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달동네
-화해와 새로운 문학적 영역의 가능성
명계웅
문학평론가. 한국문협 미주지회 상임고문
나는 미주한인문학의 시발점을 강용흘의 자전적 장편소설 초당이 뉴욕의 Charles Scribner's Sons 출판사에서 출간되던 1931년으로 잡고, 이역만리 미주 땅에서의 한인들에 의한 문학 창작 행위가 오늘날 미주한인문학이라는 명칭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에는 대체로 세 단계의 형성과정을 거쳐왔다고 본다.
첫 번째 단계가 1930년대의 강용흘로 시작을 해서 1950년대, 60년대의 꽃신의 작가 김용익과 김은국의 순교자로 문맥이 이어지는 개척자적인 초기 미주 한인작가들이다. 이들 작품 제목이 시사해주고 있듯이 한국에서 자라온 신변 토로나 한국서민들의 토속적인 생활풍습, 또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현장 속에서 제기되는 긴박한 실존론적 문제들이 다뤄지고 있는데, 모두 영문으로 쓰여서 미국 독자층을 겨냥하여 유수한 미국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미주한인문학의 토대를 잡아준 초기 1세대 작가들은 이미 Mainstream화 되어 미 주류사회에 작가로서 주목을 받는 모범을 우리에게 진작 보여준 셈이다.
두 번째 단계는, 미국 이민 문호의 개방과 더불어 1970년대 한국인들의 미국에로의 이민자수가 급증함에 따라 미주 내 큰 도시를 중심으로 코리언 커뮤니티가 형성되던 시기로, 특히 나성에 이민 온 몇몇 문인들이 의해 미주한인문인협회가 결성되고 미주문학 창간호가 발간되던 뜻깊은 해가 바로 1982년 겨울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한글로 창작 발표되었던 작품들의 화두는 고달픈 이민 생활과 문화 충격에 따른 신변잡기 애환의 넋두리와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감상적 향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새 천 년 시대를 맞이하여 미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1세대 문인들의 의식구조가 종래의 모국 지향적인 콤플렉스에서 탈피하여 미주한인문학이 자생할 수 있다는 자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동시에 이창래를 비롯한 수잔 최, 단 리 등 영어권에 속한 2세대 작가들의 등장으로 미주한인문학이 미 주류사회 속에 새로이 둥지를 짓고 확장될 수 있는 전환적 계기를 맞게 되는 것도 이 시기에 나타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세 단계로 미주한인문학을 분류해 놓고 보면, 이영묵의 “워싱턴 달동네”는 두 번째 부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소설의 제목이 암시해 주고 있듯이, 워싱턴 디시의 변두리 슬럼가나 다름이 없는,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모여 사는 험악한 빈민촌에서 술장사와 잡화상, 세탁소를 하는 한인 이민 1세대들의 공통의 주제인, 고달픈 일상적 삶의 애환과 갈등의 짙은 암운이 작품 저변에 깔렸다. 그러면서도 그 심층구조에는 보다 본질적인 인간관계의 허위와 위선을 통한 소외감과 인간 본연의 실존적 고독감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영묵의 달동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인 김석준을 비롯하여 도미 목적으로 그와 결혼한 경숙이나, 김상철, 장영애 등 모두가 이민 1세대들의 고뇌와 탐욕, 갈등과 한이 표출된 우리네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영묵의 달동네가 미국에 이민 온 변두리 인물들의 통속적인 애환의 넋두리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상반된 논리 속에서 나름대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끝내는 화해라는 변증법적인 특징적 삶의 양식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의 묘미가 있다. 문화 충격과 아울러 고된 정착기의 미국이민 생활과 그 속의 남녀 갈등과 화해의 구조를 지니면서도 그 밑바닥에 본질적인 인간 실존의 원초적인 죽음과 영혼의 문제를 천착해 가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달동네의 주인공인 김석준이 결국 흑인 처녀 페티와 결혼하게 되고, 그녀와의 동거에서 탄생한 아들 벤자민에게서 불현듯 자신의 모습을 어렴풋이 투영해 본다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우리 이민 1세대들의 소설 창작의 영역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실로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하겠다. 이영묵의 달동네에 나오는 페티는 종래의 미주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흑인에 대한 고정 관념을 타파한, 매우 의리 있고 신중하고도 스마트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인종적인 갈등의 화해를, 그리고 다문화 사회 속에서의 변두리 소수 민족들이 지향할 미래상을 이영묵은 그의 작품세계 속에서 진지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현대 소설에서 스토리 텔링의 기능이 와해되고 난해하여서, 독자들을 잃고, 소설 자체의 존립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영묵은 영국의 대중소설작가 서므셋 모음이 일찍이 주장했던 것처럼 소설은 우선적으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영묵은 달동네에서 7년 전 워싱턴 디시에서 술가게 ‘파라다이스’를 운영하던 주인공 김석준이 앨라배마에 있는 교도소에 왜 복역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운영하던 술 가게는 왜 포기했는지, 첫 장면에 나오는 한인들의 묘지에 묻히는 김상철과 주인공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흥미있게 끝 정면까지 유도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곳곳에 부수적인 삽화적 사건들을, 이를테면 달달이 장영애와 거부 미스터 제임스 휘처랄드의 관계, 김상철과 카르멘, 히스패닉 마약 갱 단과의 사건 등, 다채롭게 연결시키고 있다.
이영묵의 소설은, 결국 단순히 이민생활의 애환을 묘사한 미주한인문학의 제2카테고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주한인문학이 지향할 복합 다문화사회 속에서의 갈등의 해소와 화해, 그리고 그 문학적 소재의 새로운 다민족 영역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 그 의미성이 있다 할 것이다.
약력:
* 서울 출생
*1959년 경기고 졸업
*1963년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전 워싱턴 문인회 회장
*저서 : 단편소설집 [워싱턴의 도박꾼]
-장편소설 [워싱턴 달동네]
-에세이[워싱턴에 살며 생각하며]
-여행기[길에서 나를 본다]