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12년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인정하는 듯한 자료와 지도 등을 미국 의회에 보냈다고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이 4일 밝혔다.
이 의원이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의 의뢰를 받은 재단은 2012년8월 미 의회조사국(CRS)에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한국의 시각’ 이란 검토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자료엔 동북공정(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역사를 자국사에 편입하려는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는 듯 비춰질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데, 오히려 국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부분이 담겼다는 게이 의원의 지적이다.
당시 CRS는 북한 급변 상황시 중국의 개입 가능성 등을 분석하기 위한 보고서(‘한반도 영토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주장’)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적 입장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재정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미국에 가서 의회조사국 담당자를 만나 한국 입장을 담은 자료를 전달했다.
그러나 자료와 지도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의원에 따르면 우선 고조선의 영토를 보여주는 지도가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 일부로 경계를 한정했다. 실제 고조선의 영토는 이보다 훨씬 북동쪽인 남만주 일대 및 지린성(吉林省)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연해주까지 이르렀다.
또 고조선의 건국 연도는 기원 전 2333년인데, 이에 대한 설명 없이 지도엔 “기원 전 3세기 무렵의 고조선 영토”라고만 돼 있었다.
기원 전 108년 중국 한 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진번, 낙랑, 임둔, 현도)이 과거 한반도 일부 지역을 통치했다는 것이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적 주장인데, 이를 인정하는 듯한 지도도 보냈다. 기원 전 3세기와 196년 황해도 부근에 진번군이 있었던 것처럼 표시해놨다. 기원 전 108년 지도엔 아예 한사군 네 곳을 한반도 북부 지역에 표시해놨다.
기원 전 37년 건국한 고구려를 기원 전 196년 지도에 등장시키면서, 고구려 국명 옆에 ‘고구려현’이라는 한나라의 지역명을 표기하기도 했다. 이밖에 서기 676년 지도에 신라와 당나라의 영역을 표기하면서 독도는 그리지 않았다.
인하대 복기대(융합고고학) 교수는 “지도대로라면 고려의 수도 개성에 낙랑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런 사료나 학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일제 시대 때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은 다른 나라의 속국’이라고 침략 사실을 미화하기 위해 날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이를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 그대로 첨부해 2012년 12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상원의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의원은 “미 의회 보고서는 미국의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료인데 그런 자료에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지도를 재단과 정부가 보낸 것은 국익을 훼손하는 행동”이라며 “잘못된 부분들을 빨리 수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단은 2008년부터 46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의 신라시대 부분에 독도를 누락하는 등 일제 식민사관 등을 드러내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정재정 당시 이사장도 역사왜곡 논란 속에 2012년 9월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문제 자료는 미 의회로 건너간 상태였다. 재단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일제 식민사관 등을 계승하고 있는 이들이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