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은 일은 조그만 사건일 뿐입니다. 큰 사건은 날마다 사는 일이지요.”

 60년 가까이 살던 서울 효창원로 자택을 헐고 주변 땅을 합친 자리에 지난달 문화공간 ‘예술의 기쁨’을 연 노(老)시인이 손사래를 쳤다. 김남조(88) 전 숙명여대 교수는 “절절하고 심각한 것이 바로 하루의 삶이다.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지기도, 밑바닥에서 꼭대기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루의 삶은 한 권의 장편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랑의 시인’ ‘문단의 여왕’으로 불리는 김남조 시인은 조각가들의 대모이기도 하다. 그는 15년 전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김세중기념사업회를 통해 자택과 그 주변 땅 630㎡(190여 평)을 기증한 데 이어, 3년간의 공사 끝에 연면적 774㎡(234평)의 2층 건물을 준공했다. 비용에 대해서는 “기부는 마음으로 하는 것, 미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김남조 시인은 할머니의 미담처럼 비쳐지는 게 부끄럽다며 건물 앞 촬영을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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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조 시인은 할머니의 미담처럼 비쳐지는 게 부끄럽다며 건물 앞 촬영을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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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효창원로 에 자리 잡은 ‘예술의 기쁨’. 한가운데 수령 600년의 상수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부부의 살림집일 때도 집안에 나무를 그대로 두고 증축했다. [사진 김세중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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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 한 연회에 나란히 참석한 김세중 서울대 교수(왼쪽)와 김남조 시인 부부. [중앙포토]

 


 남편 김세중(1928∼86) 전 서울대 교수는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으로 이름난 조각가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직할 때 과천관의 개관을 준비하다가 과로로 세상을 떴다. 아내는 고인의 퇴직금을 기본자산으로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남편의 1주기인 87년 제1회 김세중조각상을 시상했다. 심문섭 전 중앙대 교수를 시작으로 엄태정·최만린·최인수·이불·서도호 등 한국 미술의 거목들이 거쳐가며 조각상은 하나의 숲을 이뤘다. 이어 청년조각상·한국미술저작상도 제정했다. 지난달 14일, 조각상 시상식이 건물 개관식과 함께 열렸다. 한 해 한 해가 쌓여 내년이면 30년이다. ‘김세중미술관’ 대신 ‘예술의 기쁨’이라고 이름지은 이유는 “희망이라는 말이 줄어드는 세상, 시인은 희망을 전파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예술의 기쁨’에서는 연말까지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 작가 23명의 전시를 연다.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1953년 피란 간 부산에서 첫 시집 『목숨』을 냈을 때 시인은 26세였다. 『목숨 』 출간 60년이 되던 2013년엔 심장병 치료를 받으며 새 시집 『심장이 아프다』도 냈다. “누군가는 원고지를 하얀 사막이라 하더라. 나는 늘 백지 앞에서 기죽고 초라하고 캄캄했다. 60년간 900편의 시를 썼다. 문학은 모든 것의 뒤에 있으며, 예술가는 저마다 홀로 있는 이들이다.”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은 일본 규슈여고 졸업 후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를 졸업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화∼금요일 오후 1∼6시 개관,

 

무료 입장. 02-717-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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