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 그림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뉴욕 MoMA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프로방스 특유의 온화한 날씨와 자연을 접한 반 고흐는 컬러와 명암의 대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자신만의 컬러 체계와 화풍을 확립할 수 있었고 프로방스 아를에서 본 화려한 풍경과 꽃, 열매, 나무, 전원 생활 등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반 고흐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림들 중 저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불우한 천재였던 그가 그린 '나무' 그림들 위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는 반 고흐가 사랑한 동생 테오 부부의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즉 이 그림의 의미는 '새로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은 유명한 화가가 된 반 고흐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단 한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이 그림마저도 이발을 해준 대가로 지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누구보다 '생명'에 대한 감탄과 경외를 표현했던 화가였습니다. 그에게 자연이란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에서는 반 고흐가 태어날 조카에게 느끼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감격이 단아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워 실제로 꽃이 피어나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꽃 핀 아몬드 나무(Almond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다른 버전의 <꽃 핀 아몬드 나무>입니다. 위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표현 방식이 일본 그림을 연상케합니다. 반 고흐가 활동하던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는 일본 우끼요에(우끼요에=일본 목판화)가 매우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반 고흐 역시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와서 지내는 동안 일본 우키요에에 매료되었었죠.
일본 우키요에는 반 고흐에게 파격적인 구도와 새로운 각도에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포장지로 사용된 일본 우키요에를 버리지 않고 벽에 붙여놓을 정도였다고 하니 우키요에에 대한 반 고흐의 애정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
→꽃 핀 복숭아 나무(The Pink Peach Tree), 1888,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이 작품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아마 내가 그린 풍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풍경화가 될 것 같다." 라고 썼을 만큼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제 막 봄 기운을 느끼고 피기 시작하는 복숭아 꽃은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 전반적으로는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안토 모베가 죽은 뒤 그의 부인에게 선물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모베를 추억하며' 라는 짧은 문구와 그의 서명이 있습니다.
→싸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Road with Cypresses), 1890, Oil on canvas, Kröller-Müller Museum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실편백 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 눈에 뜨일락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생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있네.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지. 아래쪽에는 키 큰 노락생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즈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그리고 아주 키 큰 실편백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1890.06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영혼의 편지)
1889년 5월부터 일년 가까이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반 고흐에게는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 만이 그의 깊은 절망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삶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창조에 열정에 사로잡힌 심리 상태를 대변하듯이 매우 격렬한 느낌을 줍니다.
<싸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은 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꽃 피는 나무를 표현한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밝고 가슴 속에 나비가 날아 오르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해준다면 이 그림은 다소 거칠고 혼란스러운 반 고흐의 내면을 보는 듯 합니다.
'검은 불꽃'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의 저녁 풍경에 얼마나 도취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반 고흐는 싸이프러스 나무에 애정을 넘어선 집착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놓은 책인 영혼의 편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싸이프러스가 줄곧 내 생각을 사로 잡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으로 그린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것이 놀라워. 싸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해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 이나 아름다워. 그리고 그 녹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질이 있어. 마치 해가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데, 아주 흥미로운 검은 색조라고 할 수 있어.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아주 어렵지."
실제로 반 고흐는 작품 속에서 '싸이프러스 나무'라는 주제를 과하다 싶을 만큼 핵심적 주제로 사용했습니다.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 자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림의 언어라기보다는 자연의 언어이다." 라는 그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을 향한 반 고흐의 관심은 일생동안 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