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를 뽑는데 수학 성적으로 뽑는다.

조회 수 4265 추천 수 1 2015.08.10 08:21:54


올해 정시모집 수능 반영률 분석 결과
 서울대 인문계열 국어 25%〈수학 30%
서강대 인문계열 국어 25%〈수학 32.5%

고려대·건국대 등은 논술전형에 수학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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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체육관에서 입시학원들이 주최한 ‘2016 대입 수시 지원전략 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와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2학년 학부모인 정아무개씨는 학교에서 주최한 진학 설명회의 첫 마디가 “수학이 관건입니다”여서 깜짝 놀랐다. 외국어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특수목적고’ 학생인데도,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국어나 외국어보다 수학이 중요하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딸도 막상 외고에 진학한 뒤 “우리 학교는 외고가 아니예요 수학고예요”라는 말로 씁쓸한 현실을 표현했다. 정씨의 딸은 최근 여름방학을 맞아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수학 성적 향상에 ‘올인’하고 있다. 정씨는 “큰아이도 수학에 가장 많이 투자했는데, 명문대 미학과에 진학한 뒤 수학은 쓸 일이 없단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고, 한마디로 낭비다”라고 말했다.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대부분
국·영·수 똑같이 반영하거나
수학 반영률 더 높은 곳도
수시모집 논술에 수학문제
여기서 당락 갈렸을 가능성 커
 대학들, 수학을 ‘변별력’ 도구로
“정작 입학 뒤엔 백해무익” 지적

 

  학생과 학부모들이 심지어 국문과나 외국어 관련 학과를 지원하면서도 국어·영어보다 수학 점수에 신경을 쓰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9일 <한겨레>가 ‘1318 대학진학연구소’의 ‘2016학년도 서울 4년제 대학 정시모집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반영률’ 자료를 분석해보니,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이 인문계열 신입생 모집 때 수학 성적을 과도하게 요구한다.(표 참조) 국어·영어와 수학을 똑같이 반영하거나 수학을 더 많이 보는 식이다. 특히 서울대 인문계열은 국어와 영어를 25% 반영하는데 수학은 30%나 반영한다. 서강대 인문계열은 국어 반영률이 25%인데, 수학과 영어는 각각 32.5%다. 국문학 전공자를 선발하면서도 국어보다 수학 능력을 중시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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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건국대 등 일부 대학은 수시모집 논술전형에서도 수학 문제를 출제해 인문계열 수험생의 ‘수학 부담’을 가중시킨다. 특히 고려대 인문계 수학 논술 문제는 수학 교사들한테도 어렵기로 유명하다. 농민 12명이 살고 있는 한 섬에서 세금을 거두는 방법을 다각도로 물은 ‘2014학년도 인문계 A형 논술문제’(사진 참조)가 대표적인 예다. 최수일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사교육걱정) 수학 포럼 대표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수리논술 문제가 인문계열 당락을 갈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사교육걱정이 5월7~21일 고3학생 27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수학을 못하면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진학하기 어렵다’고 응답한 고교생이 78.2%(매우 그렇다 45.6%, 다소 그렇다 33.2%)에 이르렀다.
유성룡 1318 대학진학연구소장은 상위권 대학의 ‘수학 집착’ 원인을 수능 출제 경향에서 찾았다. 유 소장은 “통상적으로 수능은 국어와 영어가 쉽고 수학이 어렵게 출제된다. 인문계열 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국어·영어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 때문에, 변별력을 중시하는 대학들이 수학 반영 비율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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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계열 대입에서 수학의 영향력이 비대해져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서울의 한 자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강아무개 교사는 “공부를 좀 하는 학교에서는 문과 애들도 다 수학 공부만 한다”고 전했다. 용문고 문과 3학년 장재현군은 국어와 영어가 1~2등급 정도인데 수학이 3~4등급이라 걱정이 많다. 정시모집에서는 국어·영어가 1등급이어도 수학이 2등급 이상은 돼야 ‘인서울’(서울 지역 대학 입학)이 가능해서다. 장군은 “전체 공부시간의 50%는 수학에 쓰고, 나머지 모든 과목 공부에 남은 50%를 투자한다”고 말했다.
정작 인문계열 교수 등 전문가들은 ‘문과 수험생’들을 수학 점수로 줄세우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지식 융합 사회에 전반적으로 수학적 사고력이 강조되는 추세라곤 하나, 암기와 문제 풀이 반복 위주의 현행 수학 교육과정은 수학적 사고력과 상관관계가 낮거나 없어 보이는 탓이다. 2009년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등이 대학 입학사정관과 중등 교원,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 전공 공부에 필요한 계열별 고교 선(이)수 교과목 분석’ 논문을 보면 이런 인식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인문 계열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과목으로 역사와 국어가 꼽혔고, 중간 정도 필요한 과목으로 영어, 윤리, 정치·경제, 한문, 법·사회가 꼽혔다. 수학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끝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예컨대 함수는 관계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함수라고 생각한다면, 국문학이나 인문학에서도 수학적 개념이 정말 중요하다. 논문을 쓸 때도 수학적 사고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행 수학교육은 연산과 수식만 강조하고 문제 유형을 외우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수학은 인문학도한테 대입과 동시에 백해무익해진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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