영친왕)를 죽여야 한다"고 독립운동을 권했다. 하지만 민갑완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남을 해쳐서까지 행운을찾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민갑완은 귀국 후에도 가난과 병마, 그리고 잇단 사기극에 시달리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처녀다. 절대 남의 집에서 죽게 하지 마라. 옛날 선비처럼 남자옷을 입혀달라." 마지막까지 가문과 황실을 지키고자 했던 여인의 유언이었다. 유해는 부산 실로암공원 납골묘에 안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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