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상생(相生)의 탈출구로서의 지구촌 문학

종합지 조회 수 7314 추천 수 9 2014.10.14 09:28:47
작가 : 명계웅 

 

 

 

 

 

                                                     화해와 상생(相生)의 탈출구로서의 지구촌 문학


                                                        -재미동포작가 김성혜의 장편소설 “숨겨진 탈출구” 촌평-
                                    

                                                                                                                                                              명계웅(문학평론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한국 특유의 속담이 생겨 날 만큼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전쟁으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 속에서 '전쟁'이라는 화두는 한국현대문학의 주제(主題)를 이루며 오늘날까지 변용을 거듭해 오고 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7)을 다룬 적잖은 소설 작품이 창작되었지만, 6·25 동란(動亂)이라는 한국전쟁(1950)은 작가들이 동족상잔(相殘)의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어린 시절 공산군 점령하의 지역에서, 또는 피난민의 대열에서 전쟁에 직결된 최악의 굶주림과 비참한 삶을 체험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아직도 분단국가로서의 남북이 첨예한 대치 상황에 놓여있다는 현실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전후 세대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미완의 실존적 과제(課題)로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전후세대에 속한 작가들로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표적 소설 작품을 갈라 잡아 보자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하근찬의 “수난2대”(1957)와 이범선의 “오발탄”(1959), 그리고 최인훈의 장편 “광장”(1960)과 김은국의 영문소설 “순교자”(The Martyred,1964)를 들 수 있겠다.
  하근찬의 “수난2대”는 일제 식민지 치하와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은 두 세대로서의 부자가 일제강제노역에 나가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가 6·25 전쟁에 나가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등에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전쟁의 참혹상을 직접 겪고 목격한 참전한 세대의 잔혹한 전쟁을 고발한 작풍(作風)으로 김동리, 황순원, 안수길 등의 작품이 이에 속한다.
  이범선의 “오발탄”은 현대문학에 발표된 단편으로 한국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 특히 6·25 후의 암담한 현실이 리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쟁에 나갔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취직도 못 하고 가난한 형네 집에 얹혀사는 동생, 피난 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다 미쳐버린 어머니, 임신한 아내, 가난으로 양공주가 된 누이동생이 한가족이 되어 작품 배경을 이룬다. 생활고로 아픈 이도 뺄 수 없던 선량한 주인공이 결국 삶의 의미와 방향감을 상실하고 절망 속에서 오발탄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6·25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특히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의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 초상화판매 근무처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박완서의  “겨울나들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공산군 점령 지역의 불안하고 굶주린 일상의 삶을 세밀하게 복원한 일련의 작품들은, 1960년 사상계에 연재되며 6.25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젊은 주인공들의 피해 양상을 구현한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함께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1960년대 화제작이었던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은 6.25를 소재로 한 작품이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6.25를 재조명함으로써 또 다른 한국전쟁문학의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철학과 학생인 주인공을 내세워 남한의 부정부패로 물든 탐욕적인 자본주의와 북한의 독재 권력의 허위와 위선에 다 같이 구토와 환멸감을 느끼며 인민군으로 낙동강 전투에 참전하다 결국 포로가 된 주인공이 포로 석방의 정착지로서 제 3국인 중립국 인도를 선택 항해하다 인도양에서 투신자살한다. 첨예한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감을 느끼며 살다 간 한 젊은이의 미완성 초상화다.
  또한, 작품 속 주인공의 활동 영역이 확장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이 인천의 친구 집에 갔다가 북한으로 밀입국 월북하여 특권층의 삶을 누리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남조선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남침하자 그는 전쟁에 동원 인민군으로 참전한다. 작품의 배경이 38선을 넘어 남북으로 이어지다 결국 한반도를 벗어나 인도로 항해하다가 인도양에 주인공이 스스로 몸을 내던짐으로써 종결이 된다.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당시의 군사정권하에서는 매우 대담한 줄거리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재미동포 작가인 김은국(Richard E. Kim)의 “순교자”는 6·25 전쟁을 (주역이 아닌) 배경으로 하여 전쟁의 참혹상이나 분단의 이념 갈등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평양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체포되어 순교 처형당한 14명의 목사 중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살아남은 주인공 신 목사의 증언을 통해 극한 상황 속에서의 신(神)의 존재 의미와 인간의 실존론적 문제를 심도 있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뉴욕타임스로부터 “도스토옙스키와 카뮈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실존 문학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당시 미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뿐 아니라 퍼얼 벅(Pearl S. Buck) 여사로부터는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따라서 “순교자”는 한국전쟁문학의 범주에서 특이한 독자적인 작품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분단국가로서 대치(對峙)된 지 6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김성혜 씨의 장편 소설 “숨겨진 탈출구”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전쟁이라는 화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바가 있어 보인다.
  작가 김성혜 씨는 6.25를 체험한 5060 전후 세대로서 실제로 그의 가족은 월남하기 전 평양 모란봉 만경대가 내려다보이는 근처의 김일성이 살든 동네에서 교회를 다니든 이웃으로 면식(面識)이 있었다고 한다. 김성혜 씨는 소설 작품 속에서 어린 시절 잔혹한 6·25 전쟁에 휘말린 비참한 현실과 피난민의 궁핍하고도 고된 일상의 좌절된 삶을, 가공의 세 자매, 진아, 선아, 미아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건의 전개를 순차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6.25가 터진 1950년 6월, 인천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이 과장의 가족 이야기로
사건이 전개되는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작품 속의 주인공이자 나레이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막냇동생 미아의 고아라는 선택의 부산 피난 시절(1951년), 서울에 환도하여 입주 가정 교사로 학비를 버는 곤궁(困窮)하던 의대생 시절(1963년), 미국 유학(1965년), 뉴욕의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뉴 헤이븐, 코네티컷, 예일 의대 교수가 되어(1985년), 월북한 아버지와 언니들의 상봉을 위한 평양 방문(1986년), 언니 조카를 탈북 입양시키기 위한 만주 연변(1987년), 그리고 에필로그로 줄거리를 끝맺고 있다.
   소설 작품의 줄거리가 프롤로그로부터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공산군 점령하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굶주림의 생존과 부산 피난민의 어렵고도 궁핍한 처절한 나날의 생활상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이범선이나 박완서의 전쟁 작품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어린 주인공 미아가 남장하고 서울역에서 “슈샤인 보이”(bootblack)를 하는 다소 익살스러운 장면이나 서대문 형무소에서 아버지를 찿기 위해 언니들과 함께 얼어붙은 시체들을 뒤집어 보는 섬뜩한 장면 등은 김성혜 씨의 탁월한 스토리 텔러(story teller)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이어 플롯의 전개가, 불가능해 보이던 미국 유학의 길이 마침내 열리고, 뉴욕에서 문화 충격과 고달픈 레지던트와 수련의(修鍊醫) 생활을 거쳐 결국 미국 의대 교수가 되어 이산(離散)가족을 만나려 평양을 방문하는 등 작품 배경의 영역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러시아, 중국 만주 연변으로 확장된다. 일찍이 최인훈의 인도양을 건너다 끝나버린 작품 속의 공간 “광장”이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산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종래 한반도 영토에 국한되었던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입은 뼈저린 정신적 상처와 고통이 당사자인 한민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cyber) 공간으로 좁혀진 전 지구촌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불행과 아픔(suffering)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새로운 지구촌적인 작품 영역을 획득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화해와 해방(liberation)의 숨겨진 출구를 제시함으로써 차원 높은 해결 구도의 전쟁문학 카테고리를 인상 깊게 새로 구축했다는 점이 바로 금번 김성혜 씨의 “숨겨진 탈출구”의 출간에 심장하고도 진정한 의미성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 속의 주인공 이산가족 자매들이 북한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이 지구촌적인 보편적 아픔으로 승화(昇華)시키기 위하여 작가는 인권(human rights)적인 시각으로 북한 정권의 독재적인 권력의 횡포와 위선과 타락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으며, 특히 김정일이 술자리에서 측근들을 불러 놓고 신임하던 비서 최동훈의 아내 진아를 남편의 손으로 처형시키는 사디즘적인 잔혹한 장면은 나중에 에필로그에서 당시 파티 현장에 있었던 황장엽의 입을 빌려 다시 확인시킨다는 수법으로 독자들의 팩션(faction)적인 흥미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선아의 막내 윤희는 “자유 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human spirit)의 등장인물(personification)로 탈북(脫北)하여 이모 미아에게 입양됨으로써 Human Liberation의 극적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나이 어린 소녀가 앞으로 UN(국제 연합)에서 인권 수호를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은 화해와 상생을 뜻하는 박애주의(humanitarianism)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작가 자신의 인생관의 표출일 것이다. 윤희가 평양에서 미아로부터 선물로 물려받은 번역판 Frank Baum의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는 자립과 자유라는 미국적 가치관을 담은 최초의 판타지 동화책(1900)으로 2007년 세계 인류의 보편성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정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인공인 세 자매의 이름을 진아, 선아, 미아로 지었다는 점인데, 이는 작가가 진(truth), 선(good), 미(beauty)라는 어휘가 키츠(John Keats)의 시적 표현대로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고”(Beauty is truth, truth beauty) 또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Truth will set you free)는 복음서의 구절을 인용하여 묵시(黙示)적으로 숨겨진 탈출구를 찿을 수 있는 열쇠(key word)임을 암시한 것이라 추측이 된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전쟁과 분단을 다룬 소설 작품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요즈음 새삼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김성혜 작가의 “숨겨진 탈출구”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더군다나 6·25 전쟁을 경험한 5060 세대가 주동이 되어 미국이나 일본에 앞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사실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먼저 영문으로 출간되어 현재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판매되고 있는 김성혜 씨의 소설이 모쪼록 널리 읽혀 최근 도발적인 로켓 발사와 핵 실험으로 세계적인 비난의 눈길을 끌고 있는 북한 정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한민족 대 통합의 찬란한 역사가 금세기에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끝)

명계웅 소.jpg

 

약력:

        1969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완료
                       Northeastern일리노이 주립대학
                       한국어,한국문학 담당교수 역임
                       시카고문인회 창립멤버, 초대 회장
                       미중서부한국학교협의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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