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제봉주)

조회 수 7038 추천 수 7 2014.11.22 18: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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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트>
                                                                                                        검은 머리
                       
                                                                                                                                                               제봉주

   

  애린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이 즐거웠다. 바람에 출렁이며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머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학교 정문을 들어갈 때 마음이 한껏 즐거웠다. 오늘은 금발머리 염색을 하고는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기에 마미가 학교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다.
  애린은 즐겁기만 했다. 금발머리 메리와 제니에게도 보란 듯이 자랑을 해야지.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자랑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 전부터 애린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같은 반 메리는 은근히 금발머리를 자랑하고 걸핏하면 제니는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추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애린은 이런 것이 보기 싫었고 또 듣기도 싫었다. 학교에서 집에 와서는 자연히 시무룩하게 방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애린을 바라보는 시멘 여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멘 여사는 애린의 방에서 물어보았다.
  “애린아. 요즘 왜 말이 없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
  “마미. 나는 왜 까만 머리야. 우리반에는 엄마처럼 금발머리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미는 금발, 아빠는 갈색인데 왜 나는 검은 머리야?”
  “그건 말이야. 그럴 수도 있어. 학교에는 검은 머리 애들도 많을 터인데.” 
  “애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추어올리면서 수군거려. 그런 말 듣기 싫단 말이야.”
  시멘 여사는 난감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견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애린은 아직도 채 여덟 살이 넘지도 않은 어린 나이다. 아직 검은 머리로 태어나서 내 딸이 된 사연을 이해하기는 아직 어리니까. 
  “마미. 나도 금발머리가 되고 싶어.”
  “애린아. 너는 검은 머리로 나는 노란 머리로 태어난 거야. 그리고 아빠는 갈색이고. 마미는 검은 머리가 더 좋게 보이는데”
  “나는 싫어. 금발머리고 할 거야. 금발머리로 해줘.”
  시멘 여사는 난감했다.
  “지금은 금발머리로 할 수 없어.”
  “아니야. 할 수 있어. 미장원에 가면 금발머리로 바로 할 수 있단 말이야.”
  “지금은 아니지만, 네가 더 자라면 검은 머리가 더 좋다는 걸 알게 될 게야.”
  “싫어. 나는 지금 금발머리 할 거야.”
  애린은 울면서 응석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미장원에 갔다. 금발 머리로 염색하고 집에 돌아온 애린은 좋아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치렁치렁 곱게 빗겨 늘어진 금발머리를 보고 또 보고 했다.
 
  오늘은 애린이가 금발 멀리로 무장하고 학교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시멘 여사는 학교까지 특별히 자기 차로 데려다 주고 왔다. 온종일 안절부절못하면서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애린이가 돌아오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자꾸 눈은 시계로 향했다. 오후가 되어 학교 버스가 문 앞에 서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갔다. 애린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가득히 담고 마미에게 달려 왔다. 시멘 여사도 팔을 활짝 벌려 애린을 가슴에 꼭 안고 금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시멘 여사는 신체적 결함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었다. 남편 폴과 의논한 끝에 한국 영사관을 통해 입양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생후 첫돌이 지나지 않은 애린을 품고 오게 된 것이다. 한국의 보육원 이름이 애린 보육원이었다. 애린이가 자라서 먼 훗날 생모를 찾게 될 때 보육원 이름을 기억하면 도움을 줄 것을 생각해서 이름도 애린이라고 했다.
  “학교 재미있었니?”
  “친구들 모두 놀라워하고 선생님은 웃기만 했어.”
  “그래, 다행이구나. 마미도 축해해.”
  시멘 여사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빠른 시일내 선생님을 찾아 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애린의 일상에 대해 의논하고 조언을
까지 듣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시멘 여사는 애린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로 시간약속을 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선생님. 애린을 보고 많이 놀라셨지요?”
  “애린이 머리색이 아주 예쁘게 어울려서 웃어 주었습니다.”
  “예쁘게 보아주시니 고마워요. 애린이가 하루가 다르게 내게 놀랄 질문들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건 아주 정상적으로 자라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만일 애린이 마음속을 밖으로 표시하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두고 움츠러들면 더 큰 문제가 되지요.”
  “입양 사실을 알는 게 좋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적당한 시기에 알리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혹시 충격을 받으면 어쩌지요?”
  “애린은 쾌활하고 외향적이니 잘 적응해 갈 거라 봅니다.”
  “학교에서 애린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염려 마세요. 학교와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이니까요.”
  시멘 여사는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 폴에게 전화했다. 오늘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을 설명하고 적당한 시기에 애린에게 입양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말했다.
  이 주일이 지나갔다. 애린의 금발머리 뿌리에는 까만 머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애린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애린아. 마미하고 이야기 좀 할까?”
  “마미. 무슨 이야기인데?”
  “요즘 학교생활이 재미있어?”
  “요즘 선생님이 나랑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선생님이 너를 많이 사랑하나 보다”
  시멘 여사는 애린이게 쉬운 말로 입양된 사실을 이렇게 설명하고 애린을 안아주었다.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예쁜 딸이야. 네가 있어 나와 네 아빠 폴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한국 사람은 모두 검은 머리로 태어났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검은 머리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주신 거야.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똑같이 만드시지 않았어. 피부색도 눈도 사랑해서 주신거야.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똑같이 만드시지 않았어. 피부색도 눈도 코도 다 다르게 만드셔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신 거야’하고 이야기했다.

  삼 주쯤 지나니 애린의 머리는 뿌리가 길고 까맣게 자라나고 있었다. 중간 부분은 갈색, 끝 부분은 금발색, 이렇게 검은 머리가 점점 자라나는 것을 보는 시멘 여사의 마음을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애린은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시멘 여사는 애린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애린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마미, 벽에 있는 거울 없애 줘. 보기 싫어. 검은 머리도 찢어진 눈도 납작한 코도 그래. 밥 안 먹을 거야. 학교에도 안 갈 거야.”
  시멘 여사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쓰러질 뻔했다. 안절부절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저 어린 것이 거울을 볼 때마다 태어난 제 모습에 대한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시멘 여사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애린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이 어려운 고비를 상처 없이 넘어갈까 싶었다.
  오후 애린의 방에 들어간 시멘 여사는 애린을 불렀다.
  “애린아. 식사하고 집에 있어. 나 미장원에 갈 거야.”
  “마미. 미장원에는 왜?”
  “마미 머리 다듬고 싶어.”
  한참을 생각하든 애린은 입을 열었다.
  “마미, 밥 먹고 나도 미장원에 갈 거야. 함께 가면 안 돼?”
  “그래, 같이 가자.
  미장원 의자에 앉은 애린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옆 좌석에는 시멘 여사가 나란히 앉았다.
  미용사는 금발머리 염색 샘플로 들고 애린에게 물었다.
  “이 색깔 어때?”
  시멘 여사 앞 미용사가 금발머리 염색 샘플을 들고 있다.
  “아닌데요. 까만색으로 해줘요.”
 “아닌데요. 아주 까만색으로 해줘요.”
  두 모녀 입에서 같은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그때 애린이는 큰소리로 외쳤다.
  “마미. 안 돼. 마미는 금발이야. 하나님이 주신 거야.”
  애린이 애절하고 다급한 부르짖음이 미장원의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듣고 있던 시멘 여사는 더 놀랐다. 시멘 여사는 벌떡 일어나서 애린을 꼭 껴안았다.
  “사랑해. 자랑스런 내 딸, 애린. 나는 금발, 너는 검은 머리, 아빠는 갈색이야. 우리 가족은 세 가지 색이 잘 어울리는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야. 그렇지?”
  감격한 시멘 여사는 애린의 볼에 입술을 댔다.

  애린은 치렁치렁 늘어진 검은 머리를 하고 깡충깡충 뛰면서 미장원을 나섰다. 금발의 시멘 여사와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녀의 발길의 가볍기만 했다.

 

 

약력:

경남 진주 출생

크리스천문협 소설 당선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원

대한조선공사 및 삼화고무.

부산 삼립식품 근무

1975년 남미 에콰도르 이주

1980년 미국 LA정착

자영업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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