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해치는 대표적인 주범으로 '설탕'과 '지방'이 꼽힌다. 현대인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비만, 고혈압, 당뇨병, 만성피로, 불안과 우울증, 장질환, 각종 감염성 질환의 원인이 과도한 당분 섭취로 인한 설탕 중독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전 세계인은 한 해 평균 설탕 63.5~68㎏을 먹고 있다. 우리는 매일 즐겨 마시는 커피, 청량음료, 에너지음료 등을 비롯해 초콜릿, 도넛,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식음료를 통해 설탕을 먹는다. 설탕은 과일이나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에도 다량 함유돼 있다. BBC방송이 무작위로 4명을 선정해 하루 설탕 섭취량을 살펴보니 네 살 아이를 둔 가정주부는 28티스푼, 당뇨 가족력이 있는 30대 남자는 29티스푼, 차 안에서 과자를 두고 틈틈이 먹는 50대 여성은 23티스푼, 탄산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고도비만 직장인은 39티스푼의 설탕을 먹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설탕 섭취 권고량을 4g짜리 티스푼 6개(25g)로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설탕 섭취량은 65.3g(2012년 기준)으로 16티스푼을 먹고 있다. 연간으로 치면 약 24㎏을 섭취하는 셈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한국인의 설탕 섭취량은 세계 평균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지방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으로, 피하조직에 지방이 쌓여 있어야 체온을 유지하고 음식을 먹지 않을 때 비축해둔 에너지를 방출해 생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 음식이 지방을 갖고 있고 섭취한 지방의 95%는 혈액으로 흡수된다. 지방은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중 64%를 제공한다.
이처럼 지방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존재지만 피하조직이 아닌 다른 조직에 가서 쌓이면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원인이 된다. 특히 내장에 지방이 쌓이면 뱃살이 나오면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변화가 생겨 각종 성인병을 앓게 된다.
설탕을 대변하는 고탄수화물 식사와 지방을 대변하는 고지방 식사 중 과연 어느 쪽이 우리 몸에 더 해로울까.
영국 BBC Earth 방송은 유전자가 같은 쌍둥이 의사 크리스 반 툴레켄과 잰드 반 툴레켄(35)을 대상으로 한 달간 실험해 얻은 결과를 최근 집중 조명했다. 쌍둥이 중 잰드는 한 달간 지방 함유량이 높은 육식 위주 식사를 했다. 잰드는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고지방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당분이 많은 채소·야채, 탄수화물 섭취를 전체 식사량의 2% 이내로 제한했다. 반면에 크리스는 지방이 없는 탄수화물과 당분이 풍부한 식단을 중심으로 식사를 했다. 크리스 역시 탄수화물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지만 지방 섭취는 최대 2%를 넘지 않도록 했다. 이들은 쌍둥이여서 실험 결과 몸의 변화는 유전자가 아닌 식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방송은 진단했다.
잰드는 육식을 많이 먹는 서양인에게 지방 식단은 고기, 생선, 달걀, 치즈 등을 먹을 수 있어 탄수화물 식단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방 식단은 고단백질을 섭취하기 때문에 줄곧 굶주림을 느낄 수 없었지만 오래가지 않아 변비로 이어졌고 우울감이 들어 인상을 쓰는 날이 많아졌다. 또 행동이 느려졌고 피로가 쉽게 찾아왔고 호흡도 원활하지 않았다.
탄수화물 식사를 했던 크리스 역시 식단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고탄수화물 식단은 많은 열량을 섭취하기 때문에 배가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항상 배가 고팠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계속 스낵류에 손이 갔다. 그는 저탄수화물 식사를 하면 한 달 뒤 늘씬하고 건강한 체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한 달 뒤 몸무게를 측정한 결과 고지방·저탄수화물 식사를 했던 잰드는 9파운드(약 4㎏)가 빠졌지만, 고탄수화물·저지방 식사를 했던 크리스는 2파운드(약 1㎏)밖에 체중이 줄지 않았다. 체내 지방 감소는 고지방 식단이 1.5㎏, 고탄수화물 식단이 0.5㎏으로 나타났다. 고지방 식단이 체중과 지방 감소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은 글리코겐(체내 다당류)과 체내 수분 감소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혈당을 낮춰 당뇨병을 막아주는 인슐린 분비는 고탄수화물 식단일 때 훨씬 더 원활하게 분비됐다. 당분이 많은 음식을 많이 자주 먹으면 인슐린 분비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고지방 식단일 때 오히려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져 계속 육식 위주 식사를 진행할 경우 당뇨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잰드는 고지방 식사를 시작하기 전 공복 혈당이 91.8㎎/㎗였지만 한 달 뒤 106.2㎎/㎗로 높아졌다.
안철우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내분비 당뇨병센터 소장)는 "단기적으로는 탄수화물 중심 식단이 혈당을 빨리 올리지만 4주 이상 장기적일 때는 고지방 식사가 인슐린 저항성을 만들어 혈당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이어 "베트남, 인도 등과 같이 탄수화물 섭취가 많은 지역에서 당뇨병 환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육식을 많이 하는 몽골에서도 당뇨병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고지방의 인슐린 저항성으로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인슐린 저항성은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 몸이 인슐린에 주는 자극에 매우 둔감해져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신체에너지를 써야 하는 사이클운동을 시켜 보니 탄수화물 식사를 하고 있는 크리스가 각종 테스트에서 잰드를 이겼다. 뇌를 쓰는 실험에서도 고탄수화물 식단이 이겼다. 잰드와 크리스에게 각각 가짜돈 10만달러를 나눠주고 집중도를 살펴봤다.
저지방·고탄수화물 식사를 하는 크리스가 투자 시작 1시간 만에 잰드보다 세 배나 많은 수익을 올렸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뇌를 움직이는 연료는 포도당으로 주로 탄수화물에서 얻는다"며 "뇌 활동이 많은 사람은 고탄수화물 식단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BBC방송은 고지방, 고탄수화물 식이요법에서 승자는 없다고 결론냈다. 지방이나 설탕 하나만으로는 입맛을 중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탕과 지방의 중독성은 설탕과 지방을 5대5로 혼합해 만든 가공식품에 의해 길들여진다고 BBC방송은 진단했다.
중독성이 강한 설탕과 지방의 대표적인 혼합식품은 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 감자튀김, 도넛 등이다.
실제로 뉴욕과 런던에서 길을 가는 시민들에게 초콜릿 도넛, 설탕으로 형형색색 모양을 낸 도넛, 일반 도넛을 놓고 선택하라고 하니 거의 대부분 일반 도넛을 선택했다. 초콜릿과 설탕이 좀 더 들어간 도넛은 너무 달고, 일반 도넛은 설탕과 지방이 절반씩 균형 있게 들어가 있어 그 맛에 중독돼 있었던 것이다. 지방과 설탕에 치우지지 않는 식단 구성과 관련해 안 교수는 "탄수화물 50%, 단백질 30%, 지방 20%가 가장 이상적이며, 지방은 12% 이상을 등 푸른 생선과 같은 불포화지방으로 구성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