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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이 조선시대 선박으로 확인됐다는 소식이 며칠째 화제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수중발굴 역사상 조선시대 선박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재의 수중발굴 역사의 출발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신안선'이 발견된 게 처음입니다.

이후 지난해 마도 4호선까지 총 14척의 고선박이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발견됐습니다. 마도 4호선 이전의 13척 가운데 12척은 고려시대 선박이었습니다. 일부는 우리 배들이고, 일부는 고려와 왕래하던 중국 배들입니다. 한 척은 이보다 더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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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 보물선들이 대부분 고려시대 배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오랜 시간에 걸쳐 배들이 여러 척 침몰했다면 먼저 가라앉은 배들이 아래에 깔리고 나중에 가라앉은 배들은 위에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후대의 배들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결과는 정반대인 겁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 침몰한 선박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을 가능성입니다. 시대가 발달할수록 기술도 발전하게 마련이니 얼마든지 그럴듯해 보이는 추론입니다. 실제로 이번에 발굴된 마도 4호선을 보면 배의 구조가 고려시대 선박들보다 훨씬 견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이 추론은 정답이 될 가능성이 적어 보입니다. 1530년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조선시대에도 태조부터 세조까지 60년 동안에만 마도 앞바다에서 선박 200척이 침몰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조 이후엔 얼마나 더 많은 배가 침몰했을지 알 수 없으니 단순히 침몰한 배가 얼마 없어서 발견되는 배도 적을 가능성은 적다는 거죠.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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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선의 운명, '화물' 종류로 갈려

전문가들은 선박들과 함께 발견된 유물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지난 40년간 수중발굴에선 총 4만 9800여 점의 유물이 나왔습니다. 특이한 건 이 가운데 4만 8700여 점이 도자기나 토기라는 점입니다. 발견된 침몰선들은 대부분 그릇들을 주로 운반하던 배라는 것입니다.

침몰선들은 주로 남해나 서해에서 당시 수도였던 개경이나 한양으로 물건을 운반하던 화물선들입니다. 화물은 도자기나 토기 같은 그릇들과 쌀, 보리 같은 곡물들이 주였습니다. 어떤 화물을 주로 실었느냐에 따라 침몰한 뒤 배의 운명은 180도 달라집니다.

그릇들은 무겁기 때문에 침몰하면 배에 쌓인 채로 배를 누르고 가라앉습니다. 반면 곡물들은 가볍기 때문에 물살에 따라 흩어집니다. 쌓여있던 곡물들이 흩어지고 나면 싣고 있는 짐의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따라서 나무로 된 목선들이 위로 떠오르게 되고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다 부서지고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죠.

전문가들은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침몰선들은 그릇보다 곡물을 주로 운반했기 때문에 상당수가 침몰후 떠오르면서 흩어지고 훼손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조선시대에도 분명 그릇을 많이 필요로 했을 텐데 왜 조선시대 선박들은 그릇을 많이 운반하지 않았던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관에서 필요로 하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관요'라고 부르는데 고려시대엔 관요가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곳에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용 도자기들은 이 두 지역에서 구워서 개경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반면 조선시대엔 전국 각지에 가마들이 생겼고 가까운 경기도 광주에 큰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서 구운 도자기들을 육로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엔 배로 그릇을 운반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선 선박으로 확인된 마도 4호선에서도 분청사기 140여 점이 나왔습니다. 또 마도 4호선 인근에선 후대에 또 다른 조선 선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18세기 백자들도 100점 넘게 나왔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 비율 면에서 고려에 비해 조선시대엔 배로 그릇들을 실어 나르는 경우가 현저히 적었다는 얘깁니다.

● 문화재, 수백년 역사의 비밀 담은 '퍼즐'

나중에 침몰한 선박보다 먼저 침몰한 선박들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한 해답이 "왜 주로 도기가 나올까?"라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질문을 통해 드러나는 거죠. 마치 퍼즐 맞추기 같습니다.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수백 년 전의 비밀들을 전문가들이 아주 작은 유물 하나, 그 속에 새겨진 글자 한 자, 심지어 싣고 가던 화물의 종류를 통해 파헤쳐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정말 감탄사를 내뱉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마도 4호선이 조선시대 배라는 사실을 밝혀준 것도 분청사기에 새겨진 '내섬(內贍)'이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두 글자를 통해 배에 실린 도자기들이 1417년부터 1421년 사이 만들어진 그릇들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시기까지 밝혀냈습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내섬'이 조선시대 중궁전에서 쓰는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라는 관청의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고려가 아닌 '조선'이라는 두 글자가 명확해졌습니다. 이어, 사용할 관청의 이름을 공물에 표기하도록 하는 제도가 태종 17년인 1417년 시작됐다는 사실을 문헌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분청사기들의 제작시기가 '조선'에서 '1417년 이후'로 좁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어 역시 문헌을 통해 1421년부터는 관청 이름뿐 아니라 물건을 만든 장인의 이름도 함께 표기하게 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공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실명제'입니다. 요즘 공산품에 생산라인을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밝혀낸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니, 600년 넘게 물속에 파묻혀 있던 유물들의 제작 시기가 1417년에서 1421년 사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연도까지 드러나게 된 겁니다. 이만하면 정말 대단한 퍼즐 맞추기 아닌가요?

전문가들은 그동안 마도 인근에서 발견된 닻돌의 숫자와 기록에 나온 침몰선 숫자 등을 토대로 앞으로 수십년 간 인근 해역에서 보물선이 줄지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역사 속 비밀들이 하나하나 펼쳐질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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