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9년(1463년) 윤7월 4일 세조가 조정 내 유신(儒臣)들을 위해 경회루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당시 '4기녀'로 유명했던 옥부향(玉膚香) 자동선(紫洞仙) 양대(陽臺) 초요갱(楚腰輕)이 모두 불려와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이날 실록이다.

  "초요갱은 어려서 평원대군(平原大君) 이임(李琳)의 사랑을 받다가 평원대군이 죽자,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과 사통하였는데, 임금이 이영(李瓔)을 폄출(貶黜)하고 초요갱도 쫓아냈다가 얼마 아니되어 초요갱이 재예(才藝)가 있다고 하여서 악적(樂籍)에 다시 소속시키니 계양군(桂陽君) 이증(李�曾)과 또 사통하였다.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 비밀리에 이증에게 묻기를 '어찌 다른 기생이 없어서 감히 초요갱을 두고 서로 간음하는가?' 하니 이증은 그것이 무고(誣告)임을 변명했으나 이날도 초요갱의 집에서 묵었다. 뒤에 판사(判事) 변대해(邊大海)가 몰래 초요갱의 집에 묵었다가 이증의 종에게 맞아 죽었다."

  '허리가 개미처럼 가는 초나라 미인의 경쾌함.' 초요갱에 담긴 뜻이다. 잠깐 옆으로 샌다. 당시 기생들의 이름이다. 옥부향은 '옥같이 맑은 피부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는 뜻이고 자동선은 '신선들이 사는 곳의 선녀'라는 뜻이다. 그 밖에 '이슬을 머금은 꽃이라는 뜻'의 함로화(含露花)라는 기생도 있었다.

 

 

2015110601975_0_99_20151109112004.jpg

 



  초요갱은 도대체 얼마나 미인이었기에 그냥 고관대작도 아니고 세종의 아들들과 동시에 놀아날 수 있었을까? 평원대군 이임은 세종과 소헌왕비 사이의 일곱째 아들이고 화의군 이영과 계양군 이증은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이임과 이영은 이복형제, 이영과 이증은 동복형제이고 따라서 세조와도 형제간이다. 초요갱은 그에 앞서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킨 직후인 단종 3년(1455년) 이영과의 관계가 문제가 돼 궁궐에서 쫓겨난 바 있다.

  그런데 궁궐을 나간 초요갱은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신개의 막내아들 신자형(申自衡)과 눈이 맞았다. 아예 안방을 꿰차고 들어앉았다. 세조 3년(1457년) 6월 26일 사헌부에서는 예장(禮葬)도감 판사 신자형이 본부인을 멀리하고 초요갱에게 빠져 초요갱의 말만 듣고 여종 두 명을 때려죽였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신자형은 계유정난의 공신이었기 때문에 유배는 가지 않고 직첩(職牒)만 빼앗겼다.

  그런데 석 달여 후인 10월 7일 사헌부에서는 훨씬 충격적인 보고를 올린다. 신자형의 7촌 조카뻘인 안계담이란 자가 초요갱을 '덮치기 위해' 다짜고짜 신자형의 안방으로 들이닥쳐 신자형의 아내 이씨는 놀라서 달아나다가 땅에 뒹굴고, 초요갱을 찾지 못한 안계담이 신자형의 노비들을 마구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기녀를 둘러싼 사내들의 쟁탈전에는 왕실에서 미관말직까지 귀천(貴賤)이 따로 없었다.

  앞서 이복형님이기도 한 세조에게 야단맞은 계양군 이증과 관련해 실록에는 "주색(酒色)으로 인해 세조 10년 8월 16일 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40도 안 돼 세상을 뜬 것이다.

  초요갱은 남자들에게 횡액(橫厄)을 가져다 주는 '요부(妖婦)'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초요갱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를 죽인 적이 없다. 죽음도 불사한 사내들이 달려들다가 날개를 태워버리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을 뿐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추천 수
114 우리말, '나아(낫다)'와 '낳아(낳다)' 강정실 2015-03-21 21361 1
113 구름의 종류 file 강정실 2015-04-30 14900 2
112 바람의 종류 웹관리자 2014-09-21 13407 1
111 우리말, 된소리(쌍자음)가 받침에 올 때 강정실 2015-03-21 13043 3
110 우리말, 과자이름 속 맞춤법 강정실 2015-03-21 11686 3
109 우리말, 아라비아 숫자를 읽고 쓰는 법 강정실 2015-03-21 11400 1
108 우리말, '신정' '구정'의 어원과 바른표기 강정실 2015-03-21 11149 2
107 높임말의 올바른 사용법 강정실 2015-03-21 10669 1
106 우리말, '이/히' 구분법 [1] 강정실 2015-03-21 10048 2
105 우리말, 담그다/담구다 잠그다/잠구다 치르다/치루다 강정실 2015-03-21 10036 2
104 우리말, 어떻게/어떡해, 안/않 강정실 2015-03-21 9828 2
103 우리말, '내거'와 '내꺼' 강정실 2015-03-21 9456 1
102 덕수궁 그리고 돌담길..132년 만에 '완주' 가능 강정실 2016-02-03 9230 1
101 우리말, '쇠다/쉬다' 강정실 2015-03-21 9149 2
100 우리말, 사귀다/피우다… 애매한 소리 '우' 강정실 2015-03-21 8987 1
99 우리말, 비슷한 발음 강정실 2015-03-21 8108 2
98 아름다운 우리말, 비의 종류 웹관리자 2014-09-21 8036 1
97 문체 웹관리자 2014-09-21 7965  
96 우리나라의 국명은 한국, 정확하게는 대한민국이다 웹관리자 2016-01-19 7928 1
95 오금이 저리다 file 웹관리자 2016-03-21 776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